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814화 (814/869)

제 814화

#814. 끗발 싸움

송아영 검사가 김세민이 하려는 수사가 무모하다고 생각했는지 꽤나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그럴 수야 없죠. 법 집행 기관에서 위법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체할 것 같으면 뭐 하러 출근합니까? 그냥 집에 누워 가지고 신문이나 보면서 나쁜 놈들 욕이나 하면 몸이야 편하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고 싶습니다.

매 건 보고하고 지휘를 받을 테니까 협조 부탁드립니다.”

-세민 씨, 아니……. 김 과장님. 내가 진짜 걱정이 되어서 그래요.

우리가 무슨 개인 사업자도 아니고 엄연히 조직에 속한 사람들인데, 괜히 윗대가리들한테 미운털 박혀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무슨 말씀 하려고 하시는진 알지만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위에 눈치 보면서 사건 덮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해 봐야죠.”

-물론 저도 공감해요. 근데 우리가 그렇게 하다가도 위에서 선이 달려 가지고 바로 지검 특수부에서 사건을 넘기라고 하면 그땐 어쩔 수가 없단 말이에요. 서 부장님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뭐 입건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일단 부검 지휘부터 좀 내려 주셨으면 하는데요.”

-에휴,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아무튼 무슨 일 있으면 수시로 연락해요. 나랑 서 부장님은 항상 김 과장님 편이니까.

* * *

부검 지휘가 내려와서 정성길 주임이 부검을 하기 위해 형사들과 영도로 떠나고, 김세민은 시청에 간 형사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경비 전화가 울렸다.

디디디디!

“감사합니다. 동부 형사과장 김세민 경감입니다.”

-음~ 김 과장, 내 시경 수사 2계장입니다. 고생 많죠?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시경 수사 2계장인 서창진 경정이었다.

고향은 하동이었고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와 감찰계장과 더불어 서부 경남 모임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사실 수사 2계장이란 자리 자체가 꽤나 끗발 있는 자리였다.

지방청 수사과에는 경감으로 서무인 수사 1계장과 경제계장이 있었는데 수사 2계장은 지방청에 직접 고소나 고발이 들어온 사건들을 수사하면서 돈이 안 되는 것은 일선 경찰서 조사계로 내려보내 버리고 돈이 될 만한 사건만 선별해서 사건을 하는 편이었다.

청장까지 결재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 선까지 인사가 될 만한 사건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너네들끼리 닦아 먹었다는 오해를 받기가 십상이었기에, 수사 2계장이나 경제계장은 아무나 해도 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경감 계장인 경제계장 역시 경제인 관련 사건을 하게 되는데, 주로 부도 처리된 회사가 발행한 어음이나 수표의 정산을 두고 당사자 간 분쟁이 일어나면 시경에다가 사기죄로 고소를 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수표의 경우는 부정수표 단속법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만, 어음의 경우는 발행 당시에 지급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기죄가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고,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이 점을 악용해서 거액의 어음 부도를 낸 후 시경 경제계를 통해서 법망을 피해 가곤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일반 공무원 뇌물 범죄는 수사 2계 소관이고, 기업인들의 부정 회계나 비리는 경제계 소관이었다.

따라서 전체 부산 시경에서 가장 노른자리 경감은 경제계장이었고, 경정 자리는 수사 2계장이 정보 투하고 맞먹는 자리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특히, 정보 투와 수사 2계장이 서로 총경 승진에서 경쟁하지 않고 사이좋게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면 나중에 총경도 달고 집도 몇 채씩이나 장만해 나온다고 하니, 아무나 갈 수는 없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런 자리들은 서부 경남 출신들이 완벽하게 장악을 하고 있어서 경북 출신이나 동부 경남 출신들은 군침을 삼키면서 변두리나 도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상하네, 평소 모가지에 힘 주고 다니느라 바쁜 양반이 뭣 하러 전화를 했지?

무슨 아쉬운 소리 할 일이라도 생긴 건가…….’

김세민은 전화를 걸어 온 의도가 불순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일단 티를 내지는 않기로 했다.

“아 네, 괜찮습니다. 근데 웬일로 전화를 주시고…….”

-거기 변사 사건이 발생했다고 들었는데, 그거 부검한다면서?

“그렇습니다.”

-우리 김 과장은 서울에서 와 가지고 아직 부산 정서는 잘 모릴 것 같아서 내 한마디 충고하는데, 마 대충 부검하고 끝내소.

“예?”

-일단 검사 지휘 내리온 것을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실 기고, 그거 사실대로 보고해 봤자 김 과장만 골치 아프게 된다 그 말이라. 내 말 무신 뜻인지 알아들었제?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요.

저희 관할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지금 부검을 하라 마라 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니, 내 말은 그기 아이고.

내 우리 김 과장 칭찬하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요. 일 잘한다고 시경에서 소문이 자자하던데, 내가 나중에 벼슬 달고 나가문 김 과장을 내 후임으로 추천할 생각이라, 그라이까 우리 지금부터 잘해 봅시다.

“뭘 잘해 보자는 말입니까?”

