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853화 (853/869)

제 853화

#853. 총경 인사위원회

박정수 총경이 조연희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었다.

-히유~ 인제 짐 싼 거 다 풀어야겠네. 그리고 내일 우리 체송 편에 뭘 좀 보낼 테니까 부속실 직원들하고 나눠서 들도록 하세요.

“아뇨, 괜찮은데…….”

-그리고 청장님한테 따로 인사를 좀 드려야 할 텐데, 언제가 좋겠습니까?

구미서장 말은 청장한테도 봉투를 하나 주긴 줘야겠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번 토요일이 어떨까요? 인사 시즌이라 오후 늦게까지는 자리에 계실 거예요.”

-호오…… 그렇군요. 하루 연가를 내고 올라오든가 해야겠습니다.

“청장님만 뵙고 가지 말고 차장님, 경무국장님, 그리고 인사과장 전순홍 총경 정도까지는 얼굴 도장을 찍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조연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박정수 총경한테 마치 몇 번 보기라도 한 것처럼 스스럼없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아,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간 김에 청장님만 뵙고 와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또 이렇게 조언을 해 주시네요. 본청에 대해서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죠…….

그럼 올라가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다음 날 오후 경찰청 부속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처음 보는 얼굴의 직원이 들어와 조연희를 보고 거수경례를 붙이는 모습이었다.

“충성!”

“누구…….”

“구미서 체송 장경한 경장입니더. 조 주임님 맞으시지예?”

“그런데요.”

“저희 서장님 심부름 왔니더.”

그렇게 말하면서 밖의 복도에 놓아두었던 커다란 박스를 두 개나 안으로 들여놓는 것이었다.

“어머, 이게 다 뭐예요?”

“아, 이거는예. 구미 특산품인 칸탈로프 멜론이라꼬, 한번 맛이나 보시라꼬예.

그라고 옆에 있는 박스는 그 멜론으로 만든 빵입니다.”

“빵?”

“안에 자세한 설명서가 있시니까 한번 읽어 보시고예.

그럼 저는 이만…….”

체송은 다시 경례를 붙이고는 서둘러 부속실을 나갔다.

“빠르기도 해라, 하루 만에 이걸 다 보냈어?”

“조 주임님, 이거 뜯어봐도 됩니까?”

“응? 그러렴.”

박철이 박스를 열어 보더니 멜론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이렇게 생긴 멜론은 처음 봅니다. 색이 좀 특이하네?

응? 이건 뭐지?”

“왜 그래?”

“웬 봉투가…….

조 주임님 이름이 겉봉에 쓰여 있습니다.”

박철이 건네준 봉투를 열어 보니 편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구미서장입니다. 이번에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소하지만 저희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인데 맛이나 보시라고 좀 보냈습니다.

정우진 서장에게 들으니 부속실 운영에 예산이 부족하시다고…….

해서 앞으로 부속실 직원분들은 제한 없이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구내 식당에 미리 선결제를 해 두었고, 이 전에 달려 있던 외상 식대 역시 다 결제를 했으니 부담 없이 이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정우진 서장님 아이디어였습니다.

또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총경 박정수 드림.]

편지를 다 읽고 난 조연희가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흠……. 박 총경, 생각보다 제법인데……?”

* * *

토요일 오후의 경찰청 부속실은 평소와 달리 아무도 퇴근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조만간 총경급부터 인사이동이 시작되기 때문에 여간 바쁜 것이 아니었다.

구미서장 박정수 총경을 포함해 눈치 빠른 놈들은 이번 주말에 올라와서 봉투를 돌릴 것이고, 눈치 없이 뻗대는 놈들은 다음 주가 되면 지옥을 경험하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았다.

청장도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다시 올라오자마자 조연희를 불렀다.

“조 주임! 조 주임아!”

“네에~ 청장님!”

조연희는 기다렸다는 듯 청장이 마실 용정차와 곁들여서 구미서장이 보내온 칸탈로프 멜론으로 만들었다는 빵을 네 등분으로 썰어 가지고 들어갔다.

“어? 이게 뭔데?”

“네, 구미에서 보내온 건데요. 칸탈로프 멜론으로 만든 빵이라고 합니다.”

“칸탈……. 뭐?”

“칸탈로프 멜론이요. 프랑스 아비뇽 특산물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구미에서 수입해 가지고 재배에 성공했다고 하네요.”

“오, 그래? 멜론은 언제나 반갑지. 구미서장한테 고맙다고 전하도록.”

“직접 하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오늘 오후에 청장님 뵈러 온다고 전언이 왔습니다.”

구미서장이 봉투 하나 들고 올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돌려서 얘기하는 모습이었다.

“가만있어 봐. 지금 인사과장 저 자식은 말이야, 뭐 하러 저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몰라. 일선에 나가서 한 바퀴 돌다 들어와도 충분히 경무관은 고시 출신이니까 달 수 있는데 뭐 먹을 게 있다고 벌써부터 저 자리에 차고앉아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데?”

청장은 인사과장인 전순홍 총경을 불러서 다시 인사 문제를 의논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 오기 시작했다.

