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7화
#787. 감찰 출동
“아무튼 조 승지, 일단 당분간만 보고는 좀 미뤄 줘요. 우리가 어떻게든 알아서 처리를 잘 해 볼 테니까, 경무국장님께 말하는 건…….”
그러자 조연희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제가 이걸 몰랐다면 또 모를까, 이렇게 다 알고 나서 보고를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저한테까지 불똥이 튈 염려도 있고, 또 이렇게까지 짬을 시킨다는 건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잖아요. 응당 바로잡아야지요.”
“하이고, 이게 어디 하루 이틀 일입니까.
경찰청하고 지방청은 언제나 정원 대비 20% 정도는 추가로 더 근무하고 있는 걸 조 승지도 다 알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경무국장님이 입만 열면 그 말씀을 하신단 말입니다. 정원제 관리를 엄격하게 해야 정부 합동 사무 감사에서 지적이 안 나온다면서 노심초사하시는데…….”
옥근수 계장의 말처럼 경찰청 사무 감사를 하게 되면 언제나 지적으로 나오는 것이 정원 외 초과 근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직 한 번도 직무명령에 대한 점검을 한 실적이 없다는 그 말씀인데……. 제가 알기로 각 기관장의 업무를 보좌하는 부서에서는 기관장이 업무에 관하여 발하는 명령에 관해 적어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반드시 점검하고 나서 보고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행정사무편람에 그렇게 나와 있을 텐데요. 혹시 모르시는 건 아니죠?”
“압니다, 물론 알죠. 아는데…….”
“아시는 분이 어떻게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 번도 점검을 안 해 보실 수가 있죠? 그럼 옥 계장님, 청장님 오시고 나서 첫 번째로 내려간 직무명령 제1호가 뭔지는 혹시 아세요?”
“네? 언제 말입니까?”
“작년 1월에 내려갔는데…….”
난데없이 경찰청장 직무명령 제1호가 뭐냐고 묻자 옥근수 계장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직무명령 제1호가 뭔지 아무도 챙기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감찰의 특성상 예방 감찰 활동보다는 막상 일이 터지고 나서 하는 적발 감찰을 위주로 활동을 하다 보니 모든 감찰 활동이 직원들의 비리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막상 청장의 업무 영역에 있어서 과연 직원들이 어느 정도 열의를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다들 무시하다시피 했던 것이었다.
“야! 박옥주! 직무명령 제1호가 뭐야!”
“예? 저요?”
“니가 담당이잖아! 니가 대답해!”
느닷없이 옥 계장이 서무반장인 박옥주 경사한테 소리를 버럭 지르자 박 경사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바로 찾아서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박 경사가 당황한 나머지 뒤에 있는 캐비닛에 가서 서류를 찾고 있는데 배 주임이 박 경사 책상 앞에 놓인 책꽂이에서 직무명령철을 찾아 계장한테 건넸다.
“이런 쪼다같이……. 야 임마! 여기 있는데 어디 가서 찾고 앉았어! 너 정말 서무반장 맞아? 자기 서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러면서 열심히 서류를 뒤지는 가운데 조연희가 입을 열었다.
“아마 제1호는 ‘외근 경찰관 용모 복장 단정’일 거예요. 청장님이 그때, 제가 모시고 청와대에 신고를 하기 위해 다녀올 때 교통이나 파출소 경찰관들이 모자를 쓰지 않고 벗어서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을 보시고는 화를 많이 내셨거든요? 근데 그 이후로 감찰에서 한 번도 점검을 안 하신 것이고요.
여기 감찰은 편제상 보면 감사담당관님이 청장님 직속으로 편제가 되어 있는데 그 말은 청장님을 보좌하는 부서란 뜻이고, 그런 부서에서 청장님이 하달하신 지시에 대해 쌩을 깠고. 맞죠?”
조연희가 그렇게 따지고 들자 옥 계장도 할 말이 없었다.
속으로는 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일단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 말을 보탤수록 더 불리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당장에 시정을 하지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이었다.
‘에휴, 승진도 안 돼서 미치겠는데 경사 나부랭이한테 허구한 날 이렇게 휘둘려야 하다니…….’
그런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조연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옥 계장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것이었다.
“서무계장님, 올해 연말에 총경 승진, 하고 싶지 않으세요?”
“……!”
“제가 알기로 올해 승진을 반드시 하셔야 하는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그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마음은 굴뚝같은데 현실은 이렇게 조 승지한테 책이나 잡히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입니다.”
“에이, 아직 포기하긴 일러요.”
“그게 무슨 이야깁니까?”
“청장님 정년이 언제인지 아시죠?”
“1월 말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총경 승진 심사까지는 청장님께서 하고 나가신단 말이죠. 일반 직원들 시험 승진은 1월 세 번째 주로 고정이 되어 있으니까 심사는 12월 말에 발표가 날 테고.
