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4화
#764. 뿌린 대로 거두기
서울에서 한창 교육을 받고 있던 김순철은 주말을 이용해 부산에 내려온 김에 자신이 근무하던 해운대 형사계로 갔다.
“여~ 다들 오랜만이네!”
오랜만이라는 건 빈말이었고, 혹시라도 자기더러 고생한다며 차비라도 좀 찔러 줄까 싶어 수금차 들른 김순철이었다.
“아따야! 계장님 서울 가서 고생 많으시지예. 그라모 인자 이번 달만 끝나면 다음 달에는 여기로 출근하시는 깁니까?”
관리반의 배 경사가 그렇게 물어 왔다.
“다음 달은 무슨 다음 달? 아마 한두 달은 더 걸리야 될 기다.”
김순철이 그렇게 어깃장을 놓자 다들 이상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기 무신 말입니까? 그라모 교육이 한 달 더 늘어진 겁니까?”
그렇게 물어 오자 김순철이 다리가 아픈지 의자에 앉더니 자신의 다리를 주물럭거리면서 이야기했다.
“하이고…… 다리야. 서울이 얼마나 먼지 새삼 느꼈다 아이가. 멀다 뿐이가? 차비는 또 얼마나 비싸노? 내는 인자 서울 갈 차비만 있고 다시 부산 내리올 차비는 먹고 뒤질라 캐도 없다. 에이 X발 X 같은 거 그냥 걸어오든가 해야지……. 문경새재 넘어가 내리올라 카모 한 한 달은 더 걸릴 기다.”
김순철이 그렇게 투덜거리자 형사반에서 살림을 사는 고참 경사급 도반장들이 킥킥거리면서 한데 모였다.
“킥킥킥!”
“클클.”
김순철의 헛소리를 듣고 책상에 앉아서 조서를 받던 형사들까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렸다.
“하여튼 따와이 귀신이다, 따와이 귀신이야.”
“가 오라는 말을 저렇게 표현을 하나? 내 같으면 누가 저래 하라꼬 시키도 남사시럽어가 몬 하겠구만…….”
“그래도 저게 차라리 낫지, 어떤 간부들은 대놓고 안 가져오냐고 신경질 낸다 아이가? 그럴 때는 주면서도 기분 더러운데, 저 양반 하는 따와이는 그런 거에 비하면 뭐…….”
“저 양반 따와이하는 거 옆에서 보면 진짜 기도 안 찬다 아이가? 도저히 봉투 하나 안 내놓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기라.”
그렇게 각 반 도반장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고 나서야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려는데 때마침 과장이 부른다고 안에 결재를 들어갔던 당직 주임이 나와서 전했다.
형사과장 나영식 경정은 경찰대 출신으로 서울에 있는 관할서 교통사고 조사계장을 하다가 시험 승진을 하여 내려온 서울 자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교통에서 넘어온 뺑소니 사건은 유난스럽게 챙기는 편이었다.
뺑소니 사건은 특가법의 저촉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검거되면 구속이었고 합의를 해도 검사가 구속시키기 일쑤였다.
똑똑!
“들어와!”
“과장님, 고생 많으시지예?”
김순철이 들어가면서 어중간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런 X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한테 머리까지 숙여야 되고…… X 같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어색한 웃음까지 짓는 김순철에게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계장님, 고생 많으시죠?”
“예?”
“실은 저도 이제 서울 가면 그 교육을 받게 되거든요.”
“아, 네. 그렇심니까…….”
“그래도 저는 집이 서울이니 크게 힘들 건 없지만, 계장님은 수고가 많으시겠어요.”
“아입니다, 다들 하는 건데요 뭐. 하하…….”
“자, 이거는 교육 여비입니다. 얼마 안 되지만 제 성의니까 보태 쓰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봉투를 하나 건네는 것이었다.
‘엥? 뭐지? 이 훈훈한 느낌은?’