“인사계 허 주임을 불러올릴까요?”

조연희가 청장의 그런 속을 짐작하면서 차라리 인사계 허준우 주임을 불러다가 앉혀 놓는 것이 어떠냐고 그렇게 물어보았다.

“흠……. 허 주임이란 친구는 여기 인사계에 좀 오래 있었나?”

“허 주임은 여기 인사계 인사 담당만 벌써 7년째 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경감 이상 간부들 이름은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청장이 잘되었다는 듯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그러면 허 주임더러 인사과장 대신에 올라와서 간사를 하라고 그러고 아예 오늘 중으로 인사위원회를 다 끝내자. 이거 인사 길어지면 말만 자꾸 나오고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라고. 국장들도 다들 마찬가지일 거야.

말 나온 김에 국장들 다 들어오라고 그래. 지금 인사위원회 해 버리게.”

청장이 청탁 전화가 빗발치니까 빨리 총경만이라도 인사위원회를 개최하자고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조연희는 청장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자마자 경찰청 내에 안내 방송을 날렸다.

“아아! 부속실에서 알려 드립니다. 청 내 계신 각 국장님들은 지금 즉시 청장님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에 인사위원회가 개최되겠습니다.”

인사위원회가 개최된다는 소리가 청 내 방송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지자 다들 술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총경 인사위원회를 하나 보네. 곧 터지겠는데? 우리 과장은 누가 오려나?”

“안 되겠다. 퇴근하지 말고 기다려야지. 집에 가도 어차피 궁금해서 잠도 안 올 텐데.”

“바둑이나 한 수 둘까……. 어이 윤 주임! 저기 가서 바둑판 들고 와!”

자신이 속한 과, 계장이 이동 대상이 되는 부서에서는 아예 퇴근도 못 하고 인사위원회가 끝나서 어서 발표되기만을 기다리며 다들 사무실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사위원회라는 것도 판사들의 영장 실질 심사와 마찬가지로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는데, 실제로 청장실에 각 국장들이 모여서 치열한 눈치 싸움을 했으며 자기가 부탁받은 사람이나 미리 따와이를 했거나 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다들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는 청장이 알아서 부드럽게 중재를 해야 했는데 웬만하면 청장 선에서 매끄럽게 정리를 할 수 있었지만 유독 골치가 아픈 인사 청탁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국회의원들이었다.

국회의원들은 가뜩이나 공무원 조직의 생리를 모르는 터라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상대하려고 들기 일쑤였고, 여차하면 경찰청장이라도 국회에 불러 세워 놓고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제멋대로 구는 경향이 있었다.

국회의원이랍시고 청장실에 직통으로 전화를 해 대는 통에 열이 받은 청장이 관할 서장을 불러 박살 내는 경우도 제법 있었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영문도 모르고 불려와 작살이 난 서장들은 조연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곤 했다.

지금 같은 인사 시즌에는 걸려 오는 전화를 다 받고 있자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일지라도 조연희는 박철 선에서 전화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청장은 아예 외부 전화는 일절 받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청장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매번 당하고만 있을 리는 만무했는데 유독 까탈스럽게 구는 국회의원은 관할 정보 형사들이 치부를 조사하여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위에서 오더가 내려오거나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시민 단체나 언론에 슬쩍 흘려주는 것이었다.

그럼 구설로 곤욕을 치르거나 심하면 검찰에 불려 가서 조사받고 배지를 떼는 경우까지 있었는데, 정작 당하는 국회의원들은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하는 자가 태반이었고 배후에 경찰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방송을 들은 국장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이번에도 경무국장이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다 왔나? 그럼 들어가지.”

국장들이 다 들어간 다음에 박철이 고개를 갸웃하며 조연희에게 물었다.

“주임님, 경무국장님 말입니다.”

“응.”

“아니, 방도 바로 앞이라서 제일 가까운데 왜 맨날 가장 늦게 오시는 건가요?”

“어머, 넌 그걸 아직도 모르니?

자기 권위 세우려고 그러는 거잖아.”

“네? 아니 그래 봤자 1~2분 차이인데 권위는 뭔 권위래요?”

“넌 애가 정말……. 이렇게 관찰력이 없어서야 나중에 판검사 하겠니?

경무국장실 남상미가 회의 있을 때마다 국장님보다 먼저 와 가지고 머리 숫자 세다가 다 오면 그제야 돌아가잖아? 그럼 잠시 후에 경무국장님이 오시고.”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에휴, 너 사시 붙으려면 공부 좀 열심히 해야겠다?”

“괜찮습니다. 승진 시험 전체 1등의 여신님이 옆에 계셔서 그 기운을 팍팍 받고 있거든요.”

“얘는, 승진 시험하고 사시하고 같니?”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조연희는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어 입꼬리가 실룩이고 있었다.

* * *

청장실 안에서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경무국장이 먼저 자리에 앉은 채로 이렇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총경급 이상 금년도 첫 번째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겠습니다. 기록은 인사계 허 주임이 맡겠습니다.

