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5화
#735. 위장 뺑소니
다들 그렇게 염려를 하자 조연희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에이, 최 계장님. 허위 공문서라뇨? 그건 너무 앞서가셨네.”
“그럼 조 승지는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좋은 생각이랄 것까지도 없어요. 사실 보고서에서 제목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아시죠? 보고서 내용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다 읽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러니까 우선 제목을 이렇게 달면 어떨까요?”
그러면서 말을 하다 말고 한 템포 늦추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조연희에게 집중되었다.
조연희의 말은 가만히 듣다 보면 적당히 긴장을 시키다가 이내 적절한 타이밍에 풀어주고, 또 다음 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구석이 있었다.
사람들의 주목을 자연스럽게 끌어 자신에게 빠져들게 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노량진 차량 폭발 사고와 평창동 화재 사건에 대한 제1보’라고 제목을 달면 앞으로 상황 전개에 따라서 얼마든지 제2보, 제3보가 나갈 수도 있으니까, 오늘까지 우리가 확인한 객관적인 증거만 가지고 보고서를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말입니까?”
“그러니까, 좀 구체적으로 설명을…….”
“보고서를 쓴 사람부터 먼저 이 사건이 테러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객관적인 사실에만 집중을 해서 작성하는 겁니다. 심 회장 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심 회장을 찾아가서 가족들이 실수로 불을 냈다는 실화로 처리하자고 해도 받아들일 것 같은데요? 신문에 국문회 멤버라고 계속해서 기사가 나가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으니까 좋다고 할 겁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부주의로 가스를 잠그지 않았다든가 하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서 가족들 조서를 받으면 그걸로 우리 책임은 벗어나잖아요?”
그렇게 말을 하자 이번에는 마약과장인 심홍섭 총경이 나섰다.
“그건 그렇다 치고 노량진 폭발 사건은 어떻게 할 거야? 그건 피해자 동의를 받을 수도 없잖아? 이미 사람이 셋이나 죽었는데.”
“맞아, 노량진이 문제네. 그게 골치 아프다고.”
다들 그렇게 한마디씩 보탰다.
“노량진 사건에서 폭발물이 터졌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하나라도 나온 게 있나요? 전부 추측이잖아요?”
“…….”
“폭발물이 아니면 그렇게 큰 폭발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 논리잖습니까. 그런 것보다는 차량의 결함으로 엔진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갑작스럽게 연료통이 폭발했다. 이쪽이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러면 잘 가던 차를 갓길에다 급하게 주차시킨 부분도 설명이 되고요. 그렇지 않나요? 뭔가 차량에 문제가 있으니까 운전자가 확인을 하기 위해서 급하게 차를 갓길에 주차시켰고 그 순간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차량에 화재가 발생해서 세 사람이 죽었다. 차량 화재 사고는 종종 일어나잖아요? 크게 이상할 것도 없죠. 그리고 언론에서 말하는 폭발물은 어디에서도 설치된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이 식사를 했다는 그 일식집하고 주변 CCTV를 공개하는 겁니다. 국회에서는 지하 주차장에 CCTV가 있으니까 외부 침입자가 들어와서 차량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운전자가 항상 차에 붙어 있어서 운전자 모르게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죠.”
거기까지 얘기를 마치자 다들 수긍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최명진 계장님 본인이 방금 말씀드린 그런 관점에서 자신도 스스로 그렇게 믿고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청장님이 대통령을 독대해서 언론에 나온 얘기들은 소설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대통령이 안심한다는 것이죠. 적어도 오늘 현재까지 상황은 이렇다. 앞으로 추가적인 테러의 흔적이 나온다면 그때는 전 수사력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범인을 잡아내겠다.”
“그렇게만 하면 문제는 없는 건가?”
형사국장이 그렇게 묻자 조연희가 어딘가 찜찜하다는 얼굴을 했다.
“일단……은요. 근데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문제가 하나 있다고 말을 꺼내자 다시 분위기가 싸해졌다.
“뭐야? 뭔데 또 그래?”
“이 상태에서 조용하면 다행인데 만약에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더 발생하면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몰라요.”
“그건 맞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국문회 멤버가 전부 50명이에요. 두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중상이고 또 한 사람은 경찰이 조사를 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46명이 아직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러니까 그 사람들 소재지를 파악해서 관할 경찰서 형사들을 24시간 보호 감시를 붙이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보호 감시를 24시간 붙이자고 하니까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보호 감시는 또 뭐야? 우리가 무슨 그런 여유가 있다고 그런 놈들한테 보호 감시를 붙여?”
“다들 갑부라며? 그럼 지들이 알아서 자기 몸 간수 잘하겠지, 굳이 우리가 해 줄 필요가 있어?”
