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9화
#589. 내가 서장인데 말이야
정우진 서장은 눈을 감은 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었으므로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로 상의는 와이셔츠 위에 경찰 정복 윗저고리만 걸친 채였다.
테이블 위에는 서장의 도장이 인주 통에 꽂힌 채였는데 주임들이 결재를 들어오면 알아서 도장을 찍어 가라는 뜻이었다.
“에이 X발, 괜히 오른팔을 다쳐 가지고…….”
오른팔 깁스가 사람의 기본적인 생활을 얼마나 침해하는지 단단히 체험 중인 정우진이었다.
세수도 고양이 세수로 대신하고 면도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래도 대충 걸쳐 입은 경찰복 윗저고리에 부착된 각종 기장이나 대통령 표창 기장 같은 것은 녹록지 않은 관록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갑자기 밖이 어수선해지면서 낯선 사내들이 들어섰다.
“아니 어디서 오셨어요! 허락을 받고 들어가셔야지, 그냥 불쑥 들어가시면 어떡해요!”
밖에서 부속실 조연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신이 서장이오?”
앞장서서 들어온 사내가 그렇게 물었다.
김세민한테 총을 빼앗기고도 어쩌지를 못해서 이제 서장실로 쳐들어온 것이었다.
눈을 감고 발을 탁자에 올리고 있던 정우진이 서서히 한쪽 눈을 떴다.
그러고는 양발을 탁자에서 내려서 구두를 신었다.
왼쪽 손 하나로 구두를 신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때 조연아가 들어와서는 당황하여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서장님, 죄송해요. 이분들이 막무가내로 들어가겠다고 해서…….”
이제 방문객을 제대로 통제를 못 했으니 어떤 꾸지람이 떨어질지 몰랐다.
평소 정우진의 성질을 아는 터라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떨고 있는데 정우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타격대 불러!”
“네? 타격대라고요?”
“너 자꾸 두 번씩 말하게 만들 거야? 빨리 타격대 서장실로 출동시켜! 상황실에 연락해!”
“네, 네……!”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조연아가 부리나케 상황실로 뛰어갔다.
“정 부장님, 빨리 서장실에 타격대 출동시키세요! 서장님 지시예요.”
“타격대 출동요? 무슨 사고라도 났습니까?”
정성길 경사는 어제 정우진한테 무전 늦게 받았다고 한번 박살이 난 터에 이제는 서장실에 타격대를 출동시키라는 지시까지 받자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빨리요! 지금 서장님실에 괴한들이 몰려왔단 말이에요!”
조연아가 정성길 경사가 꾸물거리는 것을 보니 속에서 열불이 올라와서 재촉을 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 경사가 직접 벽에 붙은 비상벨을 눌렀다.
와앙! 와앙! 우와아아앙! 웽웽웽!
“아아! 타격대 출동! 타격대 출동! 금일 타격대에 편제된 직원들은 즉시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서장님실로 집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타격대는 즉시 출동하여 서장님실로 집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서장님실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난입을 했습니다.”
난데없는 타격대 출동 비상벨에 동부서 전 직원들은 당황을 했다.
“뭐야, 저거 진짜야?”
“아니 무슨 서장님실에 괴한이 나타난다고 타격대를 출동시켜?”
“야, 시끄럽고 경무계장! 경무계 직원들 데리고 저기 경찰봉 하나씩 들고 빨리 서장님실로 뛰어가 봐!”
경무과장이 방송을 듣고서는 놀라서 경무계 사무실에 나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러고는 서장실 맞은편에 있는 방범과 방범계 사무실 문을 활짝 열고 안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들아! 니들은 서장님실 바로 앞에 있는데 아무 소리도 못 들었나? 빨리 튀어 가 봐라!”
“예, 옛!”
“이 X발 놈들이, 즈그 집이 괴한한테 피습당했다 캐도 이리 내 몰라라 할 끼가! 이런 싸가지 없는 놈들!”
밖이 소란하자 김기민 방범과장도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왜 이리 소란스럽죠?”
“아! 우리 방범과장도 경호부대 출신 아이가? 빨리 내하고 서장님실에 가 봅시다. 지금 서장님이 타격대까지 출동시킸다 아이가.”
