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688화 (688/869)

제 688화

#688. 차이나타운

“…….”

양 형사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꽤 오랜 시간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세관장을 압박하여 진술이나 좀 받으려고 왔는데 뜻밖에도 녹용 밀수라는 대어를 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녹용은 아주 귀한 한약재로 대부분이 캐나다에서 밀수가 되고 있었는데 해리슨 포트를 통해서 다량의 녹용이 들어오고 있었고 한의원에서는 모든 보약에 녹용이 필수 약재였다.

정식으로 수입도 되지 않는 녹용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보약재로 먹고 있었으니 그 금액이란 환산하기조차 힘든 것이었다.

“저…… 양 형사님?”

“이봐 금 형사.”

“예.”

“일단 과장님한테 보고해서 지침을 받는 게 좋겠어. 금 형사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리겠지만 우리 동부 형사들은 절대 과장님 속일 생각은 아무도 안 해. 다른 마음 묵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아.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제?”

양 형사가 김세민 과장한테 먼저 보고부터 하고 나서 지시를 받아서 처리하자고 하자 금 형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속으로는 양 반장님이 그렇게 말을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도둑질하는 돈은 정말 보기가 싫거든요?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입니까? 부산진 형사계에 있을 때도 매일 썩은 돈 냄새 맡아가면서 서면 일대를 돌아다닌다 아입니까? 지는 마, 돈 썩는 냄새는 질리도록 맡아 봤심니다.”

이심전심이었다.

김세민에게 보고를 한 양 형사는 형사들을 더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세관장에게 내일 경찰서에 출두해서 조서를 받으라고 하고서는 녹용을 몰래 들여온 송상 무역의 방인주 사장과 담당 통관 검사계장을 앞세워 감만 부두 앞에 있는 오륙도 보세 장치장으로 들어갔다.

보세 장치장이라서 세관 직원의 입회 없이는 함부로 컨테이너를 개봉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수입 물품을 가구라고 신고한 컨테이너 두 개 물량의 문을 열어 보니 캐나다에서 막 수입한 엄청난 양의 녹용이 상자째 가득 들어차 있었다.

“와……. X발 이게 다 돈으로 하면 얼마고?”

“욕심낼 만도 하네! 들여오기만 하면 10배 이상 튕구는 건 일도 아일 낀데. 간도 크다 간도 커, 미친 새끼들.”

김세민한테 보고를 한 뒤 금 형사는 즉시 방인주 사장을 긴급체포했다.

“자, 방 사장? 당신을 일단 체포합니다. 두 손 앞으로!”

금 형사가 그렇게 수갑을 채우려는 순간 옆에서 양 형사가 말리고 나섰다.

“잠깐.”

“예?”

“느그 부산진에 있을 때는 그래 했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무슨 말씀인지…….”

“손모가지에 팔찌 채울 때 말이다. 그런 식으로 체포했다가 과장님 귀에 드가는 날에는 고마 다 작살 나는 기라. 내 시범 보이 줄 테니까 단디 봐래이.”

그러면서 수갑을 달라고 손을 내밀자 금 형사는 머쓱한 표정으로 양 형사에게 수갑을 건넸다.

“자, 방인주 씨! 당신을 관세법과 조세법의 특가법 위반으로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또 당신에게는 변명할 기회가 주어지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고. 자 봤나? 앞으로는 이래 설명을 단디 해 주라꼬. 고마 덜렁 체포해뿌면 나중에 또 시끄럽다 아이가? 쪼매 구찮아도 할 거는 해야지, 안 글나?”

“예, 앞으로 주의하겠심니다.”

* * *

동부경찰서, 형사과장실.

띠리링!

“과장님! 2번에 일반 전화!”

관리반 이정미가 전화를 받아서 김세민에게 큰 소리로 전달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꽤나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세민은 오히려 전화 바꿔 준답시고 하던 일 멈추고 과장실 문 노크해서 알리면 너무 번거롭다고, 그냥 편하게 하라고 먼저 제안을 한 것이었다.

직원들도 처음에는 진짜 그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머뭇거렸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동부 형사과장 김세민 경감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주미연이에요.

“주미연……이 누굽니까? 어디시죠?”

-어머, 벌써 잊으셨나 봐요. 전 과장님 뵌 일이 아직도 생생한데. 기억 안 나세요? 캐나다 수입 가구점을 하고 있는 주미연이에요.

“아, 주 사장님이었군요.”

김세민을 상대하지 말고 피하라며 부하들한테 직접 명령을 내렸던 주시시가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온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5부두 앞의 마삼 보세창고가 털린 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초량 상하이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직계 무역회사인 송상 무역이 털렸고, 그것도 우연히 용당 세관에 들이닥친 어중이떠중이 형사들한테 컨테이너 두 개분 물량의 녹용이 압수를 당한 것이었다.

