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6화
#786. 정원 초과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던 최영근 실장이 나름 감찰의 생리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자 조연희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그럼 되겠네!”
“뭐야, 조 승지.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난 거야?”
“네, 어쩌면요. 일단 감찰과에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말이야, 감찰에 가거든 무기명 혹은 익명으로 경찰 비리 신고된 것들을 정리해 두는 곳이 있을 거야. 거길 찾아보도록 해.”
“그런 데가 있어요?”
최영근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게 나름 3급 비밀로 취급을 하거든? 내놓으라고 하면 틀림없이 비밀 운운하면서 뒤로 내뺄 거라고. 감찰도 그걸 가지고 있어야 갑자기 위에서 오더가 내려오면 일선에 내려가서 그걸 가지고 집중 감찰을 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게 효과는 짱이야. 거기 걸리면 십중팔구는 다 옷 벗게 된다고.”
최영근 실장 말은 평소에 비리 관련한 첩보를 모아 두었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났을 때 위에서 오더를 받아서 배제 징계를 한다는 것이었다.
조연희 역시 납득이 간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감찰이 가지고 있는 개인별, 서별 비리 첩보를 내놓게 하는 방법밖엔 없어.
좋아, 한번 해 보자!’
* * *
경찰청 6층에 위치한 방범국.
조연희는 기획 2계장인 정순호 경정을 만나러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조 승지. 마침 잘 왔어요.
지난번에 조 승지가 만들어 준 112 신고 출동 개선 방안 있지 않습니까? 실적이 아주 좋아요.
어제는 화령일보 독자 투고란에 [달라진 경찰]이란 제목의 독자 투고가 올라왔는데, 112 신고를 하고 정확하게 2분 만에 경찰이 출동했더라면서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요? 괜찮은데요?”
“안 그래도 그 부분을 발췌해서 지방청에도 내려 주고 더욱 독려를 할 생각입니다.”
확실히 정순호 계장은 지난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전에는 한직인 방범국에서 얼른 탈출해 총경 승진이 되는 다른 자리로 옮길 궁리만 하느라 사람이 어딘가 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면, 지금은 곧 총경을 달고 일선서장으로 내려간다는 희망에 가득 차 시종일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방범국은 이제 조연희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예까지 다 오시고…….
혹시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아니에요. 그냥 잘 돌아가고 있나 궁금해서 와 봤어요. 참, 혹시 부산에서 올해 들어서 발생한 112 신고 사건 접수 처리 결과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예.”
아무 때나 와서 마음대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데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앉아서 한참 이것저것 자료를 뒤져 보던 조연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다 복사해서 부속실로 좀 가져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별다른 말 없이 방범국을 나서는 조연희를 보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갔다.”
“오늘은 웬일로 조용하네.”
방범국을 나선 조연희는 곧장 4층으로 갔다.
4층은 감찰과가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본청 건물이 들어설 때 다들 숫자 4가 불길하다며 4층에 입주하기를 기피하는 가운데, 감찰과는 별명이 저승사자인 데다가 하는 일도 저승사자와 다를 바 없다면서 반강제로 4층에 입주하게 된 것이었다.
조연희가 들어서자 감찰과 직원들의 시선이 조연희 쪽으로 쏠렸다.
“조 승지다.”
“감찰과에 제 발로 들어오는 경찰은 아마 조 승지밖에 없을 거야.”
“감찰은 난데, 조 승지만 나타나면 왜 내가 감찰받는 기분이 들지?”
조연희가 옥근수 서무계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고 옥근수 계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아닙니다, 혹시 청장님께서 무슨 말씀이라도?”
“그런 건 아니구요.”
“그렇습니까, 뭐든 괜찮으니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아직 조연희가 용건도 꺼내지 않았는데 옥근수 계장이 먼저 숙이고 들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연말에 총경 승진을 하지 못하면 진급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상 감찰 서무계장은 3년 동안에 승진을 못 하면 자리를 내주고 서울시경으로 나가는 것이 룰이었는데 4년씩이나 자리를 깔고 뭉개면 자연히 후배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고, 어떻게든 이번 연말에 승진을 해서 차고 나가야 자신의 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감찰 2계장이나 3계장이 차례로 자리를 옮겨 와서 총경 승진을 바라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서무계장 자리는 중요하고 또 누구나 주목하는 자리였다.
