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672화 (672/869)

제 672화

#672. 동기생

조연희는 박철 일경을 데리고 서울 시경 관제 센터로 갔다.

그곳에는 서울 시내 모든 교통 신호기의 현황과 신호기마다 붙어 있는 CCTV에서 실시간으로 찍어 보내는 모든 영상이 다 관제 센터로 보내지고 있었다.

조연희와 박철은 문제의 민원이 들어온 고등학교 뒤편에서 나오는 차량들을 찾아서 살펴보았다.

아침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일단 선릉 쪽에서 나오는 차량들은 대부분 우회전을 하고 있었다.

달리 방향을 틀 수 있는 곳이 보이지가 않았다.

“실장님, 저기 선릉에서 나오는 차들 말인데요, 왜 저기서는 좌회전을 안 주고 순환도로까지 가서 유턴을 하게 만들죠? 순환도로 유턴 지점도 유턴하려는 차량들로 벌써 퇴근 시간 전인데도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데요? 한 번 신호받으려면 세 번 정도 기다려야 되겠어요.”

조연희가 그렇게 지적을 하자 진형욱 경위도 그 말에 동의를 했다.

“맞습니다. 저게 전에 올림픽 할 때 올림픽 도로와 경부 고속도로, 분당을 잇는 순환도로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강남구 내 간선도로의 좌회전은 원칙적으로 금지시켰거든요? 그런데 인제는 올림픽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올림픽 할 때 규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까 말들이 많은 거죠. 또, 그때는 지금처럼 선릉 부근에 아파트나 빌라 단지가 많이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 저걸 개선하려고 해도 욕 얻어먹을까 봐서 다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못 다는 거죠.”

“고양이 목이라뇨? 그게 무슨 소리죠?”

“뭐 그야, 뻔한 소리죠. 우리끼리 하는 말로 좌회전 신호나 횡단보도 새로 긋는 것은 다 얻어먹고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색안경을 다 끼고 보니까 누가 선뜻 하자는 소리를 못 내는 것이죠.”

횡단보도를 새로 만들면 주위에서 소외된 가게 업주들이 연명으로 진정서를 내기 일쑤였기 때문에 경찰서장들은 될 수 있는 한 그런 민감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자기보다 더 센 곳에서 백이 들어와서 나중에 문제가 되어도 자신이 어느 정도 책임을 벗어날 수 있어야 겨우 해 주는 흉내만 내다가 반대 민원이 들어오면 잽싸게 그 핑계를 대고 거두기 일쑤였다.

‘올림픽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강남 교통은 올림픽 당시 그대로구만…….’

그런데 묘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인데도 고등학교 뒷담을 넘어서 일부 학생들이 슬리퍼를 신은 채로 담을 넘고 있는 장면이 멀리 떨어진 사거리 신호 대에 붙은 CCTV에 보였는데, 월담을 한 학생들이 무단 횡단을 하는 것이었다.

“박철, 너도 방금 봤어?”

“……네.”

“뭔 담까지 넘어서 무단횡단을 해, 땡땡이 치는 건가? 야, 너도 저 학교 나왔다고 그러지 않았냐?”

“맞습니다.”

“너네 학교 공부 잘하는 학교라며? 근데 어딜 가나 저런 애들은 있나 봐?”

그러자 박철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건 땡땡이라기보단 밥 먹으러 가는 겁니다.”

“뭐? 밥 먹으러 가는 거라고? 아니 밥집이 어딘데 담을 넘어간다는 거야?”

“저도 졸업한 지 좀 됐지만 아마 지금도 비슷할 겁니다. 지금 시간이면 정규 수업은 이미 끝났을 테고, 야자까지 시간이 좀 남거든요? 근데 학교 구내식당에선 저녁 타임이 없으니까 집에 가서 먹고 와야 하는데, 정문은 강남구청 쪽에 있어 가지고 한참 돌아야 하죠. 그러니 저렇게 담을 넘어 가지고 집에 가서 밥 먹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거 지역이 학교 뒤편에 밀집되어 있으니까요. 20분 정도라도 시간을 아끼려고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죠.”