예상치 못한 봉투에 김순철은 입이 귀에 걸리기 직전인 것을 겨우 참고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아 품속에 넣었다.
“이렇게 안 챙겨 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요 뭐. 교육 마무리 잘 하고 오세요.”
“예, 서울 가서 나머지 교육 받고 다음 달에는 이리로 출근하겠심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일어서려는데 과장이 김순철을 불러세웠다.
“아 참, 그리고 지금 우리 추적반에 교통에서 넘어온 특가법이 하나 있는데.”
“네?”
“다음 달에 내려오시면 그거 좀 빨리 종결해서 송치시킵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힐끗 과장의 얼굴을 보니 아까 봉투를 줄 때의 그 온화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싸늘한 얼굴로 서류 다발만 뒤적이고 있었다.
김순철은 이상하게 뒤통수가 가려워져서 북북 긁으며 과장 사무실을 나왔다.
‘하 X발, 이거 낌새가 이상한데……. 교통에다 특가법 운운하는 거 보니 이거는 뺑소니 같은데, 그걸 덮으라고? 너무 위험한데? 다시 돌려주고 올까? 어차피 서울로 꺼질 놈이고 앞으로 쌩까 버리면 그만인데…….’
그렇게 생각하고서 다시 과장 사무실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잠깐만. 아까 점마가 분명히 교육 여비라고 그랬지? 그리고 문제가 생기더라고 나는 교육 중이었고, 점마가 교육 여비라고 준 거니까 뺑소니하고는 상관없다고 해 버리면 뭐 그만일 것도 같은데? 끙, 어떡한다…….’
머리가 복잡해진 김순철은 추적반 조재기 경사를 불렀다.
“어이, 조 부장!”
“예, 계장님. 아직 안 가셨네예?”
조재기 경사는 중동 지역 담당을 하면서 뺑소니만 전담하는 추적반을 맡고 있었다.
“인자 갈 끼다. 그건 그렇고 내 방금 과장실에 갔다 왔는데 뭔 뺑소니 얘길 하던데, 빨리 검찰에 송치시키라고 말이야.”
“아, 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어이, 내한테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다.”
“네?”
“분명히 이야기하께. 그런 거 있으모 내가 교육 갔다 오기 전에 빨리빨리 송치해 삐라. 내 없을 때 일어난 사건은 결재하기 싫다고. 뭔 말인지 알아묵겠제?”
“…….”
“모르겠나? 한 번 더 이야기를 하자면 난 내가 교육 기간 중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후결(나중에 결재나 공람하는 것. 후결 결재인 고무도장이 별도 비치되어 있음)은 절대 안 할 기라. 알아들었제?”
김순철이 그렇게 다짐을 받자 조재기 경사가 한숨부터 내쉬었다.
“알겠심니다. 계장님이 그렇다고 하시면 어쩔 수가 없지예. 그거는 그렇고……. 이거는 사실 뺑소니가 아이라예.”
“그건 또 무신 소리고?”
“제가 볼 때는 무조건 살인 사건 같거든예. 근데 이거를 수사하지 말고 송치하라 카는데 저도 답답합니다. 피해자 부친이 병원 영안실에 시신을 넣어 놓고 장례도 안 치르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아입니까?”
“…….”
“그란데 문제가 하나 생겼심니다.”
“또 뭔 문젠데?”
“동부경찰서 형사들이 냄새를 맡았심니다.”
“동부서 말이가?”
“벌써 어제 여기 교통사고반에 다녀갔고예. 지한테도 전화해서 사건 수사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어 왔심니다. 동부 형사과장이 누군지 혹시 아십니까?”
“아 알다마다? 같이 근무도 했는데.”
“그 양반이 보통 아이거든예. 억수로 빡센 양반입니다. 아마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싶은데…….”
김순철은 김세민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 생각에는 우리 교통과장하고 형사과장이 같은 경대 출신이라고 즈그들끼리만 쓱싹하고 입을 닦은 것 같은데 까딱 잘못하면 이거 터지가 X됩니데이. 뭐 한 달 후에 오신다 카니까 그때는 또 우예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고는 계시라고예.”