겉으로 말은 못 하지만 특별한 실적을 내세울 것이 없는 감찰 서무계장으로서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조연희가 그걸 알고는 지금 옥근수 계장을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에 112 신고 센터 운영 방식을 방범기획계에서 크게 개선하지 않았습니까? 청장님이 잘 운영이 되고 있느냐고 지나가는 말로 물으시길래 제가 방범기획계에 가서 자료를 좀 확인해 봤거든요. 근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몇 가지 있어서 계장님께 조언을 좀 구하러 왔습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어떤 점이 이해가 안 되시는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옥근수 계장은 속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이 여우 같은 게 또 무슨 소리가 하고 싶어서 저러지?
정신 바짝 차리자, 여기서 또 조 승지한테 털리면 총경 승진은 물 건너가는 거야.’
“제가 시간이 없어서 다는 확인하지 못하고 지금 부산의 경우만 발췌해서 살펴보았습니다만, 확실히 개선 방안을 시행하고 나서는 오인 신고나 장난 전화 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수치가 얼마였더라……. 분명 50%에서…….”
“그전에는 50%가 넘었는데 이제는 5% 미만까지 내려온 상황입니다. 다시 말해서 112 신고와 동시에 파출소에서 출동해 가지고 사건을 접수해서 처리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네, 잘 되고 있는 것 같네요. 근데 뭐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씀인지?”
“여기 부산 남부경찰서하고 부산진경찰서를 보면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경찰서는 사건을 파출소에 데리고 와서 조사한 다음 본서 형사계로 넘기는 것이 20% 미만입니다. 그 말은 파출소에 데려와 보니까 서로 그사이에 합의를 했다든가 아님 사안이 경미해서 형사 입건할 가치가 없으니까 파출소장이 재량으로 훈방을 했다는 그런 뜻이겠죠.
그런데 남부경찰서와 부산진경찰서는 거의 50% 이상을 바로 본서에 인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서에 인계된 사건의 50%는 일단 구속 영장을 청구했구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장 기각률이 두 경찰서가 각각 90%가 넘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람을 구속시키기 위해서 영장을 신청하게 되면 최대 48시간 동안 피의자가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있어야 하지요.”
“네, 그거야 뭐…….”
“그리고 영장 기각률이 높다는 이유로 남부경찰서와 부산진경찰서, 각 서 형사들이 검찰에 불려 가서 4시간씩 교육도 받았습니다. 수사 형사들이 검찰에 불려 가서 4시간씩이나 벌서듯이 앉아서 영장 신청 교육을 받았다는 걸 청장님이 아시게 되면 아마 가만있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인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지시를 여러 번 하셨는데 말이죠.”
조연희가 거기까지 이야기하자 옥근수 계장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해운대 형사과장 하다가 파면된 나영식이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뭐더라, 분명 해운대경찰서 형사들이 동부 지청에 불려 가서는 영장 기각률이 높다고 교육을 받았다고 했었는데……. 내 말 맞지, 배 주임?”
그러자 서무주임인 배종호 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러자 조연희가 배종호 주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배 주임님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도 알고 계시겠네요?”
“아 네, 해운대 형사계장하고 그것 때문에 갈등이 많아서 그랬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장이 직접 따와이를 챙기려고 그런 짓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뭐야!”
배종호 주임이 그렇게 보고를 하자 옥근수 경정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따와이를 하려고 과장씩이나 되는 놈이 그런 짓을 해!
그럼 뭐야, 아까 조 승지가 이야기한 부산 남부경찰서나 부산진경찰서도 다 똑같단 얘기야? 전부 이런 식으로 형사과장들이 직접 챙긴다는 거야, 뭐야!”
“그게…… 지금 부산에서 올라오는 무기명 진정서를 보면 부산진이나 남부에서 파출소에 접수되는 112 신고는 전부 다 본서 형사계로 인계를 하라는 형사과장 지시가 여러 번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부산진이나 남부 파출소장들이 불만이 많다고 하더군요.
파출소 입장에서는 그렇겠죠, 적당히 훈방도 하고 그래야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있는데 이건 뭐 본서 형사과에서 다 챙기겠다고 나서니까 본서 형사과장하고 파출소장들 사이에 지금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 진정서에 상세하게 적혀 있는데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경찰 일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은 걸로 봐서 거의 대부분 현지 파출소장들이 익명으로 제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쾅!
옥근수 계장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하! 요런 쥐새끼 같은 놈들을 봤나? 경정 계급을 달고 오로지 따와이할 생각뿐이라 이거지? 가만있어 봐. 그럼 배 주임도 알고 조 승지도 다 아는 일을 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야? 왜 날 속인 거야!”