마약과장이 그렇게 대놓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럼 지금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세요? 우리 청장님더러 그만 옷 벗고 집으로 가시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뜻이라는 걸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마약과장인 심 총경에게 조연희가 똑바로 눈을 마주 보면서 그렇게 쏘아붙이자 심 총경이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내 말은 꼭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가 왜 그런 나쁜 놈들까지 지켜야 하느냐 이런 말이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도예요. 사적으로 보디가드를 공격하는 것은 범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국립 경찰관을 공격한다는 것은 곧 국가의 공권력에 도전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놈들도 주저할 거란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당분간만 그렇게 하면 더 이상의 사고는 나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관할 경찰서별로 인원을 조정해 보고 대상자가 많은 경찰서는 인원을 다른 경찰서에서 더 지원해 주고 하는 방식으로 하면 재발은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청장님 결재는 제가 어떻게든 받을게요.”
조연희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 그 이상의 몫은 형사국 소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자! 여러 소리 하지 말고 방금 조 승지가 말한 그대로 보고서도 쓰고 기안도 해서 내일 당장 청장 결재를 받아. 그리고 우리 형사국은 앞으로 말이야, 청장님한테 올리는 보고서나 결재 서류는 전부 조 승지한테 사전 검토를 받아. 알아들었어? 이 무식한 놈들!”
손병두 형사국장이 대놓고 무식한 놈들이라며 쫑코를 주는데도 다들 실실 웃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형사국 소참에 처음 참석한 조연희는 김세민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형사나 조폭이나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우리 사수님이 늘 말씀하던 것이 이제 좀 이해가 되네.’
* * *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과장실.
금정산 형사가 어떤 남자 하나를 데리고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남자는 몹시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이가 제법 들어 보였고 얼굴이 새까맣게 탄, 행색이 초라한 모습이었다.
“과장님예, 이분은 우리 동부서 바로 후문에서 과일 행상 하시는 분인데예, 과장님한테 꼭 좀 할 말이 있다고 캐서 제가 모시고 왔심니다.”
“그래?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저, 이분이 김세민 과장님이십니까?”
“예, 제가 김세민입니다. 한데 무슨 일로…….”
그러자 남자는 김세민의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과장님!”
그러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기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일단 진정하시고, 앉아서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보시지요.”
김세민이 그렇게 달래자 남자는 겨우 진정을 하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지는 마 아무것도 없심니다. 젊을 때 길을 잘못 들어 가지고 노름판에 빠져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이까 이마에 별도 몇 개 달았고 인자는 그래도 자식새끼 하나 보고 살아 볼 끼라고 시골에 가서 과일을 떼다가 트럭에 싣고 수정동 뒷길에서 팔아 가지고는 근근이 묵고삽니다. 그란데예, 지한테 눈에 넣어도 아푸지 않을 딸이 하나 있심니다. 마누라는 옛날에 도망을 갔고 딸은 마누라가 도망갈 때 버리고 갔심니다. 그때부터 지가 정신을 차리고 과일 행상을 하면서 딸내미를 대학 공부까지 시켰심니다. 과일 장사가 보기보다는 세금이나 자릿세가 별로 나가는 기 없다 보이까 트럭 기름값만 들어가면 남는 장사라예.”
“네, 그렇군요. 그런데 절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데…… 며칠 전에…… 딸내미가 마 며칠 전에 억울하게 죽었다 아입니까……. 크흐흑…….”
남자는 참았던 울음이 터졌는지 사무실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세월이 스치고 간 남자의 주름진 얼굴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따님의 명복을 빕니다. 방금 억울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연유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과장님, 제발 제 딸 원한을 좀 풀어 주이소. 예? 과장님도 안 된다 카면 지는 마 여기서 콱 죽어 뿔 낍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마 따님도 선생님이 잘 사시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저 오늘 시간 많습니다, 하실 이야기 있으시면 전부 다 하십시오. 듣고 나서 수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의논해 보도록 하지요.”
김세민이 그렇게 판을 깔아주자 남자는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박삼득으로 55세였고 딸인 박은아 양은 23세였다.
“우리 딸래미, 제 자슥이지만 아가 진짜로 착하거든예. 부모 걱정시킬 일은 하지도 않는 앱니다. 장전동에서 학교 댕기는데 거기하고 수정동에 있는 우리 집하고만 왔다 갔다 했고예. 근데 학교에서 아가 안 오는 깁니다.”
법대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은아는 고생하는 아버지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열심히 사법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고시생들을 위해 따로 마련해 준 고시생 전용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이틀에 한 번 정도 옷도 갈아입을 겸 해서 집에 들른다는 것이었다.
