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704화 (704/869)

제 704화

#704. 제안

다음 날, 동부경찰서 형사과.

김세민의 주도하에 소참이 열리고 있었다.

“자, 벌써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나 지났어. 하나하나 짚어 보자고. 먼저 부검은 어떻게 됐지? 뭐 나온 거 있나? 정 주임?”

강력반 정 주임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안 나왔심니다. 손가락 지문도 다 뭉개졌고 소지품도 특별한 것은 없고…….”

“그래…….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뭐였지?”

“아마 밀면을 묵은 것 같다고 의사가 말을 하네예.”

“밀면이라. 직접 사인은?”

“사람이 올라타서 목을 눌러 경추가 부러졌심니다. 그라고 시신이 이미 너무 많이 부패해서 타박상이나 이런 거는 아예 흔적도 없고예. 일단 DNA는 채취해 놨심다.”

정성길 주임이 DNA를 채취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풀이 죽어서 얘기를 했다

“그렇군. 어쨌든 치열하게 싸운 것은 맞네. 그리고 몽타주는 어떻게 됐어? 시경 감식에는 이야기했지?”

실은 지난번에 김세민이 시경 감식반에 몽타주만 전문으로 그리는 사람을 특채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협조 요청을 했던 것이었다.

“아 그게, 금마가 뭐 미대를 나왔다고 하긴 하는데요, 금세 죽은 사람이나 목격자를 토대로 몽타주는 그릴 수 있어도 벌써 죽어 가지고 다 썩은 시체를 무슨 재주로 그리느냐고 질겁을 하고 토끼는 거라예.”

“……그래서.”

“그래가 할 수 없이 여기 경찰서 뒤에 보문 초상화 전문으로 그리는 홍 사장 있다 아입니까? 금마한테 이바구하이까 대충 골격하고 사진을 보고 그려 주겠다고 카는데 조건이 붙는 거라예.”

정성길 주임이 초상화 가게에서 조건을 내걸었다고 말을 했다.

“아니 지까짓 게 뭔 조건을 다 내걸고 X랄이고? 사람 얼굴만 그래 주문 되는 거 아이가?”

강 주임이 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그렇게 쫑코를 주었다.

“딴 기 아이고 그 집 초상화가 나중에 영정 사진 대신에 쓰는 초상화 전문이라꼬 고래 카네예. 그래가 집안에 돌아가실 때 다 된 어른들 있시문 모시고 나와가 초상화를 그리라고 고래 이바구를 하는데 나중에 제사상이나 장례 치를 때도 사진보다는 초상화가 훨씬 낫다고 고래 이바구를 하도 해사서 지가 보이 괜찮아 보이기도 하는 거라예. 그래가 우리 어무이 모시고 초상화 한번 그리라고 계약금 주고 죽은 사람 몽타주 만들라고 했심니다. 아마 오늘 오후 늦게 나올 기라예.”

정 주임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그래도 신경을 썼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게 정 주임 고생했어. 강 주임, 우리 수사비에서 몽타주값은 확실하게 챙겨 주라고.”

그러자 관리반 강 주임이 정 주임에게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영수증 확실히 가져와야 된데이. 정 주임 어무이 영수증까지 엎었다간 봐라.”

“킬킬! 강 주임 살림 한번 야무지게 산다이.”

다들 그렇게 웃었는데 김세민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자세한 얘기는 언젠가는 하겠지만 이 사건 절대로 대충 넘어가면 안 돼. 지금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눈이 한두 개가 아니야.”

“명심하겠습니다!”

“우선 몽타주가 완성되면 이걸 들고 안창 마을을 한 집도 빼놓지 말고 다 훑어야 해. 그래서 이 마을에 새로 들어온 전입자나 아님 누가 찾아와서 산에 대해 묻고 다닌다든지 하는 이상한 행동을 한 사람이 최근 한 달 동안에 있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복덕방이나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 그리고 수정산에도 각자 산 임자가 있을 거야. 임야대장을 구청에 가서 다 확인해서 떼어 가지고 와서 나한테 보여 줘. 그리고 정 주임.”

“예, 말씸하시소.”

“오늘부터 전산실에 형사 두 사람을 고정 배치하도록 해. 전국에 실종이나 가출 신고된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을 다 찾아봐야 하니까 말이야. 우리도 수배를 전산에 빨리 입력하고. 그래서 하나하나 다 대조를 해 봐야 해. 다른 경찰관들은 못 믿는다고, 지난번에 영도에서 죽은 장은주 사건도 있잖아? 파출소 직원들이 제대로 수배 전산만 확인했어도 잡을 수가 있었단 말이지. 절대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면 안 돼. 우선은 신원부터 확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예, 알겠심니다.”