“그래? 그럼 됐어!”

“예?”

조연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우리 사수님, 모든 답은 현장이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맞잖아? 사수님 고마워요! 앞으로 잔소리한다고 짜증 안 낼게요!’

부속실로 돌아온 조연희는 강남 정보과장 박일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까르르륵!

-네, 강남 정보과장 박일도 경정입니다…….

박일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은 받아 놨는데 해결될 기미는 안 보이니 속으로 미칠 지경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정우진한테 가서 돈을 받았으니까 신호등 하나 달아 주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매일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에이 X발! 괜히 돈을 받아 가지고 말이야. 돈만 안 받았으면 속 편하게 이리저리 푼돈이나 따와이하러 빌딩을 돌아다니면 되는데.’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치아에 충치가 생긴 것처럼 입맛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과장님? 왜 이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으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

조연희가 놀릴 심산으로 짐짓 모른 체하며 그렇게 물었더니 역시나 맥 빠진 대답이 돌아왔다.

-시끄러……. 지금 통화할 기분 아니니까 끊는다.

“어허~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될 텐데요. 솔직하게 털어놔 봐요. 김칫국부터 먼저 마셨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김칫국이라니?

“에이, 왜 그러세요.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그래서 혹시나 해 가지고 저한테 민원 하나 넣은 것 아닌가요? 서장님은 알고 계시던데.”

그 말에 박일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 조 승지! 너 진짜…….

“왜요?”

-……아니다, 아니야, 됐다. 그만하자. 어휴……. 넌 도대체 눈치가 몇 단이냐? 살다살다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내가.

“그거 칭찬이죠?”

-야, 이 판국에 내가 매달릴 곳이 너 아니면 어디 있겠냐. 좀 도와줘라.

“흐흥~”

조연희가 못 들은 체 콧노래까지 불러대자 박일도는 미칠 지경이었다.

-이렇게 부탁한다, 내가 요즘 밥을 못 먹고 있어. 억지로 먹어 봤는데 쌀인지 모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야. 이번만 좀 도와줘, 그러면 내가 너한테 딱 반 잘라서 준다. 50%! 어때.

맘이 급하다 보니까 안 해도 될 말까지 해 버리고 마는 박일도였다.

“에휴~ 내가 정말 못산다. 그러게 소화도 안 되는 거 뭐 하러 받아서 그리 고민하세요. 진공묘유란 말도 몰라요?”

-뭐라고? 그건 또 뭔 소리냐?

“마음을 비워야 묘수가 보인다는 뜻이에요. 아무튼 제가 오늘 현장에 다녀왔는데요, 오늘 저녁 SBC 아홉 시 뉴스 시간에 독자 제보 영상이 한 개가 올라갈 겁니다. 학생들이 담을 넘어서 무단 횡단하는 장면인데요, 이걸로 학교 뒷문을 만들어서 학생들 등하교 시간에만 개방하도록 하고 학교 뒷문이 열리면 당연히 횡단보도는 설치해야 하겠죠? 그럼 보행 신호에 한남대교로 나가는 차량들이 자연스럽게 좌회전할 수 있도록 신호를 좀 길게 잡아 주면 될 것이고요, 저도 이거 경찰청 출입하는 캡(출입 기자들 중 최고참을 말함)에게 부탁을 한 거라서 나중에 인사는 쫌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아무튼 영상이 나가면 내일 아침에 공보실에서 청장님한테 일보가 올라오겠죠? 그리고 제가 맨 위에 올려놓아서 청장님이 보시도록 할 거예요. 그럼 자연스럽게 조치를 하라고 지시가 서울 시경을 통해서 내려갈 것이고 먼저 정보 형사가 가서 학교 측에다가 뒷문을 만들라고 협조를 하고 난 다음에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으로 하면 되겠죠? 대신에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지, 따와이가 목적이 아니다라는 것을 마음속에 담고 계셔야 얼굴에 안 나타납니다. 정우진 서장이 그런 표정 읽어 내는 것은 귀신이니까 안 들키도록 잘하세요.”

