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638화 (638/869)

제 638화

#638. 진미락

“여기 오윤정 중사는 제가 군에 있을 때부터 같이 데리고 있던 전우입니다. 이번에 김해 삼합회 물류 창고를 기습해서 불을 놓았지요. 보기와는 다르게 강단이 대단합니다.”

강철 중령이 오윤정 중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했다.

치켜 올라간 눈매가 아주 매서웠고 두껍게 단련된 각 잡힌 정권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움직일 때도 시선이 먼저 향한 후에 자연스럽게 몸이 따라가는 것이 오랜 시간 무술로 단련을 해 왔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과연,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세민은 얼마 전 자신의 사무실에 우연히 나타난 백석향의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과장님 말씀은 아무래도 그 아이가 수상하다는 것이지요? 안 그래도 우리 회장님이 정보를 입수하셨는데 삼합회에서 지난번 고연지가 실패한 이후 해당화란 여자 킬러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럼…….”

“아무래도 그 여자애가 해당화일 가능성이 농후하네요. 그 해당화는 아직 한 번도 임무에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이대로는 위험하니 일단 우리가 확인을 해 보지요. 한 가지만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강철 중령이 해당화의 신분을 확인하는 데 김세민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

“해당화라……. 이거 참 끝이 없네요.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으니 싸우는 수밖에요. 뭘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내일 여기 오 중사가 기자 신분으로 형사과에 나타날 겁니다. 일종의 기획 취재인데 이번 5부두 사건을 심층 취재한다는 내용이죠. 과장님이 형사들한테 미리 협조 좀 해 주라고 지시를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오 중사는 월간 ‘남강’지의 기자 신분으로 나갑니다.”

“기자는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경찰서 출입 기자도 많은데 대번에 눈에 띄지 않을까요?”

김세민이 그렇게 물어보자 오윤정이 웃으면서 월간 잡지 한 권을 꺼내 김세민에게 건넸다.

“이번에 우리 남강 물산에서 월간지를 하나 창간했습니다. 대원들 신분을 위장하기도 좋고 또 실제 매달 일만 부 정도 찍어서 전국의 공공 도서관이나 사설 도서관에도 기증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시중에도 나가지만 팔리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내용은 아주 충실합니다. 주로 사회 저명인사나 교수들의 시국에 대한 담론을 실었습니다. 지금 이것이 창간호이고 앞으로 김 경감님한테도 우편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주위 분들에게 나눠 주셔도 좋고요. 절대 사상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사회 저명인사들의 담론을 원고료를 상당히 지불하고 원고를 받아서 제작한 것이니까 어디 내놓아도 흠 잡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창 얘기를 하고 있는데 사장인 듯한 중년 여자가 음식 접시를 양손에 든 종업원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자, 이제 얘기는 그만하고 식사라도 하시죠? 강 과장님? 그럼 이분이 여기 동부서 형사과장님이신가 봐요?”

여사장의 말에 강철 중령이 일어나서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다.

“TV에서 본 것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요.”

“아닙니다.”

“아직 미혼이시라고요? 제가 중매 한번 서면 어때요?”

“…….”

“어머, 제가 주책맞았네요. 괜히 첫 만남에 실례인가? 오늘 내가 너무 말이 많았네. 저기 선어에만 가지 말고 여기도 한 번씩 올라와서 드세요. 우리도 활어 말고 선어로만 회가 나온답니다. 그럼 하실 얘기들도 많을 것 같은데 전 이만…….”

혼자서 할 말 다 하고서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금세 뒤돌아서 나가 버렸다.

그제야 김세민은 여주인이 내놓은 명함을 보았다.

[진미락 대표 진수연]

이름과 상호 외엔 전화번호뿐이었다.

그런데 명함의 왼쪽 상단에 보라색 나팔꽃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이 무늬는…….”

수영만 나팔꽃 홍민주의 명함에서 본 기억이 났다.

“저, 이 나팔꽃 문양 말입니다. 분명…….”

김세민이 그렇게 물어보자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함에 보라색 나팔꽃 문양을 새겨 넣을 수 있는 사장들은 우리 남강의 주주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여기 진 사장님이 선대 회장님하고 관계가 있는 분인지 지금 회장님과 관계가 있는 분인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 걸 또 물어서도 안 되고요. 부산에 몇 개 안 되는 우리 거점으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뒷문이 한 개, 옆문이 두 개가 있기 때문에 아까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 * *

다음 날 아침 조회 시간.

김세민은 형사들에게 오윤정 중사를 소개했다.

“자, 이쪽은 서울에서 내려오신 오윤정 기자님. 월간지 ‘남강’의 기자인데 이번에 우리 영도 다리 밑 사건부터 시작해서 그동안에 우리가 해 온 활약상을 취재해 다음 달 잡지에 실을 예정이다. 그래서 당분간 매일 여기 들어와서 아무 형사나 붙들고 인터뷰를 할 것이니까 다들 성심성의껏 잘 대답을 해 주도록.”

김세민이 그렇게 얘기를 하자 남인식 경장이 손을 들고 물었다.