“네? 타격대요?”
김기민 과장은 구청에서 열린 학교 환경 위생 정화 위원회에 참석하고 이제 막 들어오는 참이었다.
서둘러 서장실로 가 보니 꼴이 가관이었다.
깔끔한 양복 차림의 낯선 사내들 다섯 명이 정우진 서장을 빙 둘러서 있고 정우진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채였다.
“아니 서장님도 지금 상황에서 고집만 부리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 차장님 전화 받지 않으셨습니까?”
안기부 3차장이 정우진 서장한테 박산을 인계해 주라고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정우진은 정우진대로 당신이 내 직속상관도 아니고 난 우리 경찰청장 허락 없이는 절대 범인을 내줄 수가 없다고 버티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정우진이 결재판을 들어서 사내의 얼굴에다 냅다 던져 버렸다.
휘리릭!
철퍼덕!
“우욱!”
“야 이 X새끼들아! 니들 지금 형사과장실에 갔다가 김세민이한테 못 이기겠으니까 나한테 이리 우르르 몰려온 거지? 하! 이런 X 같은 새끼들을 봤나! 그래, 형사과장보다 내가 더 만만하다 이거네, 응?”
좀 전에 안기부 3차장한테 전화를 받기는 받았지만, 경찰청장 지시 없이는 절대 범인을 내줄 수 없다고 전화기를 붙들고 싸웠을 뿐만 아니라, 안기부 수사관들이 김세민이한테 먼저 갔다가 안 통하니까 3차장한테 전화를 하고 자기 방에 우르르 몰려온 사실에 더 열불이 난 것이었다.
그때 경비계장이 철모에 전투 복장을 하고서는 타격대원들을 데리고 서장실로 들어왔다.
“충성! 서장님, 타격대 출동했습니다.”
“이 X발 놈들이 지금이 몇 분인데 이리 꾸물대? 니들 지금부터 이 새끼들! 내 방에 쳐들어온 불순분자니까 전부 다 경찰서 밖으로 끌어내! 그리고 그 전에 상황실 데리고 가서 소지품 다 꺼내 가지고 확인해 봐! 총기류 있으면 압수하고 신분증도 다 압수해 버려! 이 X발 놈들이 경찰 알기를 개X밥으로 알고 있어. 다 끌고 가! 말 안 듣거나 반항하면 죽여 버리고!”
정우진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자 경비계장이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그, 그럼…… 사살하라는 말씀이라예?”
“이 새끼들이 작당을 했나? 왜 자꾸 똑같은 말을 두 번씩 하게 만들어!”
그러면서 경비계장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타격대 전경들한테 명령을 내렸다.
“야, 거총! 조준! 니들, 일단 밖으로 나와!”
그러자 놈들도 더 이상 밀릴 수가 없다는 듯이 일제히 가슴에서 권총을 빼내 들어서 서장과 타격대원들한테 겨누었다.
그때 김기민 경정이 앞으로 나섰다.
“당신들 안기부에서 왔어? 그런데 이게 무슨 행패야! 서장님은 기관장이시라고! 어디서 함부로 총을 꺼내고 X랄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맨 앞에서 정우진을 향해 권총을 꺼내 든 사내의 손등을 가볍게 후려치는가 싶더니 이내 손목을 잡고 등 뒤로 돌면서 사내의 팔을 꺾었다.
“어어어! 아아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손목이 꺾인 사내는 김기민 경정이 더 아래로 꺾어 누르자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면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다시 오른발을 들어서 고개 숙인 사내의 목덜미에 자신의 무릎을 끼워 넣어 무릎관절로 사내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아아아! 항복! 항복!”
탁탁탁!
항복이란 의사 표시로 자신의 왼팔로 오른쪽 어깨를 여러 번 두드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인솔자인 안기부 수사관이 드디어 고분고분해졌다.
“아니 서장님,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우리 3차장님 전화 받으셨다면서요? 그럼 협조를 해 주셔야지요.”
사내가 그렇게 따지고 들었다.
