제 542화
#542. 형사 출장비
“그럼 저기 있는 요시찰인 A급 명단 말입니다. 한번 볼 수 있습니까?”
김세민이 전향자 명단을 보고 싶다고 말을 하였더니 강청산이 고개를 흔들었다.
“김 계장은 지금 대공 1급 비밀 취급 인가증이 없다 아이요? 대공 부서에 한 번이라도 근무하면 나오는데…… 그라모 우신에 내가 2급은 발급해 줄께.”
비밀 취급 2급을 내어 주겠다고 말을 하길래 김세민이 그 둘의 차이점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아! 고거! 마 별거는 없다. 그란데 2급까지는 우리가 지방청에 보고하면 바로 내려 주는데 1급은 경찰청에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기라. 대공 부서 근무 안 하는 사람한테는 발급 안 해 줄 기다. 그라이 A급은 볼 수가 없다는 말이지.”
“그렇군요…….”
“와, 뭐 궁금한 거 있나? 정 그라면 개별 건수마다 내한테 이바구하소, 그라모 내가 대신 확인해 주께.”
“박정수와 죽은 김신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김신이 있었다는 거제 수용소 71호 막사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는지, 아님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정보라도 좋구요.”
“그라지 뭐. 내 찾아보고 뭐라도 나온 것 있시문 바로 연락해 주께.”
“감사합니다. 그럼 전 내려가 보겠습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나자 강청산이 문 앞까지 배웅을 해 주었다.
“당신 보니까 옛날 생각 많이 난다.”
“예?”
“그 뭐랄까, 일에 대한 열정? 참 보기 좋네. 나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인자 다 세월과 함께 넘어가 버렸다 아이가.”
“뭔 그런 말씀을 다 하세요? 아직 한창이신데.”
김세민이 그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자 강청산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요. 이번에 경찰청 대공국을 보안국으로 바꿨다 아이가? 일선 경찰서도 보안과로 바꾸려고 하다가 반발이 워낙이 심해서 다음 기회로 넘겼는데 그 말이 수상한 기라.”
“뭐가 말입니까?”
“생각을 함 해 보소! 대공과라 카문 누구나 아 하고 알아듣지 않소? 그렇게 쉽게 머리에 쏙 들어오는데 보안국이니 경찰서 보안과라 해뿌면 무슨 일 하는 과인지, 뭘 하는 놈들인지 아리송하다 아이가?”
“…….”
“그라고 이거는 사담인데, 보안국이니 보안과니 이런 말들은 제3세계에 있는 독재자들이 그런 말들을 많이 쓴다고 카대? 히틀러나 남미의 독재 국가들 아 있소? 금마들이 보안이란 말을 쓰면서 국내에 있는 반대 세력들을 탄압하기 위해서나 체제 유지를 위해 그런 용어를 쓴다고 하는데 이게 웃기는 소리 아이요?”
강청산은 왜 대공이란 명칭을 없애 가면서 이런 아리송한 부서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것에 대하여 강하게 불만을 쏟아냈다.
“뭐 그거야,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지난번에 김일성이가 죽기 전에 정상회담도 하려고 했던 것이고 말입니다.”
“우리가 뭐가 무섭다고 점마들을 자극하면 안 되는데? 언제 우리가 점마들 눈치나 보고 사는 존재로 전락을 했소? 난 그게 불만이야, 아니 할 말로 보안국이라 함은 대공만이 아니고 국내에 반정부 단체를 망라해서 감시하겠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도 있다고. 우리는 북한 공산당하고 싸우는 것이지, 아직 공식적으로 휴전 상태 아이요? 정치적인 탄압을 하는 부서는 아니란 말이야. 난 그런 뜻에서 보안국이란 용어는 쓰지 말자는 것이지.”
“그런데 방범과로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보안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경찰에 처음 들어올 때 보니 지금의 방범과가 보안과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을 받자 강청산이 더욱 열을 냈다.
