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615화 (615/869)

제 615화

#615. Pier 5

밖에서 부하들이 지르는 소리에 놀란 권강일은 일단 자신의 방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왔다.

베란다를 따라서 가다 보면 옆 건물의 옥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텍사스엔 그렇게 높은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지붕을 타고 도주하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애초에 그런 걸 다 감안을 하고 마련한 아지트였던 것이었다.

‘이상하다. 이곳까지 형사들이 찾아왔다는 것은 그럼 강찬명이 이 새끼가 다 불었다는 말인데……. 요즘 세상에 형사들이 옛날처럼 막 고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버티면 회장님이 알아서 다 빼 줄 텐데 왜 다 털어놓았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일단 지금은 잡히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옆의 만두 가게와 보세 옷 가게를 건너뛰고 나니 골목이 아래에 보였다.

이제 저 골목으로 뛰어내리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인파에 섞여들게 되는 것이었다.

앞뒤 볼 것도 없이 권강일은 몸을 날려 뛰어내렸고, 날렵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털썩!

“후우, 나이가 좀 들었다고 이 짓도 이제 못 해먹겠네……. 응?”

몸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려는데 누군가 쫓아와서는 그대로 권강일을 발로 밀어 넘어뜨렸다.

퍼억!

“어이쿠!”

쿵!

불의의 습격을 받은 권강일은 뒤로 한두 바퀴 굴러 나동그라졌다.

“에이 X발, 갑자기 어떤 새끼고!”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대체 어떤 놈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었더니 앞뒤로 두 명에게 포위당한 상태였다.

“이 새끼……. 그렇게 동작이 굼떠서 조폭질은 어떻게 하냐?”

“권 소령파 같은 소리 하네, 작명 센스하고는……. 어이, 우리 피곤하다. 니 어차피 여기서 더 토낄 데도 없거든? 그라니까 얌전히 손 이리 내라!”

그의 앞에 서 있던 장명식 경장이 그렇게 놀리면서 킬킬거렸고, 뒤에 서 있던 강대구 경장이 수갑을 꺼내 들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뒤로 돌아서서 무릎 꿇어! 그리고 양팔을 높이 든다!”

낮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러자 장명식 경장이 쪽지를 꺼내 들고 긴급체포 시 고지 사항을 읊어 주었다.

한 번씩 김세민 과장이 확인을 하는 통에 동부서 전 형사들은 메모지에 적어서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자, 니는 죽은 김명성 씨에 대한 약취 유인, 폭행, 그리고 유기 치사죄의 공범, 그리고 범죄단체 조직죄의 수괴로 긴급체포한다. 니는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또 니 같은 놈한테도 대한민국 법은 변명할 기회를 충분히 준다~ 이 말이라. 알아들었제?”

“…….”

“이 새끼가……. 마! 알았나 몰랐나! 대답을 해라!”

권강일은 어서 이 X랄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앞뒤로 포위된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 뚫어야 하는데, 앞에 있는 장명식 형사는 지난번에 강찬명을 체포할 때 봤던 기억이 났다.

‘분명 태권도 유단자였던 것 같은데……. 그럼 뒤에 있는 놈 쪽을 노려야겠다.’

처음 보는 얼굴인 강대구 경장은 꽤나 마른 체격이라 붙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판단이 들자 지체 없이 강대구 경장을 향해서 돌진해 들어갔다.

“이 X발 새끼들! 니들 맘대로 사람을 잡아넣나? 대한민국에 법도 없냐?”

그렇게 이를 악물고 전속으로 돌진하는데 눈앞의 상대가 오른쪽으로 피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길래 왼쪽이 구멍이라 생각되어 그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그때.

터억!

“웃!”

“어딜 가려고?”

이미 강대구 경장이 도망가려던 권강일의 뒷덜미를 낚아챈 상태였다.

