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818화 (818/869)

제 818화

#818. 이판사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지. 물론 강 주임 말대로 전화 한 통에 ‘알겠습니다.’ 하고 오지는 않겠지만, 그런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잖이 부담은 되지 않겠어?”

“그거야…….”

“그리고 한 통으로 끝내면 안 돼, 온다고 할 때까지 전화를 해야지.

체송편에 출석 요구서도 매일 보내고 그냥 가서 덜렁 놓고 오지 말고 체송이 직접 수사 1계 서무에 가서 인수 사인받고 전해 주라고 그래.

지가 그래도 안 오고 버티는지 한번 두고 보자고.”

그러자 옆에 있던 이정명 주임도 맞장구를 쳤다.

“안 오면 검찰에 체포 영장하고 압수 수색 영장 신청해서 지방청 수사 2계 확 뒤져 봐야지요. 이 새끼들, 보나 마나 따와이 미친 듯이 해서 숨겨 놨을 텐데.”

“아, 그땐 저를 꼭 보내 주십쇼. 저도 그놈들한테 쌓인 게 많아서요.”

유철 형사도 나서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자자, 일단 오늘 안에 현장에 가서 증거를 찾는 게 중요해.

이정명 주임은 지금 바로 형사들 데리고 녹산 매립 현장에 가서 그날 시경 수사 2계 직원들이 나와서 트럭 계수 측정을 했다는 사실을 조서로 받도록 해.

현장 관계자들을 분리해서 물어보면 뭔가 얘기가 나올 거야.”

“예, 과장님.”

“그리고 유철 형사는 연산동 화물 주차장으로 가. 뭘 해야 되는지는 알고 있지?

서둘러, 오늘이 지나면 아무도 진술을 안 해 줄지도 몰라.”

“예, 바로 출발하겠심니다.”

* * *

연산동 화물 주차장에 위치한 싱싱 통운 주식회사.

사장인 박양수는 어려서부터 화물차를 따라다니면서 조수 일부터 시작해 지금은 덤프트럭 다섯 대와 컨테이너 두 대를 소유한 어엿한 차주였다.

아침부터 차량과 운전수는 다 내보내고 근처 다방에 앉아 노닥거리고 있는데 사무실 직원한테서 난데없이 형사가 들이닥쳤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아이, X발, 이거 뭐 짜바리한테 불려 갈 일이 없는데 또 언 놈이 뜯어묵을라꼬 아침부터 남의 사무실에 찾아온 기고? 그래, 용건이 뭐라 카더노?”

형사가 찾는다고 고분고분 가서 푼돈이나 뜯기고 있을 군번은 아니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 박양수였다.

-우리 그저께 저기 녹산 공단에 하루 흙 갖다 넣은 것 말이라예, B-8 공구가 아이고 B-1에다가 넣었다 아잉교? 그거 때문에 뭐 좀 확인할 것이 있다고 그라는데예.

사무실 직원 장미연이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오전 중에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파출소 담당 순경부터 시작해서 차석이나 동회 사무장까지 찾아와서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화물 주차장 차주들은 새벽에 나와서 운전수한테 차 맡겨서 내보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종일 이 다방, 저 다방을 전전하면서 혹시나 차가 퍼졌다든지 하는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해 연락망만 유지를 한 채 고스톱이나 치고 노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야! 내는 좀 바쁘다고 카고 사실대로 이바구해 줘라. 우리는 시 토목과에서 지시한 대로 흙을 갖다 버리는 것뿐이지 우리가 뭔 상관이고!”

괜히 형사를 만났다가 돈이라도 뜯길까 봐 박양수는 그렇게 지시를 했다.

딸칵!

장미연은 사무실로 들어온 형사들에게 박양수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형사님들,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어예. 그저께는 시청 토목과에서 전화가 와가 B-1 공구로 흙을 가지고 오라고 하문 그리로 가져가는 것이지 우리가 뭘 알겠능교? 그쪽 공사 구간에 흙이 급하게 필요한갑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그만 아잉교?

