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4화
#694. 바르게 살기
띠리링!
“여보세요.”
-과장님? 저 독샌데예!
“아 독새! 김명중이는 어떻게 됐어!”
-예,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전화드렸심니다. 인자 동부서 데리고 와가지고 조사 중입니다.
“시간이 늦었는데……. 아무튼 고생 정말 많았다. 수고했어!”
-아입니다, 오늘 빡세게 조사해가지고 내일 보고 제대로 드리겠심니다. 근데 그거는 그렇고 과장님, 임마 말로는 5부두에 석태두 있지 않습니까? 금마 밑에서 경비계장 하다가 지금은 항운 노조에서 전위대장인가 X랄병인가 한다는 김석천이라는 놈이 있는데요, 금마가 김명중이한테 부탁을 한 모양이더라고요.
“그래?”
-우짜까예, 지금 가가 잡아 오까예?
“아니, 너무 서두를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밤도 깊었고 위험할지도 몰라. 그보다는 내일 영장 발부받아서 데리고 오는 편이 낫겠어. 김명중이야 어차피 입감시키고 나면 따로 연락은 못 할 것 아니야.”
-그거는 그런데예, 김명중이가 연락하는 게 아니라도 소문은 벌씨로 금마들 귀에 드갔을 낍니다. 그래가이고 제가 지금 마음이 급해가 죽겠어예. 지금이라도 모가지 끄잡아 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내일 갔는데 다 토끼뿌고 없으모 우얍니까?
“음, 무슨 말 하는지는 충분히 알겠어. 근데 항운 노조랬나? 밤에도 하역하는 인원들이 많이 있을 텐데, 우리 병력만 가지고 쳐들어가기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아. 당직 형사들은 또 파출소에서 올라오는 사건을 해야 하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비상소집 거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그것도 좀 그래.”
-에이, 과장님도. 그거는 신경 쓰지 마이소, 과장님이 우리 걱정하시는 거 모르는 형사들 아무도 없심니다. 어차피 형사 한둘만 데리고 갈라 했심니다.
“위험하지 않겠어?”
-괘안심니다. 고마 푹 주무시소. 내일 출근하시면 다 조서 꾸며 가지고 결재 딱 올리겠심니다.
오독새가 꽤나 자신 있는 말투로 그렇게 김세민을 안심시켰다.
김세민과의 통화를 끝내고 오독새는 다시 부산 지검 당직에다가 보고를 넣었다.
기발부된 김명중의 체포 영장에 김석천이란 이름 석 자만 첨부하여 보완을 받은 다음, 오독새는 형사들을 데리고 호기롭게 항운 노조 사무실을 향해서 출발했다.
이미 김명중을 설득하여 노조 사무실에서 김석천이 먹고 자고 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터였다.
5부두 정문 앞은 오늘따라 날씨도 차가운데 스산하게 안개마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귀신이 나온다는 소리가 딱 알맞을 정도로 으스스했다.
정문 앞에 차를 주차시킨 오독새가 정문을 지키고 있는 청경에게 다가가 대뜸 문을 열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우리 동부서 형사들인데, 여기 체포 영장 보이제! 좋은 말 할 때 문 열어라!”
느닷없이 형사 세 사람이 찾아와서 영장을 흔들어 보이자 지난번에 당한 것도 있고 해서 문을 열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X발 놈이 문 여는 동작 하고는……. 김석천이 지금 어디 자빠져 있노?”
옆에서 양 형사가 그렇게 묻자 청경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에 한잔하시고 막 들어가셨심니다.”
“이 새끼가 지금 내하고 뭐 X같이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X발 어디로 들어갔냐고 묻는데 그냥 들어갔다고 하면 알아서 찾으라는 거야 뭐야? 죽을래?”
양 형사가 잔뜩 인상을 쓰고 짜증을 내자 청경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수석 부위원장 사무실에 계실 낍니다. 거기서 야전 침대 피 놓고 주무시거든예?”