거기에 포함되는 쪽으로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청장님이 오시고 나서 지금까지 내린 직무명령이 총 16가지입니다. 그걸 이참에 다 점검을 하고서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겁니다.”
“보고서?”
“청장님이 오시고 나서 내린 직무명령을 감찰에서 나가 가지고 다시 점검해 보았더니 제법 잘하고 있었다, 이게 다 청장님 덕분입니다.
이렇게 해서 점수를 좀 따시라구요.”
“흠……. 근데 그런다고 먹히겠습니까?
지금까지 뭘 하다가 이제 와서 막판에 이 X랄이냐,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청장님께서 내년에 바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시는 것은 알고 계시죠? 그래서 경찰에 계실 때 업적이 좀 필요하거든요. 서로 윈윈하는 길이니까 탈이 날 일은 없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점수를 좀 따시고요, 그것과 별개로 최근 실적도 있어야 하니까 부산 남부경찰서하고 부산진경찰서는 직접 내려가서 한번 확인을 해 보도록 하세요.”
“네, 첩보가 사실이라면 조용히 사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참, 내려가기 전에 SR을 좀 보내 주세요. 가능하면 오늘 중으로 저한테 보내 주시고 내일 일보에 다시 넣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 감찰과가 청장님을 보좌하는 부서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각인시켜 드려야겠군요.”
“바로 그거예요.
참, 계장님.”
“네?”
“선따와이라고 혹시 들어 보셨어요?”
“선따와이요?
따와이는 잘 알지만, 선따와이는 또 처음 들어 보는데요?
이봐 박 경사, 자네는 선따와이가 뭔지 알겠어?”
“글쎄요.”
“배 주임은?”
“저도 잘…….”
그러면서 다들 고개를 젓자 옥 계장은 뭔가 민망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게, 저희도 선따와이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따와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어머, 감찰에서 선따와이도 모르시다니 정말 큰일이네요.
이래서야 어디 감찰이 제대로 되겠어요? 저도 나름 제 채널을 통해서 받은 첩보가 있는데, 그 선따와이 때문에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조연희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옥 계장의 얼굴이 마치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했다.
쪽팔린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보다는 조 승지가 어디 간부들을 만나서 감찰은 선따와이가 뭔지도 모른다며 나발을 불까 봐 드는 걱정이 더 우선이었다.
“한번 설명을 해 주시면…….”
조연희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김순철 그 인간이 도움이 다 될 때도 있고, 별일이네?
이 콧대 높은 감찰 직원들이 저렇게 저자세로 나올 줄이야…….’
조연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감찰계 직원들 앞에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선따와이가 뭐냐면 말이죠, 자신이 미리 인사 발령이 날 곳의 유흥업소나 경찰 대상 업소를 찾아가서 내가 다음번 인사에서 이곳으로 발령 날 확률이 가장 유력하니까 인사 로비할 봉투를 좀 내놓으라고 해서 받아 가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실제 부산 남부경찰서, 그리고 부산진경찰서 형사과장들이 동부 관내 아테나 나이트에 가서 그쪽 사장에게 돈을 받아 갔다고 하더군요. 이름이 뭐라더라, 분명 남강 사장이라고 했었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소식들이 있다고요.
쉽게 말하면 정치권에서도 기업들이 누가 대선에서 당선될지 모르니까 미리 여당과 야당 양쪽에 다 정치 자금을 대주잖아요? 그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되죠.”
거기까지 이야기하자 잠자코 듣던 옥근수 경정이 펄쩍 뛰었다.
“하, 이런 나쁜 새끼들을 봤나. 뭐? 선따와이?
이것들을 그냥…….
조 승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금 당장 부산에 감찰을 내려보내겠습니다.
감찰 1계 경감급이면 괜찮겠습니까?”
“어휴, 그런 걸 저한테 물으시면 어떡해요. 저는 일개 경사인걸요.
계장님이 알아서 잘 처리하실 거라 믿을게요.”
“알겠습니다. 당장 부산에 보내서 선따와이인지 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순순히 시인하면 사표 선에서 마무리하고, 혹시나 버티면 형사 입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봐, 배 주임!”
“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일선 경찰서나 지방청에서는 저승사자로 통한다는 감찰 경감이 드디어 뜬 것이었다.
감찰 경감들은 일선 경찰서장들까지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감찰 경감들이 출장을 나갔다는 소문이 돌면 일선 지방청은 자연히 벌벌 떨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평소 구린 사람들은 지금 감찰이 어디에서 활동 중인지, 감찰을 나오는 주 목표가 뭔지 그걸 알아내는 일에 자신의 모든 인맥과 안테나를 총동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 * *
이틀 뒤, 부산청 참모 회의.
참모 회의를 마쳐 갈 때쯤 이수흥 형사과장이 하정식 감찰계장에게 느닷없이 감찰 이야기를 꺼냈다.
“감찰계장.
지금 본청 감찰 두 명이 내려와서 일선 형사들을 조사하고 다닌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 들은 것 없습니까?”
