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8화
#788. 조사
선따와이라는 말에 부산청장 역시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선따와이를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래도 청장님은 경찰에서 최고 고참 중에 한 분이라 아실 줄 알았는데요.
“원래 아는 것 빼곤 다 모르는 거야!
그래, 선따와이? 그게 뭔데?”
조연희는 최근 동부서를 둘러싸고 남부서와 부산진서에서 있었던 움직임, 그리고 감찰이 내려간 경위 등에 대해 부산청장에게 설명했다.
“뭐야? 정말로 그런 일이 우리 부산청에서 있었단 말이야?
아니 그럼 청장님도 다 아시는 얘기야?”
-물론이죠. 제가 아는 걸 청장님만 모르고 계실 리가 없잖아요.
“하아, 이거 큰일인데…….
분명 본인들이 사표 내면 다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지? 정말이지?”
-그렇다니까요.
“오케이, 알았어. 그럼 감찰에서 보고서 올라오면 즉시 사표 수리하도록 하지. 대신에…….”
-네네, 소문 안 나게 마무리 잘 하라는 말씀이시죠?
“캬, 너는 무슨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그래?
여기 앞에 앉아 있는 새끼들은 대놓고 말을 하는데도 못 알아처먹는 놈이 천지인데 말이야. 이런 놈들한테 경정 계급은 너무 사치야, 사치.
야 임마 감찰계장! 너 조 승지하고 계급장 서로 체인지 해! 그게 너도 마음 편하잖아!”
-에이 청장님도, 너무 그러지 마세요. 다음부터 잘 하면 되죠.
그리고 공식 석상에서 자꾸 뭐라 하시면 본인도 반감이 크게 생기기 때문에 나중에 은근히 청장님을 뒤에서 씹고 다닐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냥 뭐라 할 것만 딱 뭐라 하고, 대인배처럼 웃고 넘기세요.
“그럴까?
하기야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하루가 멀다 하고 병X 같은 짓거리를 해 대니…….
아 참, 전에 본청에 있을 때 조 승지가 구해 준 진해 용원 오도리 있잖아. 기억나?”
-그럼요, 그때 제일 맛있게 드셨잖아요.
“내가 그 생새우 맛을 잊을 수가 없어 가지고 말이지, 어제 부산시장하고 같이 가서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어도 기가 막히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내일 우리 체송 가는 편에 좀 보낼 테니까 점심에 청장님하고 차장님, 그리고 다른 국장들하고 식당에서 잡수시라고 해.”
-정말요?
너무 좋죠.
“참, 청장님이 막걸리 좋아하시잖아?”
-없어서 못 드시죠.
“내가 산성 막걸리하고 동래 파전도 같이 보낼 테니까 같이 내드리라고.”
-파전을요? 다 식어서 맛이 없을 텐데?
“재료를 보내면 니가 알아서 구우면 되잖아?”
-하긴 그렇죠.
아무튼 감사드려요.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그래, 맛있게 먹어! 수고해!”
철컥!
전화를 끊자 다들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대체 선따와이가 뭐지?’
“이봐 감찰계장!”
청장이 갑자기 감찰계장을 불렀다.
“옙! 감찰계장 경정 하정식!”
“선따와이가 뭐야?”
“…….”
“야 형사과장!
선따와이가 뭐야!”
“……그게 저도 잘…….”
“아이 X발, 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청장이 그렇게 성질을 내자 다들 고개를 숙이고는 옆 사람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여튼 한심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내가 이런 참모들을 믿고 부산 치안을 책임져야 한다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내가, 이 청장이 본청 부속실 경사한테 직접 전화해서 본청 감찰 동향도 물어보고 알려 줘야 되고, 또 본청 부속실 직원도 아는 선따와이란 말도 가르쳐 줘야 되고, 당신들 대체 하는 일이 뭔데? 뭔 쥐뿔도 없는 것들이 건방지게 참모랍시고 폼 잡고 앉아 있으면 다야? 쪽팔리지도 않아?”
“…….”
“남부하고 부산진 형사과장들이 동부 관내 대형 나이트에 가서 자기네가 이번 겨울에 동부 형사과장으로 올 테니까 지방청에 로비 좀 하게 돈을 요구해서 받아 갔고, 아테나 나이트에서는 누가 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찾아오는 형사과장들한테 다들 봉투 하나씩 줬다는 거야. 김세민이가 일절 따와이를 안 하니까 다른 서에 있는 놈들이 볼 때는 동부가 먹음직스러웠겠지. 그러니까 가서 맘 놓고 그런 식으로 따와이를 한 건데 그게 청장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야.
아니 근데 아직 인사철도 아닌데 누가 동부서 형사과장 자리가 나온다고 그런 헛소문을 퍼트린 거야? 지난번에 김세민이 자리는 절대 손대지 말라고 내가 한번 이야기를 했을 텐데, 다들 기억 안 나나? 그 소릴 듣고도 감히 동부 관내 가서 그 짓거리를 했단 말이야?
누구야, 대체 누가 김세민이가 이번에 동부에서 나간다고 헛소문을 낸 거야?”