“‘남강’이란 잡지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데예. 그거 지대로 팔리기는 하는 잡지라예?”

“와하하핫!”

“점마 남 형사 저거 대놓고 사람한테 쫑코를 주고 그라노!”

“잡지 뭐 잘 안 팔리면 어떻노! 앞으로 잘 지내봅시데이!”

“어려운 거 있으면 우리한테 이야기하소! 편하게 지내시고!”

다들 웃고 떠드는 가운데 허정식 경사도 한마디를 보탰다.

“크~ 요즘은 진짜 출근할 맛 난다 아이가. 맨날 칙칙한 남자 새끼들하고만 있다가 이래 오 기자님도 오셨지, 또 저기 관리반에 백석향이는 어떻고? 아가 어찌나 밝은지 생글생글 웃고 다니는데 무슨 사무실만 들어오면 봄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안 그래도 요새는 그거 때문인지 형사과 지원하는 미친놈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뭐라꼬? 그게 진짜가?”

“파출소 아들이 우리 형사과 지원한다꼬? 이거 신문에 날 일이네! 우짠 일이고? 전에는 형사과 잡혀간다고 울고불고 개X랄을 떨던 녀석들 아이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키키키!”

다들 요즘 형사과 분위기가 살맛이 난다고 그렇게 낄낄거리는 가운데 백석향은 새로 온 오 기자라는 여자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이상해, 기자……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나하고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이번에 창간한다는 ‘남강’ 잡지도 별 특이한 것은 없었다.

자신의 부사수이자 홍콩에서 온 자신의 아버지로 위장한 손 씨에게 확인을 시켜 봐도 ‘남강’ 잡지는 이번 달에 창간호가 나온 것이 분명 맞다고 했다.

내용 면에서도 저명한 학자들과 칼럼니스트한테 기사를 받아서 내용도 충실하고 정치색도 없으며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전 정도를 제시하고 있는 교양 잡지 수준이었다.

서점에 가 봐도 진열대에 비치가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더 이상의 의심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누가 저런 걸 사 본다고 만드나 하는 생각이 고작이었다.

또 하나 의심스러운 점은 자신이 과장실에 커피를 가져가서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김세민 과장은 더 이상 자신이 들고 간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어보면 안 마신다고 하고 억지로 갖다 놓으면 몰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 계속 지체하다가는 역공을 당할 확률이 높아. 그렇다고 무턱대고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인데……. 좀 더 적극적으로 기회를 노려야겠어.’

본능적으로 킬러의 예감이 위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 * *

동부 경찰서는 서정이 좁았기 때문에 주차장이 늘 만차여서 계장급 간부들은 이중 주차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왔다가 자리가 나면 다시 제자리에 주차를 하는 그런 형편이었다.

김세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새 직원들 차가 더 늘어난 것 같지 않아? 왜 이리 주차할 데가 없는지 말이야.”

“차 어디 대셨는데요?”

“저기 옆에 소방서 주차장에다가 임시로 주차하고 소방서 직원한테 말을 해 뒀어. 나중에 우리 서정에 자리가 나면 좀 알려 줘.”

“그라면 늦습니다. 나중에 자리 나면 제가 퍼뜩 대고 오께예. 키 주이소.”

“그럴 것까지 있어? 그냥 내가 하면 되는데…….”

“소방서 점마들한테 괜히 싫은 소리 들을 거 뭐 있습니까? 고마 제가 갖다 오께예.”

“그럼…… 부탁 좀 할게. 고마워.”

그렇게 말하면서 과장이 키를 관리반 책상 한가운데에다 놓고 가는 것이었다.

‘찬스다!’

“저기…… 이거 제가 갖고 있다가 나중에 자리 나면 주차시킬게요.”

백석향이 먼저 잽싸게 김세민의 차 키를 집어 들었다.

“너 운전도 할 줄 알아?”

“그럼요? 저 운전 잘해요? 여기 형사님들 차도 전부 제가 다 주차시키는걸요?”

“흠…….”

직원이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백석향을 쳐다봤다.

“에이, 걱정 마세요. 저기 손 형사님한테 물어보세요? 어제도 제가 손 형사님 차 주차시켰는데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든지. 그래도 조심해야 돼!”

“네!”

잠시 후. 정문 입초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문 입초 상경 조재석입니다. 교통과 앞에 자리가 하나 났는데 말입니다. 형사과장님 차 주차시켜야 되겠는데 말입니다.”

“네~ 고마워요! 언니? 저 주차시키고 저기 형사님 부탁하신 은행 심부름이 있어서 좀 다녀올게요?”

“그래~”

타자 치기에 정신이 없는 이정미가 건성으로 보지도 않고 대답을 했다.

서정으로 나온 백석향은 소방서 앞으로 가서 김세민의 낡은 차에 시동을 걸고 수정동 뒷길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경찰서 정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교통과 앞에서 미리 주차 금지 표시판을 치우고 김세민의 차를 조심스럽게 갖다 대고는 주머니에서 밀봉한 필름 통을 꺼내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 안에는 시안화나트륨 5그램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는 또 다른 작은 물병을 꺼내 자신의 코를 막은 후 운전석 옆 콘솔 박스 위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그 위에 물을 부었다.

