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5화
#585. 토끼몰이
“140 종실(동부서 상황실)! 여기 수정 임시 검인집(수정 삼거리 임시 검문소)!”
“여기 종실!”
“아! 여기 탈취 거마가 오고 있습니다! 총 쏴도 됩니까?”
파출소 대원 중 하나가 무전에 대고 묻자 정우진 서장이 벼락같이 화를 냈다.
“야 이 새끼야, 아까 쏘라고 했잖아! 병X같이 왜 자꾸 쏠까요, 말까요 물어보고 있어! 눈에 보이는 즉시 쫄지 말고 쏘란 말이야! 차바퀴나 다리를 조준해서 쏴! 뒤는 서장인 내가 책임진다!”
서장이 무전에다 대고 병X들이란 소리를 여과 없이 내질렀다.
“에라이 모리겠다. 야, 쏴라! 미 하나가 다 책임진단다. X발 니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탕! 타타탕! .
탕탕탕!
수정 삼거리 임시 검문소를 지휘하던 수정 파출소 홍 경사는 정우진의 질책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일제사격을 명령했다.
총소리가 나자 달려오던 택시가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더욱 가속을 하더니 우회전으로 꺾어서 바로 산복로를 타고 올라갔다.
타타탕!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유효 사거리 벗어났다 아이가! 이 X발 놈들이, 경찰학교에서 다 쳐 졸았나? 뭐 하는 거야! 조준해서 사격을 해야 될 거 아이가! 마구잡이로 갈기면 어쩌자는 기고!”
파출소 직원들은 실전 경험이 부족한 탓에 학교에서 38 리볼버 권총의 유효 사격 거리는 50미터가 한계라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총을 갈겨 댔고, 그걸 본 홍 경사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쌍욕을 퍼부었다.
“거 140! 여기 수정 임시 검인집!”
“여기! 어찌 되었어?”
이번에는 종실장이 직접 무전을 잡았다.
“고마 놓쳤심니다. 그대로 산복도로로 기어 올라갔심니다.”
그때 김세민의 무전이 나왔다.
“아, 사하나했어(수고했다)! 혹시 놈이 다시 차를 돌려서 내려올 수도 있으니까 임시 검인집은 그대로 유지를 한다. 목표는 민주 공원이다. 그쪽으로 토끼몰이를 할 테니까 망양하고 성북 순마도 중간에서 빠지지 않도록 경광등 돌리고 방어만 하라고. 그리고 방순대 출동 준비는 다 됐나? 종실!”
“아! 내 미 여덟이오! 서장님 지시는 받았는데, 지금 버스 운전수가 당직하는 한 놈밖에 없어서 한 개 소대밖에는 출동이 안 된다고 카네.”
대공과장이 버스 운전수가 아직 수배가 안 되어서 한 개 소대밖에는 출동이 불가하다고 무전을 했다.
“아, 그거라도 되었습니다. 지금 즉시 출동시켜서 민주 공원으로 올려 보내 주세요. 당직 소대장이 인솔해서 민주 공원에 도착하면 미 여섯한테 상고해서(형사과장한테 보고하고) 종 여섯(지시) 받으라고 해 주시고, 범인이 민주 공원을 넘어서 구봉산이나 엄광산으로 도주하면 안 됩니다.”
“아…… 칠팔!”
무전을 잡아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대공과장이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성질 급한 정우진이 다시 무전에 끼어들었다.
“야, 지방청 보고는 했어? 그리고 직원들 비상소집은! 이 새끼들이 서장이 지시를 하면 복명을 해야 할 것 아냐!”
“아! 칠팔입니다. 명인집(지방청) 상고했고, 페이저 수신기(외근 형사들한테 지급되는 호출기)와 일제 전화로 본서 직원들도 다 비상소집 했습니다.”
상황실 정 경사가 그렇게 대답을 했다.
“독수리 배치는?”
“아. 예, 예…… 지금 경비계 직원을 불러 놨심니다…….”
“뭐가 어째? 아니 이 자식이 미쳤나? 야 임마! 그게 네가 할 일이잖아!”