“아니 전위대장 어쩌고 하더니, 뭐? 수석 부위원장? 아주 X랄들을 해라 X랄들을…….”
금정산 형사가 청경의 말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마 고게 부위원장이 한 일곱인가 여덟인가 될 낍니다. 지들도 다 누가 누군지는 모리고 그중에서도 수석 부위원장이라고 다들 카니까 알지예.”
청경의 말에 따르면 부위원장이 여러 명인데 그중에서도 김석천이는 수석 부위원장이라고 그렇게 설명을 해 주었다.
“됐고, 어쨌든 안에 있다 이기제? 가자!”
오독새가 호기롭게 팔을 걷어붙이고 앞장서서 노조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노조 사무실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니 수석 부위원장실이란 팻말이 보였다.
노크도 없이 바로 문을 벌컥 열었더니 안에서는 불이라도 난 듯 자욱한 담배 연기가 끝도 없이 밀려 나왔다.
방 안에는 노조원이 다섯 명 정도 있었는데 바닥에 모포를 깔고 화투를 치는 놈들, 그리고 소파에 걸터앉아 병나발을 부는 놈도 있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자 한 놈이 벌떡 일어났다.
“뭐고 갑자기, X발 안 그래도 끗발도 사나운데 문을 쳐 열어 제끼고 X랄이고! 정문 이 새끼들 아무나 막 들여보내 주고 개판이네.”
“…….”
“이 새끼들, 느그 어디서 왔노? 딸꾹! 뭐 짭새라도 되나? 딸꾹!”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던 놈이 비틀거리며 형사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우린 동부서 형사들인데, 김석천이가 누고?”
“……!”
동부서 형사라는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김석천이가 누구냐고, 좋은 말로 할 때 쳐 튀어 나온나.”
그러자 맨 가운데에 앉아 있는 놈이 한숨 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아……. 동부서에서 뭐 한다꼬 날 찾아왔노? X발 놈들이 이 한밤중에 말이라. 뒤질라꼬 환장을 했나? 야. 니 빨리 나가서 아들 불러라! 야간 작업조 아들 있제? 있는 대로 다 델꼬온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자기는 도망이라도 칠 심산이었는지 놈은 서서히 사무실 뒷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걸 본 금정산 형사는 한달음에 소파 가운데 있는 테이블과 책상을 징검다리 밟듯 밟고 뒷문을 막아섰다.
“어디 갈라꼬?”
“아아, 내는 쪼매 화장실이 급해가……. 좀 비키 주소! 갔다와가 이야기하그로.”
“까지 말고 새끼야, 니 뭐 아까 들어보니까 X발 부위원장인가 그거라매? 그라면 부하들도 좀 챙기고 해야지, 자슥이 쪽팔리게 애들 뒤에 숨어가 도망이나 칠라고 하고 말이야, 니는 안 되겠다. 얼른 손목 내라. 가서 이야기 좀 하게.”
그러면서 금 형사가 뒤춤에서 수갑을 꺼내는 것을 보자 김석천은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X발, 지금 부하들이 이렇게 많은데 여서 순순히 끌리가면 바로 X된다. 어떻게든 버티야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석천은 거나하게 올랐던 술기운이 일시에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어이, 형사 양반. X발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수갑까지 꺼내고 X랄인데? 진짜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까 개 X밥으로 보이나…….”
그러면서 목을 양쪽으로 꺾으며 뚜둑 소리를 내더니 성큼성큼 금정산 형사 쪽으로 다가갔다.
“…….”
“…….”
그렇게 서로 눈으로 기싸움을 하던 찰나.
뻐억!
김석천이 오른쪽 주먹으로 금정산 형사의 복부를 가격했다.
“…….”
“뭐고? 제대로 들어갔는데?”
김석천은 다시 한 번 금 형사의 복부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뻐어억!
“……니 지금 뭐 하노?”
그러더니 금 형사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주먹을 뻗은 채 있는 김석천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반대쪽으로 꺾어 버렸다.
뿌드득!
“우와악! 놔라! 놔라고! 아악!”
