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5화
#655. 정복 따와이
조연희는 이번에 대통령 표창을 받고 나서 경찰 정복을 새로 맞추었다.
경찰 정복은 통상 두 가지 루트를 통하여 장만하는 편이었다.
첫 번째는 경찰청 지정 양복점에서 재단사들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경찰서 각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3년에 한 번씩 경감 이하 일반 간부나 비간부들을 대상으로 상의만 맞추어 주는 것이었다.
하의는 일반 근무복 바지를 입게 되는데 경찰의 날이나 어쩌다 한 번씩 정복을 입게 되면 아래위 색상이 달라서 어디서 주워 입은 표시가 금세 나니 보기가 흉하게 마련이었다.
그것이 싫기 때문에 대부분은 승진한 사람들이나 원하는 직원들만 자신들의 사비를 들여 맞추어 입었고, 그마저도 솜씨가 형편없다 보니까 맞춤옷이라도 몸에 맞지 않고 헐렁하기가 일쑤였다.
단, 경정 이상은 말이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직접 노련한 재단사가 와서 치수를 재고 가봉까지 한 다음에 최고 좋은 재질의 옷감으로 맞추어 주었다.
그 외 근무복은 논산 훈련소 신병 교육대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
근무복 상, 하의는 대, 중, 소로만 제작이 되어 장비계에서 나누어 주었으며 바지 길이도 길고 허리도 맞지 않아서 자신들이 직접 세탁소나 옷 수선하는 곳을 찾아서 자신의 몸에 맞게 줄여 입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마저도 근무복은 그렇게라도 입지만 전투복의 경우는 경찰서에 근무하는 직원은 당직하는 날 외에는 별로 입을 일이 없기 때문에 대충 허리도 맞지 않고 길이도 맞지 않는 것을 입고 다니는 것이었다.
허리가 맞지 않는 것은 혁대를 바짝 조이면 되는 것이었고 길이가 긴 것은 워커 안으로 감추면 되는 것이었다.
겨울이 시작되고 해가 바뀌어 간다고 경리과에서 청장의 동 정복을 일체 새로 맞춘다고 연락이 왔다.
보통 일반 직원들은 근무복이 해마다 지급이 되었고 정복은 3년에 1벌을 맞추어 주었다.
그 외 전투복도 전, 의경들에겐 해마다 지급을 했고 경찰관들은 2년에 한 벌이었다.
그 외 경찰 단화나 전투화 등은 간부들은 군의 장군들이 신는 발목에 지퍼가 달린 가죽 장화를 신기 때문에 그것도 원칙은 3년에 한 켤레 지급이 되었는데 발에 맞게 맞추어 주었다.
만약에 청장이 바뀌고 나서 경찰 정복이나 근무복의 색상이나 디자인이 바뀌게 되면 경리과나 옷을 납품하는 업자들은 배가 볼록하게 양껏 따와이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도 경찰 제복 때문에 말이 많으니까 지난번에는 대학 패션학과에 돈을 주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경찰복 패션쇼까지 개최를 하는 소동까지 일어났지만 어쨌든, 옷 색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다 바뀌기 때문에 청장이 바뀌어서 옷의 형태나 색상이 바뀌게 되면 관계되는 경리 파트나 납품 계약을 한 의복업체는 돈벼락을 뒤집어쓰는 것이었다.
경찰청장이 되어서 굳이 밑에서 상납을 받지 않더라도 경찰복을 새로 바꾸기만 해도 강남에 빌딩을 하나 올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들 업자들은 청장이 바뀌면 군침을 흘리곤 했었다.
전국 15만 경찰의 정복과 예복, 계절 따라 바뀌는 근무복과 전투복, 진압복, 전, 의경 추리닝과 그리고 경찰대학이나 학교에서 교육받는 교육생들의 옷까지 포함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천세용 청장은 부임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옷을 바꾸라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경리과나 업자들이 조연희한테 수시로 찾아와서 내년 경찰 정복을 어떻게 할 건지 염탐을 하였는데 새로 옷을 맞추어 주겠다는 말까지 나온 것이었다.
* * *
경찰청장 부속실.