이번에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왜 자기만 모르고 있었냐면서 그 자리에서 방방 뛰는 옥 경정이었다.
그러자 조연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이야기했다.
“계장님, 이번에 112 신고 센터 개선 방안은 통상 참모 회의가 끝나고 내려 보내는 업무 지시가 아니고 청장님 직무명령 제16호로 정식 공문으로 내려간 거예요. 대통령 업무 지시도 민정실에서 철저하게 챙기는데 우리 청장님 직무명령을 챙기는 것은 누구 소관입니까? 당연히 계장님이 챙기셔야 할 일이 아닌가요?”
“아니 그게 직무명령으로 내려갔다고요?”
“그야 당연하죠. 청장님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기도 하고…….
청장님 오시고 나서 직무명령이 벌써 16번이나 내려갔는데 계장님은 일선에서 직원들이 청장님 직무명령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한 번이라도 챙겨서 보고드린 적이 있나요?
제가 알기론 감찰에서는 아직 그런 SR이 올라온 적이 없는데…….”
조연희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옥 계장이었다.
“배 주임님, 올해 들어와 가지고 감찰과에서 스스로 직무명령 이행 상태 점검하고 보고서 낸 적이 있나요?
청장님한테 보고서를 올린 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아니 아직 그런 경우는…….”
“왜죠?”
“담당관님이나 과장님이 아무런 말씀이 없으셔서…….”
배 주임이 당황한 채로 일어나서 뒷머리만 긁었다.
“서무주임이라면서요? 근데 그렇게 떠넘기시면 안 되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다 자기 일이 아니다, 모른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참 큰일은 큰일이네요.
어디 보자,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조연희가 그렇게 말하면서 감찰 서무계장 책상 뒤에 있는 책장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어어? 조 승지, 거긴 왜?”
조연희는 다짜고짜 책장 문을 벌컥 열더니 위에서 내려온 가제 법령 묶음을 꺼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책상에 펼쳐 놓고 한 장씩 넘겨 보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조연희를 보고 옥 계장과 배 주임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입니까?”
“그건 갑자기 왜 꺼내 보고 그러는…….”
“아니, 여기 보니까 가제 법령집이 하나도 정리가 되어 있지가 않아서요. 제가 알기로는 내려오는 즉시 법령집을 정리해서 바뀐 규칙이나 법령을 제자리에 끼워 넣어야 하는데 이렇게 방치해 둔다는 것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조연희가 뜸을 들이자 옥 계장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격무에 시달리는 모양이군요. 일이 너무 많은 거야. 휴~ 다들 감찰이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닦달을 해 댔으니…….”
조연희가 갑자기 감찰과 걱정을 하고 나서자 옥 계장과 배 주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응?”
“아니, 갑자기 왜……?”
“안 되겠어요,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돼요.
걱정 마세요, 제가 경무국장님을 찾아뵙고 감찰이 지금 내근 인원 부족으로 업무가 개판 5분 전이라고, 다음 인사 때는 최우선적으로 감찰에 인원부터 보강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테니까요.
그때까지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그러면서 주먹을 꼭 쥐어 보이며 입으로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조연희였다.
“……!”
“아니 그게 무슨!
이보세요, 조 승지. 그게 지금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우릴 죽이려고 작정한 겁니까?”
“무슨 말씀인지?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여러분을 도와드리려고 하는 것일 뿐인데요…….”
“제발 좀 봐주세요. 뭔 하실 말씀이 있으면 툭 터놓고 말씀을 하실 것이지, 까놓고 말해 가지고 여기 감찰에서 조 승지 말을 씹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
“제발 경무국장님한테 그런 말씀은 말아 주십시오. 만약 그랬다간…….”
“그랬다간?”
“아휴, 몰라서 물으세요? 정신 못 차린다고 하시면서 지금 있는 인원도 쫓아낼 겁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벌써 정원이 초과되었단 말입니다. 인원 보강을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구요.”
서무주임인 배 주임이 인원 얘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통사정을 했고 옥근수 계장 역시 지금 이 상황이 못마땅해서 속에서 열불이 나는 중이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청이나 지방청 단위는 대부분 정원 초과로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경찰청이나 지방청에 가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것도 있었지만 일회성 지시로 인해 즉흥적으로 인원이 보강되는 경우도 많았고, 한번 경찰청이나 지방청에 들어가면 특별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쫓아내기가 더욱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