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765화 (765/869)

제 765화

#765. 뒷모습

조연희가 김순철 이야기를 꺼내자 차장이 잠깐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김순철이 알지. 그 운으로 경감 단 놈 아니야.”

“하하…….”

“내 기억이 맞다면 남부서 경무계장인가 경찰대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놈이 공부도 안 하고 퍼진 거야. 그래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우리 부산청에서 경찰대생을 심사를 시켜 줬다고. 그리고 해운대 경무계장이 또 경무 파트에서 유력했는데 남부에서 경무를 시켰으니 해운대는 형사를 시켜야 하잖아? 그런데 김순철이가 형사는 해운대에서 제일 오래되었더라고. 그래서 경감 단 거야. 그때 또 지금 정보국장이 부산청 1부장을 했었는데……. 마침 저기 있네. 야! 남강오!”

참모 회의가 끝나고 나가려는 남강오 국장을 박정오 차장이 불러 세웠다.

“예?”

“이리 와 봐!”

“네, 형님. 뭐 하실 말씀이라도?”

“남 국장, 너 김순철 경감이라고 알지?”

“네, 잘 알죠. 실력도 없는데 운이 좋아서 경감 단 놈 아닙니까.”

남강오 국장까지 그렇게 이야기하자 조연희는 옆에서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었다.

“나 원, 어쩌다 그런 놈이 경감까지 올라간 건지…….”

“그때는 해운대에 마땅히 승진시킬 사람도 없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다 오십보백보잖아요?”

“그건 맞아. 사실 인사를 해 보면 별 특별한 사람은 없다고. 다 그놈이 그놈이야. 그래도 쫓겨 나가더라도 그냥 쫓겨 나가는 놈보다는 봉투라도 하나 들고 들어왔다가 쫓겨 나가는 그놈이 이쁘게 보이는 법이더라고. 내가 김순철이 심사시키고 나니까, 제 놈도 나한테 인사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내가 어려웠던 모양이야. 한 번은 늦게 퇴근을 하는데 문이 살짝 열리면서 김순철이 들어와서 잔뜩 쫄아 가지고 제법 두둑한 봉투를 꺼내는 걸 보고는 내가 고함을 질러서 쫓아냈지. 그런데 말이야, 놀라서 쫓겨 가는 놈 뒷모습이 딱히 밉지가 않은 거야. 그렇게 나한테 욕을 먹고도 그놈이 말이야, 울진인가 수사과장을 갔는데 철마다 대게를 삶아서 아이스박스에 넣어 경찰대학으로 보내 주더라고. 저번에는 금강송이까지 한 박스 보내 오고.”

“그럼 형님한테도 보내고 나한테도 보내고 여기 조 승지한테는 공납을 해마다 하고 그 친구 참 지극정성이네요. 근데 김순철이 얘기가 아침부터 왜 나온 겁니까?”

“응? 난 얘가 갑자기 물어보길래…….”

그러면서 박정오 차장이 조연희를 슬쩍 쳐다보자 조연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빨리 바른대로 말 안 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오~”

남강오 국장이 버럭 화를 내자 조연희는 그렇게 시치미를 뚝 뗐고, 옆에서 박정오 차장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킥킥거리고 있었다.

“저게 정말! 얌마! 나 오늘 바쁘단 말이야! 뭐든 들어줄 테니까 얼른 말해! 시간 없어!”

“진짜죠?”

“아 빨리!”

“알겠어요. 김순철 경감 소원이 형사과장 한 번이라도 해 보는 거라고 하네요. 다음 주에 수사 간부 교육이 끝나고 내려가는데 해운대 형사과장은 어차피 직무대리로 누군가가 맡아야 하니까, 그걸 김순철 경감이 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음…… 근데 그건 좀…….”

“어차피 연말에 본 인사를 할 때 서울에서 승진자들이 내려가면 그때 정식 발령을 내면 되고요. 그리고 제가 알아보니까 차장님이 부산청장님으로 계실 때 이런 공문을 하나 생산했더라고요.”

그러면서 조연희가 박정오 차장한테 복사한 공문을 하나 내밀었다.