“죄, 죄송합니다!”
“경비계 직원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야? 하! 이거 돌아 버리겠네! 뭐, 이딴 새끼가 상황실에 앉아 있어?”
그때 김세민이 무전에 나왔다.
“종실 정 S! 여기 미 여섯!”
“여기 정 S입니다.”
“당황하지 말고 종실장 책상 위에 보면 비밀 함 열쇠가 종다(있다). 그걸 가지고 종실장 의자 뒤편에 보면 비밀 캐비닛이 또 종다(있다). 열어 보면 ‘대통령 훈령 28호’란 2급 비밀 책자가 있을 거야. 거기에 보면 다 나와 있다고. 직원들 비상소집 응소하면 바로 무기고에서 무기 지급해 주고 응소하는 순서대로 우리 관내는 모두 해서 21군데인가 그럴 거야. 영주 로터리와 초량 육거리, 그리고 수정 삼거리, 교통부 로터리, 좌천 신호대 등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가까운 장소부터 먼저 배치하라고 종실장한테 상고 종열(보고하도록)!”
김세민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를 하라고 차분하게 무전을 해 주었다.
“아! 칠팔 했습니다.”
“미 하나! 여기 미 여섯!”
“여기!”
“명인집 명 하나께 지휘 상고하셨습니까(청장한테 지휘 보고했습니까)?”
“아! 그러네, 근데 시간이 새벽 4시도 안 되었는데 전화해도 될까?”
“독수리 작전(대간첩 작전)에 시간이 무슨 소용입니까? 나중에 늦게 상고했다고 문책당하면 어쩌려고요?”
“아! 알았어! 지금 바로 한다. 근데 왜 이렇게 잠잠해? 간첩 이 새끼는 어떻게 됐어!”
정우진이 느닷없이 간첩의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다.
“여기 망양 강 SP인데예! 방금 망양 삼거리 종셋 했심니다! 우리도 따라갈까예?”
망양 파출소 직원이 자기들도 추격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지 물었다.
“아! 망양은 거기서 그대로 망양 삼거리 틀어막고 있어! 민주 공원 방향으로 가는 차는 아래로 다 내려보내고 말이야. 그리고 지금부터 민주 공원을 완전히 통제하도록! 작전 지역 안에 민간인 출입을 완전 통제 하도록! 종실에서 일괄 종여섯을 해 주도록(상황실에서 일괄해서 지시를 내리도록)!”
“아, 종실 칠팔 했습니다.”
“야, 전투 지경선(각 부대가 맡을 수 있는 전투 및 방어 구역을 지정해 놓은 경계선)도 확실히 해 주라고!”
또 정우진의 무전이 나왔다.
‘전투 지경선 좋아하네……. 지금 무슨 군사 작전 하는 것도 아니고, 신났네 신났어. 어휴…….’
김세민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무전에서 지시받은 사항이니만치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 칠팔입니다. 격대장(타격대장)! 여기 미 여섯!”
“여기 격대장입니다!”
왱왱왱왱! 삐리리릿!
5분 대기 분대장이 무전기를 잡자 무전기 너머에서 비상 경광등 돌아가는 소리가 그대로 다 들렸다.
“재고 사팔(현재 위치)!”
“아! 대청공원(현재 민주 공원) 종넷(도착)했심니다. 야, 전원 하차해! 사주 경계!”
금일 5분 대기 분대장인 수사 1계장은 특차 간부 후보생으로 들어왔다가 아직 진급에서 밀린 고참 경위였는데 군 경력은 학사 장교 출신이라 부대 지휘 경험은 서툴지 않은 것 같았다.
“민주 공원에 보면 충혼탑과 반대편 중앙공원이 종다(있다). 그리고 반대편은 동아대 병원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격대 차량을 가로 세워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범인을 민주 공원으로 올려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생포 작전을 합니다. 이후로는 종실에서도 간첩이란 용어는 종구(사용하지 말도록)하고 살인 피의자로 통일을 한다. 다들 오륙 했는지?”
“아! 칠팔! 칠팔!”
그때 또 무전이 나왔다.