일단 형사들에게 그렇게 지시를 하고 다들 외근을 내보내고 나서 한숨 돌리려는 차에 전화가 왔다.

띠리링!

“과장님! 2번에 일반 전화!”

“감사합니다. 동부서 형사과장입니다.”

-오랜만이에요.

“누구십니까?”

-어머, 제 목소리를 벌써 잊으셨나 봐요, 저 주미연이에요.

주미연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수화기를 잡은 김세민의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주 사장님이었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어머, 무슨 일 없을 때 전화하면 안 되나요? 섭섭해라.

“……용건 없으시면 이만 끊겠습니다.”

-죄송해요, 농담 한번 해 본 건데. 다름이 아니라 며칠 전에 과장님하고 같이 일하는 형사가 저희 가게에 왔었어요. 직원들 상대로 취조를 하고 그러던데……. 설마 과장님이 지시하신 것은 아니죠?

“아, 우리 이정명 주임이 간 것 말씀이시군요. 그거 제가 지시한 것이 맞습니다. 마삼보하고 마삼 보세창고가 이름이 비슷해서요, 혹시나 삼합회하고 연관이 있나 싶어서 한번 조사를 해 보라고 그랬습니다.”

-……그렇군요. 뭐, 상관은 없지만요. 저희가 범법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참,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떠세요?

“지금 사건이 많아서 좀 바쁜데요.”

-알죠 알죠. 근데 과장님을 꼭 뵙게 해 달라고 청하는 분이 있어서요.

“그게 누굽니까?”

-음…….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한데요. 그쪽에서는 만나기 전까지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거든요.

“……그럼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그 자리에 나갈 이유는 전혀 없겠네요.”

-하긴, 저쪽에서 부탁했다고 해서 꼭 제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필요까진 없는 것 같네요. 그쪽이 워낙 그런 양반들이라……. 부산 주재 중국 영사관 주임 영사예요.

“……!”

중국 영사관 주임 영사라는 말에 김세민은 꽤나 놀랐다.

주임 영사는 한국으로 치면 총영사급의 직책으로 보통 시장이나 청장과 자리를 하는 인사였는데 지금 김세민을 만나게 해 달라고 먼저 부탁을 해 온 것이었다.

“용건이 뭐랍니까?”

-글쎄요, 저도 그것까진…….

김세민이 용건을 물었지만 주미연은 자신은 부탁만 받았지 내용은 모른다고 하였다.

“좀 찜찜한데요, 제가 만나야 할 인물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거절해 주십시오.”

김세민이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주미연이 간곡하게 부탁을 해 오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나 우리 같은 장사치들이 관의 눈치를 보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우리 중국 같은 경우는 관에서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을 거절할 수가 없어요. 섣불리 거절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한 번만 만나 주시면 제가 나중에 톡톡히 보답은 해 드리겠습니다. 불편한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주 사장님을 통해서 저한테 접촉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제 신분도 있고 우리 외사계 형사를 통하면 그게 더 수월할 텐데요.”

중국 영사관에 출입하는 동부서 외사계 직원이 있는데도 굳이 주미연을 통해 연락을 해 온 것이 이상하다는 말이었다.

-그러게요.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하네……. 어쩌면 영사관 출입하는 형사를 통했다가는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갈 수도 있으니까, 좀 은밀히 할 얘기라도 있는 모양이지요. 뭐, 일단 한번 만나 보면 알 일입니다. 참고로 주임 영사는 조선족 사람입니다. 아마 서로 통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장소는 제가 정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어딘지 알려만 주시면 괜찮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 조방에 있는 진미락에서 보자고 전해 주십시오.”

* * *

그날 저녁, 조방의 진미락.

김세민이 미닫이 창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꽤나 쌀쌀한 바깥의 분위기와는 달리 포근한 따뜻함이 가게 안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오셨어요~”

진수연이 언제나처럼 반가운 얼굴로 김세민을 맞으러 나왔다.

“예, 일행이 있는데 도착했습니까?”

그때.

“짜잔~!”

갑자기 진수연의 등 뒤에서 주미연이 튀어나왔다.

“주 사장님이 아닙니까?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요! 과장님이 자꾸 저를 피하시니 제가 직접 뵈러 왔죠. 후후…….”

주미연의 얼굴은 꽤나 밝은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김세민은 그 웃음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받았다.

“상당히 부담스럽네요. 근데 둘은 아는 사이입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묻기가 무섭게 주미연은 진수연의 팔짱을 끼며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그럼요~ 우리가 얼마나 친한데, 안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친언니 같아요. 부산 있는 동안 잘 부탁드려요, 언니!”

