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1화
#801. 현란한 신문
김아인이 인터폰을 확인하러 가는 사이에도 밖에서는 계속해서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쾅쾅!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던 나영운이 짜증을 냈다.
“어휴 시끄러워! 뭔데? 누구야!”
“잠깐만 오빠.”
김아인이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달칵!
“네, 누구세요?”
[속달 등기입니다~]
“뭐래?”
“집배원인 것 같은데, 등기 어쩌고 하는데 뭐가 뭔지…….”
“좀 이상한데……?”
뭔가 의심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는 나영운이 소파에서 일어나 뒤뚱뒤뚱 걸어가더니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살이 얼마나 쪘는지 백수십 킬로는 족히 나가 보이는 몸집이었다.
“여보쇼, 갑자기 등기는 뭔 등기야?
그리고 문은 왜 그렇게 쳐 두들기는 건데!”
[아 그게, 본인한테 직접 사인을 받아야 하거든요.
얼른 문 좀 열어 주세요~]
“야, 너 뭐 등기 올 거 있냐?”
그러자 김아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주소 아는 사람이라고는 마담 언니밖에 없는데 그 언니가 굳이 뭐 하러?
필요하면 전화를 하겠지.”
쾅쾅쾅!
[문 열어 주세요~]
계속해서 문을 두들기자 짜증이 난 나영운이 현관으로 가 출입문을 벌컥 열었다.
“야이 X발놈아, 문 다 부숴지겠…….
우앗! 니들 다 뭐야!”
문을 열자마자 양옆에서 득달같이 강태구 형사와 장명식 형사가 덮친 것이었다.
뒤로 벌러덩 넘어져 한 바퀴 구른 나영운은 형사들을 피해 뒤로 기어가더니 베란다로 나가 창문틀에 한쪽 다리를 걸쳤다.
“야이 X발!”
“뭐고 이 새끼가, 얼렁 안 내려올래!”
“니가 내려오라면 내가 내려와야 되나!
X발! 가까이 오지 마라이! 한 발짝만 더 가까이 오면 내 요서 뛰어내리가꼬 콱 죽어삘 기다! 알았나 이 X발놈들아!”
그러자 강태구 경장이 나영운이 있는 베란다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안 듣기나! 오지 마라고! 확 뛰어내리뿌까!”
“마, 진정해라. 죽기는 와 죽노? 목숨 아까운 줄 알아야지.”
“X랄하지 마라, 새끼야! 그래 놓고 X발 내 붙들어가 사형시킬라꼬 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나!”
나영운이 그렇게 고함을 빽빽 지르자 강태구 형사가 인상을 썼다.
“하, 이 새끼 이거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함만 더 소리 지르고 X랄하면 니는 뛰어내리기 전에 내한테 처맞아서 뒤질 줄 알아라.
무슨 말인지 알았나?”
강태구 형사가 그렇게 겁을 주자 금세 또 수그러드는 나영운이었다.
“…….”
“마 잘 들어라이, 교통사고는 합의만 되면 어떻게든 X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이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하자 나영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그게 진짭니까?”
“이 새끼 이거 교통사고도 몇 번 내 봤다드만 영 돌빡이네. 그걸 인자 알았나?”
“아니, 그동안은 우리 집에 변호사가 다 처리를 해 줘 가지고…….”
그러면서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자 장명식 형사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하이튼 우리 옛날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니까,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드만…….
마! 니 뭐 X발 금수저라매! 그라면 어련히 느그 아빠가 알아서 빼내 줄까 봐!
열 받게 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내려온나, 안 그라모 콱 X발 내가 니 여기서 떨어뜨리뿐다이!”
그러면서 장명식 형사가 베란다 발코니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쾅!
“우왓!
하지 마이소!”
“어? 이 새끼 봐라.
안 내려와?”
쾅쾅쾅!
“우와아악!
알았어예! 내려가께예! 내려간다고예!”
* * *
수갑을 채운 나영운을 앞세우고 동부 경찰서 정문을 들어오는 장명식 형사와 강태구 형사는 기분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2층과 3층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어느새 창가에 몰려들어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점마는 뭐 저렇게 크노? 무슨 씨름 선수 아이가?”
“강태구하고 장명식이, 저 X만 한 것들이 점마 잡는다고 욕 X나게 봤겠는데? 킬킬킬!”
형사과 안으로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김세민과 동부서 형사들이 떠들썩하게 두 형사를 맞아 주었다.
“크~ 장 형사! 강 형사! 제대로 한 건 했다이?”
“아입니다, 하핫.”
“아이긴? 입이 귀에 걸려서 주 째질라 하는구만.”
“강 형사, 장 형사. 수고했어. 고생 많았다.”
김세민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강 형사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어데예, 아입니다.
근데 우리 과장님 말씀이 진짜 맞기는 맞네예.”
“응? 내가 뭐라고 했는데?”