‘분명 이 새끼가 오른쪽으로 피하는 것 같았는데……. 그럼 뭐야, 훼이크였……. 우왁!’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순간 자신의 오른발에 충격이 가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허공에 몸이 붕 떠 버렸다.

“우아앗!”

털퍼덕!

그러고는 이내 격렬한 충격이 온몸을 엄습했다.

“으으으으…….”

“그러게 이 새끼야, 내가 순순히 손 앞으로 내라고 했다 아이가. 뭐한다꼬 사서 매를 버노 벌긴? 하여간 멍청한 새끼들…….”

“아이구 내 허리! 허리! X발 놈아 내 허리 부러졌다! 인자 우짤 끼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장소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내동댕이쳐진 권강일이었다.

방금 강대구 경장이 사용한 기술은 합기도의 전통적인 기술인 던지기였다.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같이 힘을 실어 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걸어서 상대의 몸을 띄워 버린 뒤 앞으로 던져 버린 것이었다.

합기도의 기본적인 3가지 원(圓), 유(柔), 염력(念力)의 원리 중 방금 강대구 경장이 시현한 것은 상대의 힘을 정면으로 받지 않고 힘이 가는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유(柔)였다.

“자, 손 내밀고!”

철커덕!

“에휴…….”

한숨을 쉬는 권강일을 보고 장명식 경장이 핀잔을 줬다.

“은팔찌 차니까 좋지? 반짝반짝하고 예쁘지 않냐? 이따 형이 특별 서비스로 형사계 구경도 함 시키 주께!”

“…….”

“새끼가, 너무 좋아서 말도 안 나오는 모양이네? 퍼뜩 일나라! 가자!”

그러면서 장명식 경장이 권강일을 일으켜 세우더니 두 손에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천천히 초량 텍사스의 주도로를 걸어 나왔다.

“아니, 이쪽으로 가지 말지요.”

권강일이 버티고 서자 장명식 경장은 인상을 팍 쓰며 놈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이게 무슨 택시인 줄 아나? 어따대고 건방지게 일로 가자 절로 가자 하고 있노? 확 죽이뿔라.”

“……사람들이 다 보지 않습니까…….”

권강일의 말대로 주변의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길에 나와 구경을 하고 있었다.

10년이 넘게 부산역을 무대로 폭력을 행사해 오면서 자릿세를 뜯어먹던 권 소령이 양손에 수갑을 차고 텍사스 골목을 지나가고 있는 모습은 대단한 뉴스감이었다.

“X발놈 X랄하네, 니가 그동안 한 짓거리를 생각해라! 쪽팔린 건 아는 모양이지? 미친 새끼!”

사실 이것도 김세민이 미리 지시를 한 사항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부산역 주변에 있는 상인들에게 권 소령은 이제 끝이 났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과 동시에 오륙도 호텔 강명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직할 주먹 부대가 없는 늙은 호랑이는 더 이상 밀림의 제왕 행세를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 * *

부산은 대표적인 항구도시였다.

조선 말 개항 시부터 항구도시로서 주변국에서 탐을 내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의 부두는 제1부두인 연안 부두부터 시작을 해서 2부두인 국제 여객부두와 3, 4, 5, 7, 8부두 외에 감만, 신선대, 용호동 해작사(해군 작전 사령부) 등 북항에만 10개나 되는 부두가 있었다.

부두 앞에는 다들 Pier 1~8까지 조그만 표시가 있는 파란색의 간판이 있었다.

그것은 부두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연안 부두가 가장 수심이 낮고 갈수록 수심이 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서 숫자가 높을수록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심지어 8부두나 해작사(해군 작전 사령부, 김세민 당시는 해군 제3함대 사령부)에는 미 해군 항공모함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김세민이 근무하는 동부서는 제3부두에서 5부두까지 관할을 맡고 있었는데 연안 부두나 국제 여객부두는 중부 경찰서 관할이었다.

