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778화 (778/869)

제 778화

#778. 악어의 눈물

똑똑!

“네.

아, 유철 형사.”

“과장님, 계속 통화 중이시던데요?”

“아, 본청 조 경사하고 잠깐.

무슨 일 있어?”

“네, 조방 자성대 호텔 김 사장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장님하고 꼭 통화를 좀 해야겠다고…….”

“그래?”

“예, 밖에 일반 전화로 받으시면 됩니다.”

김세민은 유철 형사 자리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김세민입니다.”

-아이고, 과장님! 조방에 김 사장입니다. 바쁘신데 이래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근데 어쩐 일로……?”

-전화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런데, 혹시 저녁에 다른 약속 없으시면 잠깐 뵐 수 있겠심니까?

“오늘 저녁 말입니까?”

-와예, 선약이 있으신 모양이지예?

“그런 건 아닌데…….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죠?”

-선어 아시지예?

제가 세팅 다 해 놓고 있겠심니다. 나중에 퇴근하고 편하게 오시소.

* * *

퇴근 시간대의 조방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김세민이 선어 초밥의 문을 밀고 들어서자 직원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일행이 있습니다. 아마 먼저 와 있을 텐데…….”

그러자 직원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쪽에 있는 다다미방으로 안내를 했다.

“아이고~ 우리 과장님 오셨네.

자 자, 어서 올라오이소.”

다다미방에는 낙성대 김 사장과 함께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앉아 있었다.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기고 정장에 넥타이까지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신사가 김세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에 김세민도 덩달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여기는 정상옥 회장님이라고 여기 조방에서 웨딩홀 사업 하시는 분입니다. 예식장예.”

“김 사장님도 조방에서 예식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는 정 회장님에 비하면 쨉도 안 됩니다. 나는 두 개뿐이 없고 정 회장님 예식장은 네 개나 됩니다. 여기 조방에서 최고 알부잡니다.”

김 사장이 그렇게 너스레를 떨자 정상옥 회장이 겸연쩍은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저짝에 상공회의소 자리 알지예? 거기서 원래 예식장을 했는데 부산시에서 상공회의소 자리로 쓰겠다고 그 땅을 가져가뿌고 대신에 조방 안쪽에 땅을 이리저리 떼가 줏는데 그게 억수로 큰돈이 된 거라.”

“처음 뵙겠습니다, 정상옥이라고 합니다.”

“동부경찰서 형사과장 김세민입니다.”

그렇게 서로 악수를 하고 명함을 교환하였다.

인사를 마치고 나자 정상옥이 한 장의 낡은 사진을 꺼내서 김세민에게 보여 주었다.

“이 사진 아시지요?”

그것은 강용수가 죽기 전에 세상에 알린 바로 국문회 범어사 야유회 사진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정 회장님도?”

정상옥 회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두 사람이 서로 팔짱을 끼고 웃으면서 서 있었는데 두 사람의 얼굴에만 형광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 사진 속에 오른쪽이 나고 그 옆이 이번에 밀양에서 죽은 최문직입니다.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른 사람하고 우리하고 차이가 나는 것이 안 보입니까?”

“차이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옷차림이 좀 다른 것도 같네요.”

다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명 입고 있는 옷이 달랐다.

강용수를 조사할 때 진술한 내용대로 다들 헌병 보조원인 줄 알았는데 입고 있는 옷이 두 가지 종류였고, 왼쪽 팔에 [헌병]이란 글이 적힌 흰색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국민복하고 군복의 차이를 압니까?”

“아뇨, 꼭 알아야 합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삐딱하게 나오자 김 사장이 나서서 중재를 하는 모습이었다.

“자자, 김 과장님. 너무 그라지 마시고……. 이거 분위기가 와 이렇노?

한잔 드시소. 내가 한잔 따라 올리께예.”

“나도 손 있습니다.

초면에 미안하긴 합니다만, 내가 국문회 인간들이라면 치가 떨려서요.

최근에 사건 조사하면서 그 민낯을 너무 많이 알아 버렸거든요.”

“……이해합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김 과장님을 이렇게 모시고 뵙자고 청한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조금만 내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면서 또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나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왕 온 김에 이야기라도 들어 놓으면 국문회 사건 수사하는 데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일단 들어보기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김세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고맙습니다.