“아니, 전에 과장님이 그러셨다 아입니까. 형사가 제일 보람을 느낄 때는 며칠이고 억수로 쫓던 놈 하나 수갑 채아가 들어올 때라고.
딱 지금이 그 기분입니다.”
“그렇지?”
“네, 형사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럼 저쪽에 앉혀 놓겠습니다.”
김세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정명 주임을 불렀다.
“이 주임.”
“예, 과장님.”
“지금 바로 신속하게 조서를 받도록 해. 곧 나국배하고 변호사가 들이닥칠 테니까.”
“아 예,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심니다. 내일 영장 보내려면 서둘러야지예.”
“그래, 저놈도 백이 보통은 넘을 거야. 여차하면 영장 보내기도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알겠심니다. 바로 시작하겠심니다.”
이정명 주임은 형사 5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영운 쪽으로 갔다.
나영운은 너무 엉덩이가 커서 의자 한 개가 부족해 두 개를 나란히 붙이고 나서야 겨우 엉덩이를 걸칠 수가 있었다.
이정명 주임이 직접 타자기 앞에 앉아 인정 신문을 시작했다.
“이름?”
“나영운.”
“생년월일.”
“19XX년…….”
그렇게 인정 신문을 마치고는 본 신문에 들어가면서 이 주임이 제일 먼저 꺼낸 것은 바로 진술 거부권이었다.
“나영운 씨, 당신은 지금 아무영 씨 도주 치사 사건의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반드시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이며 만약에 그 진실이 당신에게 불리할 경우에는 진술을 거부해도 좋습니다.”
“예.”
“그러나 진술을 거부하게 되면 나중에 구속 영장의 발부나 재판 시 양형에도 판사가 참고를 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예.”
“자, 질문입니다. 죽은 아무영 씨를 알고 있습니까?”
보통 형사들이나 교통사고 조사 요원들은 첫 질문으로 사고를 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상례였는데 특이하게도 이 주임은 피해자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먼저 한 것이었다.
“…….”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나영운은 좌, 우로 동공을 열심히 굴리는 모습이었다.
‘젠장, 변호사는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그리고 우리 마누라는!
전화를 하긴 한 거야?’
아까 수갑을 차고 김아인의 집을 나올 때 김아인에게 살짝 전화번호를 불러 주고는 빨리 연락해 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대답 안 할 겁니까?”
“…….”
“흠, 모른다고 하지 않는 걸 보니 일단 아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죠.”
“아, 아니 저 그게…….”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
“그럼 질문을 좀 바꿔 보죠.
아무영 씨를 만난 적이 있죠? 첫 만남이 언제입니까?”
“…….”
“가게로 찾아왔었습니까? 아님 다른 곳에서 만났습니까?”
“…….”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버티며 이 주임의 눈치를 보는 나영운이었다.
그러자 오히려 이정명 주임은 온화한 표정을 짓고는 괜찮다는 듯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 눈치 볼 것 없어, 괜찮아요.”
“예?”
“진술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자신한테 그 진술이 불리하기 때문이니까, 이해합니다. 형소법 규정에도 보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은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거든요?
나영운 씨, 내가 지금 강요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죠? 그렇습니까?”
“예!”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을 하는 모습이었다.
“씩씩하네요, 좋습니다.
근데 말이죠. 우리가 나영운 씨의 아버지인 나국배 전 의원에게서는 아무영 씨를 서너 번 만났다는 진술을 이미 확보했습니다. 혹시 아버지가 아무영 씨를 나영운 씨에게 만나 보라고 소개를 해 준 것은 아닙니까?”
“아닌데요.”
“그게 아님 나영운 씨가 아무영 노인을 아버지께 소개를 시켰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자기 부모나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주임은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질문을 한 것이었다.
“하~ 진짜, 그게 아이고요.
그 영감이 먼저 우리 가게에 찾아왔다고요.”
“호오……. 그럼 만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군요.”
“……!”
드디어 나영운의 입에서 먼저 아무영을 만났다는 의미 있는 진술이 나왔다.
뒤에서 보던 형사들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영운은 당황했는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형사 3반 주임 책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김세민이 이정명 주임을 향해 손을 들고는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이제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정명 주임이 이번에는 새로운 질문을 했다.
“사고가 있었던 그날 저녁에 말입니다. 살로메에서 친구들과 술을 먹었던 것은 이미 증인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건 부인해도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더군요. 그날 저녁의 상황을 우리가 들어 봤더니 먼저 술자리가 끝나고 나와서는 친구들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차를 가지고 갈 거라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면서요?
평소에도 술 마시고 그렇게 자주 음주 운전을 하는 편입니까?”
그러자 음주 운전까지 걸리면 큰일 나겠구나 싶어 지레 겁을 먹은 나영운은 강하게 부인했다.