그리고 국제 여객부두에는 공항과 마찬가지로 안기부 기록실이 나와 있었고, 중부서 소속으로 100호실도 있었지만 소속만 중부서이지 실제 발령은 지방청 외사과에서 인사계로 바로 협조전을 넘겨 ‘중부서 국제 여객부두 100실 요원’이란 괄호에 넣어서 발령을 하는 것이었다.

국제 여객부두 옆에는 본부 세관 건물도 있어서 부두 연안을 24시간 ‘CUSTOM’이란 마크를 붙이고 순찰을 하고 있는 소형 순찰선도 십여 척이 정박해 있었다.

밤 12시를 넘긴 시각. 제5부두 정문 앞.

캄캄한 초량 제1지하도를 나온 아주머니들이 5부두 정문 옆 화단 사이로 30분 전부터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길 건너 미 제55 보급창 울타리 철조망에서는 서치라이트가 5분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부두를 비추고 있었다.

제5부두.

일명 제5물량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제5부두에서 이어지는 자성대 부두는 원래 제6부두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데도 바로 5부두에서 7부두로 건너뛴 것이었다.

그것은 ‘해리슨 포트’라고 불리는 홍콩에 본사를 둔 다국적 물류 회사 소유의 부두였다.

해리슨 포트는 전쟁 중 미군의 전쟁 물자 수송을 전담하기로 계약을 하고 지금의 부두를 임차했으며 바로 앞에 있는 미 제55 보급창으로 온갖 전쟁 물자를 실어 날랐던 것이었다.

그리고 제5물량장은 다른 부두와는 다르게 만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적의 어뢰 공격이 들어올 때나 태풍이 발생할 때 피항지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적 항구이자 최대의 곡물 저장 창고로서의 기능도 있었다.

물량장이란 말 그대로 밀이나 옥수수 등 미국 등지에서 벌크선 형태로 들어오는 대량의 곡물을 야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부두 건너에는 우리나라 굴지의 D 제분과 H 제분의 공장이 있어서 제5물량장에서 곡물을 실은 40톤짜리 대형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부두와 제분 회사를 오고 가고 있었으며, 곡물을 실은 트럭이 움직일 때는 적재한 곡물을 쪼아 먹기 위해 온갖 비둘기나 참새들이 트럭 위 적재함에 새까맣게 달라붙어서 같이 움직이는 진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윽고 정문 부두의 샛문이 열리고 수십 명의 사내들이 가방을 손에 든 채로 나왔다.

“자, 아줌마들, 시계는 저쪽, 금은 이쪽!”

그렇게 말을 하자 순식간에 시계를 구입하려고 온 사람들은 반대쪽 화단의 나무 사이로 사라졌고 이쪽은 금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일종의 현장 즉석 경매였다.

“자! 오늘 물건은 X렉스 금통은 200! X메가는 120! 한 사람당 다섯 개! 먼저 현금으로 지불한 사람한테만 드립니다.”

건달처럼 보이는 한 놈이 그렇게 말을 하자 사람들이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건달한테 현찰을 건네고 물건을 받아 가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바로 밀수입한 예물 시계였던 것이었다.

한 해 결혼하는 쌍이 45만 쌍 가까이 되었는데 실제 공식으로 수입하는 X렉스 금통 시계나 금붙이는 없었다.

시내 유통되는 것은 전부 밀수입된 것이었다.

홍콩에서 대부분 만들어 한국으로 보내는 것이었는데 정말로 스위스에서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은 홍콩에서 짝퉁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도 유행이어서 아무리 시골이라도 결혼 예물 시계는 반드시 X렉스 금통으로 혼인을 치렀다.

금반지도 마찬가지였다.

다이아가 박힌 금반지도 반드시 결혼 예물로 주고받았으니 정식으로 아무것도 수입되지 않는 현실에서 전국적인 수요를 충당하려면 밀수하는 수밖에는 없었는데, 이렇게 밀수를 묵인하는 이유는 이것이 또한 정치인들이나 실력자들한테 짭짤한 부수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부산에서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부두가 있는 남구나 동구를 가장 선호하는 이유도 이 한 가지만으로 다 설명이 되었다.