조직에 이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엄청난 액수의 녹용을 잃게 되자 이제는 정면돌파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 자신이 한국의 삼합회 사업을 맡으면서 주시시는 전처럼 혼수 예물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위험 부담이 큰 것도 있었고 오정달이 잠수를 타 연락이 안 되는 마당에 판로도 다 끊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다품종 소량으로 승부를 걸자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약재인 녹용, 젊은 층에서 인기가 있는 음향기기, 가정집에서 인기가 높은 일제 밥솥 등 다양한 품목을 관세 없이 들여와서 풀어놓자 반응이 폭발적이라 홍콩 본사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가 인정받을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하려는 찰나 다시 김세민과 그의 부하들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김세민은 생각지도 못한 전화가 오자 의심부터 들기 시작했다.

“근데 어쩐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어쩐 일이라뇨, 제가 동부서 관할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마땅히 우리 형사과장님께 제대로 신고를 하고 나서 장사를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럼 바빠서 이만…….”

-저, 이번에 제가 차이나타운에 중국 약재상을 하나 오픈했어요.

“그래서요.”

-혹시 시간되시면 퇴근하고 여기 한번 나오셔서 구경도 하시고, 또 어차피 식사는 하셔야 하잖아요? 제가 좀 모시고 대접을 하고 싶은데……. 먼저 말 꺼낸 것도 큰맘 먹고 했는데 부디 거절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바쁜데요.”

-…….

“용건 없으시면 이만 끊겠습니다.”

그러면서 김세민이 금방이라도 수화기를 내려놓을 듯 이야기하자 주시시는 꽤나 다급한 목소리로 김세민을 붙들었다.

-아, 제가 아무래도 너무 나갔나 보네요. 저는 그냥 과장님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식사 운운한 건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아뇨, 기분 나쁠 건 없습니다. 단지 같이 식사를 할 이유가 없으니 거절한 것뿐이지요.”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는 제가 조르지 않을 테니, 어떠세요. 저희 새로 오픈한 가게에 한번 구경이라도 오시는 게?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자 김세민도 재차 거절하기가 조금 민망해진 상황이었다.

“……뭐, 그 정도라면 알겠습니다. 퇴근 후에 잠깐 들르도록 하죠.”

-네, 감사해요. 부산역 건너편에 보시면 왼쪽으로 차이나타운이라고 입구 위에 글씨가 쓰여 있을 거예요. 그리로 들어오시면 남인당이란 간판이 보이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초량의 텍사스 골목은 1800년대 후반 청관이 생기면서 청나라의 상인들이 상권을 형성했다가 다시 청일전쟁으로 몰락한 다음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유흥 거리를 만든 것이 그 시초였다.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들이 전쟁 중에 휴가를 얻어서 놀다 가는 곳으로 유명했고 이제는 러시아나 우즈벡 등 구소련에서 오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보였으며, 텍사스 입구에서 오른편으로는 미국인들이 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청나라 시대 청관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중국인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김세민은 퇴근길에 잠시 차이나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는데 초량 위쪽 도로에는 대형 관광버스까지 주차가 되어 있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관광 코스가 되어 있었다.

‘입구 근처라고 했었는데……. 아, 저긴가.’

남인당 약재상은 이야기한 대로 차이나타운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커 보이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길게 뻗어 있는 ㄷ자 형태의 구조가 마치 가게 안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꽤나 깊은 모양인지 가게 안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제법 넓은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안으로 걸어가면서 좌, 우로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약재들을 구경하면서 맘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는 구조였는데, 김세민이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금세 여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저 혹시…… 김세민 과장님?”

“그런데요.”

“이쪽으로 오시죠, 안쪽에서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통로의 가운데에 소파와 응접 세트가 놓여 있었고 주 사장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김세민을 보고는 일어나서 반겨 주었다.

“오랜만이에요. 전 안 오시면 어쩌나 하고 내심 조바심을 냈는데……. 역시 약속은 지키시는군요, 남자다워요.”

“…….”

김세민이 별다른 대꾸 없이 자리에 앉자 이내 종업원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사기그릇에 담긴 검은 용액을 가지고 나왔는데 향을 맡아 보니 꽤나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무슨 차입니까?”

“왜요, 혹시 독이라도 탔을까 봐 그러세요? 걱정 말고 드세요. 금세 달인 녹용차랍니다.”

“녹용이라면…….”