“싫은데?”
“이 새끼 뭐고 이거, 니 무슨 괴물이가! 배때기를 두 대나 정통으로 쳐맞고 어째서 멀쩡한 건데! 아이고, 손목 좀 놔라 이거!”
“돌았나 이게 어따대고 반말이고, 놔 주세요~ 해 봐라. 그라면 생각해 보께.”
“놔 주세요! 놔 주세요! 아아악!”
“……알겠다.”
금정산 형사는 놈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는 반동을 이용해 타이밍을 맞춰 손목을 놓았고 놈은 갑자기 풀려나자 자기 힘에 이끌리듯 뒤로 나동그라졌다.
우당탕탕!
금 형사는 극진 공수도의 달인이었다.
극진 공수도는 승단 심사를 할 때 1단은 10명의 상대와 대련을 해야 했으며, 2단은 20명, 3단은 30명 이런 식으로 5단에서는 50명과 대련을 해야 단증을 받을 수 있는 실전 무술이었다.
공식 대련에서는 이지관수(검지와 중지로 상대의 눈을 찌르는 기술)나 낭심 차기 등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수련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배우고 연마를 할 수가 있었다.
온몸이 살인 병기로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극진 공수도의 기본이었으며, 실제 처음에는 상대를 때리는 기술보다는 먼저 맞는 훈련부터 하게 마련이었다.
금 형사 역시 맷집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으며 그 자신감은 실제로 강철같이 단련된 육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남들은 힘들다고 피와 땀, 눈물을 매일같이 쏟는 특공여단 생활을 하면서도 금 형사는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여단 교관 시절에도 평소 자신이 소화하는 체력 단련 프로그램을 교육생들에게 그대로 적용했을 뿐인데 교관이 필요 이상으로 가혹 행위를 한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소원 수리 및 투서를 받은 기억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고, 손목이야, 내 손목 뿌라진 거 아이가…… 아이고…….”
바닥에 너부러져서 신음 소리를 내는 김석천에게 양 형사가 잽싸게 달려가 수갑을 채웠다.
“카악! 좀 살살 좀 하소! 손목 아파 죽겠어예!”
그러자 양 형사가 김석천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빠악!
“이 자슥이 어디서 엄살이고? 조용히 안 하나? 콱 마……. 어이 금 형사! 임마 이거 좀 같이 일으켜 세우자. X발놈이 뭘 처먹었길래 이렇게 무겁노?”
“예.”
그렇게 말하면서 양 형사와 금 형사가 김석천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데 오독새가 그대로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예? 와예?”
“잠깐 기다리라. 하이튼 양 형사 니도 가만 보면 어지간히 성질 급하데이. 제일 중요한 거 있다 아이가!”
“아, 깜빡했심니다. 흐흐.”
머쓱한 표정으로 웃는 양 형사를 보며 오독새가 혀를 끌끌 차더니 김석천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자, 김석천이! 니는 3년 전 동천에서 살해당한 장은주의 살인 용의자로 긴급 체포한다. 니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고 에 또, 또…… 그래 니 꼴리는 대로 변명할 기회가 주어진다. 됐다, 가자.”
그렇게 김석천의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방을 나서서 노조 사무실 현관을 나서려던 그들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수십 명의 노조원들과 마주쳤다.
놈들은 전원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으며 손에는 각목이나 몽둥이, 심지어 쇠 파이프 같은 것도 들고 있었다.
맨 앞에 서 있는 놈은 마삼 보세창고의 영업부장을 맡고 있는 신기식이었다.
“어? 니는 신 부장 아이가?”
“…….”
“그라모 이기 우째 되는 기고, 마삼 보세창고 임마들도 전부 다 한패가?”
오독새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신기식이 인상을 쓰며 쇠 파이프를 땅에 내려쳤다.
까앙!