국민복은 1940년에 일본이 공포한 [국민복령]에 따라서 전시의 물자 통제령하에 있는 국민의 의복 생활을 간소, 획일화해서 물자도 절약하고 전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일본 육군의 주도로 시행한 것이었습니다. 국민 모자도 있었지. 각반도 차고 지까다비도 신고 다니고 그랬는데……. 군복과의 차이점이라면 군복은 목에 둥근 후크를 채우고 헌병의 경우는 검은색의 칼라를 목에다 둘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반드시 허리에 벨트를 찼고. 장교들은 허리에 권총을, 졸병들은 권총집 대신에 탄창집을 찼지. 또 헌병은 왼쪽 팔에 헌병이라고 되어 있는 완장을 찼고.

사진을 다시 한번 보세요, 헌병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들과 그냥 국민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씩 될 겁니다.”

“지금 그 말은…….”

“누군가에 의해서 연출이 된 거란 뜻입니다.

난 그때 당시 서울에서 경성제국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학도병 아니면 해외에 있는 일본 식민지로 징용을 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죠.

우리 집은 당시에 부산에서 나름 잘 살았습니다. 정미소를 했는데 꽤나 잘 됐죠.

그래서 징집을 피하려고 아버지가 아는 일본 상인들을 통해 알아봤더니 부산에 [재 부산 일본 상인 연합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거기 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세지마라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징용에서 빼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대학생이라는 게 도움이 되었는지 그 사람 밑에서 일을 하는 조건으로 징집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돈도 많이 갖다 바쳤겠지요.”

“그럼 그 일본놈 상인 연합회란 것이 지금 범내골에 있는 상공회의소 건물입니까?”

“정확히 지금 그 자리는 아니고 조금 뒤로 중앙 시장 있지 않습니까? 그 입구에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나는 쌀이란 쌀은 전부 공출해서 일본으로 보낼 때라 부산에 정미소가 넘쳐났었지요. 일본인들이 하는 곳도 있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곳도 많았지.

솜상그룹 알지요? 선대 회장도 부둣가에서 정미소를 했었습니다.”

“아, 솜상그룹이 정미소부터 출발했단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 당시엔 꽤 돈이 되었나 보네요.”

“돈이 되는 정도가 아니고……. 지금도 그렇지만 쌀을 도정하면 도정미를 받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도정을 하고 값을 쌀을 그만치 떼어 내는 것인데 이거는 외상도 없고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고 하니까 그때는 도정 기계 돌릴 전깃값만 있으면 돈 버는 건 그냥 땅 짚고 헤엄치기였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상인 연합회 놈들이 하는 일이란 게, 우리나라 쌀을 빼돌려서 일본에 보내는 게 주업이었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나는 쌀을 일본으로 빼돌리는 놈들 밑에 붙어 결과적으로는 그쪽도 우리나라에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닙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쏘아붙이자 옆에서 김 사장이 쩔쩔매는 것이 보였고, 정상옥은 별다른 반응 없이 눈앞에 놓인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탁!

“크…….”

“하이고 정 회장님, 천천히 자시소, 혈압도 높으신 양반이…….”

“아이다, 틀린 말 하나 없는데 뭐.

김 과장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일본 본국에 최대한 쌀을 많이 빼돌리는 것이 우리 임무였지요. 전국에서 벼가 나락째로 부산으로 오는데 그걸 전부 여기서 다 도정을 했거든.

여기 중앙 시장 근처에 정미소가 많았는데 그때만 해도 못 묵고 사는 아들이 많아가 정미소 근처에 많이 얼쩡거렸습니다. 쌀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어 볼라고……. 참새나 까마귀는 하늘에서 날아와서 벼 나락이라도 주워 먹는데 걔들은 먹을 게 없어서 저런다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심니다. 세지마가 외출하는 날 몰래 쌀을 좀 빼돌려서 애들한테 나눠 준 일이 있었지요. 나한테 쌀을 얻었다고 소문을 내지 않으면 다음에 또 기회를 봐서 나눠 주마 하고…….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 집에 쌀을 들고 가면 다들 이 쌀이 어디서 났냐고 대번에 물을 테고,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이 되니까 애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까지 바가지를 들고 몰려드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정상옥이 갑자기 웃통을 훌렁 까더니 뒤로 돌아앉아 김세민에게 자신의 등짝을 내보였다.

“……!”

등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흉터가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자리해 있었다.

“세지마한테 채찍으로 죽기 직전까지 맞았지요.

곳간에 가둬 놓고 며칠 동안 밥도 안 주고 물도 안 주고 성질 뻗칠 때마다 들어와서 사람을 패는데……. 그땐 진짜 이대로 죽는구나 싶더라고요.

