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645화 (645/869)

제 645화

#645. 드러나는 몸통

“이게 다 뭔 소리야? 전에는 이런 것 없었잖아?”

전부터 강남서장실을 제집 드나들 듯 했던 김 의원은 못 보던 안내문이 붙어 있자 이상하다는 생각에 부속실 윤미연에게 그렇게 물었다.

“신임 서장님 지시 사항이어서 다들 조심하고 있습니다. 의원님도 안에 들어가셔서 말씀은 가려 하셔야 합니다.”

“뭐? 건방지게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지금?”

“그게 아니라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 녹음이 되고 있거든요.”

서장실 안이 녹음되고 있다는 말에 김강남 의원이 아연실색했다.

“나 참, 살다 보니 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구만. 아니 서장실 안이 녹음되고 있다면 어떤 미친놈이 경찰서장을 찾아오겠어? 다른 경찰서는 어떻게든 주민과 가깝게 다가서지 못해서 안달인데 강남은 아주 정반대로 가는구만?”

김강남 의원이 기가 찬다는 듯이 투덜거리면서 서장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정우진 서장 앞에서는 금세 또 태도가 돌변했다.

“아이구 우리 신임 서장님, 이거 진작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제가 좀 늦었습니다.”

“…….”

“국회의원 김강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우리 강남에서 가장 여당에 협력적인 후원회장을 맡고 계시고 또, 지역에 생활체육과 바르게 잘 살기 운동을 책임지고 계시는 오정달 전국 보부상 연합회장님이십니다. 여기는 공명 기획실장이고.”

거창한 인사와 함께 명함이 오고 갔다.

김강남 국회의원을 정우진이 직접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그동안에 언론 매체를 통해서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학원 재벌로서 강남에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고 학교의 자율 수업보다는 학원에서 한 자라도 더 가르쳐야 원하는 대학에 자식을 보낼 수 있다는 어설픈 공약으로 강남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었다.

반면에 오정달이란 놈에게선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고집이 세 보이는 각진 얼굴, 키는 190cm도 넘어 보였으며 군살 없이 균형 잡힌 몸은 드러내지 않아도 탄탄한 근육을 연상케 했다.

정우진은 놈의 주먹을 힐끔 쳐다봤다.

검지와 중지의 앞부분을 얼마나 단련을 했는지 굳은살을 몇 번이나 벗겨 낸 듯 아예 나란히 붙어 있는 싸움용 정권을 하고 있었다.

‘보통 놈은 아니야.’

뒤에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공명이라는 놈도 마찬가지 냄새가 풍겼다.

얼핏 봐도 단련한 흔적이 역력했고 서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요소를 파악하는 모습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만약 서장실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어디로 토껴야 하는지 미리 염두에 두는 모양이었다.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데 자, 앉아서 얘기하시죠?”

정우진이 일단 자리를 권하였다.

“근데 서장님, 밖에 저 안내문은 뭣 때문에 저리 써 붙인 것입니까? 저걸 써 붙여 놓으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위축이 되어서 어디 말이나 제대로 꺼내겠습니까?”

김 의원이 약간 나무라는 투로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것 말입니까? 별거 아닙니다. 하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고 또 와서 어찌나 쓸데없는 소리들을 많이 하는지, 그래서 미리 경고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경찰서장이 뭐 잘 봐주고 할 게 없습니다. 음주 단속해도 서장이 봐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여기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봐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이 제법 있거든요? 그래서 미리 저렇게 써 붙여 놓고 경고를 하는 겁니다. 나한테 부탁해 봐야 서장인 나도 봐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알아서 현장에서 경찰관하고 타협해서 빠져나가든지 해야지 나한테 찾아와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뭐, 그런 뜻입니다. 오늘은 어쩐 일로 바쁘신 분들께서 이리 단체로 오셨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정우진은 찾아온 인사들이 내놓은 명함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통상 신임 서장님이 부임을 하시면 관내 순시 겸 해서 다니시다가 제 지구당 사무실에도 들르시고 하는데 이번 서장님은 일절 관내 유지들한테 인사하러 안 다니신다고 하니까, 허허! 별수 없지요, 우리가 찾아와서 인사를 드려야지요.”

새로 부임했으면 자기한테 와서 신고를 해야지 그걸 안 하니까 국회의원인 내가 직접 오지 않았느냐는 말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오정달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서장님은 대단히 유명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직접 뵈니까 과연 명불허전이십니다. 간첩을 잡다가 총도 맞고 여기 강남에 오셔서 경무관으로 진급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축하드립니다. 지역에 터를 잡은 저희들이 당연히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지요. 그리고 부산 동부서장을 하다가 오셨지요? 거기 김세민 형사과장하고 친하게 지내신다면서요?”

느닷없이 오정달이 김세민을 들먹였다.

‘이 새끼 봐라? 왜 김세민이를 여기서 들먹이지? 이거 수상한데?’