그러자 이수흥 형사과장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했다.
“제가 그만 실언을 했나 봅니다.”
“뭐야! 형사과장, 당신 미쳤어!”
“죄송합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며칠 전에 남부하고 부산진 형사과장들이 들어와서 동부 형사 자리는 언제 비냐고 묻길래 제가 별생각 없이 부임한 지 제법 지났으니까 다음번 인사 때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정도로만 말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제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수흥 형사과장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런 한심한……. 이거 봐! 당신이 뭔데 맘대로 옮기냐 마냐 하는 거야!
안 봐도 뻔하지, 보나 마나 일선서 형사과장들이 인사차 들어와서 봉투 하나 내밀면서 동부 형사과장 자리가 비느냐고 물어보았겠지. 그게 자리 탐내는 건 줄 뻔히 알면서도 눈앞에 놓인 봉투에 눈이 멀어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날짜 계산만 하고서는 그렇게 대답을 했을 테고 말이야. 한심하다 한심해…….”
“…….”
“이거 봐, 내 계급이 뭐야? 당신 입으로 한번 이야기해 봐.”
“치안정감이십니다.”
“그래, 나 치안정감이야. 근데 내가 방금 뭐 하는지 봤어, 못 봤어?
본청 부속실 여자 경사한테 아부하고 오도리 보내고, 동래 파전에 쌀 막걸리까지 보내는 걸 보고도 몰라?”
“근데 청장님, 제가 직언 한마디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제가 볼 때는 청장님께서 조 승지란 사람한테 너무 잘해 주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뭐?”
“겨우 부속실 여직원일 뿐인데, 그렇게 하실 필…….”
“이런 멍청한 새끼, 지금까지 내 이야길 뭘로 들었어!
우리 본청장님은 조 승지 말이라면 100% 신뢰를 한단 말이야! 막말로 조 승지가 지금이라도 청장실에 들어가서 형사과장 당신 트집 잡기 시작하면 당신은 지금 당장이라도 옷 벗고 나갈 수도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
“…….”
“괜히 다들 조 승지 조 승지 거리는 게 아니라고. 아주 무서운 녀석이지.
거짓말도 안 하고 필요한 사실만 이야기하는데 그걸 교묘하게 이용해서 상대를 휘두르는 재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기껏 경사 나부랭이가 깝쳐 봐야 얼마나 깝친다고 그러냐, 우리 청장이 드디어 돌았구나,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니들도 직접 겪어 보면 알아.
너네들이야 앞으로 본청에서 근무할 일이 거의 없겠지만, 거기 근무하는 놈들은 우리 조직에서 엘리트들만 골라서 뽑아 놓은 건 두말하면 입 아플 테고, 그 기라성 같은 놈들도 전부 조 승지 손바닥 위에서 제자리 뛰기 시작한 지 오래야.
젊은 간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고참 간부들도 마찬가지야. 조 승지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상투 잡고 뛰어논 지 오래라고.
청장님 선까지 올라가는 사안을 어느 과에서 기획을 했다, 그러면 누구보다 먼저 조 승지한테 허락을 맡아야 돼.”
“예?”
“그게 진짭니까?”
“내가 비싼 밥 처먹고 당신들 앞에서 헛소리나 하고 있겠어?
SR인가 뭐시기를 사전에 제출해서 심사를 받지 않으면 안 돼.
총경? 경무관? 다들 밥이야. 경무관도 참모 회의에 들어갈 때 자기가 앉는 의자도 들고 들어가야 하고 자기가 마실 머그잔도 직접 가지고 와야 돼. 그 룰을 전부 조 승지 그게 만들었다고.”
“…….”
“내가 치안감 시절에 조 승지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안 올 지경이지만 여러분도 다 봤다시피 꼼짝 못 하잖아? 아니 치안정감도 이 짓거리를 하는데 겁대가리가 없어도 유분수지, 김세민이가 그 조 승지 사수인데 그걸 건드리나 그래?
더구나 김세민이만큼 열심히 일하는 간부가 부산 시경에 있냐고! 상을 줘도 뭐 할 판에 긁어 부스럼만 만들려고 말이야, 에이 나쁜 새끼들. 생각 없는 놈들! 한심하다 한심해!”
그때 길전수 제1부장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청장님.”
“왜!”
“그럼 이번 감찰 건도 청장님 말씀에 따르면 조 승지가 기획한 일이겠군요.”
“아 몰라서 묻나? 자기 사수를 건드리니까 감찰을 움직인 것이겠지!”
“제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라, 누가 조 승지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김세민 경감은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
“흠, 듣고 보니 그러네.
누구 아는 사람 없나?”
“…….”
“아니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다들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
해산!”
* * *
이틀째 부산진 경찰서 감찰계에 출근한 본청 감찰 박준호 경감은 형사과 김명수 경사를 불러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부산진 경찰서 6개 형사반의 살림 사는 경사급 도 반장들을 하나하나씩 감찰계 사무실로 불러올려서 진술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충성! 형사계 경사 김명수! 감찰계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디 가서 짬으로는 절대 꿀리지 않는 형사계 고참 경사였지만 감찰계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깨끗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본청 감찰 경감들한테 주눅이 들어서 마치 훈련 마치고 자대 입소하는 신병처럼 신고를 하는 모습이었다.