어두컴컴한 밤이라 그런지 쇠 파이프 끝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X발 X도 그런 거는 모리겠고, 이 야심한 밤에 쳐들어와서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술 먹은 사람을 두들겨 패서 끌고 가는 것은 도리가 아이다 아이요? 마 어서 우리 행임 풀어 주소. 내일 날 밝을 때 경찰서에 자진 출석하면 될 거 아니냐고!”
놈이 갑자기 내일 자진 출석하겠다며 거래를 제안해 왔다.
“앗 X랄하네, 니 말을 내가 우째 믿는데?”
“X발 싫으면 믿지 말든가! 아무튼 좋은 말로 할 때 풀어줘라, 안 그러면 X발 우리도 가만히 안 있는다!”
그러자 금 형사가 코웃음을 쳤다.
“아나 X도 아인 새끼들이, 가만히 안 있으모 느그가 우짤 낀데?”
휘익!
퍼억!
“크읏…….”
신기식이 들고 있던 쇠 파이프를 금 형사를 향해 집어 던졌고, 금 형사는 피하려다 맞은 건지 일부러 맞은 건지 어깻죽지에 쇠 파이프를 맞고 인상을 찌푸렸다.
“금 형사! 괜찮나!”
“예, 뭐. 괘안심니다, 이 정도는.”
금 형사를 염려하면서도 양 형사는 어느새 김석천의 한쪽 수갑을 풀어 건물 외벽 배관 파이프에 묶고 있었고, 오독새도 그걸 보고는 싸움의 낌새를 예상했는지 주머니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손에 낀 채였다.
오독새와 양 형사, 금 형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에라이 X 같은 짭새 새끼들, 이 새끼들 다 잡아 직이라! 직이가지고 물에 빠주면 아무도 모른다! 쳐라!”
신기식이 그렇게 외치자 노조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와아아!”
“이 X발 형사면 다가! 한밤중에 쳐들어와가 와 멀쩡한 사람을 잡아가는데!”
쪽수로만 따지면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금 형사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 듯 용감하게 혼자서 먼저 뛰어나갔다.
“어어! 금 형사! 같이 가야지! 에이 씨, 양 형사! 니는 오른쪽을 맡아라. 난 왼쪽에서 금 형사 점마 받쳐 줘야겠다.”
“알겠심니다.”
한가운데로 먼저 돌진한 금 형사는 놈들과 맞부딪치기 직전 몸을 돌려 옆에 있는 낮은 초소 건물의 창문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그 동작이 어찌나 잽싼지 마치 한 마리의 산다람쥐를 보는 것 같았다.
“저 저, X발놈이 토낀다! 산개해서 뒤로 돌아가라!”
그러나 그것은 수적 열세를 타개하기 위해 한데 모인 놈들을 분산시키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금 형사는 초소 건물 위로 올라가자마자 다시 몸을 날려 신기식을 공중에서부터 덮쳤다.
털퍼덕!
“컥!”
금 형사는 신기식과 땅바닥에서 몇 차례 뒹군 후, 신기식의 위로 올라타서 얼굴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뻑! 뻐어억! 콰자작!
“크어어억!”
그걸 본 부하 노조원들이 금 형사와 신기식을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몇 놈은 들고 있던 무기로 금 형사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했으나 금 형사는 아예 방어는 포기한 채 마치 기계처럼 신기식을 두들겨 패고 있었고, 초소 뒤쪽으로 나뉘어서 돌아간 인원들은 오독새와 양 형사에게 걸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퍽! 뻐억!
“그, 그만…….”
놈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금 형사를 향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놈의 얼굴은 마치 말벌집을 뒤집어썼다가 벗은 양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어이 금 형사! 금마 직이면 안 된다이, 숨은 붙여 놔야 돼! 알았제! 으랏차!”
오독새 역시 달려드는 놈들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면서 업어치기로 땅바닥에 넘기고 있었고, 양 형사는 태권도 관장답게 현란한 발기술로 놈들의 급소만 골라서 공격하는 중이었다.
“우왓, 뭐 이런 괴물들이 다 있노!”
“잘몬하면 우리도 부장같이 얼굴 작살 나겠다. 토끼자!”
“에라이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