그런 생각이 정우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김세민 과장은 왜? 김 과장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정우진이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오자 김강남 의원이 오정달에 대해서 추가 소개를 했다.

“아 뭐 그리 색안경을 끼고 생각할 것은 아니고 우리 오 회장은 여기 강남의 터줏대감이올시다. 선친께서 조상한테 물려받은 뽕밭이 여기 강남에 수십만 평이나 되어서 지금도 역삼동이나 테헤란로는 우리 오 회장 땅을 밟지 않고는 못 지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빌딩도 수십 채나 되고요……. 숨은 재력가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거창하게 소개를 하자 오정달이 손을 내저으면서 별소릴 다 한다는 듯이 겸손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하, 아닙니다. 과장된 부분이 많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다기보다는 제가 거기 동부 관내에도 사무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인사차 한번 들를까 싶은데 서장님께서 김세민 과장한테 미리 전화로 제 소개를 좀 해 주셨으면 해서요. 김 과장님한테는 제가 넉넉하게 인사를 하겠습니다.”

김세민한테 정우진의 핑계를 대어서 봉투를 전해 주고 싶다는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러자 정우진이 피식 웃었다.

“전화야 평소에도 하니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봉투를 전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김세민 과장은 나보다도 더 그런 걸 싫어합니다. 뭐, 만나보면 알 일이지요. 그건 그렇고 무슨 사무실입니까?”

정우진이 오정달에게 무슨 사업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냥 조그만 무역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수입을 하는 편이지요.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품목이 제법 많습니다.”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자 정우진이 바로 정곡을 찌르고 들어왔다.

“내가 거기 있을 때도 김세민 과장이 시계나 보석류를 홍콩에서 밀수하는 것을 적발해서 부두 앞은 지금도 매일 저녁에 임시 검문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설마 그것과 연관된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찔러보자 순간 오정달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고, 정우진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뭐, 오늘 김 의원님하고 같이 오셨기 때문에 제가 예의는 갖춰 드립니다만 김세민 과장한테 어떤 로비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고깝게 듣진 마시고, 제가 진심으로 충고해 드리는 것입니다. 저보다도 더 반듯한 사람입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김 의원이 중재에 나섰다.

“자 자, 오늘은 그런 딱딱한 얘기는 하지 말고 언제 식사라도 하십시다. 지금 뭐 서장님이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이렇게 벽을 쳐 놓으시니까 저로서도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진땀 흘리는 거 보이시죠? 허허…….”

“…….”

“사실 오늘은 서장님이 처음 오시고 해서 판공비도 필요하실 것 같아 용돈이나 좀 드리려고 했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하겠습니다. 자 그럼 오 회장! 일어나십시다. 더 있을 자리는 아닌 듯싶소만.”

지금 하는 말이 모두 다 녹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 김 의원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서장님, 조만간 제가 저녁에 한번 모시겠습니다. 꼭 좀 시간을 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정달이 공손하게 그렇게 말하면서 건달들이 오야붕한테 인사를 하듯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정우진이 서장실 입구에서 두 사람을 보내고 나서 윤미연에게 물었다.

“역삼동 담당 정보 형사가 누구야? 나한테 오라고 그래.”

“네 서장님.”

윤미연이 정보 1계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감사합니다. 강남 정보 원 경위 윤종수입니다.

“네, 계장님, 여기 부속실인데요. 역삼 담당이 어느 분이세요?”

-갑자기 왜?

“서장님이 찾으시는데요?”

-역삼을? 무슨 일이지? 미연 씨도 잘 모르는 일이가? 나한테 살짝 귀띔 좀 해 주면 안 되나?

“저도 잘 몰라요. 방금 전 김 의원님 다녀 가시고 나서 그러세요. 아무튼 알아보고 빨리 연락해 주세요.”

-오케바리! 거기도 미연 씨하고 같은 종씨다. 윤강귀 형사라꼬 파초 윤가인데……. 이름이 좀 요상하제?

정보 1계장이 뭐가 그리 우스운지 키득거렸다.

* * *

“이봐 윤 형사, 당신 솔직하게 얘기해야 돼. 난 내 앞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고.”

정우진이 윤강귀 경사를 앞에 앉혀 놓고 먼저 다짐부터 받았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저도 여기 강남 정보 형사로 여러 서장님 모셨지만 서장님 앞에서 거짓말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당신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알겠습니다. 제가 만약에 서장님한테 거짓 보고를 드렸던 것이 밝혀지면 저 스스로 정보과에서 나가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 사람 누구야? 자네 아는 대로 말해 봐!”

그렇게 말하면서 정우진이 오정달한테 받은 명함을 꺼내어서 보여 주었다.

“…….”

“사람이 묻는데 말이 없어? 자네 아는 대로 이야기해 봐.”