치이익!

소리는 났지만 냄새나 연기는 전혀 나지 않았다.

시안화수소라고도 불리는 이 약품은 물에 녹으면 청산소다가 되는 치명적인 독약이었다.

병원에 가도 해독이 불가능하여 암살자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었고, 그 유래는 옛날 고대 중국에서부터 내려오는 암살자들의 전통적인 암기인 셈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왔다가 백석향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오윤정이 이정미에게 물었다.

“정미 씨, 여기 석향이 어디 갔어요?”

“석향이는 과장님 차 주차시키러 내려갔어요. 금세 올라올 거예요.”

‘설마!’

불길한 예감에 재빨리 현관으로 뛰쳐나가 보니 백석향이 막 김세민의 차를 주차시켜 놓고서는 뭔가 안에서 꾸물거리더니 이내 머리를 내밀고 차 문을 닫는데 코를 손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정문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야 백석향! 거기 서! 이봐 정문 입초! 그년 잡아! 살인범이야!”

오윤정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백석향도 쫓아오는 오윤정을 눈치챘고, 더욱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야이 씨, 거기 안 서!”

난데없이 벌어진 추격전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백석향의 뒤에서 ‘빵빵!’ 하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백석향의 아버지로 위장한 부사수 손청두였다.

백석향은 손청두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올라타서 시내 방향으로 도주했다.

“에이! 저런 샹X이!”

해당화를 간발의 차이로 놓친 오윤정이 분해서 씩씩거리며 다시 서정으로 들어오니 김세민이 막 나와서 차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백석향이 가면서 차 열쇠를 정문에다 던지고 갔고, 그걸 본 정문 입초가 열쇠를 주워서 김세민에게 건넨 것이었다.

김세민이 별생각 없이 자신의 차 문을 열어 보려고 하는 찰나.

“잠깐만! 문 열지 마! 문 열면 죽어!”

“뭐? 아니 오 기자,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세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오윤정이 다급히 김세민에게서 키를 빼앗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열쇠 주고 저리 비켜요! 멀리 떨어지세요! 절대 숨을 쉬지 말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오윤정은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코와 입을 막고 조심스레 차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였다.

“대체 뭔…….”

일단 김세민은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오윤정이 뭘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차 안을 살펴보던 오윤정은 시트 밑에서 작은 병을 하나 찾아냈다.

이미 내용물은 다 녹아 버렸는지 빈 병이었다.

“이게 뭔데 그렇게 호들갑입니까?”

“시안화수소, 청산가리라 불리는 것이죠.”

“……!”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고, 아까 김 과장님이 그냥 차에 탔으면 폐부터 녹아내리면서 온몸의 혈관이 막혀서 1분 안에 죽었을 거예요. 지독한 것, 일단 차 번호는 외웠으니까 수배부터 합시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 그 위에다 차 번호를 적어 주었다.

[부산 1다 XX87 검정색 X나타]

급하게 차량 수배부터 내리고 나서 몽타주를 작성해 서울의 조 경사한테 전화를 하고, 공항과 항만에 수배를 내려야 한다고 부탁을 했다.

* * *

서울의 경찰청장 부속실.

방금 김세민과 통화를 마친 조연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지만 이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해당화를 잡기 위한 잔머리 굴리기에 들어갔다.

‘틀림없이 위장이나 변신에는 능숙할 테니까 공항이나 항만에서도 쉽게 빠져나갈 거야. 어떻게 잡아야 하지? 안 그럼 또 와서 사수님 목숨을 노릴 텐데……. 일단 역추적부터 해 보자!’

그렇게 마음을 굳힌 조연희는 공항의 홍은수한테 전화를 걸었다.

-네. 100호실 경장 홍은수입니다.

“나 부속실 조 경사야.”

-앗 언니?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었…….

“내 말 잘 들어, 지금 상황이…….”

조 경사는 김세민에게 오늘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일이……. 그게 진짜예요?

“그렇다니까. 급해서 지금 사진도 없이 몽타주로만 수배를 내렸단 말이지. 그러니 어느 직원들이 몽타주를 보면서 검문을 하겠니? 분명히 부녀지간으로 위장을 했다고 했으니까 공항에 들어올 때도 그렇게 부녀처럼 보이게 해서 들어왔을 거야. 5부두 사건 나고 들어왔을 테니까 열흘 정도 전후로 해서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들어온 조선족 부녀를 입국자 명단에서 비슷한 나이대로 찾아봐! 인상착의는 단발머리이긴 한데. 머리야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니까 너무 염두에 두지 말고, 찾으면 입국 신고서를 복사해서 나한테 팩스로 넣어 줘. 그리고 바로 출국 금지시키고……. 누가 또 아니? 바보같이 들어왔던 여권 그대로 사용하면 그때는 걸려드는 거지. 아무튼 부탁해, 잘못하면 우리 사수님이 위험하단 말이야.”

-걱정 마세요, 언니. 저도 이제 공항은 꽉 잡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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