-하여튼 조 승지 너? 덕분에 내가 또 살긴 사는구만. 그래 약속은 지킨다. 내가 받은 것 무조건 반은 줄 테니까 경찰청 캡한테 인사하는 것은 네가 다 알아서 해라.

박일도가 그렇게 말하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저는 안 주셔도 되고요, 그냥 여기 출입 기자들 밥이라도 한 끼 하도록 조금만 보내 주세요.”

-뭐? 그게 진짜야?

“우리 사수님 귀에 들어가면 잔머리 굴려서 정보과장님 등쳤다고 맞아 죽어요.”

-야! 내가 김세민이한테 뭐 하러 쪽팔리게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겠니? 걱정 말고 네 인사치레는 네가 알아서 해라. 너만 믿는다?

“어휴, 걱정 마세요.”

* * *

다음 날 아침.

조연희는 청장이 출근하자마자 읽어 볼 수 있게 업무 보고의 맨 위에 공보실에서 보내 준 경찰 관련 방송이나 신문 기사의 스크랩 자료를 올려놓았다.

거기에는 슬리퍼를 신은 학생들이 담을 넘는 사진과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내용에는 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빨리 들어가기 위해서 멀리 돌아서 가는 길을 마다하고 위험해도 담을 넘어 집에 가서 밥을 먹으려고 위험한 무단 횡단을 한다는 기사도 실려 있었다.

“조 경사야! 조 경사!”

안에서 청장의 소리가 들렸다.

“연희야! 청장님 부르신다. 어서 들어가 봐, 나머지는 내가 할게.”

양영미가 찻잔 준비를 하겠다고 빨리 조연희더러 들어가 보라고 등을 밀었다.

“네, 청장님.”

조연희가 생글거리면서 청장실로 들어가서 청장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부동자세로 섰다.

“이거 말이야, 어떻게 이런 사진이 신문에 실렸어?”

“네?”

“너도 봤지? 이거 시민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

“음, 좀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하네요.”

“내가 말하기는 좀 모양이 빠지고, 너 강남서장하고 친하잖아? 정우진이한테 얘기해서 당장에 횡단보도 하나 만들라고 해.”

“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하여튼 정우진이 이 자식은 말이야, 큰 사건은 잘하는데 자잘한 거 챙기는 거는 영 젬병이야. 이런 거는 밑에서 알아서 잘 챙겨야 하는데! 그건 그렇고 지금 강남서 교통과장이 누구야?”

청장이 느닷없이 교통과장이 누구냐고 물어 왔다.

“엄익수 경정이라고 후보생 출신입니다.”

“이 자식들이 진짜……. 지금 당장 교통과장한테 전화해서 내가 지시한다고 그러고 필요한 교통 시설 있으면 즉시 설치하라고 해! 서울 시경 교통과에도 전화하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다들 기본이 안 되었어. 이거 시민들이 보면 뭐라고 우릴 욕하겠냐고. 다른 것도 아니고 학생들 안전에 관한 문제인데 말이야. 다들 감이 없어. 건달들 백 명 잡는 것보다는 학생들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걸 간부들이 왜 몰라?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빨리 조치하고 보고 올려!”

“네,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 * *

강남서 아침 참모 회의.

정우진은 아침부터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네. 부장님, 저도 방송에 나간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오늘 당장이라도 우리 교통을 내보내서 실태를 파악해 보고 바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네 네. 청장님도요? 알았습니다.”

쾅!

“에이 이런 젠장 빌어먹을, 고작 방송에 한번 나갔다고 이리 생난리를 피워!”

“누구 전화입니까?”

