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743화 (743/869)

제 743화

#743. 당동벌이

남강오 정보국장이 그렇게 묻자 다른 간부들도 일제히 청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에 했던 청장의 답변이 상당한 임팩트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보여 줄까?”

그러면서 청장이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작게 접힌 메모를 꺼냈다.

“그건…….”

“아니 청장님, 그걸 따로 보관까지 하셨습니까?”

다들 의아한 표정을 하자 청장이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내가 어제 이 메모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잖아? 그러니 나한테는 부적이나 다름없다고. 이것만 지갑에 넣고 다니면 앞으로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자.”

그러면서 청장이 남강오 정보국장에게 메모를 건넸다.

“조심해서 봐! 찢어지면 가만 안 둬!”

청장이 정색을 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통에 남 국장은 조심스레 메모를 건네받아 펼쳤다.

[책임을 질 사람은 따로 있다]

[정문일침]

“이봐 남 국장! 대체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아 혼자만 보지 말고 말을 좀 해 봐 봐, 좀?”

“청장님, 책임을 질 사람은 따로 있다는 건 알겠는데 정문일침이라 함은……?”

“정수리에 침 하나만 꽂으면 된다는 뜻이야.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라는 것이지. 국문회 새끼들, 잘한 것 하나 없는 주제에 의원이랍시고 모가지에 힘 주면서 나보고 꺼지라며 소리 지르는 꼴이라니……. 사실 그렇잖아? 책임을 질 사람은 내가 아니고 그치들이 아닌가 말이야. 내가 그 당시에 상당히 열이 많이 받은 상태였다고. 그래서 앞뒤 분간도 못 하고 성질대로 지를 뻔했는데 우리 조 경사가 적절한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잘 걸어 줬어. 지금 생각해도 아주 신의 한 수였다고. 잘했어, 조 경사!”

“감사합니다, 청장님.”

“뭐, 난 국회를 자주 안 나가니까 잘 모르지만 국회의원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 것 같더라고. 마지막에 나타난 김성수 의원도 그래, 처음에 국회에 나왔을 때는 그냥 자기 사업에 도움 되는 일만 할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어제 보니 제법 자기 소신도 뚜렷하고 신념이 있는 것 같더라고. 앞으로는 국회도 그런 사람들로 물갈이가 좀 되어야 해. 그냥 선거철이 되면 쇼만 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놈들은 국회에서 다 몰아내야 한단 말이야.”

청장이 아주 흡족한 듯이 그렇게 말하면서 의자 뒤로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청와대 본관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집무실은 별도 본관에 있고 나머지 비서실장이나 비서관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은 차로 5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본관에는 대통령과 측근 비서, 그리고 경호관들 외에는 들어가기조차 힘이 들었다.

그리고 집무실 앞에는 넓은 연회장이 있어서 대통령이 참석하는 연회에는 일반 참석자들도 엄격한 신원 조회와 몸수색을 마친 후에야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지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 소파에 앉아서 생강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생강차는 영부인이 직접 달인 것으로, 자신이 예전부터 즐겨 먹던 것은 영부인이 직접 준비한 것이 아니면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 것이었다.

영부인의 동선에 따라 가족 경호 부장인 김기민 경정이 같이 수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기민 경정 역시 대통령 건너편에서 같이 생강차를 마시고 있었다.

“저거, 저거 봐라! 또 뭐를 건네주고 있제?”

아침 TV를 보고 있던 대통령이 화면에서 조연희가 남강오를 통해서 메모를 청장한테 건네주는 것을 보고는 지적을 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따야! 저 아 저거 얼굴 보이 억수로 똘똘하게 생겼네. 자는 뭐 하는 안데 저래 청장이 자한테 메모를 일일이 받아가 답변을 하노? 어이, 김 부장!”

“옛!”

“니는 자가 누군지 알제? 경찰청에 있을 거 아이가?”

단순한 호기심인지 다른 복심이 있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대통령의 입에서 조연희가 누구냐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네. 조연희 경사라고 합니다. 지금은 청장 부속실에 근무하고 있고 저하고도 청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조연희? 조연희……. 어디서 함 들어봤는데? 맞다! 청장이 지가 델꼬 있는 부속실 아가 억수로 똑똑하다꼬 막 자랑을 했었지!”

“그렇습니다. 본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 카! 똘똘하이 생깄네. 그라이까 지금 청장 점마 지대로 답변을 못 할 거 같으니까 조 경사 점마가 대신 답변을 메모해 주는 장면이제? 청장 점마도 참, 지 쪽팔리는 줄도 모르고 좋다꼬 받아가 시부리는 거 봐래이. 진짜 웃긴다, 안 글나? 크크큭…… 쿠에취!”

“괜찮으십니까!”

“여기! 주치의 불러요! 빨리!”

대통령이 매운 생강차를 마시며 웃다가 생강차가 그만 기도로 넘어갔는지 기침을 한다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아아, 소란 피우지 마라! 쿨럭! 사람이 뭐 묵다가 기침도 좀 하고 할 수 있지! 커~ 좋다!”

