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634화 (634/869)

제 634화

#634. 일망타진

새벽 2시를 넘긴 시각,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한 농산물 저온 창고.

방금 도착한 대형 컨테이너 차량에 인부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적재된 화물을 내리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백색 가전제품이었는데 모두 다 미국제이거나 일제 최신형이었다.

지난번 경찰의 압수 수색 때는 다행히도 검찰에서 시간을 끌어 주어서 무사히 위기를 넘겼지만, 그동안에 새로 물류 창고를 구하지 못해서 일단 한 번 단속한 곳을 또 하겠느냐는 성화에 할 수 없이 이번 주부터는 물건을 하역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부서 관내인 3, 4, 5부두는 어찌나 검문이 심한지 엄두도 못 내고, 지금의 물건은 신선대 부두를 통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감만이나 신선대의 대형 컨테이너 부두를 이용하려고 하니 비용이 지난번 5부대에서 작업할 때보다 30%가 더 들어갔지만 홍콩 본사에서 물건을 실어 나가지 않으면 홍콩도 적체가 되어 자칫 올 스톱이 된다고 삼합회 본부에서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주명치는 지금 무리해서 심야에만 작업을 하고 있는데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또한 입고된 외제 물건은 다시 소형 용달로 구입한 사람들한테 그다음 날에는 배송을 다 마쳐야 했다.

다들 물건을 입고시킨다고 정신이 없을 무렵, 논두렁 쪽에서 검은 옷을 입은 일단의 무리들이 소리 없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은 수신호로 서로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신속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고 지휘자의 명령을 기다렸다.

아주 잘 훈련된 무리였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이윽고 마지막 컨테이너의 화물까지 다 하역을 마친 컨테이너 차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자마자 지휘자의 수신호 한 번에 일사불란하게 달려들었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검은 복면들이 쳐들어오자 경비원인 장천호는 기겁을 했다.

“어어어! 점마들 뭐꼬? 지금 기습이가? 빨리 아들 나오라 캐라! 사장님한테 보고부터 해라!”

중간 관리자인 장천호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부 길이 1미터 정도의 쇠 파이프를 들었는데 창고에서 얼쩡거리는 사람은 불문곡직하고 매타작을 했으며 맞으면 무조건 어디 한 군데는 부러졌다.

그러고는 밖으로 쫓아내서 한 곳에다 꿇어 앉혔는데, 쳐들어온 목적이 무엇인지 아무도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덩치가 큰 전자제품 한두 개 가져가자고 이렇게 일사불란한 작전을 하는 것도 이상했다.

마침내 이곳 물류 창고의 책임자인 주명치가 나타났다.

같은 주 씨라는 이유로 이곳의 책임자가 된 놈이었는데 소심한 성격에 겁이 많은 인물이라 보자마자 넙죽 엎드렸다.

“하이고! 내레 이기 다 무신 일인디는 모리갔지만 달라는 대로 돈은 드리갔으니 지발 물건은 안 상하도록 해 주기요. 우리 홍콩에서 형님들이 알면 난 죽는단 말이요?”

말투로 보아 조선족인 듯했다.

그러자 오늘 습격의 책임을 맡은 오윤정 중사가 지시를 내렸다.

“안에 사람은 이제 없나?”

“예, 확인했습니다.”

“그럼 불을 질러! 완전히 불이 타면 신속하게 철수한다. 그리고…… 불 못 끄게 이 새끼들은 다리 하나씩 분질러!”

잠시 후.

김해시가 온통 붉은 화마에 뒤덮인 것처럼 불꽃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왱왱왱왱!

삐유 삐유!

소방차가 달려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오 중사 일행은 기습을 성공리에 마치고 다시 만덕으로 차를 몰았다.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각. 부산 남천동의 해변 아파트 단지, 맨 바깥 동.

12층밖에 안 되는 낮은 아파트였지만 평수는 50평대로 꽤나 큰 편이었고, 발코니가 원형으로 되어 있어 바다를 조망하기 좋도록 되어 있었다.

야음을 틈타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화단 숲속에서 나타났다.

화단에 나무들도 울창해서 야간에 몸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남자 하나가 비상계단을 따라 순식간에 8층까지 올라가더니 이내 계단에서 아파트 베란다로 훌쩍 뛰어 매달려 몸을 한번 좌우로 흔들더니 탄력을 받아 자신의 몸을 베란다에 걸친 다음에 열린 창문으로 소리 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파트 거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서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불을 껐다.

한 시간 후.

아파트 주차장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서더니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 하나가 내렸다.

남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 문 앞에서 벨을 눌렀다.

삐리리리~

“잠시만요!”

안에서 여자의 음성이 들리더니 이내 문을 열고 나왔다.

“많이 아픈 거야? 어디가 어떤데?”

남자가 들어오면서 그렇게 물었는데 여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왜 그래, 병원에라도 갈까?”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제야 남자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설마…….”

함정인 것을 눈치채고 몸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벌컥!