“절대 아이라예. 지가 술 먹고 운전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라예. 그다음 날 아침에 일찍 차를 가지고 지방에 올라가야 할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들어갔심니다.”
나영운이 자신은 평소에 절대 음주 운전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정명 주임이 약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상하군요. 평소에 음주 운전을 전혀 안 하던 사람이 그날따라 일부러 차를 가지고 가려고 했다? 그렇다면 뭔가 새로운 상황이 생겼다는 뜻인데……. 가령 출입구에서 아무영 씨를 만났다거나…….”
“그, 그런…….”
“아아, 행색이 초라한 노인이 출입구에서 서성대는 것을 봤다는 나이트 종업원들 진술은 우리한테 쌔고 쌨습니다. 그날 나이트 입구에서 서성이는 아무영 씨를 봤다는 사실을 설마 부인하는 건 아니지요?”
“…….”
또다시 말이 없어진 나영운이었다.
“그럼 아무영 씨를 보고서는 바로 차를 가지고 밀어 버려야겠다는 살의를 품고 그대로 돌진해서 차로 받아 버리고 도주한 것입니까? 차 앞의 범퍼를 봤는데 상당히 많이 찌그러져서 그날 바로 중앙동의 카센터 주인을 깨워서 차 수리를 맡기셨던데, 그럼 나영운 씨가 아무영 씨를 차로 치었다는 사실은 다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겠군요. 부인하지는 않으시죠?”
“…….”
이정명 주임이 빛의 속도로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탁탁!
[……앞에 앉은 나영운에게 아무영이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차로 들이받고 그대로 도주한 것을 부인하느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일단은 시인한 것으로 보임.]
상대가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조서의 문답이 끝난 항목 사이마다 이정명 주임은 조사자의 의견을 넣어서 조서를 작성했다.
그래야만 나중에 판사나 검사가 볼 때 지금 조서 받는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사람을 치었다는 것은 충분히 인식을 하신 상태인데 차를 정지시키고 내려서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안 했습니까?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 이것까지 부인을 하게 되면 아주 불리한 입장에 처할지도 모르니까 신중히 생각해서 대답해야 합니다.”
이 주임이 그렇게 겁을 주자 나영운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아입니다, 그런 게 아이고예…….
지가 마 한번 겁만 줄라꼬 그리 차를 세게 몰았던 것뿐이고 뭔가 차 앞에 덜컥거리는 건 느꼈는데 그게 사람인 줄은 참말로 몰랐심니다. 고마 인도 쪽 보도블록 경계석인 줄 알았다 아입니까?”
“이제야 인정을 하는군요. 근데 보통은 덜컥거리게 되면 그게 뭔가 싶어서 확인을 하지 않습니까?”
“그때 술이 좀 째리 가지고…….
그라고 설마 사람을 치었다고 해도 거기에 가게 종업원들도 많이 있었시니까 병원에 데려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지는 마 솔직히 음주 운전도 맘에 걸리고 해서 그냥 갔심니다. 지가 잘못했심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아, 나한테 뭐 죄송할 것까진 없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도록 하지요. 나영운 씨는 술집 입구에서 서성대는 아무영 노인을 봤습니다. 그리고 아무영 노인을 겁주기 위해서 차를 세게 몰았고 뭔가가 차 앞에 부딪혔는데 그게 보도블록인 줄 알았다, 그런 말이죠?
근데 만약에 그게 사람이었더라도 주위에 술집 종업원들도 많이 나와 있고 하니까 병원에는 데리고 가 주겠지, 만약에 병원에 안 데리고 가서 죽는다고 해도 딱히 내 잘못은 아니야.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한 것은 아닙니까?”
이정명 주임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묻기 위해서 그렇게 질문을 하자 나영운은 필사적으로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라예. 지가 아무리 막되어 묵었다 캐도 그 정도는 아이라예.”
“그럼 왜 그랬죠?”
“그때는 술을 먹어서 그런지 속에서 뭔가 팍 하고 올라오는 거라예. 매일같이 찾아와서 다보탑 사자상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생떼를 쓰니까 존X 짜증 난다 아입니까?
저도 할 만큼 했어예. 중부 경찰서에 신고도 해 보고, 돈을 줄 테니까 좀 끄지라고 사정을 해 보기도 하고 아무튼 온갖 X랄병을 다 틀었는데도 이 영감탱이가 요지부동인 거라예. 아니 우리도 없는 사자상을 어디에서 찾아서 가져온단 말입니까? 하도 생떼를 쓰니까 우리도 속으로는 저 영감탱이 어디서 콱 뒈졌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다꼬 욕은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고의로 처박아가 직이겠심니까?”
“……지금 나영운 씨 말은 자신이 저지른 일은 맞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뭐 그런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이정명 주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자 잠시 변명거리를 찾던 나영운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었다.
“마, 지가 다 잘못했심니다.
우리 아부지한테는 아무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 주이소. 책임은 다 제가 지겠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