먼저 회의에 앞서 간사를 맡게 될 인사계장부터 이 자리에서 결정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관례로 볼 때 인사계장 자리는 먼저 경무국에서 업무를 익힌 다음에 옮겨 가는 것이 룰이었는데 지금 대상자로는 교육계장하고 상훈계장, 그리고 기획계장 이 세 사람이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국장님들은 각자 의견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때마침 조연희가 박철, 양영미와 함께 다과를 들고 들어왔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빵을 내오는 모습에 국장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나는 빵은 좀 별론데…….”

“아침에도 빵 먹었는데 또 빵을 먹으라고?

조 승지, 니 귀찮아서 대충 요 앞에 빵집에서 빵 사 온 거 아냐?”

“설마요, 국장님.

이건 칸탈로프 멜론으로 만든 빵인데요, 원산지는 프랑스입니다. 이번에 경북 구미에서도 재배에 성공했다고 해요. 여기 국장님들 가운데 술, 담배 좋아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죠?”

“좋아 죽지.”

“환장하지.”

“나는 숨은 안 쉬어도 되는데 담배는 피워야 돼.”

“나랑 비슷하네? 나는 물은 안 마셔도 되는데 술은 꼭 마셔야 되거든. 껄껄껄!”

그러자 조연희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그러시면.

경찰 간부들이 다른 직군들보다 퇴직하고 나서 평균 수명이 짧은 것 모르세요?

원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인 데다가 그걸 풀려고 술담배까지 즐기시니 몸이 버티겠냐구요.

믿거나 말거나인데요, 이 멜론이 몸 안의 독소를 빼내 준다나 봐요.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이걸 즐겨 먹기 때문에 아무도 술, 담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프랑스 녀석들도 영화 보면 주야장천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니잖어?”

“와인 마시는 건 또 어떻구.”

“아무튼 이 안에 베타카로틴라는 성분이 있는데 암을 막아 준대요. 그냥 먹으면 너무 써서 빵으로 만들어서 먹으면 맛이 괜찮아요. 같이 내온 감잎차하고 같이 드셔 보세요.”

몸에 좋다는 말에 국장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입에 빵을 꾸역꾸역 집어넣는 모습이었다.

빵을 한 입 베어 물려던 남강오 정보국장이 조연희를 보고 미심쩍다는 표정을 했다.

“구미에서 재배했다고?”

“네, 얼른 드세요.”

“그럼 구미서장이 보냈겠네?”

“에이, 그게 뭐가 중요해요.”

“하여튼 너도 참……. 전국 서장들이 조 승지 손바닥 위에서 논다더니 그게 정말이었어.

힘들게 고생해서 총경까지 달았는데 얘한테 쩔쩔매는 걸 보니 불쌍하다, 불쌍해.”

“어머, 그런 말씀 하시는 것치곤 너무 잘 드시는 거 아니에요?”

“알면 더 내놔야지, 뭘 하고 섰어?”

몸에 좋다는 소리에 순식간에 빵 네 조각을 다 먹어 치우고 조연희에게 더 달라고 빈 접시를 내미는 것이었다.

“하여튼 정보 넌 실컷 얻어먹고서도 그런 소리가 입에서 나오냐? 정보 밥 먹는 놈들은 물에 빠뜨려도 입만 동동 뜬다고 하더니 옛말 그른 것 하나도 없어요.”

“에이, 경무국장님도 참…….”

“이봐 조 승지.”

“네, 국장님.”

“넌 누가 인사계장을 했으면 좋겠냐?”

“네? 그걸 왜 저한테…….”

“다들 의견이 분분해서 그래. 우리가 니 말 그대로 하려는 건 아니니까 너부터 먼저 의견을 말해 봐. 지금 인사계장에 누굴 앉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단 말이야.”

“…….”

“당장에라도 이 자리에 불러 앉혀야 제대로 인사위원회가 작동이 되지. 저 허 주임이 뭘 안다고 불렀어? 경찰청에서 주임은 기안 책임자가 아니라고. 적어도 경정급 이상이 되어야 문서 기안 작성 책임이 있는 건데 왜 쟤가 와 가지고…….”

경무국장은 자신의 입으로 기획계장인 손길승 경정을 먼저 입에 올리기가 뭣해서 조연희의 생각 운운하며 타이밍을 재는 중이었다.

또한 인사계장은 경찰청 인사위원회 간사로서 위원회에서 결정이 나면 바로 인사 발령안을 기안하여 그 자리에서 치안감급 이상한테 즉시 결재를 받고 발표를 하곤 했는데, 소문이 미리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제가 말씀드릴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조연희가 쭈뼛거리고 서 있자 청장이 판을 깔아 주었다.

“괜찮아, 조 주임.

어차피 인사라는 것이 전체 직원들 여론도 무시 못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마음 편하게 얘기해 봐.

다들 알겠지? 여기서 한 얘기는 밖에 절대 새어 나가서는 안 돼!”

“정 그러시다면…….”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

지은이 : 해황

제작일 : 2022.03.1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리건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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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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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7051-678-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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