하루는 세지마가 또 곳간 문을 벌컥 열길래 또 얻어맞겠구나 싶어서 체념하고 있었는데 웬걸, 갑자기 자루를 하나 툭 던지길래 열어 봤더니 꽤나 큰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실컷 패고 나서 갑자기 돈은 왜 줍니까? 무슨 맷값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글쎄요, 저도 그게 이상해서 물어보긴 했었지요. 왜 이걸 주냐고……. 그러니까 그 말에는 딱히 대답을 하지 않고 여기서 나가 가지고 따로 정미소를 하나 차리라고 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딱히 하지 않았지만 약간 딱한 표정을 짓긴 했습니다.

자본금을 다 갚을 때까지 매달 이익금 중에서 정산하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내 사업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랬군요.

근데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하, 성격이 급하시군요.

마침 저녁때도 되고 했으니 같이 식사라도 하시면서 본론을 이야기하면 어떨지…….”

그러자 김세민이 정색을 했다.

“내가 밥이나 얻어먹자고 퇴근하고 피곤해 죽겠는데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까?

그냥 어서 본론이나 이야기하시죠. 서로 시간도 아끼고 좋을 것 같습니다만.”

“……좋습니다. 바로 말씀드리지요.

여기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자 모인 것이 아닙니다.

대청동에 주둔했던 일본 제8헌병단에서 갑자기 부산에 근무하고 있는 우리 일본군 보조원들을 다 한자리에 모아 강제로 사진을 찍게 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사진은 일종의 보험인 것입니다.

너희들은 우리를 위해서 일을 했다, 너희들이 조국을 배신한 증거를 우리가 다 가지고 있다……. 뭐 그런 협박을 우리한테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김 과장님이 국문회 관련 수사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보도 많이 수집하셨다고……. 그래서 이 늙은이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부디 헌병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들과 우리같이 국민복만 입고 있는 사람들을 구별해 줬으면 합니다.”

“예?”

“국민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냥 단순히 행정 보조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이 말입니다.

헌병 완장 찬 사람들처럼 사람들을 때리거나 고문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고, 단지 일본군 장교들이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각자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을 도와주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국문회 관련자니, 친일 매국노니 하는 소릴 들으니 억울해서…….”

그러면서 정상옥 회장이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었다.

“나 참, 뭔 소릴 하나 했더니.

이봐, 지금 어디서 바쁜 사람 불러다 앉혀 놓고 즙을 짜고 있어?

무슨 악어의 눈물도 아니고 말이야.”

김세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자성대 호텔 김 사장이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거 봐요, 김 과장! 거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오!”

“……심하건 말건 그건 그쪽이 판단할 게 아니고.

나 지금 친일파하고 이야기하는 중이잖아.

근데 왜 거들고 나서?

그쪽도 친일파야?”

김세민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김 사장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떡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정 회장이라고 했나?

그러니까 그쪽 말을 종합해 보자면 친일을 하긴 했는데 헌병 새끼들하고 나는 다르다, 근데 같은 취급을 받아서 억울하다……. 이거 아니야?”

“자발적으로 한 친일은 아닙니다. 그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 좋아, 그럼 그쪽이 살기 위해서 일본놈들이 우리나라 쌀 훔치는 걸 돕는 바람에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굴 원망해야 하지?”

“…….”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를 위해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흘린 사람들은 그때 고생한 탓에 아직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이 많아. 근데 그쪽은 아까 뭐라고 했어?

일본놈이 우리나라에서 도둑질해 가지고 만든 자본 따와이해서 지금 잘 처먹고 산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대체 뭐가 억울하다는 거야?

나는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라 그쪽이 하는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 그쪽은 일본놈 밑에 붙어서 따까리를 오래해 가지고 일본놈 사고방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그쪽이 억울하다고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개소리는 이쯤해서 그만두시지. 역겨운 걸 봐 넘기는 데도 한도가 있어.”

김세민이 그렇게 쏘아붙이자 정 회장의 귀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맞는 말씀입니다. 과장님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헌병 완장 차고 있는 놈들하고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안 그래도 문직이가 죽기 전에 나하고 통화를 몇 번이나 했었습니다.”

정 회장 입에서 최문직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세민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요새 이상하게 누가 자기를 따라다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면서 말이지요. 아마 누군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따라다니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언젠가부터는 순찰을 강화하겠다던 경찰서 형사들도 보이지를 않고 말입니다.”

“흠…….”

“결국 최문직이도 그렇게 떠나고, 이젠 내 차례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한 마음에 김 과장님을 뵙자고 청한 것입니다.”

“겁이 많이 나시는 모양이지?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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