박일도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체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 글쎄 본청에서 오늘 참모 회의에서 청장님이 아주 언짢으셨다는 거야. 강남서가 건달들 잡고 이런 거는 잘하는데 기본적인 학생들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다는 거야. 이런 샹! 백날 잘해도 이상한 거 한 건 터지면 싸잡아 욕먹는다고, 그래 교통과장 지금 나가 봐! 나가서 횡단보도 그거 하나 만들어 주면 되는 거 아냐? 가만, 가만있어 봐! 그 자리에 횡단보도? 그거 전에도 누가 와서 부탁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뭘 잘못 알았나……?”

그렇게 정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교통과장이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아침에 본청 부속실 조 경사한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청장님이 강남서장이나 교통과장한테 전화해서 당장에 필요한 교통 시설을 해 주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엄 과장이 그렇게 얘기를 하자 정우진이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뭐라고? 조 승지가 전화했었다고? 가만, 가만있어 봐. 내가 요새 여기만 앉아 있어서 감이 떨어졌나, 조 승지 저게 왜 전화를 했지?”

“그야 청장님이 전화하라고 시키니까 했겠죠.”

옆에서 박일도가 그게 뭐 그리 이상하냐고 그렇게 물었는데 정우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야, 이게 조 승지 그 여우 같은 것이 끼어든 걸 보면 필시 무슨 이유가 있어. 그래 일단은 청장님 지시니까 빨리 서둘러서 횡단보도 만들어 주자고. 이유도 충분하잖아?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어? 그렇게 해 줘!”

드디어 서장한테서 허락이 떨어졌다.

박일도는 속으로 기뻐서 춤이라도 출 것 같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직원들을 모아 놓고 소참을 한 다음에 담당인 이원익 경사한테 학교에 가서 후문을 만들어 줄 것을 협의하라고 지시를 한 다음 소참을 마치고 흡족하게 서서 조연희가 보내 준 과하지욕이란 글씨를 보고 있었다.

“과하지욕 치폐설존인가? 저거 조 승지가 보내 준 거야?”

느닷없이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박일도가 기겁을 하고 돌아보니 정우진 서장이 어느새 열린 문으로 들어와서는 서 있었다.

“아니 서장님, 언제 소리 없이 오셨습니까?”

“야! 동기생끼리 서장은 무슨? 그냥 편하게 말 놔!”

“아무리 그래도……. 여긴 경찰서인데 그러면 되겠습니까?”

박일도가 그렇게 말을 꺼내자 정우진이 조연희의 글씨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과하지욕이라~ 너도 어지간히 조 승지한테 앓는 소리 한 모양이구만.”

“네? 그런 사실 없습니다.”

“없긴 뭐가 없어? 그럼 걔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저런 걸 써서 보냈단 말이야? 말 같은 소릴 해. 근데 은근히 기분이 좀 나쁘다?”

“뭐가 말씀입니까?”

“치폐설존이라니, 이는 문 닫았는데 혀는 남아 있다는 말이잖아! 내가 날아가도 우리 박 과장은 남아 있다. 그런 뜻 아니야!”

“오해십니다 서장님, 절대 그런 뜻은…….”

“하! 조 승지 이걸 확 그냥! 생각해 봐, 은근히 날 비웃는 거잖아! 나한테는 뭐 매화 향을 팔면 안 된다고 하더니 여기에는 내가 날아가면 박 과장이 남는다고? 참 나……. 아무튼 담에 본청 가면 한번 손을 좀 보든가 해야지 안 되겠……. 가만.”

정우진이 뭔가 떠오른 듯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기 횡단보도 저 건도 다 조 승지 작품이지?”

“네? 그게 저…….”

“박 과장 네가 조 승지한테 부탁을 한 거 맞지! 내 말 틀려?”

“…….”

“햐! 이거 완전히 내가 두 눈 뻔히 뜨고 있는데 응? 우리 동기생하고 김세민이 부사수가 내 눈을 빼먹은 거네 응? 진짜 그럴 수 있는 거야!”

정우진이 추궁을 하자 박일도는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본 정우진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나 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하! 기가 찬다. 기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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