옆의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마른 체구의 사내가 날카로운 칼을 사내의 목에 정확히 겨누었다.

“……누구냐?”

“안에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지요.”

남자를 보니 목소리는 낮고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것은 즉, 오늘 자신이 살아서 이곳을 나가지는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감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거실의 한가운데에 의자 한 개가 놓여 있었고 베란다 창문은 전부 커튼으로 가렸으며 남자가 가운데 의자에 앉자 갑자기 스탠드 불빛이 켜지면서 얼굴만 비추었다.

눈이 부셔서 창문에 앉은 사내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서 내가 잘 대처를 하면 적어도 죽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낯선 침입자가 입을 열었다.

“스티브 킴, 아니 김성부지. 미군 장교로 들어갔다가 먼저 삼합회에 포섭이 되고 다시 CIA로 들어갔던가? 이제 CIA에서도 자네 정체를 알 때가 되었어. 그러니 이렇게 한가하게 애인 건강이나 돌보고 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

“나 같으면 한몫 챙겨서 사라지겠어, 우리가 도와주지. 어때? 거래할 생각은 있나?”

낮지만 무거운 톤으로 그렇게 물었다.

사내는 강철 중령이었다.

그는 스티브를 잡아서 삼합회 자금을 다 빼돌리라는 박흥식의 밀명을 받고 직접 스티브의 애인 집으로 쳐들어와서는 여자한테 몸이 아프다고 좀 들렀다 가라는 전화를 하게 만들어 이곳에 들어와서 스티브가 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암만 생각을 해도 한국에서 이 정도로 나를 잡을 수 있는 조직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경찰은 아닌 것 같고……. 내 생각엔 당신도 동부 경찰서 김세민 경감하고 무슨 개인적인 관계가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안 그럼 나를 이렇게 정확하게 콕 찍어서 칠 수가 없지. 왜지? 돈 때문인가?”

“대답을 해야 되나?”

“김세민 경감은 돈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이던데……. 구체적으로 말해 보시오. 나하고 뭘 거래하자는 건지…….”

김성부가 거래 조건을 제시해 보라고 말을 했다.

“간단해. 당신이 여기서 굴리는 삼합회 자금의 절반은 우리한테 넘기고 나머지 절반은 당신이 가지고 잠적하는 거지.”

“……!”

“한국을 무사히 떠나서 정착할 때까지 인터폴이나 한국 경찰에서 수배는 내리지 않도록 할 테니까 그건 염려하지 말고 우리를 믿는 것이 좋을 거야. 잠시 후면 아마 김해 물류 창고도 다 불에 타서 잿더미로 변해 버릴 테니까 홍콩서도 널 어떻게 제거할지 고민이 많겠지.”

“아니 정말로 김해 창고에 불을 지르실 겁니까?”

스티브 킴이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시간이 없어. 날이 밝으면 바로 은행 가서 자금부터 이체해야 해. 홍콩하고 서울이 한 시간 시차가 있으니까 은행 문이 열리고 늦어도 10시까지는 자금 이체를 다 마쳐야 한다고. 안 그럼 홍콩에서 바로 여기 은행으로 클레임을 걸어올 거야. 여기 일본계 은행 계좌 번호가 있으니까 오전 중으로 이리 다 이체를 해 놔야 할 거야. 안 그럼 돈 한 푼 못 건지고 넌 목만 떨어질 거다.”

그러면서 강 중령이 계좌 번호가 적힌 종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이게 정말로 무슨 이런 일이 갑자기 생기는지……. 오늘 낮까지는 다 잘되고 있었단 말입니다. 정치인들과도 다시 미팅 약속이 잡혔고 미국 대사가 청와대 들어가서 대통령과 독대하고 다 풀기로 했었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머리를 흔들면서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강철이 한마디를 했다.

“어디서부터 꼬였냐고? 그제 밤에 삼합회에서 특급 살수를 김세민 경감한테 보냈거든? 이제 겨우 12살 된 놈을 말이야. 그놈 말로는 자기가 이제까지 사람을 스무 명도 넘게 죽였대. 그런데 김세민 경감한테는 안 통한 거지. 바로 잡혔다가 오늘 새벽에 소년원을 탈출하는 것을 우리가 잡아서 자백을 다 받았어.”

강 중령이 거기까지 얘기를 하자 스티브의 놀란 눈동자가 더 커졌다.

“삼합회의 특급 살수는 아직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 나도 아직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 그런 특급 살수를 김 경감이 직접 잡았다고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그렇게 힘 빠진 목소리로 김성부가 중얼거렸다.

“어린놈이 너보다는 판단이 빠르더라고, 자기 처지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순식간에 다 파악을 한 거지. 그놈한테도 도피 자금을 좀 줘야 할 테니까……. 근데 너, 아깝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어차피 네 돈도 아니잖아? 그동안 몰래 감춰 둔 돈도 제법 있을 테고.”

“…….”