[부산 시경 형사 간부 배치안]

내용은 해운대경찰서 형사과장만큼은 서울에서 승진해서 내려온 형사 유경력자로 보임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거 차장님께서 결재하신 거 맞죠?”

박정오 차장이 공문을 들어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인한 거 맞아. 서울에서 승진해 온 형사 간부들이 부산에 내려오면 전부 다 자기 주특기는 형사인데 경비나 방범, 형사를 줘도 저기 변두리 사상, 사하, 강서 이런 데만 발령을 낸다는 거야. 그래서 이 친구들이 서울로 돌아가면 부산 시경 욕을 막 한다고 그러더라고. 부산놈들이 서울 자원을 무시하고 괄시한다고 말이지. 그래서 내가 그 소리 듣기 싫어서 부산 해운대 형사과장은 반드시 서울 자원으로 발령을 내라고 이 공문을 만들었었지. 그럼 조 경사 니 말은 지금 김순철이를 해운대 형사과장 직무대리로 발령을 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소리네?”

박정오 차장이 그동안에 얻어먹은 것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김순철을 해운대 형사과장 직무대리에 앉히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조연희가 미리 파악하고 있던 것이었다.

“사실 형사과장은 반드시 수사 간부 교육을 이수한 사람만 발령을 내라고 청장님 특별 지시가 전년도에 하달이 되었습니다. 지금 부산에서 수사 간부 교육을 받은 사람은 세 사람이 있는데요, 동부 형사과장 하는 김세민 경감하고 이번에 교육 수료하는 김순철 경감, 그리고 부산진 형사과장인 손일진 경정까지 이렇게 세 사람입니다. 부산진이나 동부 형사과장을 해운대로 발령 낼 수는 없으니까 지금 김순철 형사계장을 당분간 정기 인사 시즌까지 직무대리로 발령 내는 것이 제일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보국장님은 어떠세요?”

조연희가 갑자기 남강오 정보국장에게 화살을 돌리자 남 국장이 짜증을 냈다.

“하여튼…… 야! 미리 다 틀을 짜 놓고 밀어 넣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총경 인사도 다 조 승지 허락이 있어야 된다면서?”

“어머, 누가 그런 무서운 말을……. 저는 처음 들어요.”

“시끄러워, 시끄러워! 까짓거 경정 인사야 조 승지 마음대로 하면 되지, 우리한테 허락받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 형님! 나가십시다. 더 계셔 봐야 조 승지 저거하고 말 섞으면 본전도 못 찾습니다. 아 빨리요?”

그러면서 남 국장이 박 차장의 팔을 잡고는 나가자고 이야기하자 박 차장이 재밌다는 표정을 하고 웃었다.

“역시 본청에 오니 이런 재미가 또 있네. 경찰대학장으로 있을 때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섞을 놈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오후에 나인 홀 한 번 돌고 나면 퇴근하고, 아침에 출근해서 참모 회의 하고 나면 끝이야. 그런데 청에 오니까 재밌네, 살맛 난다!”

* * *

부산 지방청장실 참모 회의.

집합 보고가 끝난 후에 경무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날짜로 해운대서장이 경찰청 경무국에 대기 발령이 내려왔심니다. 그리고 해운대 형사과장하고 교통과장도 우리 부산 시경 경무과로 대기 발령이 내려왔심니다. 아마 징계 위원회가 열릴 것 같은데 그건 본청에서 열릴 것 같심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간단하게 인사 심의 위원회를 해야 하는데 해운대서장은 본청 감찰과장 하는 태민호 총경이 발령이 났심니다. 우리는 해운대 형사과장하고 교통과장만 발령을 내면 되는데 이게 벌써 소문이 나서 우리한테도 엄청나게 청탁 전화가 많이 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을 지어 주면 좋겠는데요. 형사과장이 주무 부서니까 함 추천해 보지요?”

김은수 경무과장이 주무 부서인 형사과에서는 누굴 해운대 형사과장으로 추천하느냐고 물었고, 이수흥 형사과장이 일어나서 대답을 했다.