고함을 지르며 신고하는 김명수 경사를 한번 곁눈으로 힐끗 본 박준호 경감이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리 와서 앉아.”
소리가 작아 무슨 말인지 몰라서 김명수 경사가 쭈뼛거리면서 옆에 앉아 있는 부산진 감찰계장인 노재식 경위를 쳐다봤더니 노 계장이 감찰 경감 앞자리에 앉으라며 손짓을 해 주었다.
철제 의자 끝에 살짝 걸터앉아서 감찰 경감과 눈이 마주친 순간.
“똑바로 앉아.
어디서 삐딱하게 걸치고 있어.”
“예?”
“허리 펴고.
자세 똑바로 해.”
그저 나지막한 말만 몇 마디 할 뿐이었지만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감찰 특유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시정하겠습니다.”
김명수 경사는 허리를 펴고 오래전 논산 훈련소에서 맨 처음 배운 차려 자세를 떠올렸다.
‘허리를 곧게 펴고 턱은 바싹 당기고 눈은 상방 15도 전방을 보며 절대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그리고 상관과 마주하면 절대 눈을 쳐다보아서는 안 되고 상관의 인중을 쳐다보면서 대답을 하여야 한다.’
글자 한 자 안 틀리고 그대로 기억을 해내는 자신의 기억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따와이에 걸려서 옷 벗고 나간 경찰은 취업을 할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사채업자들 사무실이나 아님 나이트에서 일감 받아 가지고 외상 술값이나 대신 받아 오고 푼돈 좀 얻어먹는 사람들, 변호사 사무실에 그저 적만 올려놓고 온종일 부산 시내 경찰서나 검찰이나 법원으로 돌아다니면서 사건 하나 물어 와서 조금 수당을 받는 그런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래서 형사들은 따와이 문제로 감찰 조사가 시작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아주 예민해졌고,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 간의 의리도 딱히 없는 편이었다.
박준호 경감이 고개를 들어 김명수 경사와 시선을 마주했다.
“김명수 경사.”
“네.”
“어제 우리가 대충 다 조사를 마쳤는데 말이지, 당신은 그냥 확인 차원이니까 사실대로 얘길 하면 당신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 설사 당신이 직접 형사과장한테 봉투를 가져다주었다고 해도 말이지. 그냥 상명하복 관계에 있는 특수한 처지라는 것이 위법성을 조각한다는 말이야.
대신 정직하게 진술을 해 줘야 한다고. 내 말 알아들었죠?”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는 것은 감찰 특유의 화법이었다.
감찰계장 자리에 앉아서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처음에는 지나치게 거만해 보일 정도의 반말로 했다가 마지막에 존대를 하면 상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 한구석이 안심을 하게 되고 경계심이 느슨해져서 사실대로 진술을 하게 된다는, 감찰 조사 기법 교양을 할 때 단골로 나오는 메뉴였다.
감찰계 사무실에 들어온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가진 상대를 먼저 기선 제압한 다음에 점차 유한 대접을 해 줌으로써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예, 뭐든지 말씀만 하시소.”
“자, 빨리 갑시다. 부산진 형사과장인 손일진 경정한테 결재 시마다 봉투를 가져다준 사실이 있습니까?”
타닥, 타다닥.
빠르게 타자를 치는 소리가 마치 김명수 경사더러 어서 대답하라는 듯 재촉하는 소리로 들렸다.
“예, 있습니다.”
“왜 결재할 때마다 돈을 줬습니까?”
“봉투 안 내놓으면 결재를 안 해 주니까요.”
“돈을 주지 않으면 결재를 안 해 준다라…….
그럼 그 돈은 누구한테서 나오는 돈입니까?”
“형사 입건된 피의자나 합의를 한 피해자들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본인들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요?”
“그런 사실 없심니다. 우리가 뭔 돈이 있어서 봉투를 만들겠습니까?”
“그럼 사건 당사자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쉽게 돈을 줍니까?”
“어데예, 돈 뽑아묵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돈을 달라 칸다 해서 알겠심니다 카고 돈이 쉽게 나오겠심니까?”
“그럼 어떻게 돈을 받습니까?”
“그때그때 다른데요. 너무 많아서 다 이야기하긴 좀 그런데…….”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면 족합니다.
최근에는 어떤 방식으로 돈을 받았습니까?”
“음……. 일단 겁을 주야지예. 열받게 하면 구속시키뿐다 카고 유치장에 처넣어삡니다.
그라모 십중팔구는 억수로 쫄거든예. 타이밍 대충 재 가지고 순찰하는 척하고 유치장 쪽으로 슥 지나가면 형사님 형사님 카면서 돈 뱉어내게 되어 있심니다.”
“그럼 십중팔구를 제외한 나머지 하나는요? 돈을 안 내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안 내면 금마는 바로 영장 치가 보내삐야지예.”
김명수 경사의 진술은 막힘이 없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합의를 한 폭행 사건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럴 때도 영장을 보낸다는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