사흘 전에는 박은아 양이 집으로 오는 날이어서 그날은 직접 박삼득 씨가 저녁도 손수 준비를 하고 딸을 기다렸는데 아무 연락이 없어서 친구들한테 연락을 해 봤지만 오후에 수업 끝나자마자 서둘러 집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이 되니까 해운대 경찰서 교통사고반 추 경사라꼬 카면서 전화가 왔어예. 우리 딸이 미포 오거리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뺑소니 차량에 치여 가지고 죽었다고 시체를 좀 확인해 달라 카데예. 지가 마 그 소리 듣고 뒤로 넘어졌심니다. 얼매나 기가 차고 말이 막히는지……. 시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심니까?”
“…….”
“미포에서 죽었다 카는 것도 이상합니다. 우리 딸은 미포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를 낍니다. 생전에 가 본 적도 없는 데서 죽었다 카는데……. 어이구 불쌍한 내 새끼! 이 애비가 못나서 니 목숨 하나도 지대로 못 지켰구나! 밤새 그 길바닥에서 얼매나 애비를 찾았을꼬? 으흐흐흑!”
그러고는 목을 놓아 우는 것이었다.
“아니 아저씨, 여기서 자꾸 이렇게 울고불고하면 우짭니까. 정신 차리시소.”
옆에서 금정산이 그렇게 박삼득을 말리고 나섰다.
“괜찮아, 실컷 울고 나면 얘기하기가 더 수월하겠지.”
김세민이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두라고 말을 하고서는 휴지를 가져다가 박삼득 씨 앞에 놓아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난 박삼득 씨는 조금 진정되었는지 말을 이어 갔다.
“미포에 있는 병원 영안실에 있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이 달려갔지예. 그란데 시신을 안 보여 주는 거라예. 의사가 흰 천을 걷어 내고 얼굴만 보여 주는데, 우리 딸이 맞기는 맞는데…….”
그러면서 박삼득이 말을 잇기가 어려운지 말끝을 흐렸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게……. 흑……. 얼굴이 온통 맞아서 퉁퉁 부어 있는 거라예.”
“……!”
“어디서 두들겨 맞았는지……. 하이고…… 내가 그때 그 장면만 떠올리면……. 후우…….”
“진정하시고 계속 말씀해 보십시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분명 처음에 전화가 왔을 때는 뺑소니라고 했는데 얼굴이 저 모양이니까 이상하다 아닙니까. 그래서 몸 전체를 보여 달라고 하면서 시신 부검을 빨리 하자고 하니까 의사 말이 희한하더라고예.”
“의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그건 해운대 경찰서 가서 얘기해야 된다꼬, 이 시신은 검사 압수 영장에 의해서 압수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시신을 보여 줘서는 안 된다고 경찰에서 그랬답니다. 얼굴이라도 보는 것으로 만족하라꼬 하는데 돌아뿌겠더라고예. 인자 우짜면 좋심니까?”
얼굴만 확인을 했다는 말에 김세민을 비롯한 형사들이 다들 의아한 표정을 했다.
“아니 와 얼굴만 보라고 하는 기고?”
“뭐 숨길 거라도 있어서 그라는 긴가……. 아재요, 경찰서 담당자는 만나 봤능교?”
옆에 서 있던 오독새가 그렇게 물어보았다.
“당연히 그 길로 찾아갔지예. 해운대 교통사고반 추용업 경사라꼬 그 양반이 담당이라고 카는데 그 양반 말은 더 기가 차는 거라예. 새벽 4시에 신고가 들어왔는데 횡단보도에 여자가 쓰러져 있다고 그렇게 시경 112에 신고가 들어왔다꼬 카데예. 그래가 중2동 파출소 순찰차가 앞에 병원 응급실 앰뷸런스를 불렀는데 병원 응급실에 가니까 거기서는 이미 사망한 지 3시간이나 지났다 카면서 고마 아무 응급처치도 안 하고 사망 판정만 당직 의사가 한 거라예. 제가 이상하다 생각하는 게 여깁니다. 아니 죽은 지 3시간이나 지났으면 3시간 동안 사람이 다른 골목도 아이고 사람들 억수로 돌아댕기는 횡단보도에 쓰러져 있었다는 소린데, 아무 놈도 그걸 보고서는 신고도 안 했다는 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립니까?”
옆에서 듣던 형사들도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듣고 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지는요. 억울해서 못 살겠심니다. 우리같이 돈 없고 백 없는 놈은 금쪽같은 자식새끼가 이리 죽었는데 언 놈이 죽있는지도 알 필요도 없단 그 말 아입니까?”
“해운대서에서는 사망 원인이 뭐라고 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