“형사 같은 경우에는 지금 부산에 사람이 없습니다. 형사과장은 수사 간부 교육을 마친 사람으로만 앞으로 발령을 내도록 되어 있는데, 부산에서는 동부 형사하고 부산진 형사, 그리고 다음 주에 교육이 끝나고 내려오는 김순철 해운대 형사계장까지. 이렇게 세 사람밖에는 해당이 안 됩니다. 부산진은 계급이 경정이지만 부산진이 해운대보다는 더 서세가 크니까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뭐 어떻게 하겠다고?”

“김순철 경감이 내려오면 해운대 형사과장 직무대리로 발령을 내시지요. 본청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6개월 후에 정기 인사 때 서울에서 수사 간부 교육을 받은 자원을 보내 줄 테니까 그때 경정을 보임하라고 그렇게 본청 형사과장이 이야기했습니다. 본청 차장님 지시 사항이라고도 했고요.”

형사과장이 그렇게 얘기를 하자 문일용 청장이 꽤나 놀란 듯한 표정을 했다.

“아니 박정오 차장이 김순철 경감을 알아?”

“그야 뭐 박정오 차장이 여기 청장 하실 때 김순철 경감이 심사 승진을 했으니까 그때 인사가 다 되었다고 봐야지예. 그라모 형사는 되었고……. 교통과장은 지금 사고관리계장이 경감이니까 그대로 직무대리 하라고 발령 내겠심니다.”

경무과장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는 청장의 눈치를 보니까 청장도 별말은 없는데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근데 교통사고 관리계장은 어떻게 건너뛰고 교통과장하고 선이 닿은 거야?”

그러자 강성천 정보과장이 나서서 대답을 했다.

“해운대 심 서장이나 나영식 형사과장, 교통과장은 전부 서초경찰서 출신입니다. 1년 간격으로 승진이 되어서 여기로 내려왔는데 서초 관내에 KM 그룹 본사가 있으니까 아마 그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서장이 특차 후보생 출신이라 자연히 조직에서 소외되다 보니까 경대생들하고 같이 어울려 다니는 바람에 이번 뇌물 건도 같이 다 엮이게 된 것 같습니다.”

“흠…….”

“해운대 형사과장 자리는 전에 박정오 청장이 있을 때 서울에서 승진한 자원으로 보임을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게 있었어?”

“이제 그게 유명무실해졌나 보다 하고 생각을 했는데, 다시 본청에 왔으니까 그 규정이 살아났다고 봐야 합니다. 어차피 겨울 정기 인사 때 서울에서 내려온 과장이 해운대 형사를 달긴 하겠지만 김순철이는 순경 출신에다가 또 부산 토박이니까 미리 형사를 장악하고 있으면 내년에 서울에서 누가 내려오더라도 함부로 장난질은 못 할 것입니다.”

정보과장이 나름대로 정보에서 파악한 것을 소상하게 참모 회의에서 다른 서울서 내려온 과장들도 들으라는 듯이 다 오픈을 해 버렸고, 이번에는 경무과장이 한마디 더 거들고 나왔다.

“청장님, 가만 보면 이게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과장들이 문제가 많심니다. 다들 곧 떠날 곳이다 생각만 하고 여기 내려와서 아무렇게나 생활하는데, 잘못하면 한 방에 가는 수가 있다 그 말입니다.”

“뭘 어떻게 한다는 거야?”

“따와이를 하더라도 뭐 눈치를 봐 가면서 해야지, 여기저기서 아무 돈이나 소화 안 되는 것까지 다 주워 처먹질 않나, 심지어 건달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서울 출신 자원도 있다던데…….”

“이봐, 경무과장! 나도 서울서 내려왔다고!”

문일용 청장이 자신도 서울에서 내려왔으니 같은 도매금으로 치부하지 말라는 듯 경무과장의 말을 잘랐다.

“그럼 그렇게 당장 인사 발령을 냅시다.”

청장 입에서 그렇게 허락이 떨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 동부경찰서 형사과장실.

서장실에서 참모 회의를 마치고 내려오니 관리주임인 강갑도 주임이 인사 발령안을 가져왔다.

“아직 인사 시즌도 아니잖아요?”

“해운대가 줄초상이 났심니다.”

“해운대에?”