“네 목숨을 붙여 놓으려면 돈을 가지고 튄 게 네가 아니라 일본 야쿠자가 돈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야겠지.”

“네? 그럼 이 계좌는…….”

“그 계좌는 야마구치조의 계좌야. 계좌를 빌리는 데 수수료 값이 어마어마해. 뭐, 그래야 제대로 세탁이 될 테고 말이지.”

결국 김성부가 빼돌린 돈이 야쿠자의 계좌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김성부도 야쿠자한테 당했다는 것으로 위장을 한다는 얘기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뭐 네가 그 정도 준비는 다 해 뒀겠지만 위급할 때 연락하면 우리가 해외나 국내에 네 안가 정도는 준비해 주지. 우리한테 주는 돈은 그러라고 드는 보험금이라고 생각을 해도 좋아.”

“……날 살려 주는 이유가 뭡니까?”

“글쎄, 난 시키는 일만 할 뿐이다. 자넬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거든.”

“날 죽이지 말라고 했다고요? 이거 정말 영문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김성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뭐라고? 습격을 받아? 누구한테! 뭐? 모른다고? 다 불에 탔어? 다친 애들은, 골절상이라고? 죽은 놈들은 없고? 알았어, 일단 경찰서에는 가지 말고 다 철수해! 철수해서 서울 안가에 가 있어! 내가 홍콩에 보고해서 지시받고 다시 연락하지.”

조금 전 들은 말대로 김해 창고가 다 불에 탔으니 이것은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었다.

더는 기대고 설 곳이 없어진 것이다.

선택지가 사라진 마당에 누군지는 모르지만 주는 돈이나 받고 잠적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돈이 한두 푼이 아닌데 한꺼번에 이체가 되겠습니까?”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은행에 가면 알아서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일단 가 봐. 한국에 있는 은행은 그저 홍콩에서 일본으로 이체하는 자금을 중계해 주고 수수료만 먹는 것이니까 손해 볼 것도 없을 테지. 문제 생기면 연락해, 무조건 10시 전에는 다 끝내는 게 좋을 거야. 명심해, 10시다.”

그렇게 말을 맺자 김성부가 한숨을 휴, 하고 내쉬었다.

“언젠가는 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갑자기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네요. 그래도 챙겨 갈 돈이라도 남아서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이제 어디로 갈지 정하는 일만 남았는데…….”

“저 여자도 데려갈 건가?”

그러자 김성부가 고개를 저었다.

“전 삼합회가 저한테 붙인 감시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아이의 존재를 알면서도 홍콩에서 아무런 말을 안 하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자 강 중령이 피식 웃었다.

“여자한테 정신 못 차리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직 감은 살아 있네. 네 짐작대로야. 우리가 먼저 여기 와서 저 여자 소지품 검사를 좀 했는데 홍콩시티은행에서 매달 돈을 받은 통장이 있더라고.”

“그럼…….”

“프락치라고 봐야지. 뭐, 걱정 말라고. 서비스로 우리가 대신 정리해 줄 테니까. 8시 되면 우리 직원들하고 같이 은행으로 가도록 해.”

마지막으로 할 일을 지시하자 김성부가 아쉬운 듯이 물었다.

“그럼 저 5부두 물건 반입 건은 이제 완전히 끝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을 거야. 저건 원래가 미군이 사용하는 것이고 니들 삼합회가 중간에 끼어든 것이지.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미군이나 CIA는 계속 해 먹지 않겠어? 그래도 전처럼 대놓고는 못 해 먹겠지.”

* * *

아침 9시가 되어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김성부는 강 중령이 시키는 대로 돈을 지정된 일본 은행에 이체했다.

미국계 은행 홍콩 지점에 잔고가 남아 있었으며 매달 월말에 각종 물품 처분 대금을 정산해서 홍콩의 삼합회 계좌로 이체를 시켰다. 그전까지는 김성부에게 인출 권한이 있기는 있었는데, 아직 한 번도 이렇게 큰 금액을 이체시켜 보지는 않았기에 꽤나 걱정이 되었지만 의외로 은행에서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이 적어 낸 그대로 이체를 시켜 주었다.

김성부는 꽤나 황당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재경부 등에서 반드시 확인 절차를 거치기 마련인데, 아무 말이 없다고? 그렇다면…… 혹시 배후에 정부가 있는 건가?’

의심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나저나…… 이 많은 돈을 내가 먹는다니 믿을 수가 없군. 빨리 튀자.’

잘못 미적거리다가는 삼합회 특급 살수의 손에 언제 당할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마침 로터리 전광판에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최근 인기를 끄는 탤런트가 나와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담긴 카메라 광고였다.

‘베네치아로구만, 옛날 생각이 나네. 여름이었지, 살인적인 무더위였어……. 산 마르코 광장도 좋았고,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썼던 식당까지 그립구만.’

옛날 생각에 눈시울이 촉촉해진 김성부는 순간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태리야, 이태리로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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