“아유,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귀여운 동생이 다 생겼나 몰라? 애가 얼마나 싹싹한지~ 난 처음에 중국 사람이라 그러기에 깜짝 놀랐잖아요, 어쩜 한국말도 이렇게 잘하고……. 아이고 예뻐!”

그러면서 진수연이 주미연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는 것이었다.

‘괜찮으려나…….’

김세민은 꽤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진수연을 쳐다보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진수연과 주미연은 연신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영사님은 먼저 와 계세요. 들어가세요.”

안내되어 간 방으로 들어갔더니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단정한 복장을 한,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김세민을 보고 웃으면서 일어났다.

남자는 눈이 꽤나 작은 편이었는데 웃는 표정을 지으면 실눈이 된다는 점이 꽤나 인상 깊었다.

“아! 김세민 과장님이시군요. 이거 처음 뵙습니다. 안문천이라고 합니다.”

“김세민입니다.”

“자 자, 어서 앉으시지요. 야~ 이거 반갑습니다.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조선족 출신이랍니다. 제 할아버지 고향이 여기 경남 함안이라고 저희 부친께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제 본관이 순흥 안가라고 하더군요.”

“순흥 안씨면 안중근 의사하고 같은 핏줄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전 서안에서 태어났고 북경대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이번에 중, 한이 수교를 하고 부산에 영사관이 개설되면서 120년 만에 다시 청관이 문을 연 것이나 마찬가지죠. 지금의 영사관 자리도 120년 전 청관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마치 청일 전쟁이 끝나고 청나라가 쫓겨 간 이후에 다시 이 자리에 영사관이 문을 연 것이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세민이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반박을 했다.

“제가 듣기로는 과거에 여기 청관이 있던 시절에 여기서 장사하던 중국인들의 횡포가 이루 말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청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여기 가게에 와서 비단값을 물어보고 사 가지 않는다고 조선인을 두들겨 패서 죽게 만든 사건도 부지기수였다고 하던데요. 전 세계에서 화교 상권이 발달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바로 여기 한국이라는 것은 알고 하시는 소리겠지요?”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하자 주미연이 꽤나 놀란 눈치였다.

“어머, 전 처음 듣는 소리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장사꾼이 손님을 두들겨 패면 무슨 장사가 되겠어요? 그건 아무래도 잘못 전해진 것 같은데요?”

“부산 시립 박물관에 가 보면 청관이 있던 시절 영국인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들도 같이 전시가 되어 있는데 거기 보면 신기한 청나라 비단을 구경하러 온 조선인들을 긴 막대기로 쫓아내는 장면이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발간된 데일리 뉴스에도 청관에서 중국 상인들이 조선인들을 팬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다수 있었구요. 지금 다시 청관이 있던 자리에 영사관이 들어왔다며 우쭐해하는 모습을 보니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그러자 안문천이 대번에 꼬리를 내렸다.

“아아! 너무 그렇게 각을 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 흘러간 과거사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여기서 과거의 진실이 어땠는지 그걸 따지자고 제가 경감님을 뵙자고 한 것은 아닙니다.”

안문천이 오해는 하지 말라고 극구 변명을 했다.

“그럼 오늘 뭣 때문에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김세민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이번에 수정산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옛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약탈해 간 금괴가 묻힌 장소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희들도 그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영국의 대영 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역사적인 유물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어야 그 본래의 빛을 발한다’고 말입니다. 저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그 말에 백번 동의하는 입장이구요. 아무리 일본군이 중국에서 문화재를 약탈해서 녹인 금괴라 할지라도 그 금괴는 중국의 것입니다. 중국인의 수천 년 혼이 그 안에 잠자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문천의 말을 듣고 김세민은 생각에 잠겼다.

‘이자는 지금 일본이 두고 간 금괴가 자기네 소유라는 것을 주장하는 모양인데……. 여기서부턴 말을 신중하게 골라서 해야 돼.’

김세민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예, 편하게 하십시오.”

“아까 저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저희들이란 말은 중국 정부를 뜻하는 겁니까?”

“하하, 제가 표현을 그렇게 했었나요. 뭐 중국 정부의 입장도 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보고는 올리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일본군이 남긴 금괴에 대한 어떤 정보라도 아시게 되면 꼭 좀 저희한테도 연락을 주십사 하고 오늘 이렇게 어려운 자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김 경감님한테 진 신세는 여기 주 사장을 통해서 충분히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영사님 말은,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금괴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 달라, 뭐 그런 이야기입니까?”

“네 뭐, 쉽게 말씀드리면 그렇……. 아니? 김세민 과장님? 어디 가십니까?”

갑자기 김세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주임 영사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물었다.

“전 더 이상 자리를 같이 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예? 아니,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무슨 문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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