별일도 아인 거 가지고 너무 일을 크게 만드시네…….”

그러자 유철 형사가 되물었다.

“그라모 돈도 그대로 20만 원을 주고?”

“어데예? 그날은 절반이나 깎아 주던데예?”

“절반을?”

“10만 원만 받는다고 캐서 전부 다 B-1 공구로 몰리갔다 아입니까? 아마 부산 시내에서 토건하는 현장에서는 전부 다 갔을 낀데예. 한 차에 10만 원이나 와리를 해 준다는데 안 갈 바보가 어디 있심니까?”

직원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유철 형사는 옳다구나 싶었다.

“방금 한 말, 전부 진짜지예?”

“하모요, 비싼 밥 묵고 이딴 거 거짓말치가 뭐 하겠심니까?”

“크~ 인자 됐다. 이 X발 놈들이 부산 시내 차주들한테 그냥 말로만 해서는 안 올 것 같으니까 밑밥을 뿌렸구만. 그라이 전부 다 떼로 몰리온 기고.”

옆에 있던 김철중 형사도 맞장구를 쳤다.

“평소보다 배 이상 차가 들어오니까 죽은 어창규한테 그 차액을 평소에 따와이했다고 덮어씌워서 수사 2계에 데려다 놓고 조진 거 같은데요? 이 새끼들, X나 웃기는 놈들이네. 시경에 있다고 존X 거들먹거리드만 하는 짓거리는 꼭 무슨 양아치 새끼들 같노.”

“아마 우리 과장님 아시문 대번에 수갑 채아가 델꼬 오라고 할 끼다.

자, 얼른 조서 받고 몇 군데 더 돌아보자.”

* * *

녹산 공단 B-1 공구.

이정명 주임이 형사들과 함께 현장 소장을 찾았다.

“수고합니다. 동부서 형사 5반장 이정명 경위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신분증을 보여 주고 명함을 꺼내 건넸다.

“아 예, 여기 현장 소장 방인규라고 합니다.”

“그저께 말입니다. 다른 현장에 들어가야 할 흙이 전부 이리로 몰려왔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맞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요.”

“이유가 뭡니까? 누가 그런 지시를 했습니까?

아니면…… 여기가 시급하게 매립을 마쳐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묻자 현장 소장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글쎄요, 저희들도 그 부분이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그날 하루만 여기로 오는 트럭은 차당 10만 원만 받으라고 시청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저희들이야 흙이 많이 들어오면 공기도 단축이 되고 좋은데, 저희들 담당인 어창규 주사가 그다음 날 자살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분위기도 이상한데 오늘 형사님들까지 이렇게 나오시고. 형사 반장님께서 직접 나오신 것 보니까 아무래도 문제가 좀 심각한 모양이지예?”

방 소장이 그렇게 말하면서 이정명 주임의 눈치를 살피자 이 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관련해서 지금 한창 수사 중입니다.

여기서 흙이 반입되는 계수를 조작해서 시청하고 합작하여 따와이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이정명 주임은 현장 소장의 반응을 보고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대놓고 따와이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현장 소장이 예상대로 펄쩍 뛰었다.

“저기 형사님, 이거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따와이라니요, 어느 미친놈이 따와이 했냐고 물어보는데 그렇다고 하겠습니까? 물론 저는 그런 적이 절대로 없지만 말입니다.”

“흠, 글쎄요…….”

“대체 어떤 놈이 그딴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토목과 어창규 감리가 오고 나서는 턱도 없습니다. 언제 온다는 소리도 없이 불시에 와서 덤프트럭 들어오는 숫자를 세서 가는데 눈까리 빼 먹을 방법이 있습니까?

솔직히 그전에는 약간 여유 있게 현장 경비도 쓰고 시청 실무자들도 나름 인사할 데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어 주사 오고 나서부터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게 불만이었나 보군요?”