서울에 올라와서도 교육 기간 내내 김순철은 수업에 집중하긴커녕 열심히 잔머리만 굴리고 있었다.
‘그동안 부지런히 부속실에다가 공납을 했으니까 조 승지가 다 알아서 해 줄 것 같긴 한데……. 불안하단 말이지…….’
뿌린 만큼 거두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절대 성급해선 안 된다는 게 그동안 경찰 생활을 하며 얻은 교훈이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 갈 무렵.
김순철은 경찰청장 부속실로 전화를 걸었다.
-바르게 살기! 충성! 부속실 일경 박철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크~ 살아 있네.”
-잘 못 들었습니다?
“군기가 살아 있어. 나 해운대 형사계장인데 조 부장 계시는가?”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전화 받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조 승지 대감! 오랜만에 전화 한번 해 봤습니다. 잘 지내시고?”
-네, 저야 항상 똑같죠. 그런데 무슨 일로?
“부산 내리가기 전에 서울에서 조 대감 한번 모시고 압구정 수선화에서 맛있는 거나 한번 먹을라꼬 했는데, 이기 고마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전국 산업 시찰을 간다고 교육 일정이 또 고래 잡힜다 카네요. 그래 가지고 겸사겸사해서 작별 인사 드릴라꼬 전화 한 통 넣었심니다.”
-그러세요. 교육 받느라 그동안 애쓰셨네요.
“아입니다, 저야말로 그동안에 신세 많이 졌심니다. 내려가서도 변치 않고 공물은 때가 되면 착착 올려 보내겠심니다.”
-어머, 공물이라니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조연희가 제일 신경 쓰는 것이 청장실에 들어가는 각종 차와 다과, 음료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김순철은 온갖 각 지방의 특산품을 구해다가 그동안에 진상을 해 왔던 것이었다.
“아입니다. 마 제가 좋아서 하는 긴데요 뭐. 신경 쓰지 마이소.”
-그래도요. 어쨌든 그동안에 제가 잘 얻어먹었으니까 신세는 갚아야죠.
“아이, 뭐…….”
-지금 제가 알아보고 있는 게 있으니까,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김순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투로 그렇게 되물었고, 조연희는 그런 김순철이 웃기다는 듯 피식거렸다.
-진짜 몰라서 되묻는 건 아니지요? 아무튼 다음 주부터 해운대서로 출근하면 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예? 그게 뭡니까?”
-우리 사수님한테는 말 잘 가려서 해야 하는 거 알죠?
김순철의 인사 문제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는 말이 김세민의 귀에 들어갈까 봐서 한 번 더 입조심을 시키는 것이었다.
“아, 알죠! 그럼요, 나도 김 과장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아입니까. 그 점은 걱정 마시소. 아무튼 고맙심니데이. 그라모 승지 대감만 믿고 내려가겠심니다.”
-네. 다음 주에 통화해요.
철컥!
“됐어! 끼야호옷!”
전화를 끊은 김순철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뭔진 몰라도 조 승지가 기대하라고 했으면 뭔가 좋은 게 있는 거야. 크~ 이 김순철이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빨리 부산 가고 싶다!’
띵-동.
때마침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다.
“에이 X발, 교육 이거 X 같은 거 진짜 더럽게 듣기 싫네. 확 째뿔 수도 없고……. 담배나 한 개 굽고 들어가야겠네!”
그러면서 뒤춤에 손을 꽂고 휘파람을 불면서 밖으로 나가는 김순철이었다.
* * *
경찰청 참모 회의.
배진철 감사담당관이 청장에게 부산 뺑소니 위장 살인 사건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다.
“하여튼 말이야, 이거 얼굴이 뜨거워서 어디 다니지를 못하겠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신이 살인인지 뺑소니인지는 부검해 보면 금세 아는 거 아니야? 근데 해운대 이 자식들은 말이야, 서장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 얻어먹고 그냥 사건을 덮으려고 했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이게!”