“야, 이 덜떨어진 새끼야, 너도 공무원이라면서? 그럼 이 새끼야, 남의 관청에 왔으면 정중하게 신분을 밝히고 협조를 구하는 게 순서지, 우리가 어디 안기부 예하 부대냐? 우리는 수사만 검찰의 지휘를 받고 안기부는 우리 대공 파트에만 공작비를 주니까 감독권을 행사할 수도 있지. 그런데 이 X발 놈아! 지금 이 개판을 만든 것은 네놈들이야, 알아 처먹었어? 꺼져! 가서 동부서장이 절대 범인은 인계 못 해 준다고 그래! 하! 이거 생각만 해도 열받네!”
그러더니 정우진이 앞에 놓인 도장 통을 들어서 선임자에게 냅다 던져 버렸다.
“아니 방범과장! 생각을 좀 해 봐! 이 샹X의 새끼들이 처음에 김세민이한테 먼저 갔다가 거기서는 말도 못 붙이겠으니까 만만한 나한테 떼로 몰려온 거야. 이거 사람이 열 안 받게 생겼어?”
정우진이 방방 뛰는 것을 보고서 김기민은 사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자, 나는 방범과장인데 청와대 가족 경호부장으로 내정이 되어 곧 올라갑니다. 일단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내 방에 가서 자초지종을 들어 봅시다. 그쪽도 잘한 것은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청와대 가족 경호부장으로 내정되었다고 들먹이자 다들 풀이 죽어 버렸는지 코가 꿰인 소들처럼 정우진에게 가볍게 묵례를 하고서는 서장 방을 나갔다.
* * *
경복궁 앞 정부 종합 청사 내 내무장관실.
결재 서류를 옆에 낀 조연희가 천세용 청장과 함께 나란히 장관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언니!”
“연희야!”
“청장님 모시고 왔어요. 청장님, 여긴 장관님 부속실 장은지 주사예요.”
조연희가 장관 부속실 장은지를 청장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래요, 수고가 많아요. 안에 계시나?”
“네~ 기다리고 계세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장 주사가 웃으면서 장관 집무실 문을 열어 주었다.
“장관님, 경찰청장님 오셨어요.”
“응! 시간 딱 맞춰가 왔구먼!”
이정우 내무장관.
그는 현 대통령의 둘도 없는 오른팔이었다.
대통령이 거리에서 민주화 투쟁을 할 때도 항상 맨 앞에서 함께 싸웠으며 중정에 끌려가서 무수한 고초를 겪었다고 전해졌다.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자리인데도 제자리에 바로 서 있지를 못하고 한 손을 허리에 짚고 서 있었다.
얼굴은 붉은 대춧빛이었으며 더 셀 수 없을 만큼 하얀 백발이었다.
와이셔츠도 대충 넥타이를 풀어서 매고 있었는데 형식이나 격식 같은 것은 아예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장관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천세용 청장이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어! 와 빈손으로 왔노? 뭔 결재 할 거 있다매? 우리 장 주사가 아까 그라든데?”
“아! 제 수행 비서가 밖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청장이 그렇게 얘기를 하자 장관이 손사래를 쳤다.
“아 놔나라! 저거들이 알아서 들어올 기다. 자, 여기 앉거라.”
“감사합니다.”
“그래, 거기 뭐고 간첩 잡은 이바구나 한번 들어 보자. 잘했다드만.”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찻잔을 받쳐 든 장은지와 조연희가 나란히 들어왔다.
“응? 야는 누고?”
“안녕하세요, 장관님? 저는 경찰청장 부속실에 근무하는 조연희 경사입니다. 앞으로 예쁘게 봐주세요! 히히.”
“아하~ 난 또, 니가 조 승지란 아이구나? 똘똘하게 생겼네! 허허! 니 때문에 경찰청에 젊은 계장들이 식겁 잔치를 한다문서로? 좋을 때다~.”
이정우 장관이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면서 그렇게 조연희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장관님, 여기 결재 서류입니다.”
조연희가 가지고 간 훈장 수여에 관한 공문을 내밀었다.
“보자~ 너거들 이거 단디 해 왔제?”