이수흥 과장은 총경이었지만 서울에서 온 뜨내기였고, 하정식 감찰계장은 계급이 경정으로 낮았지만 감찰계장인 데다가 부산 토박이 자원이었기 때문에 하대하지 않고 꽤나 예의를 갖춰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본청 감찰이 내려왔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인데, 과장님은 어디서 들으셨능교?”
거꾸로 감찰계장이 형사과장한테 물어보았다.
“나도 잘은 모르는데 남부하고 부산진에 가서 몰래 형사들을 불러내 형사 간부들 평판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우리 강력계장이 얘기를 해 주더라고.”
그때.
휘리릭!
철퍼덕!
“윽!”
문일용 청장이 갑자기 일보철을 집어서 감찰계장한테 던지는 바람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 본청 감찰 동향을 최우선으로 파악하고 있으라고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죄송합니다, 청장님.”
“아휴! 뭐 이딴 새끼를 감찰계장으로 앉혀 놓은 거야!
차장님도 이제 나가실 때가 되어서 그런가, 사람 보는 눈이 영 없으신 것 같구만!”
문일용 청장은 자신의 전임자, 즉 현 본청 차장인 박정오 차장이 있을 당시에 감찰계장 인사를 했던 것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다 있는 데서 그런 욕을 얻어먹었다는 것은 곧 자신의 평판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바로 나가서 해운대서장한테 물어보겠심니다.”
하정식 감찰계장이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 일어나려고 하자 청장이 의아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
“해운대는 왜?”
“아 네, 그게, 해운대서장이 그래도 감찰과장을 하다가 내려왔시니까 아무래도 그쪽 사정에 밝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없어서 말꼬리를 내리자 청장이 험악한 표정을 짓고 버럭 성질을 냈다.
“이런 병X 같은 새끼…….
야! 넌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예? 아니 저, 무슨 말씀이신지…….”
“태민호가 누군지 몰라? 그놈은 연말 정기 인사 때 다시 본청에 올라가기로 하고 잠시 해운대 경찰서 군기 잡으려고 내려보낸 거야. 여기서 서장을 하고 있지만 소속은 본청 감찰과장이란 말이야! 본청 감찰 1과장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면 모르겠어?”
“그, 그렇습니까. 저는 잘…….”
청장이 혀를 끌끌 찼다.
“쯧쯔, 한심하다 한심해. 그래 가지고 경정은 대체 어떻게 단 거야?
니 같은 새끼가 감찰계장이랍시고 앉아 있으니까 밑에 있는 놈들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허구한 날 따와이만 하고 자빠진 거 아니야!
멍청한 녀석, 네까짓 게 물어본다고 해운대서장 걔가 너한테 아이구 그렇습니까 하고 말해 주겠냐?”
“그래도, 한번 연락은 해 보는 게…….”
“됐어! 저리 꺼져 있어!”
청장이 그렇게 있는 대로 신경질을 내더니 자신의 자리 옆에 있는 경비 전화를 들었다.
뽁뽁 삑삑삑!
뚜르르륵! 철컥!
-바르게 살기! 감사합니다. 부속실 일경 박철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뭐?
야 임마! 너 누구야! 뭔데 니가 내 전화를 받아!”
-예, 부속실 일경 박철!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이 새끼 봐라, 나 부산청장이야!”
-앗! 충성! 실례했습니다!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근무 중 이상 없는 것 좋아하네, 조 승지 어딨어!
어딜 갔길래 걔가 전화를 안 받고 너 같은 쫄따구가 전화를 받는 거야!
나 부산청장이야! 부산청장이라고!”
부산청장이란 말을 계속해서 하는 바람에 박철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잠깐 청장실에 들어갔습니다.
“뭐야? 언제 들어갔는데?”
-얼마 안 됐습니다. 나오면 전화하라고 메모 남기겠습니다.
“그래, 바로 전화하라고 해!”
-아,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저기 조 부장님, 부산청장님 전화…….
-감사합니다. 부속실 조연희 경사입니다.
“조 승지! 너 아주 살판났구나?”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안녕하셨어요?
“부사수 하나 데려다 놓고 X발, 이거 치안정감이 조 승지하고 통화 한번 하려면 의경을 한 번 거쳐야 하니 말이야. 니가 나보다 더 팔자가 좋은 것 같아?”
-죄송해요, 청장님. 일부러 그런 건 아니구요.
“이거 뭐 이제 부산 왔다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나는 그래도 조 승지하고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지?”
-그럴 리가요.
갑자기 청장님이 부르셔서 안에 들어갔었는데 그사이에 전화가 와 가지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 그게, 너네 본청 감찰 경감들 말이야.
혹시 부산에 내려갔냐?”
-어머, 모르셨어요?
좀 됐는데. 지금 선따와이 때문에 난리잖아요.
“뭐? 선따와이?
그게 무슨 소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