열린 문으로 경리계장인 방탐식 경정이 민간인을 한 사람 데리고 들어왔다.
“이봐 조 승지! 이번에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는데 내가 딴 건 축하를 못 해 줘도 그래도 정복 한 벌은 해 줘야지! 아니 조 사장은 뭘 하고 있어? 어서 치수부터 재라고!”
경리계장이 같이 들어온 민간인에게 그렇게 재촉했다.
“네네, 자 일어나셔서 한번 돌아보십시오. 어디…….”
조연희는 재단사가 시키는 대로 일어나서 움직였다.
“이러면 되나요?”
“잠시만요……. 우선 제가 대충 재서 옷감을 잘라 가지고 초벌을 해 놓으면 저기 명동에 제가 잘 아는 초일류 재단사가 있습니다. 강남 사모님들이 단골로 오는 곳이지요. 거기에서 가봉을 해 드릴 겁니다. 작년에 경찰 모델도 하셨다고 들었고 종씨이신데 제가 특별히 잘 모시겠습니다.”
미처 조연희가 무슨 말도 꺼내기 전에 조기재 사장이 줄자를 꺼내 눈대중으로 대충 치수를 재더니 수첩에다 기록을 했다.
그러고는 명함을 한 장 꺼내어서 조연희에게 주었다.
[북악 양복점 - 단체복 맞춤 전문, 장애인 고용 복지부 지정 업체
경우회 지정 경찰복 맞춤 업체
대표이사 조기재]
그렇게 되어 있었다.
“재 자 항렬이세요?”
느닷없이 조연희가 그렇게 물었다.
“네네. 그렇습니다.”
갑자기 쑥 들어오는 말이라 생각 없이 조 사장이 그렇게 대답을 했더니 조연희가 피식 웃었다.
“그럼 풍천이 아니고 창녕이시네. 난 또, 아저씨뻘이라도 되는가 싶었지. 저기요, 계장님, 내년에 경찰복은 바꾸지 않는다고 청장님이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요? 전투복은 군복하고 색상이나 디자인이 같아서 경찰 기동복으로 명칭도 바꾸고 군복보다는 좀 더 밝은 색으로 하는 것은 검토를 좀 해 보자는 말씀만 계셨어요. 아마도 기동복만 바꾸고 나머지 근무복이나 정복은 그대로 입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 괜히 돈 들여서 제 옷까지 해 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조연희가 미리 경리계장의 의도를 짐작하고는 탁 털어놓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경리계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에이, 기동복만 바꾸어도 그게 어디야? 한 가지만 바뀌어도 15만이라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것도 바뀌게 되고. 아 참, 기동복이 바뀌면 진압복도 다 바뀌어야지. 안 그래?”
“진압복도요?”
조연희가 왜 멀쩡한 진압복을 바꾸느냐고 물었다.
진압복은 방염 처리된 특수 재질로 된 옷 속에 대나무가 조각조각 가슴과 팔다리에 다 붙어 있어서 아무리 돌을 맞거나 쇠 파이프에 맞아도 멍만 들 뿐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으며 전 경찰관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진압복을 다 가지고 있었다.
인사 발령이 나도 자신의 진압복은 들고 다른 경찰서로 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제대로 세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땀 냄새와 최루 가스에 전 옷을 다른 직원들이 입기가 뭣하기 때문에 한번 지급받은 진압복은 발령 때마다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진압복은 제작 단가가 일반 전투복에 비해서 다섯 배 이상이나 비쌌고 일반 군복과 색상이 같기 때문에 만약에 경찰 전투복을 산뜻한 색상의 기동복으로 바꾼다면 진압복도 다 바꿔야 할 판이었다.
산뜻한 기동복 위에 칙칙한 군복색의 진압복을 걸쳐 입는다면 누가 봐도 이상해 보일 것은 당연했다.
눈치 빠른 경리계장이 그걸 놓칠 리는 없었다.
“그러네, 기동복을 바꾸면 진압복도 다 바꿔야 하네.”
조연희가 미처 자신이 생각지 못한 것을 지적해 내는 경리과장의 순발력에 고개를 끄덕였다.