“말 한번 잘했소. 그 보안과란 명칭은 일제 강점기 때 경찰서 부서가 경무과와 보안과, 사찰과, 그리고 주재소, 딱 요래만 있었거든? 사찰과는 독립운동이나 좀 차원이 높은 반체제 인사들을 조지고 보안과는 일반 서민들 술 한잔 묵고 헛소리하는 거 잡아다가 뚜디리 패고 즉결 보내고 그런 짓거리 하지 않았소? 해방되고 나서도 자유당 때도 보안과는 여전히 그런 짓거리를 하다가 지난번에 겨우 명칭을 방범으로 바꾸고 나서는 인자 경찰이 국민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가 보다 생각을 했는데 또다시 보안국이라니, 난 그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나쁜데 우짜겠소? 자, 그만합시다. 당신하고 나하고 여기서 백날 떠들어 봐야 입만 아푸지. 그나저나 당신은 각하가 김일성이하고 정상회담을 계획했다는 소리는 어데서 들었소? 그거는 X발 X나게 1급 기밀인데?”
“아, 저도 우연히 들었습니다.”
김세민이 속으로 아차 싶어서 그렇게 얼버무렸다.
“하기사 요새 1급 기밀이 무신 필요가 있노? 기자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데 말이라. 자, 내려가서 일 보소! 내 당신 말한 거는 찾아볼게.”
강청산은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창가로 몸을 돌리면서 담배를 하나 더 빼 물었다.
김세민은 형사과 사무실로 내려와서 오독새를 찾았다.
“과장님, 찾으셨능교?”
“응. 이리 앉아 봐.”
“무신 일이심니까?”
“이번 사건 말이야, 자네가 좀 풀어 줘야겠어. 지금 당장 거제도로 가.”
“거제도 말입니까?”
“그래, 가서 우선 사람을 찾아. 거제 경찰서 대공과에 근무를 하다가 정년퇴직한 사람을 수소문해서 찾아낸 다음에 가서 사정을 말해. 그리고 여기 박정수와 죽은 김신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공식적으로는 다 폐기를 했다고 하지만 아직 대공형사 출신들이 자료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거든. 출장비 넉넉하게 받아 가지고 가서 일단 퇴직하고 거제에 살고 있는 대공형사들은 전부 수소문해서 만나 보라고. 그리고 매일 저녁에 나한테 그날 수사한 사항은 전화로 보고하고 다음 지시를 받도록. 기자들한테 걸리지 않게 보안 유지 잘해야 돼.”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오독새의 눈에 생기가 일었다.
“알겠습니다. 절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독새에게 형사로서의 동기를 부여한 것이었다.
오독새가 나가고 나서 잠시 후에 관리반 김 주임이 출장 명령서 결재를 들고 왔다.
“독새 점마 거제도로 출장을 보내신다고요?”
“아 네, 좀 확인을 해 볼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출장비나 넉넉히 챙겨 주시죠.”
“출장비예? 우리 여기는 출장비 주고 그런 거는 없심니다.”
“아니, 출장을 가는데 왜 출장비가 안 나옵니까? 우리 활동비는 다 어떡하구요.”
김세민은 외근 형사들한테 나오게 되어 있는 외근 활동비 내역을 물었다.
“아, 고게 말이시더. 안 그래도 과장님한테 돈 문제를 한번 말씀을 해 드리긴 해야 하는데 마 잘됐네예. 이번 기회에 다 말씀을 드리야겠다. 형사들 외근 활동비가 한 달에 개인당 17만 원이 나오니더. 그라모 우리가 총 60명이니 한 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아입니까?”
“그렇게 되네요.”
“그란데 고기서 서장님 특수 활동비를 20%를 떼 가니더. 그라고 경리계에서 서장실에 무슨 물품 사는 것이나 커피나 음료수 뭐 이런 걸로 해가 또 10%를 뗀다 아잉교. 그라고 과장님 특수 활동비로 또 10% 떼고 하문 형사들한테 일인당 한 7, 8만 원 정도 돌아가는 기라예.”
“그럼 그 돈은 형사들한테 제대로 지급이 됩니까?”
“어데예? 형사들이 그런 푼돈 받으려고 안 하지예. 그 돈은 형사 각 반 도 반장들이 받아 가지고 공금으로 사용하지예.”