정우진이 꺼내 준 명함을 한참 들여다보던 윤 형사가 나지막이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서장님, 이 오정달이란 사람은 여당의 실세 중의 실세입니다. 처음에는 여기 강남의 지역구 국회의원 후원회장으로 출발했다가 지금은 집권당의 여섯 명의 후원회장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역대로 강남서장님으로 오시는 분은 다 먼저 인사를 갔습니다. 서장님한테 주는 월대도 제가 받아서 중간에서 전달해 드렸습니다. 저도 이 사람한테서 서장님 월대 전달할 때 같이 조금 용돈을 받아 썼기 때문에 이 사람 말대로 자손 대대로 여기 강남의 부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다가 중간에 끊는 바람에 정우진이 그만 성질이 났다.

“당신 잔머리 굴리지 말고 똑바로 말 안 해? 아까 이 자식이 국회의원하고 들어왔지만 내가 아예 봉투 꺼낼 기회도 주지 않았어. 난 얻어먹은 것이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

정우진은 윤 형사가 뭔가 알고 있으면서 제대로 말을 안 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윽박질렀다.

“네, 한번은 본청 부속실 조연희 경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정달이 뒷조사를 좀 해 달라고 말입니다. 전 본청 부속실 수행 경사가 전화해 온 것이라서 그게 바로 청장님 명인 줄 알고 뒷조사를 좀 해 봤는데 그것이…… 제가 그 자식이 얼마나 돈질을 하고 다니는지 깜빡 속았습니다.”

“뭘 속아?”

“우선에 이자는 전과가 다섯 개 정도 됩니다. 사기에다, 외환 관리법 위반에 나머지는 관세법 아니면 밀항 단속법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조상 대대로 여기 뽕밭을 일구고 살았다는 것도 다 거짓말입니다. 고향은 경기도 가평인가 그렇고 학교도 고졸 이후로는 행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과거가 수상한 자라는 이야기지?”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전문 밀수꾼들한테 붙어서 일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었겠지요. 이제 사회적인 지위가 필요하니까 집권당에 돈질을 하고 다니고 그랬던 겁니다.”

윤 형사가 그동안에 자신이 조 경사의 지시를 받고 조사한 내용을 정우진 서장한테 그대로 보고했다.

“흠~ 조 승지가 부탁했다 이거지? 그럼 벌써 김세민이가 냄새를 맡았다 이거네. 캬! 근데 김세민이 이 자식은 그런 게 있으면 여기 강남서장인 나한테 부탁을 해야지, 아니 조 승지를 통해서 정보 형사한테 눌러? 이거 괘씸한데? 안 그래, 윤 형사?”

정우진이 자신한테 얘기를 하지 않고 조 승지를 통해서 강남서 정보 형사를 움직인 것이 괘씸하게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말을 했더니 윤 형사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그럴 만도 합니다.”

“뭐가?”

“강남서를 믿지 못해서 그럴 것입니다. 저도 나중에 들었는데 지난번에 여기 팔라우 룸살롱 마충식이를 부산 형사들이 올라와서 잡아갔을 때 말입니다. 그때도 먼저 형사계 백두산 주임한테 협조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 주임이 나 몰라라 하니까 부산 형사들이 허탕을 쳤는데 나중에 부산 동부 형사과장 서울 근무할 때 아는 사람들이 한밤중에 팔라우 마충식이를 잡아다가 부산 형사들한테 인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아니, 백 주임은 왜 그런 거야? 그 자식도 뭐 얻어먹은 것이 있어서 그런 거야?”

정우진이 다그쳐 물었다.

“백 주임은 아니고 이번에 대기 발령 받은 정운명 서장이 팔라우 단골이었습니다. 퇴근만 하면 팔라우에서 술 한잔하시고 집으로 들어가든가 2차를 가든가 그랬습니다. 그러니 백 주임도 서장 단골 술집을 손대기가 곤란하지 않았겠습니까?”

“정운명이 그 자식 용국 마피아잖아? 난 왜 아직 나이도 있는데 대기 발령 받았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사연이 있었네. 근데 백두산이 이 자식도 그래. 아무리 서장 단골 술집이라도 공과 사는 구분을 해야지, 강남서에 직원만 거의 천 명이 되는데 그까짓 건달 하나 못 잡아서 다른 조직을 통해 잡아? 진짜 어이없는 얘기다.”

“그 당시 팔라우에 잘나가는 연예인이 나온다고 하기도 하고, 또 연예 기획사 대표가 정치인이나 검사들을 접대하기도 하고 우리 본청 정보국이나 형사국에 근무하는 경정 이상급 간부들이 수시로 나와서 접대를 받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그걸 부산 형사들이 다른 서울 건달들 도움을 받아서 밤에 마충식이를 체포해서 데리고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다들 조마조마했는데 백두산 주임이 부산 동부 형사과장을 잘 아니까 강남 직원들까지 끌고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안심을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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