“청장님한테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청장님은 돈을 아끼자고 하시는 말씀이었는데 결국 피복비는 다 쓰게 되겠어요.”
그렇게 걱정을 하자 경리계장이 고개를 저었다.
“피복비 문제는 내가 청장님께 직접 결재 들어가서 허락을 받을 테니까 조 승지는 아무것도 모른 체 그냥 가만있으면 된다고. 만약에 청장님이 물으시면 그때는 기동복을 바꾸는데 진압복을 바꾸지 않으면 길에 나가서 데모대와 대치를 했을 때 아래위 색깔이 다른 기동복을 입고 서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시민들 앞에서 망신이다. 그러니 이왕 제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미리 주문을 넣어야 한다더라……. 뭐 그 정도만 바람 잡아 주면 충분하다고……. 일단 그건 그거고 이거 한번 보라고.”
그러면서 경리계장이 경찰 정복에 사용되는 짙은 남청색의 옷감을 꺼내서 펼쳐 놓았다.
“이건? 색이 꽤 괜찮네요? 근데 원래 우리 정복 색상하고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조연희가 그렇게 물었더니 조기재 사장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역시 알아차리시는군요. 맞습니다.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다르죠?”
“이 옷감은 순모가 60%나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순모가 많이 들어가면 구김이 많이 가거든요? 그래서 금세 펴지라고 폴리에스터가 들어가 있어서 멀리서 보면 윤기도 반지르르하게 나고, 아무튼 웬만한 양복 옷감보다는 백 배나 낫습니다.”
“흠…….”
“우선 이걸로 조 승지께서 한 벌 쫘악 빼입으시지요. 그래서 청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시면 하반기에는 경찰 정복 색상을 이걸로 교체하라는 말씀이 계실 겁니다. 잘만 되면 제가 이 은혜는 두고두고 있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자, 이거는 조 승지 특보 수당!”
경리계장이 직접 두툼한 봉투를 내놓았다.
“뭐예요, 이게?”
“뭐긴? 이번에 외사국 소속이 되자마자 청와대까지 보고되는 특보를 두 건이나 냈잖아? 특보비 한 건당 2백만 원. 총 4백만 원! 계산은 틀림없이 한다고! 경찰청은 일선서 경리계처럼 출장비나 상보비 떼먹고 그런 추잡한 짓은 안 해. 내가 외사 3계장한테 이번 특보비는 청장님 결재 들어가면서 조 승지한테 직접 전해 준다고 얘기도 했어. 그러니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받아, 내가 챙겨 줄 거 있으면 뭐든지 챙겨 줄 테니까.”
그렇게 해서 얻어 입은 정복이었다.
며칠 후에 정말로 명동에서 양장점을 한다는 여자들이 두 사람이나 들어와서 부속실 옆 소회의실에서 가봉을 했으며 그다음 주 월요일이 되자 조기재 사장이 양장점 여주인과 함께 직접 완성된 정복을 가지고 왔다.
정복 상의 한 벌에 바지가 두 벌, 치마가 한 벌에다가 근무복이 두 벌, 그리고 아이보리색 투피스 정장도 한 벌이 들어 있었다.
“세상에, 웬 옷을 이렇게나 많이 만들었어요?”
“한번 입어 보시소. 가봉한 양장점 주인이 제 처제 됩니다.”
“그랬군요, 어쩐지 엄청 친절하시더라니…….”
“그리고 주로 바지를 입고 근무하신다고 해서 바지만 한 벌 더 만들었고요, 치마도 입을 일이 있으실 것 같아서 만들었습니다. 인제 조 승지님 치수가 양장점에 있으니까 철 따라 양장이나 근무복도 만들어서 갖다 드리겠습니다.”
결국 조연희를 통해서 청장의 결심을 얻게 하려는 경리계장과 조기재 사장의 노련한 상술인 것을 알았지만 조연희도 딱히 싫지만은 않았다.
경리계장이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합법적인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복 왼쪽 가슴에 약장이 두 줄이나 붙어 있었다.
“어라? 이거 약장 아니에요?”
조연희가 약장까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물었다.