“…….”
“피해자의 부친이 김세민이한테 가서 고소장을 넣었다면서?”
청장이 이 사건을 조사하고 올라온 감찰 담당 배진철에게 그렇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또 억울한 사건이 묻힐 뻔했습니다. 아직 도주 중인 범인이 두 명이나 있는데 나머지도 검거해 보면 뭔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해운대서장하고 형사과장, 교통과장은 직위 해제 발령을 내겠습니다.”
감사담당관이 오늘 중으로 세 사람에 대한 직위 해제 발령을 내겠다고 보고를 하자 박정오 차장이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히 줄초상 나는구먼. 그러게 서장도 너무 어린놈을 데려다 놓으면 사리 분간을 못 하고 죽는 줄도 모르고 아무거나 주는 대로 덥석덥석 받아먹다가 이런 난리를 친다고……. 에잉, 츳츳츳!”
박정오 차장 자신도 경찰대학장으로 가기 전에 부산청장을 해서 그런지 부산에 대한 애착은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그럼 해운대서장은 누구로 보낼 거야? 아직 승진 후보자가 남아 있나?”
청장이 경무국장한테 총경 승진 후보자가 남아 있는지 그렇게 묻자 박정오 차장이 의견을 냈다.
“청장님! 해운대서장을 이제 막 승진한 후보자에게 맡기면 안 됩니다.”
“왜?”
“지금 부산에서는 해운대가 나름 서세도 크고 사건도 많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그럼 뭐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도 있나?”
“제 생각에는 여기 감찰과장 하는 태민호 총경을 임시로 내려보내서 일단 어수선한 분위기부터 바로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말 정기 인사 때 서울에서 총경 승진 후보자들이 내려가면 부산에서 좀 오래 근무한 고참 총경을 한 사람 발령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박정오 차장 말은 현 감찰과장을 내려보내서 직원들 기강도 잡고 그리고 외풍도 막아서 더 이상의 사고를 방지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래, 그러면 좋은데 태민호가 내려가려고 하겠어? 그 친구도 경무관 바라보고 벌써 몇 년째 버티고 있는 거잖아?”
본인이 희망을 하겠느냐고 청장이 심드렁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연말에 다시 원복시켜 준다고 청장님이 약속을 하시면 아마 내려가려고 할 겁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여기 계시는 경무국장이나 다른 국장들도 기억을 해 놨다가 이어지는 총경 인사에서 태민호를 다시 원복시켜 줘야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사에 관한 것은 지휘관이 약속한 걸 꼭 지켜 줘야지 그게 안 되면 조직 기강이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져 버립니다.”
차장인 치안정감이 말하는 것이고, 또 지금 상황에서 더 나은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또한 박정오 차장과 천세용 청장은 후보생 동기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다.
“그럼 차장 말대로 감찰과장을 해운대서장으로 발령 내도록 해. 나머지 과장들은 부산청에서 알아서 발령 내라고 하고.”
청장이 그렇게 정리를 해 주었다.
참모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박정오 차장을 조연희가 빤히 쳐다봤다.
“왜?”
“차장님 오늘 외식하세요?”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할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외식할 일이 뭐가 있어. 왜? 오늘 점심이 뭔데?”
점심 메뉴가 갑자기 궁금해진 박정오 차장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석이버섯이라고 아세요?”
“석이버섯?”
“높은 절벽 위의 바위에서 채취한다고 그러던데 그게 오늘 좀 들어와서 버섯무침을 했어요. 치매 예방에는 그게 그렇게 좋대요.”
“뭐?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나 아직 그런 나이 되려면 멀었어! 근데 이거 누가 보낸 건데?”
차장이 그렇게 물어보자 조연희가 이렇게 말을 했다.
“김순철 경감이라고, 혹시 아세요? 차장님이 부산청장 하실 때 심사 승진을 했다고 하시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