그러니 건달들이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5부두 정문에도 출입국 관리소나 세관, 안기부 등이 나와서 선원들이 들고 나가는 것은 일일이 통제를 엄격히 하고는 있었다.

제5부두 정문 앞 삼거리에는 교통 초소가 있었는데 심야 초소였다.

오늘도 중고참인 김이수 상경이 이제 막 들어온 후임 기수인 박철 이경을 데리고 심야 초소 근무를 서고 있었다.

“김 상경님, 저거 좀 보십시오! 저기 말입니다. 완전 적막강산인데 갑자기 왜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몰려 있는지 말입니다.”

박철이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어 흥정을 하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그렇게 물었다.

“마!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마라. 입도 달싹하지 말고, 고마 눈으로 본 것은 니 마음속으로만 담아 놓고 나중에 제대하고 나서 한 10년쯤 있다가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라도 삼든가 하고, 사실 나도 여기 근무한 지 1년이 넘었어도 저게 뭐 하는 시추에이션인지는 잘 모린다. 나중에 우리 외감이 저기서 아마 주대 받으면 우리 야식비는 챙겨 줄 거다.”

“야식비 말입니까?”

“그래, 나도 여기 의경 들어와서 알았는데 말이라. 경찰은 무조건 보면 한 대가리라 하더라. 고거는 총경이고 맨 졸따구 이경이고 다 같다고 카더라. 다만 계급에 따라서 나누는 게 아무래도 차이는 있어야 안 되겠나? 고마 군대 왔으니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기라. 그래도 저기 철책선 가서 X뺑이 치는 것보다야 백번 낫다 아이가? 니도 다 조금이라도 편할까 싶어서 의경 온 거 아이가? 그라이 마 시키는 것만 하는 기라. 더 알라고 하지 마라. 좀 있으모 외감 올 끼다. 그때 좀 깨워 주고!”

근데 오늘은 좀 이상한 것이 있었다.

즉석 경매가 끝나고 다들 자기가 타고 온 승용차를 타고 흩어졌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차에 탔다가 다시 내려서는 건달로 보이는 놈에게 뭔가를 항의하는 눈치였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자가 건달의 팔을 잡고 늘어지고 건달이 팔을 뿌리치면서 마구 욕지거리를 하더니 다시 여자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자 건달은 여자를 밀치는 등 실랑이가 격하게 벌어졌다.

“김 상경님, 저거 좀 보십시오. 부두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부두 파출소에 신고하자는 말에 김이수 상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런 거는 부지기수야. 그냥 못 본 체해! 나중에 부두 파출소 순마도 와서 조독해 간단 말이야.”

“조독이라고요?”

“그래! 매주 두 번씩 화요일하고 금요일 반짝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매를 하는데 끝나고 나문 우리 외감하고 파출소에서 수금하러 온단 말이다.”

“수금이라고 하셨습니까?”

수금이라는 말에 박철 이경이 놀란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아 이런 X발! 뭐 이런 덜떨어진 새끼를 오늘 근무에 넣었노?”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됐고, 니는 집이 어디라고 했지?”

“서울입니다!”

“아 이런 X발 새끼가, 서울이 다 느그 집이가? 서울 어디 사는지 말하라고 새끼야!”

“죄송합니다! 서초동에 살고 있습니다.”

박철이 군기가 든 것처럼 허리를 곧추세우고 그렇게 말을 했다.

“서초동, 서초동이라……. 거기 잘사는 동네 아니냐? 아버지는 뭐 하시는데?”

“…….”

“이 새끼가 꼭 두 번 말을 시키노, 느그 아버지 뭐 하시냐고!”

“검사입니다.”

“검사?”

“예. 대전에서 검사장으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뭐야? 대전 지검장이 니 아부지라고? 햐! 이거 오늘 더럽게 걸렸네! 에이 X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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