주 사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녹각이 되기 전인 5월에 절각한 것이니까 최고로 사슴뿔이 부드럽고 연할 때죠. 이 시기가 끝나면 사슴들이 교미를 하는데 그러면 잘라 낸 뿔이 딱딱해지면서 녹각이 되고, 또 상품 가치가 떨어지죠. 남자들한테 녹용만 한 보약재는 없다고들 그래요.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릴 수도 있으니까 제가 조금 덜어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주 사장은 김세민의 앞에 놓인 녹용에서 사기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을 자신의 찻잔으로 덜어 내어 자신이 먼저 마시는 모습을 보였다.

김세민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서 벗어나려고 일부러 한 행동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눈을 살짝 위로 치켜뜨며 입가에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띠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괜찮겠지.’

김세민도 같이 차를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계속해서 가게 안으로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맨 마지막 돌아가는 코너에 머리가 백발에다 흰 수염을 길게 드리운 노인이 한 사람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앞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 줄을 서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김세민이 노인을 가리키며 주 사장에게 물었다.

“아, 저분은 화천이라는 분입니다.”

“근데 사람들이 왜 저렇게 줄을 서 있지요?”

“혹시…… 화타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화타라면 중국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의사 아닙니까?”

주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은 화타의 직계 자손으로, 중의학의 대가입니다. 물론 여기는 약재상이라 의원과는 좀 다르지만, 약을 구입할 사람에게는 무료로 진맥을 하고 있지요.”

“흠…….”

주 사장의 말에 호기심이 동한 김세민은 몸을 돌려 앉아 화천이라는 노인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국어를 할 수 없는 모양인지 옆자리에는 통역을 하는 젊은 여인이 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고 진맥을 하는 모습은 잘 보였는데 말은 잘 들리지가 않았다.

그때 김세민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진맥을 한 사람들이 뒤돌아가서 또다시 몇 마디를 더 물어보고 나서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진열대에 쌓인 약을 흥정도 하지 않고 덥석 사는 것이었다.

“근데 저 도사가 사람들한테 어떻게 말을 하길래 다들 두말 안 하고 약을 사는 겁니까? 양도 꽤 많아 보이는데?”

그러자 주 사장이 입을 가리며 수줍은 듯 웃음을 지었다.

“과장님 눈썰미는 정말 못 당하겠어요, 네 맞아요. 저희가 장사하는 방법이랍니다. 좋게 말씀드리면 장사하는 노하우이고요, 나쁘게 말하면 뭐 상술이지요. 여기서 일하는 제 지배인이 중국에서 약재상 경험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저 화천이라는 노인도 지배인이 데리고 온 사람이구요. 저도 약재상은 처음인 데다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해 보려니 자신이 없던 차에 지배인이 제안을 해서 속는 셈 치고 시도해 본 건데,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원래 한약방에선 처방은 못 하게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무료로 유명한 의원을 모셔서 진료만 손님들한테 해 주면서 약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한번 가까이 가서 들어 보실래요? 저기 뒤로 돌아가면 뒤에서 들을 수가 있는데.”

그러면서 김세민이 뭐라고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일어나서는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 귀찮은 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도사가 뭐라고 하는지 궁금했던 터라 김세민은 주 사장의 뒤를 따라갔다.

진열대의 옆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어두컴컴한 진열대의 뒤로 돌아가니 도사가 앉아 있는 바로 뒤까지 몰래 다가갈 수가 있었는데, 도사가 하는 말이 제법 잘 들렸다.

통역을 맡은 여자가 진맥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설명을 했다.

“자, 아주머니 손을 내밀어 보세요. 도사님이 직접 진맥을 하실 겁니다. 물론 공짜고요, 우리 도사님은 북경에서 한 번 진맥을 받으려면 줄을 서서 하루를 기다리셔야 겨우 진맥을 받을 동 말 동 하답니다. 먼저 나이를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정유생인데요.”

“으음…….”

맥을 잡고 난 도사가 계속해서 장탄식을 하자 궁금증이 난 아주머니가 계속해서 통역하는 여자를 붙들고 물었다.

“아니 도사님이 뭐라고 하는데 저렇게 장탄식만 하는 거예요? 답답해 죽겠네. 빨리 좀 물어봐요.”

아주머니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아가씨가 귓속말로 도사에게 물어보자 도사가 짧게 몇 마디 대답을 했다.

“뭐라는데요?”

“……저기 아주머니, 혹시 예전에 중절 수술을 하신 적이 있나요?”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하이구, 그걸 우째 알았노?”

“하신 게 맞습니까?”

“맞아요, 맞아. 진짜 도사는 도사네. 근데 그거는 우째 알았는교?”

“…….”

그렇게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는 통역하는 여자가 자꾸 뜸을 들이고 타이밍을 재면서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자 아주머니는 답답해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 진짜 거 돌겠네, 말 좀 시원하게 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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