“네~ 여러 번 검토를 마쳤습니다. 장관님께서 최종적으로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됐다. 내가 눈도 어두분데 본다고 지대로 보이기는 하겠나? 아나, 사인이나 큼지막하게 해 주꾸마!”
그러더니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사인을 해 주었다.
“어머, 이거 호랑이 아니에요?”
“와! 조 경사 니가 봐도 호랑이 같나?”
“네, 장관님. 너무너무 멋있어요. 호랑이가 정면에서 포효하는 장면 같아요. 저 별도로 사인 하나 받아도 돼요?”
“응? 이거 이 자석이 내가 무슨 연예인인 줄 아는 모양이지? 으허허허!”
장관이 그만 체면도 잊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청장은 이런 자석하고 종일 같이 있으문 심심치 않아서 좋겠소!”
“과찬이십니다.”
“아 참, 그라고 내 청장 만난 김에 부탁이 있는데 이거 우리 옛날에 내 밑에서 같이 민주화 운동 하던 아들인데 요새 밥 먹기가 어려븐 모양이라. 어디 자리 하나 없소?”
느닷없이 구직 청탁을 하는 바람에 청장이 뭐라고 답변을 하지 못해 우물거리다가 겨우 입을 뗐다.
“글쎄 자리가 마땅한 것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알아는 보겠……. 웁!”
청장의 옆구리를 찌른 사람은 다름 아닌 조연희였다.
“장관님, 우리 청장님은 세부적인 것은 잘 모르세요. 그 명단 이리 주세요. 제가 그분들을 면담해 보고 적성에 맞는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 드릴게요.”
그러면서 두 손을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응? 아, 이거는 부속실에서 다 하는 모양이지? 하긴, 우리도 장 주사가 잡다한 건 다 한다 아이가? 내가 뭘 아나. 여기 있다. 그라모 니가 알아가 잘 챙겨라이!”
“네, 걱정 마세요.”
* * *
경찰청으로 돌아오는 청장 관용차량 안.
조연희가 먼저 청장한테 고개를 숙였다.
“청장님 죄송해요. 아까 제가 버릇없이 굴었는데 미리 알아보니까 이 장관님은 자기 앞에서 부탁을 거절하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그렇게 화를 내신대요.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안 하고 민주화 투쟁을 같이했던 동지라고 말을 했는데도 상대가 그냥 성의 없이 대답을 하면 난리가 난대요. 일단 앞에서는 무조건 알겠습니다, 하고 받아들이고 나서 다음에 제가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냐 괜찮아.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말이야, 저 사람 성깔이 대단하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대놓고 면전에서 그런 청탁을 할 줄은 몰랐네. 그나저나 넌 어떡하려고, 취직 부탁할 곳은 있어?”
무슨 소스가 있어서 장관 부탁을 들어주느냐고 그렇게 물어보았다.
“경찰에선 없죠. 기껏해야 총포협회나 공제회, 도로교통협회 정도?”
“그건 그래.”
“그러니까 다른 쪽을 파야죠. 알아보니까 서울시 산하 사업소나 하부 기관에는 자리를 얼마든지 만들어도 괜찮겠더라고요.”
“괜찮을까? 누가 딴지라도 걸면…….”
“에이, 염려 마시라니까요. 누가 그런 목 달아날 짓을 하겠어요? 내무장관님이 부탁하신 일인데?”
“하긴…….”
“그쵸? 아무튼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청장님은 그냥 모른 체하세요.”
“그래……. 그럼 이제 안기부장 결재만 받으면 되는 거야?”
“뭐 주무장관 결재가 났으니까 안기부장은 그냥 공람이나 하는 거죠. 사인 안 해 줘도 훈장 나가는 데는 아무 상관 없거든요? 나중에 훈장증에도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내무장관 이름만 들어가지 안기부장 이름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래?”
“헤헤! 그냥 안기부장 체면 한번 세워 주는 거죠.”
그렇게 두 사람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청장의 승용차 안 전용 경비 전화가 울렸다.
“네, 경찰청장입니다. 누구? 보안국장? 왜? 무슨 일이야?”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주웅천 보안국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