“미 여섯! 여기 149 1소장(동부 방순대 제1소대장)!”
“여기 미 여섯!”
“1소 물넷 잠잠 전 미인집(경찰서)에서 종둘(출발)! 이정표(목적지)가 어딥니까?”
“이정표는 민주 공원! 전원 전투 복장으로 총기 열두 시 했죠?”
“아! 칠팔입니다.”
“그럼 민주 공원에 종넷(도착)해서 미 여섯과 열두 시(형사과장과 만나자)!”
“아! 칠팔! 칠팔!”
그때 지방청 거 900에서 수배 무전이 내려왔다.
“아 단말 교중! 재고 날 때 140 울안(관내)에서 독수리 솔둘(대간첩상황)이 종다. 수배 거마 유연(수배 차량 통보), 부산 1다 XX37 연두색 모범택시, 부산 1 가나다라 할 때 다에 XX 석 삼 일곱 칠, 연두색 모범택시. 택시 캡에 비둘기 베스트 드라이브 표시가 종다하다고 하니까 참고 종열(참고하도록). 그리고 재고 날 때(현재 시간) 교통 비상근무가 발령되었음. 울안 종모 사오자들은(시경 산하 모든 근무자) 각 신기(신호기) 및 사거리에 정위치 근무할 것. 교통순마(교통백차)들은 주십일(신속히)로 신기 사오자에게 총기 지급할 것. 이상 조독은 생략. 110 미 스물아홉(중부서 교통 외감)! 여기 거 900!”
“여기 110 미 스물아홉입니다!”
“아 칠팔! 영주타(영주 로터리)와 영주턴(영주터널) 위에도 교인 종일곱(배치)하여 거마(차량) 통제하라는 명 서른(안전계장) 종 여섯!”
“아 칠팔! 칠팔!”
“거 160 종실(서부서 상황실)! 여기 거 900!”
“여기 160 종실입니다!”
“160도 민주 공원을 넘어가면 바로 동아대 병원 후문이니까 물넷 종일곱(병력 배치)해서 사오 종만하라는 명인집 종실장 종여섯(지방청 상황실장 지시)!”
“아! 칠팔 했습니다.”
* * *
한편 서울 경찰청 상황실.
부산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예감한 상황실 근무 의경인 조 수경이 살짝 밖으로 나가서 조연희 집에 전화를 걸었다.
또르르륵! 뚜르르르!
짤가락!
-네……. 여보세……요…….
“조 부장님? 저 상황실 조 수경입니다.”
상황실이란 말에 조연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요일 새벽에 상황실에서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뭔가 큰일이 터졌다는 신호였다.
더구나 지금 전화를 걸어온 조 수경은 조연희가 서울 기동단에서 가장 힘들다는 제1기동단에서 풍천 조씨 성을 가진 대원 둘을 특별히 선발해 본청 상황실에 갑, 을반으로 근무를 시키고, 대신에 부산 동부서에서 야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자신에게 연락을 하도록 일부러 심어둔 인원이었다.
-왜? 무슨 일인데?
직감적으로 정우진과 김세민 둘이서 사고를 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여도 조마조마했는데 두 사람을 같이 붙여 놓았으니 그냥 사고가 아니라 큰 사고를 쳤을 것이라고 내심 짐작을 했다.
“지금 부산 동부서 상황이……”
조 수경이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다.
“아무래도 간첩 같은데요? 지금 바로 나오셔야겠습니다.”
-일단 알았어, 택시 잡히는 대로 갈 테니까 아직 청장님한테는 연락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조연희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간첩?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그것도 부산 한복판에서, 대간첩 작전을 벌여?”
* * *
정우진 서장은 문일용 지방청장에게 지휘 보고차 전화를 걸었다.
뚜우우우!
철커덕!
-아~ 부산 지방청장입니다.
“네 청장님, 주무시는데 송구합니다. 동부서장입니다.”
-누구? 동부서장? 이 새벽에 무슨 일이야, 뭔 일인데?
“예, 다른 사고가 아니고 지금 상황이 좀 급하게 되어서요.”