“무슨 공금으로 지출할 게 또 있다고 그럽니까?”
“아, 공금이야 쓸 데는 많지예. 점마들 당직할 때 밥도 사 묵어야 하고 서장님이나 과장님 월대도 챙겨야 하고 기자들한테도 한 달에 한 번 월대도 줘야 하고 지방청 형사계에도 월대 줘야 하고 아마 고것도 적자가 날 거시더.”
김세민은 갑자기 뒷목이 뻐근했다.
교통부서에 근무할 때 지겹도록 싸웠던 월대와의 전쟁을 다시금 여기서 치러야 한다는 사실에 골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좋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출장비는 왜 없는 겁니까?”
“아 고게 말이지예. 우리는 잘 모리는데 경리계에서 그렇게 말을 합디다. 일단 출장비 신청서는 다 받아 놓고 분기에 출장비가 나오면 일괄 정산을 하는데 고게 전체 경찰서 출장비가 나오는 중에서 나누기 n분의 1 하게 되는 기라예. 그라이 신청한 출장비의 3분의 1도 안 나오는 기라예.”
“설마 경리계에서 혓바닥을 대는 건 아니겠지요?”
“와 안 대겠심니까? 아무것도 생기는 데가 없는 내근 부서는 출장비가 그래도 한 70% 정도까지는 나온다고 카기는 카대요. 그란데 우리나 교통이나 소위 말해서 민원부서는 출장비 소리 하면 욕만 들어 묵으니 아예 형사들도 출장비 달라는 소리는 안 하는 기라예.”
“그럼 형사들은 출장비를 어디에서 받아서 갑니까?”
김세민은 동래서에 있을 때도 출장비 때문에 경리계장과 싸웠던 기억이 나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거야 형사들이 자기가 평소에 닦아 놓은 물주를 찾아가야지예. 그런 물주를 많이 갖고 있는 형사가 유능한 형사이고 그게 안 되면 마누라가 이리저리 돈 빌리러 다니고 빚지는 거지예. 그라문 나중에는 결국 형사 생활을 오래 못 하고 빚만 잔뜩 지고 제 발로 형사계를 걸어서 나가게 되지예.”
김세민은 오독새가 걱정이 되었다.
“오독새는 성격이 어떻습니까? 밖에 나가서 따와이할 만큼 물주가 있습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김 주임이 펄쩍 뛰었다.
“어데예? 점마 성질에 어디 물주가 있겠심니까? 걸리면 무조건 잡아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놈인데 아무 돈이나 받았다가는 대번에 낚일 텐데 그리 못 할 기라예.”
“그럼 내가 출장을 가라고 했으면 어디 가서 출장비 따와이도 못 하고 집에 있는 돈 갖다가 쓰겠네요?”
“마, 아마도 점마 성격에는 그리할 기라예. 그라이까 점마 마누라도 저기 수정 시장 안에서 양품점을 한다 아잉교? 마 저거 마누라한테 가서 출장비 얻어 가지고 갈 기라예. 과장님은 신경 쓰시지 마이소.”
김세민은 자기 수사 욕심에 부하 직원들이 금전적으로 피해를 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한 풍조가 형사계에 만연하게 되고 경찰이 정의의 편에 서서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잠깐 힘이 빠졌지만, 자신부터라도 태도를 바르게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다졌다.
“형사과장 특수 공작비가 10% 지급이 된다고 하였죠?”
“예, 맞니더. 지금 융통해서라도 좀 드릴까요? 돈이 없심니까?”
관리주임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니, 앞으로 내 것은 하지 말고 모아 두었다가 출장 보내는 직원들 출장비로 지급하도록 합시다. 우선 독새한테 출장비로 30만 원 정도만 지급해 주세요.”
“아니, 그라모 과장님은 우짜시고요?”
“나? 왜요?”
“여긴 뭐 짜달시리 밖에서 인사 들어오고 하는 것도 없어예. 그라고 형사주임들 이바구 들으니 당직하고 인사하는 당직비도 안 받는다고 하셨다문서요?”