“형사님도 말씀을 참 뭣하게 하시네, 아 법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거기에다가 입을 대겠습니까? 저도 법대로 하면 속이 더 편하지요.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법대로만 돌아갑니까?

너무 외골수면 당하는 건 본인 아니겠습니까?

내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 * *

한편, 관리 주임인 강갑도 주임은 망설이다가 결국 수화기를 들어 지방청 수사 2계로 전화를 걸었다.

또르르륵!

-예! 수사 2계 강 형사올시다.

전화 받는 목소리가 사뭇 건방졌다.

계급도 대지 않고 순경부터 경사까지 다 형사라고 하면 이거는 누가 상사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것이었다.

“아, 수고 많으십니다. 동부서 형사 관리 주임이라예. 거기 서재걸 부장하고 통화 좀 하고 싶어서 전화드렸는데예.”

-어이, 서 부장! 경비 전화! 동부서란다.

-예, 전화 바꿨심니다.

역시 관등 성명은 아예 댈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았다.

속에서 뭔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 강 주임이 명분은 우리가 쥐고 있다는 김세민 과장의 말에 용기를 가지고 배에 힘주어서 말을 했다.

“아, 서재걸 경사? 나 동부서 관리 주임 강갑도 경위입니다.”

-근데요.

“…….”

-여보쇼! 바쁜 사람한테 전화 걸어 놓고 와 말이 없노!

강 주임은 화를 억누르고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잠깐 조사할 것이 있으니까 자진 출석을 해 주었으면 좋겠심니다.”

-뭐라?

“출석 요구서도 보냈는데 그게 체포 영장 발부하기 위한 사전 수순인 건 잘 알고 있지요? 마 그냥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왔다가 가시소. 퇴근 이후에 와도 기다릴 테니까…….”

그렇게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싶었는데 대뜸 욕부터 날아왔다.

-뭐가 어째?

마, 니 이름 뭐라고 했노?

“동부서 관리 주임 강…….”

-됐고, X발 내가 니 같은 놈 이름 알아서 뭐 하노.

근데 X발 느그 진짜로 돌았나? 엊저녁에 뭐 X 같은 거 처먹고 배때지에 탈이 제대로 난 모양이네?

야 이 새끼야, 니 내가 누군지 아나? 뭐? 조사를 받으러 와? 체포 영장?

X도 니 꼴리는 대로 함 쳐 봐라, 쳐 보라고!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사람이 좋게 말을 하고 있는데…….”

그때 김세민이 와서 강 주임의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놈이 욕하는 소리가 고스란히 동부서 형사계에 울려 퍼졌고, 분주히 움직이던 형사들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강 주임의 책상 쪽으로 모여들었다.

-어이, 니 우리가 무슨 일 하는지 아나 모르나? 여기는 새꺄, 부산 경찰들 비리로 잡아넣는 곳이야. 니 뭐 동부서 다닌다 했나? 동부서도 내가 알기로 수십 건이 넘게 계류되어 있는데 함 조지보까? 우리가 손을 안 대고 있었더니 이 새끼들이 간이 처부었나?

서재걸 경사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동부서 형사들이 피식거리며 웃는 모습이었다.

[X랄하네, 미친 새끼.]

[따와이는 즈그들이 하면서 와 우리한테 X랄이고?]

[내 백퍼 장담하는데 저거 전부 뻥이다.]

-내가 확인해서 느그 동부서 형사들부터 잡아들일 테니까 누가 더 많이 잡아넣는지 함 내기해 보자고 이 새끼야.

이 자슥이 고작 경위 주제에 돌았나……. 니 지금 내가 경사라꼬 눈까리 비는 게 없는 모양인데, 느그 과장한테도 똑띠 전해라이. 내일부터 동부서 직원들 따와이한 거 하나씩 들춰 가지고 한 놈씩 불러서 조지기 시작할 테니까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으란 말이다.

놈이 김세민까지 들먹거리자 강갑도 주임이 갑자기 폭발했다.