-김 과장도 지금 내 있는 자리가 무슨 자린지는 알 거 아인가베. 내 자리로 올라 카문 인수인계받아야 할 기 한두 개가 아인 기라. 한 한 달은 인계받아야 되거든?

그때 되면 매일 얼굴 보고 할 낀데 벌써부터 얼굴 붉힐 일 만들어서야 쓰나.

서로 상부상조하는 기지, 안 그렇나.

그 말을 듣자 김세민은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해운대 역전소장 갈 때 듣던 소리하고 비슷한 기분인데…….’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래되어뿟네. 내는 또 회의가 있어서~

아무튼 쫌 그렇게 잘 처리해 주소, 말 안 나오그로! 그라모 나는 김 과장만 믿고 전화 끊는데이? 다음에 밥이나 한 그릇 하자고. 알았제?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을 하고서는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저기요.”

-하…….

내 알아듣게 말 다 안 했나?

또 왜?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아니 근데 X발, 왜 자꾸 반말을 하십니까?”

-무…… 뭐? 엉?

방금 뭐라꼬 캤노?

“다 들었으면서 되묻기는…….

혼자서 X대로 실컷 지껄여 놓고는 나보고 알아들었냐고 하면 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하~ 이 새끼 이거 진짜 또라이 새끼네.

내 소문은 익히 들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니 지금 어디고? 내 지금 글로 갈 테니까 딱 기다리라.

“어디긴 어디야, 사무실이지.

나는 당신네들같이 업무 시간에 김 사장 박 사장 만나서 얻어처먹고 그런 거 안 해.”

-우와악! 이 새끼가!

니 죽을래!

“아뇨? 오래 살 건데요?

그쪽 같은 인간들이 설치고 다니면서 물 흐리는 거 못 하게 하려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아무튼 직속상관도 아닌데 함부로 전화해서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하지 맙시다. 계급이 높아도 내가 그쪽 말 들을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이만 끊습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가 어디서 훈장질이고!

마! 여기는 부산이다. 니같이 서울에서 쫓겨 온 놈들이 함부로 설치는 데가 아이라꼬! 알아 처묵었나!

별 미친 자석이 감히 어른이 말하는데 건방지게 토를 달아?

“나도 부산 온 지 꽤 됐고 돌아다닌 근무지도 제법 되는데, 아직도 그런 소릴 하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헛소리는…….

그리고 우리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어디서 얻어처먹고 와서 전화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다 알아보는 방법이 있으니까 몸 사리시고.”

-이 새끼가 진짜! X발 말 다 했나!

그래 좋다, 이래 나온다 이기제? 함 두고 보자!

딸깍!

그렇게 일방적으로 욕을 끓어 퍼붓더니 전화를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김세민도 성질이 나서 수화기를 [쾅] 소리가 나도록 세게 내려놓았더니 마침 결재를 들어오던 관리 주임이 놀라서 다가왔다.

“아니 과장님, 무슨 전화길래 그라십니까?”

“시경 수사 2계장한테서 청탁 전화가 왔어. 그냥 쳐들어가서 확 죽여 버릴까?”

김세민이 정색을 하고 그렇게 이야기하자 강갑도 주임이 적잖이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하이고, 과장님 참으시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 수사 2계장 뚱띠 같은 거, 금마 그거는 과장님한테 한 대 맞으면 바로 즉삽니다 즉사.”

“말이 그렇단 거지.

그나저나 수사 제대로 시작하기 전부터 이렇게 잡음이 많아서야, 골치깨나 아프겠는데?”

“뭐 예상했던 부분 아입니까. 그래서 말인데예, 이거는 제 생각인데…….”

강 주임이 시원하게 말을 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것이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사람 답답하게스리…….”

“어차피 이 사건 우리가 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뭉개자는 소리는 절대 아이고예, 시경 점마들한테 뺏기기 전에 송 검사한테 넘기는 게 낫지 않는가 해서예.”

어차피 사건도 못 하고 시끄럽기만 할 바에는 차라리 일찍 검찰에 주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뜻으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넘길 때 넘기더라도 일단 우리 관할에서 일어난 사건이니까 하는 데까진 해 봐야지.

혹시 나 말고 다른 직원들한테라도 청탁 전화 오면 무조건 거절하라고 그래. 비스무리한 이야기라도 꺼내는 것 같으면 아예 전화 끊어 버리라고 하란 말이야.”

“예, 과장님.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 * *

금정산 형사가 김철중 형사와 함께 부산시청 청사 내로 들어갔다.

부산시청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청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현관에 들어서면 높다란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제강점기에 고종 황제가 사용하던 덕수궁의 러시아제 샹들리에를 일본으로 가져가려다가 일본이 항복을 하는 바람에 그냥 1부두에 처박아 두었고, 그걸 가져다가 걸어 놓았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였다.

좌, 우로 나선형으로 둥글게 복도가 나 있고 층마다 사무실이 별도로 있는 구조였으며 도시계획국은 3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입구에는 시장 전용과 외부 인사 전용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일반 직원들은 사용하지 못하게 청경이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지키고 있었다.

“X발, 우리는 외부 인사 아인가? X같네…….”