“서장하고 형사, 교통과장이 다 직위 해제되어 가지고 대기 발령이 났심니다. 지금 밖에서는 과장님이 김순철 계장을 형사과장으로 앉히려고 서장하고 형사, 교통과장을 다 쫓아냈다고 고런 말도 돌고 있심니다.”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리 줘 봐요.”

김세민이 인사 발령안을 받아 찬찬히 살펴보니 김순철과 해운대 교통사고 조사계장인 변상도 경감이 나란히 형사, 교통과장 직무대리로 발령이 나 있었다.

“근데 김순철 계장은 그렇다고 쳐도 해운대 교통사고 계장은 어떻게 넘어간 겁니까?”

“변상도 주임은 순경 때부터 교통만 했어예. 그라이 따와이는 빠꿈이라고 봐야지예. 젊은 경찰대생 과장이 와서 앞뒤 안 가리고 막 주워 먹으니까 자기도 불안했겠지예.”

“…….”

“그래서 돈 될 만한 것은 아예 계장란에 결재를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책임 안 질라고 미리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지요.”

“아니 결재란에 계장, 과장이 뻔히 나와 있는데, 어떻게 계장이 결재를 안 하는데 과장이나 서장이 결재를 합니까? 이해가 어려운데요?”

“과장님, 전에 인사 기록 카드 정리할 때 제가 얼핏 봤는데 서울 탄천 면허 시험장에도 계셨었다고 했지요?”

“맞습니다.”

“거기서도 각 주임들이 고무인 도장을 사용한다 아닙니까?”

강 주임이 느닷없이 고무인 도장 얘기를 꺼내자 김세민은 고무인 도장 때문에 직원들과 매일 싸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해운대 사고반에서 계장이 고무인 도장을 사용했다는 말입니까?”

“지도 마 들은 이야기인데예, 거기 변상도 경감도 경위 때 남부 면허 시험장에 있었다꼬 카데예. 그라이 따와이하는 거는 선수라고 봐야지예. 그란데 가만히 보니 자기 과장이 따와이하는 게 어설프기 짝이 없었실 거 아입니까? 게다가 이번에 대기 발령 받은 전수갑 교통과장은 내려오자마자 새 차를 한 대 할부로 뽑았다고 하데예. 서울에서 내려올 때 먼저 승진해서 부산 내려갔다 온 경찰대 동기생들이 그렇게 얘기를 한다꼬 카네예. 부산에서 일 년 있다가 오면 차 한 대는 뽑는다고요.”

“그러니까 먼저 차부터 한 대 뽑고 나서 할부금을 매달 넣어야 하니까 죽기 살기로 따와이해야 한다, 지금 그 말이구만?”

띠리링!

갑자기 경비 전화가 울렸다.

“감사합니다. 동부 형사과장 김세민 경감입니다.”

-캬! 난 해운대 형사과장 김순철 경감이라꼬 캅니다.

“직무대리는 왜 안 붙여요?”

-응? 벌써 다 아는갑네? 소문 빠르다, 소문 빨라~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소문은 또 뭐고!”

-소문? 무슨 소문인데?

“…….”

-아무튼 과장 되니까 진짜 직이네! 이래 좋은 거를 진작 몬 하고 내가 아휴……. 동래서 형사계에 순경으로 초임 발령 받아 와가 해운대 역전 담당 형사부터 시작해가 인자 드디어 형사과장이 됐다 아인교? 이게 다 조…….

“뭐라고요?”

-웁!

“방금 조 어쩌고 하지 않았어요?”

-응? 무슨 소리인지? 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조 경사구만.”

-아이다, 아이다! 절대 조 경사가 김 과장한테 말하지 말라고 안 했다!

“…….”

-……내 지금 말실수 제대로 한 거 맞제.

“그런 것 같네요.”

-하이고, 함만 좀 봐도. 조 승지가 자기 사수한테 절대 말하지 마라꼬 그래 신신당부를 했는데 내 이노무 입이 문제라, 입이! 너무 좋아서 말이 헛나와 버렸네……. 아무튼 내 다음 주부터 해운대 출근합니다. 지금 다 제쳐 놓고 우리 김 과장한테 제일 먼저 연락했다 아이가! 다음 주에 시간 좀 비워 놓으소! 찐하게 축하주나 한잔해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