그러면서 다시 생강차를 홀짝이는 것이었다.

김기민 경정은 대통령이 조연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뭇 놀라웠다.

‘말씀은 청장한테 들었다고 하지만, 분명 경찰청에도 대통령의 귀가 있는 거야. 여기 있는 동안 뭐든 조심해야 돼.’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소름이 돋았다.

“가만있어 봐라, 그라모 이기 우째 되노?”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경찰청장을 바꾸지 말라는 여론 조사가 80%가 넘었다 캤제, 그라모 바꾸면 안 되는 거 아이가? 김 부장 니 생각은 우떻노? 경찰청장 점마 저거 그대로 놔 나도 되는 기가?”

자신의 경찰 직속상관을 평가해 달라는 말에 김기민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와 말이 없노? 느그 상관이라서 그라나? 괜찮다, 내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내만 알고 있으께.”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래요, 김 부장도 소속은 경찰청인데 당신은 뭘 자꾸 사람 곤란하게 그런 걸 묻고 그래요? 여기 비밀이 어디 있다고…….”

보다 못한 영부인이 옆에서 그렇게 한마디를 거들어 주었다.

“하~ 이거 진짜 사람 피곤하게 하네. 당에서는 바꾸자고 카고 김성수 점마는 난데없이 나타나가 안 된다고 카고, 이기 다 머선 일이고? 그란데 점마 좀 이상하기는 이상하네. 평소 지 사업한다고 국회에는 코빼기도 잘 안 비치는 놈이 우짠 일로 경찰청장 부른 자리에 불쑥 나타나서 심정섭이 속 뒤비지는 소리를 해 샀는가 말이라. 심정섭이 점마도 오늘부터는 쪼리가 잠도 제대로 못 잘 끼야. 원래 저렇게 큰소리치는 놈일수록 대가 약한 법이거든. 지가 별 볼 일 없으니까 들키기 싫어서 일부러 세게 나가는 것이지. 에이 빌어묵을 놈들…….”

대통령이 그렇게 투덜거리며 다리를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토독.

토독 토독.

“보자, 경찰청장을 가만 놔둔다……. 그래도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어이, 김 부장.”

“예.”

“니 저기 탁자에 가서 화선지 펴고 먹 좀 갈아라.”

대통령은 한문에 꽤나 자신이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대놓고 말하기가 뭣한 경우엔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글씨를 써서 내려보내는 악취미가 있었다.

대통령의 글씨를 받은 기관에서는 글씨의 숨은 뜻을 찾아낸다고 난리법석을 피우게 마련이었고 제대로 뜻을 읽어 내면 다행이지만 엉뚱한 보고를 하다가는 다음번에 기관장이 날아가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불러다가 대통령의 글을 함부로 보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글씨 정치 때문에 산하 기관장들은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김삼식 대통령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윽고 글을 써 내려갔다.

현란한 붓놀림에 비해 글은 꽤나 악필이었다.

“당동벌이(黨同伐異: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는 한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을 말함)라……. 김 부장! 니 이거 무신 말인지 아나?”

대통령이 글을 써 놓고서는 김기민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전 한문을 배운 세대가 아니어서 솔직히 말씀드려서 모르겠습니다.”

김기민이 솔직하게 모른다고 대답하자 대통령은 답답하다는 얼굴을 했다.

“큰일이야. 이제 우리가 중국하고 다시 수교도 하고 했는데 말이라, 요새 아들이 한문을 전혀 모르는 세대 아이가. 그란데 학자라는 놈들은 아들한테 한문을 안 가르치려고 저리 생난리를 쳐 대니 말이라, 한문이 지들 밥그릇이라도 되는 양 말이야. 앞으로 지들만 대접을 받을라꼬 그라는지 한심하다 한심해. 니 이거 글씨 마르면 봉투에 넣어 가지고 청장한테 직접 갖다 주고 바로 답을 받아 오이라.”

* * *

경찰청 부속실.

똑똑!

“네.”

“잘 있었어?”

“어! 언니!”

김기민 경정이 들어오자 조연희는 반가운 얼굴로 일어나 맞았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청장님 계시지?”

“네. 청장님한테 볼일 있으신가 봐요?”

“맞아. 아주 골치 아픈 볼일이 있지.”

“골치 아픈……?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조연희가 조심스럽게 청장 집무실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청장님! 경호실 가족경호부장이 뵙기를 청합니다.”

“청와대? 누구라고?”

“가족경호부장이요, 김기민 경정입니다.”

“그래? 어서 들어오라고 해.”

김기민 경정은 조연희를 따라 청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조연희가 청장에게 김기민에 대해 소개를 했다.

“김 경정은 전에 우리 청에서 소년계장을 지냈습니다. 부산에 승진해서 내려가 있다가 이번에 청와대로 들어갔고요. 경호실 특채 요원입니다.”