금정산 형사가 그렇게 투덜거리자 옆에 따라오던 김철중 형사가 이상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참 내, 이래 좋은 데서 근무하면서 머 한다꼬 자살을 하노?

내사 우리 사무실이 이 정도만 되면사 퇴근도 안 하겠다.

안 그렇심니까?”

“그거를 인자 우리가 알아내야지.

일단 사무실에 들어가서 내가 높은 놈부터 간을 볼 테니까 니는 한 명씩 살펴보고, 어딘지 수상하다 싶은 놈이 보이면 살며시 델꼬 밖으로 나가라.”

“밖에를요?”

“그라모, 밖에 가서 물어봐야지 안에서는 지대로 대답 안 할 끼다.”

“알겠심니다.”

도시계획국 사무실은 광활하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아주 넓은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책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직원들의 모습은 마치 명절 전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처럼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하따 복잡네, 보자……. 맨 앞에는 교통과고. 토목과는 어데고?”

“저 세 번째 라인인 것 같은데요? 위에 팻말 달려 있는데?”

맨 앞에 교통과부터 시작해서 토목과는 세 번째 라인에 위에서 내려오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민원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 금 형사는 우선 토목과의 맨 뒤쪽에 책상을 놓고 앉아 있는, 나이가 제법 든 직원한테 다가갔다.

앞에 책상을 여섯 개씩 마주 놓고 있는 다른 직원들은 다들 정신없이 전화도 받고 서류도 챙기고 하는데, 이 직원은 책상 위에 조간신문 대여섯 가지를 펼쳐 놓고서는 점심 식사라도 하고 온 참인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사무관 정도는 돼 보이는 것 같은데, 밑에서는 저렇게 죽어라 정신없이 일하는 앞에서 양치질이나 하고 자빠졌다니 한심하구만.’

“가르르륵~ 퉤!”

눈앞에서 양칫물을 컵에다 뱉더니 그걸 또 옆에 있는 직원 쪽으로 슬쩍 밀어 놓는 것이었고, 그러자 부하 직원은 두말 않고 일어나 컵을 비우러 가는 모습이었다.

“큼! 어흠!

허어…….”

남 들으라는 듯 헛기침을 요란스럽게 하며 신문을 펼쳐 들자, 금정산 형사가 다가가더니 신문 가운데를 잡고 홱 젖혀 버렸다.

파락!

“응? 이건 또 뭐고?”

“잠깐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뭐라?”

놈의 인상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야 이 새끼들아! 민원인이 내 자리까지 오도록 느그는 뭐 하고 자빠졌노!

진짜 제대로 일 안 할 끼가!”

그러자 부하 직원들이 얼른 일어나더니 금정산 형사의 양팔을 잡고는 밖으로 끌어당겼다.

“자 자, 아저씨 여서 이라시모 안 됩니다. 1층에 가서 기다리시고…….”

“X발 나 아저씨 아닌데? 이거 놔라이.”

“아니 이 아재가 뭘 잘못 처먹었나, 경찰 부르기 전에 퍼뜩 끄지소.”

“여기 있다 아이가.”

“무슨?”

“내가 경찰이라고.”

그러면서 금정산이 웃으며 경찰관 신분증을 꺼내 보이자 신문을 보던 놈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어, 경찰이 왜 우리 사무실에…….”

“지금 몰라서 묻소? 여기 근무하던 사람이 죽었잖아.

근데 X발, 같이 근무하던 직원이 죽은 것치고는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 아이가?

양치질 싸갈기면서 콧노래까지 쳐 부르고 말이라.

어이 당신.”

“예?”

“당신이 직인 거 아이가?”

금정산 형사가 그렇게 묻자 놈은 아연실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인데요, 아인데요?”

“근데 X발놈아, 사람이 죽었는데 왜 양치질하면서 콧노래를 쳐 부르고 X랄이고.

피해자가 죽어서 뭐 존X 기분이 좋은갑지?”

“아인데요, 제가 원래 습관이 되어 가지고……. 콧노래 부르는 게 습관입니다, 습관.”

“맞나, 그라면 니 부하 직원들보고 니 아가리에서 뱉은 양칫물 버리라고 시키는 거 하고, 니 부하들 일하고 있는데 니는 신문 보고 업무 시간에 처자빠진 것도 다 습관인갑네?

이 새끼 이거 안 되겠네?

마, 일어나라.”

“예? 와예?”

“왜긴 임마! 경찰서 가야지.”

“하이고~ 제가 뭘 잘몬했다고 이라십니까 예?”

“뭐고, 개길라꼬?”

“개기는 게 아이고예, 제가 잘몬한 기 없는데 갑자기 이라시니까…….”

“개길 거면 긴급체포할게.

우짤래?”

금정산 형사 입에서 갑자기 범인이니 긴급체포니 하는 말이 튀어나오자 토목과장 김용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에이 X발 재수 옴 붙었네. 잘 뒤졌다 생각했는데 와 또 경찰이 와가 X랄이고?’

떨어져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내심 속으로는 잘되었다 싶었지만 혹시 경찰이 와서 귀찮게 할까 두려워 나중에 퇴근하고 병원에 들러 봉투나 하나 내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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