정우진 서장은 문일용 청장에게 작전 개시부터 진행 상황까지 상세히 보고를 했다.
-음…….
“곧 검거는 하겠지만 이미 총도 쏘고 해서 시민들의 신고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아침 첫 뉴스에 방송을 탈 확률이 높습니다. 청와대 상황실과 본청장님한테 지휘 보고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건 그렇고 동부서장은 지금 어디서 보고하는 거야? 경찰서에 나와 있나?
“아닙니다. 처음부터 현장에서 형사과장과 같이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 공원으로 토끼몰이를 하고 있으니까 곧 잡을 수 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정우진이 그렇게 자신 있게 얘기를 했지만 문 청장은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당신 말대로 정말 간첩이라고 쳐, 그러면 동부서 병력만 가지고 어떻게 잡겠다는 거야? 우리 특공대 출동시키고 사단에도 알리도록 해! 거기도 뭐 5분 대기 부대가 있을 것 아니야! 잘 알고 있겠지만, 이건 공을 다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만에 하나 놓치는 날엔 당신이나 나나 앞길 꼬이는 건 매한가지일 테니 말이야. 나도 지금 바로 사무실에 나갈 테니까, 계속 연락 유지해! 실시간으로 보고 올리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 * *
청와대 종합 상황실.
경찰청에서 청와대 상황실로 파견 나온 진세묵 경정은 부산청에서 올라온 보고를 요약해서 상황실장에게 들고 갔다.
청와대 상황실장은 국방 비서관실에서 소장이 교대로 나와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소파에 머리를 뒤로 기대고 눈을 감고 있던 방인수 소장이 누가 자신의 앞에 서서 발뒤꿈치를 붙이는 소리가 나자 본능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반백인 머리를 기름으로 단정히 빗어 넘기고 짧게 깎은 머리에 눈을 뜨자 눈에서 번쩍하고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뭐야?”
“부산에서 올라온 보고인데 지금 대간첩 작전 중이랍니다.”
진 경정이 방 장군의 목소리에 기가 죽어 조심스럽게 그렇게 보고를 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대간첩 작전이라니? 간첩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난데없이 간첩 운운하는 소리를 듣자 방 장군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잘하면 승진, 잘못되면 모가지였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이리 줘 봐!”
진 경정이 들고 있던 보고서를 홱 하고 뺏어 든 방 장군이 안경을 찾아서 서류를 훑어 내려갔다.
“이런 X발……. 야, 빨리 비상 걸어! 그리고 지금 특전사 출동 가능한 부대가 어디야? 707 출동 가능한지 물어봐!”
“예!”
“빨리빨리 움직여! 그리고 비서관한테 빨리 전화하고 차량 보내! 국방부하고 육본에도 연락하고, 부산에 53사단장 연결해!”
* * *
망양동 산복 도로.
탈취한 택시를 타고 도주하는 박산은 점점 마음이 초조해졌다.
초량 아랫길로 내려가야 도주하기가 쉬운데 중간에 내려가는 길목마다 경찰관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민주 공원 방향으로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아직 경찰의 포위망이 촘촘하게 펼쳐지기 전이라면 민주 공원을 넘어 보수동으로 가서 차를 버리고 주택가 골목으로 잠입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러려면 경찰의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민주 공원을 넘어가야 했다.
눈앞에 보이는 연화 삼거리에도 벌써 경찰들이 서너 대 백차를 가로 세우고 경광등을 돌리면서 바리케이드를 친 채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런 젠장, 내가 뭣 하러 여길 와서…….’
비록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이지만 왠지 은지가 좋았기 때문에 한 번 더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 오늘 무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일반 고첩들끼리의 접선도 아무리 빨라야 2년에 한 번 접촉을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두 번씩이나 은지를 만나려고 했으니 발각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또한 자신의 이런 무모한 행동 때문에 은지가 감수해야 할 불이익을 생각하니 더욱더 미칠 것만 같았다.
“으아아아악! X발 이 간나 새끼들! 내레 다 죽여 버리고 같이 죽을 기야.”
운전대를 잡은 박산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