통상 김세민이 포항 북부서에서 본 상황처럼 당직을 하고 나면 그날 당직에 따라 형사계장이나 과장, 그리고 서장한테 결재를 받으면서 당직 따와이한 것을 상납하는 것이 전국 형사들한테는 널리 통용이 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래 봤자 가난한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친 울화통을 술 한잔 먹고 화풀이하려다가 실수를 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결국 또 가난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었다.
김세민은 자신한테 올라오는 상납의 고리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한 단계라도 상납의 단계를 줄이겠다고 형사계장으로 발령받을 때부터 단단히 속으로 결심을 한 참이었다.
“뭐 어쨌든 나는 아직 가족도 없고 그렇게 돈이 들어갈 곳도 있는 게 아니니 나한테는 신경 쓰지 말고 형사들이 활동하는 데 애로 사항이 없도록 우리 관리반에서는 전보다 더 신경을 써 주세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서장한테 주는 월대도 제끼고 싶긴 한데 주다가 갑자기 끊으면 시끄러워질 수도 있으니…… 일단은 유지하고, 경리계장한테는 내가 한번 틈을 봐서 얘기를 하도록 하지요.”
김세민이 그렇게 얘길 마무리하자 관리주임이 이렇게 말을 했다.
“경리계장은 계급이 경사라도 능구렁이 중에 상능구렁이라예. 점마들은 경리 특기가 되어서 다른 경찰서로 가도 전부 경리만 보거든예? 그라이 웬만하면 마 모린 체하이소. 경리계장 씹기 시작하모 그게 서장님 까는 거하고 똑같심니더.”
김세민은 잠시 앉아서 생각을 정리한 다음 경찰청장 부속실로 전화를 걸었다.
-네, 조 경사입니다.
“감사합니다는?”
-어라! 사수님! 어쩐 일이세요?
“감사합니다는 왜 안 하냐고, 너 통신 예절이 아주 글러먹었어?”
-에이, 사수님인 줄 알았으면 했겠죠. 다른 사람들한텐 딱히 감사할 것도 없고…….
“놀고 있네. 그건 그렇고 말이야. 거기 보안국 서무계장하고 면이 있나?”
-알긴 알아요. 왜요?
“대공 1급 비밀 허가가 필요해. 첫 사건부터 용의자가 대공 용의점이 있는 반공 포로 출신이란 말이지……. 그래서 수사하는 데 걸리는 게 많아.”
-그렇구나……. 그럼 당장 알아보고 조치해 드릴게요. 얼마 안 걸릴 거예요.
“그래, 또 협박하고 그러지 말고, 좋은 말로 부탁하라고. 알았지?”
-에이, 또 그러신다. 제가 언제 사람 협박했다고 그러세요?
“김순철이가 니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얼굴이 사색이 돼.”
-아~ 그 이상한 아저씨? 그 아저씨한텐 그래도 돼요.
“하핫,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럼 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고마워!”
조 경사는 청장 부속실 생활이 즐거운지 말투에 언제나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아마 자신의 위세에 눌려서 꼼짝 못 하는 본청 간부들의 행태가 우스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보안국은 경찰청 내에서도 가장 으슥한 곳인 10층의 통제 구역에 위치해 있었다.
복도에는 지나다니는 직원들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보안국 서무인 보안 1과의 사무실 문을 조연희가 호기롭게 밀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다들 양복을 쫙 빼입고 그럴듯하게 책상에 앉아서 보고서를 쓰고 있지만 사실 보안국은 한직이고 할 일도 없었다.
간첩이 눈에 띄게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옛날처럼 대학생들을 좌경 의식화되었다고 무조건 잡아다가 족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기에 개점휴업인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과거의 위상에서 벗어나기 싫어서 전부 다 양복을 입고 스파이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란 걸 조연희는 잘 알고 있었다.
“어! 아니 조 승지 아냐?”
“우리 사무실까지는 웬일이래?”
“조 부장! 여기는 웬일입니까?”
보안국 1계 서무반장인 노찬수 경사가 그렇게 물어 왔다.
다들 갑작스러운 조 승지의 출현에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조연희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질문에 웃음으로 화답하고 보안국 1계장인 주룡 경정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