“이런 십X끼가, 지금 우리 과장님한테 감히!

그래, 이 씨X놈아. 내일 내부터 불러라! 내가 직접 가 가지고 니 모가지 바로 따뿔 끼다.”

-…….

“이 씨X놈이 갑자기 말이 없노, 알았나 몰랐나!”

철컥!

강 주임이 열이 받아서는 욕을 미친 듯이 퍼붓자 놈은 당황했는지 일단 전화를 먼저 끊는 모습이었다.

“에이 X발!”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담배를 빼 무는 강갑도 주임이었다.

“이야~ 주임님! 화끈하시네요!”

“속이 다 시원합니다, 주임님!”

옆에서 형사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강 주임은 정색을 했다.

“누구 놀리나 임마! 아이고~ 인자 X되뿟네, 진짜 조사하러 오라고 카면 우짜지?”

“그렇게 쫄 거면서 욕은 뭐 한다꼬 했심니까? 킬킬킬.”

옆에서 오독새가 낄낄거리며 놀려대자 강갑도 주임이 짜증을 냈다.

“시끄럽다! 그라모 저딴 소리나 듣고 가만 있으란 말이가!

아이다, 가만 있어야 핸 건가, 아고 머리야…….”

“괜찮아, 전혀 걱정 안 해도 된다.

우린 원칙대로 단계를 밟았을 뿐이라고.”

강 주임이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자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했다.

“과장님?”

“쫄 거 없어! 저 새끼들 다 구라 치는 거야.

수사 2계에서 경찰관들 비리로 입건하려면 먼저 감찰에서 조사하고 나서 청장한테 보고를 해야 되는데, 청장 입에서 형사 입건해 가지고 옷 벗기라는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절대 쟤네 마음대로 수사는 못 해. 우리는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비리니까 명분이 저놈들보다 백 배는 더 있는 셈이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거야. 그러니 혹시 문제가 생기면 전부 나한테 미뤄.”

“예?”

“만에 하나 진짜로 조사라도 받게 된다면, 내가 시켜서 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란 말이야.

뭐든 간에 문제가 생기면 다 내가 시켜서 한 거라고 해, 그냥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면 된다고.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

“…….”

“뭐야, 왜 다들 대답이 없어.

알아듣겠어?”

“과장님, 제가 다른 건 다 과장님 지시대로 따르겠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유철 형사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다른 형사들도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저도요.”

“저도 그렇습니다!”

“뭐?

다들 무슨 소리야?”

“저희가 지금까지 항상 과장님을 의지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과장님도 조금 저희를 든든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는 이야깁니다.”

“난 또 뭔 말을 하나 했더니…….

이거 봐! 난 책임자잖아! 책임자가 하는 일이 책임을 지는 건데,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러자 김철중 형사도 한마디를 보탰다.

“저는 과장님이 우리 서에 오시고 과장님 밑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경찰이 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람도 있고 뿌듯하고. 내가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근데 저런 쓰레기 같은 놈들이 뭐가 무서워서 과장님 이름을 팔겠습니까?

다들 안 그렇습니까?”

김철중 형사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철중이 니 말 잘했다!”

“당연하지! 과장님은 우리 동부서 형사들 자존심 아이가!

과장님은 우리가 지켜야지!”

“옳소! 과장님은 내가 지킨다!

김세민! 김세민!

김세…….”

오독새가 신나서 김세민의 이름을 연호하다가 김세민의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눈빛에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지금 사건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무슨 쓸데없는 소릴 하고 있어?

다들 빨리 안 움직여!”

김세민이 그렇게 호통을 치자 형사들이 잽싸게 자기 위치로 흩어졌다.

그러나 김세민이 진짜로 화를 냈다고 생각하는 형사들은 아무도 없었고, 어딘가 쑥스러운 듯 조금 상기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는 김세민을 힐끔거리며 히죽히죽 웃음을 짓는 형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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