“아 그래? 우리 직원이란 말이지? 난 또 경호실 공채 요원인 줄 알았지. 그래, 무슨 일로? 그냥 인사 온 거야?”

청장은 그냥 조연희하고 아는 사이라 지나가다 들른 줄 알고서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조연희가 자리를 비워 주자 김기민이 조심스럽게 한지로 된 봉투를 꺼냈고, 그걸 본 청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겉봉에 청와대 봉황 문양이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기민 경정이 봉투를 청장 책상 위에 놓자 천세용 청장이 기겁을 했다.

“……이걸 왜 나한테?”

“대통령께서 전해 드리고 오늘 중으로 답을 받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중으로! 무슨 내용인데? 뭐라고 하면서 이걸 주셨어!”

“저도 내용은 모릅니다. 그냥 전달하라는 지시만 받았을 뿐입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 보는 청장의 두 손이 떨렸다.

“……당동벌이? 이게 무슨 말이야?”

한자 자체는 모르는 글자가 없었는데 어원은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 이거야 원, 당최 청장 달고 나서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으니! 이봐! 나가서 조 경사 들어오라고 해! 빨리!”

청장이 버럭 짜증을 냈고 김기민 경정이 황급히 조연희를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청장님, 찾으셨어요?”

“너 이것 좀 봐.”

청장이 대통령에게 받은 글을 펼쳐 보였다.

“이게 무슨 말이야? 대통령께서 보내셨다는데……. 넌 알겠어?”

“……네.”

“진짜야? 이게 무슨 뜻인데! 설마 안 좋은 건 아니지!”

청장이 그렇게 속사포처럼 묻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조연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이건 한나라 때 유학을 공부하던 학자들이 서로 파벌을 지어 가지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는 것을 경고하는 글입니다.”

“뭐야? 근데 이걸 왜 나한테 보내셨지?”

“저도 거기까진……. 죄송해요.”

그러면서 조연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냐, 죄송할 건 없고……. 근데 오늘 중으로 답변을 해야 된다고 했지? 가만있자,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가서 차장하고 국장들 지금 당장 들어오라고 해.”

“네, 청장님.”

조연희는 다시 인사를 하고 나가서 즉시 본청 내 안내 방송을 했다.

[딩-동-댕-동]

[아아, 부속실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 즉시 각 실, 국장님들께서는 청장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임시 참모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청장실에서 임시 참모 회의가 있을 예정이오니 지금 즉시 청장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방송을 마치고 마이크 볼륨을 내리는데 옆에 김기민 경정이 웃으면서 서 있었다.

“목소리 좋은데? 항상 니가 그렇게 하는 거야?”

“네. 참, 언니.”

“왜?”

“언니는 알고 있죠? 대통령이 이거 주시면서 뭐라고 했는지.”

“…….”

“알고 있잖아요.”

“그럼 그것도 알고 있겠네, 내가 알더라도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말고요. 언니를 곤란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냥 제가 알고 싶은 건 대통령이 글 쓰실 때 옆에서 보셨을 거잖아요. 그때 뭐 혼잣말이라든가, 하시던 말씀이 없으셨냐는 거죠.”

조연희가 그렇게 물고 늘어지자 처음엔 대답을 망설이던 김기민도 졌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에휴, 청장님한테 저것만 드리고 얼른 도망가는 건데…….”

“그럼 제가 쫓아갔겠죠. 히힛.”

“못 당하겠구만? 아침에 영부인께서 대통령이 드실 생강차를 달여 드린다고 해서 나도 같이 본관으로 올라갔거든? 근데 거기서 어제 청장님하고 네가 나오는 TV를 보신 거야. 아 참,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대통령이 너를 콕 집어서 물어보시더라.”

“나를? 정말요?”

“응. 나한테는 쟤 누구냐? 똘똘하네? 이 정도로만 물어보셨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절대 안 하시는 분이라 네가 누군지 미리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 본청에 심어 놓은 라인을 통해서 보고를 받으셨겠지.”

“흐응…….”

“그러고는 뭐 없어. 김성수 의원이 갑자기 나타나서 청장님 편을 들었잖아? 그걸 보고는 희한하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없던 일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냐고 그러시더니 갑자기 나한테 청장이 일 잘하는 것 같냐고 물어보시는 것 있지?”

“엥? 그걸 언니한테 물으셨다고요? 진짜로?”

“그렇다니까? 이건 뭐 대답을 할 수도 없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아주 그냥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고.”

“흠…….”

“왜?”

“아무래도 대통령께서 바꾸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뭐어? 청장님을?”

김기민이 놀라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조연희가 조용히 하라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쉬잇! 목소리가 너무 커요, 언니.”

“읍, 미안. 아니 근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와서 청장님을 바꾸려고 하다니?”

그러자 조연희가 [쯔쯔쯔쯔]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게 아니에요.”

“그럼 뭔데?”

“대통령이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은 청장님이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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