“마 이런 것을 좀 붙여야 폼도 나고 그렇습니다. 대통령 표창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것 좀 줘 보십시오. 그건 오른쪽 가슴에 척 하니 붙이고 다니면 때깔이 납니다.”
어찌나 그렇게 오두방정을 떠는지 조연희는 엉겁결에 정복의 오른쪽에는 대통령 표창의 상징인 색동 매듭의 기장을 달고 왼쪽에는 흉장 위에다가 두 줄의 약장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옷을 갈아입었는데 보는 사람 모두가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했다.
“캬 정말 죽입니다. 저도 평생 옷만 만들고 살았지만 제복이 이리 잘 어울리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자, 사진 한 몇 장 찍겠습니다. 나중에 경찰 홍보지에 내보낸다고 경리계장님이 몇 장 찍어 오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찰칵! 찰칵!
* * *
다음 날 아침 경찰청 참모 회의 시작 전 부속실.
오늘은 홍은수가 공항에서 보내 준 용정차를 끓이고 있었다.
“야 이거 오늘은 차 냄새가 좋은데? 향긋하고 구수하게도 느껴지고 뭔 차야?”
언제나 일등으로 들어와서 부속실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정보국장이 그렇게 말하면서 조연희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잠깐.”
“예?”
“너 지금 입고 있는 게 뭐냐?”
“뭐가요? 그냥 정복이잖아요?”
“장난해? 우리 정복이 이렇다고? 색이랑 재질도 다른 것 같구만! 이젠 하다하다 옷까지 마음대로 입냐?”
“아니거든요? 우리 정복 맞거든요? 새로 맞춰서 그냥 좀 좋아 보이는 거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면서 조연희는 입을 샐쭉 내밀었다.
“뭐야? 아침부터 뭔데 이리 시끄러워?”
뒤이어서 들어오던 이순명 경무국장이 조연희를 보더니 감탄을 하는 것이었다.
“이야~ 조 승지! 정복 새로 해 입었네? 때깔 죽이는구만?”
“감사해요. 저 잘 어울리죠?”
“음~ 아주 잘 어울리네, 안 그래도 경리계장이 조 승지 정복 한 벌 해 줘야 한다고 아침부터 시끄럽게 떠들더니 그럴 만도 하네. 어이 남 국장!”
“예?”
“지금 조 승지 입고 있는 이 옷 말이야, 평소 입는 거하고 살짝 다른 느낌이 나지 않아?”
“글……쎄요.”
경무국장은 정복이나 경찰의 근무복을 바꾸어야 퇴직하기 전에 자가용이라도 좋은 것을 하나 장만해서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정보국장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정보과에서 대내 정보를 안 좋게 청장한테 보고하면 다 엎어진 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이제 보니 조 승지한테 모델 시켜서 경찰 근무복 한번 바꾸시려고?”
“……눈치챘냐? 적당히 모른 척해라. 난 이제 곧 나갈 사람인데. 뭔 말인지 알지?”
“글쎄요, 뭐 그거야 청장님 고유 권한인데 내가 뭐라고 할 수야 있나요? 근데 조 승지 니가 입고 있으니 잘 어울리긴 하네.”
“치, 결국 칭찬하실 거면서 맨날 잔소리만 하시고…….”
“시끄럽고, 너 나중에 이 옷 입고 청사 안이나 좀 돌아다녀 봐라. 우리 정보과에도 올라와서 놀다 가고.”
“왜 그러세요? 저 모델 삼아서 여론 수집이라도 하시게요?”
자신을 모델로 삼아서 국장들이 경찰복을 바꾸자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냐는 말이었다.
“에휴, 내가 누굴 속이겠냐? 그래 맞아. 청장 입장이 되면 자기 입으로 옷 바꾸자는 소리는 못 하지. 밑에서 우리가 분위기를 잡고, 마지못해서 그렇게 하라고 등 떠밀어서 옷을 바꾸고 그렇게 해야 되거든. 그래 봤자, 청장님 앞으로 1년도 더 안 계실 거잖아? 청장님 나가실 때 뭐라도 품앗이는 해야 하는데 잘됐네. 정복 모델 하면 딱이다. 아무튼 알겠지? 오늘부터 이 옷 입고 돌아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