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863화 (863/869)

제 863화

#863. 거부

정우진이 조연희더러 받으라며 휴대폰을 들이밀자 조연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뭐야? 누군 줄 알고 안 받겠다고 난리야? 한번 받아 보라니까?”

“아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청장님이 부르셔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좀 이따 가도 괜찮아, 혼나면 내가 말해 줄게. 자!”

그러면서 또다시 휴대폰을 건네는데도 조연희는 극구 사양하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장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누군데 조 승지가 저렇게 전화를 안 받으려고 하지?”

“청장님이 부르신다고 하는 걸 보면 전화한 사람이 청장님은 아닌 것 같은데…….”

“아까만 해도 여유만만이더니, 저렇게 쩔쩔매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

[$#4%@1%^@1?]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자 휴대폰에서 뭔가 목소리가 나왔고, 정우진이 얼른 받았다.

“어, 그래. 전화받는 걸 되게 무서워하는데……. 평소에 니가 어쨌길래 저 활발한 애가 금세 저렇게 돌변하냐?

뭐?

응. 잠깐만.

야, 조 승지. 빨리 받으래.”

“……알겠어요.”

“뭘?”

“알겠다구요, 차장님 봉투 말이에요.”

조연희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그렇게 이야기하자 정우진이 히죽거리며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응, 이제 괜찮아.

뭐? 빨리 바꾸라고?

야 야, 니 체면 문제는 나중에 알아서 하고, 난 내 거 해결됐으니까 끊는다.”

[$#%[email protected]%3^@!]

삑!

휴대폰 너머에서 상대방이 뭔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났지만 정우진은 그대로 끊어 버렸다.

“자, 어서 이야기해 봐. 어떻게 해야 돼?”

“근데 이건 좀 근본적인 질문인데요, 진짜 몰라서 저한테 묻고 계시는 거 맞죠?”

“이게 지금 장난하나, 서장들이 얼마나 바쁜데 지금 너 데리고 농담 따먹기나 하고 앉았겠어? 빨리 말 안 해?

다시 전화하든가 해야지…….”

그러면서 정우진이 다시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자 조연희가 황급히 대답을 했다.

“다음번 서울 청장님요, 어느 분이 되실 것 같아요?”

“서울 청장? 바뀐 지 아직 1년도 안 되셨잖아?”

남대문 서장이 왜 갑자기 서울 청장을 거론하느냐고 그렇게 반문을 했다.

“이번 4월에 청장님이 임기 만료 되시잖아요.

그럼 누가 본청장님으로 오실 것 같아요?”

“……!”

서장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하나같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맞네. 지금 서울 청장님이 0순위라고 했었지!”

“거기까진 알겠어, 그럼 서울 청장은 누가 되는 거야?”

“서울 청장으로 가실 수 있는 치안정감은 현재 네 분입니다. 그런데 경찰 대학장으로 계시는 강흥식 치안정감님은 이미 서울 청장에서 좌천되신 것이니까 불가능해요. 그다음이 경기 청장이신 최병직 치안정감님, 그분은 순경 출신이신데 올 연말이 정년이시고요. 역시 불가능하겠죠?

그다음이 부산 청장님인 문일용 청장님이신데 고시 출신이라 본청장도 고시 출신인데 서울 청장까지 고시 출신으로 포석을 깔지는 않으리라고 봐요. 고위직은 언제나 상호 견제하는 것이 원칙이잖아요? 그럼 치안정감 라인에서 한 번도 서울 청장을 안 해 본 후보생 출신이 누가 있겠어요? 한 사람뿐이잖아요?”

조연희가 그런 분석을 내놓으니 정우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장난하냐? 너도 아까 들었잖아!

자기는 천세용 청장하고 같이 은퇴한다고 했단 말이야.”

“그 말을 정말 믿으시는 건 아니죠?”

조연희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멀뚱히 서 있는 서장들의 얼굴을 돌아다보자 갑자기 청주 서장이 입을 열었다.

“역시 명불허전 조 승지네. 백번 지당한 말이야.

우리 충북이 지난번에 차장님 일제 전화가 왔을 때 해석을 곧이곧대로 하는 바람에 지난번 총경 인사에서 줄초상이 났었지. 지방청에서 올린 대로 발령이 안 나고 완전 경력순으로 승진 인사가 나는 바람에 충북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나중에 분석을 해 봤는데 청장님 상가에 안 들여다본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고, 그런 말들이 많았었어.”

지난번 청장 자당(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 초상 때 박 차장이 지방청장 일제 전화를 해서 부의금을 절대 들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충북은 그걸 곧이곧대로 해석을 하는 바람에 총경 승진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서울 서장님들은 무조건 차장님한테 인사를 하세요. 나머지 서장님들은 알아서 하시고…….

지금 2백 명이 넘는 서장님들이 한꺼번에 청장님이나 차장님실로 밀어닥치면 혼란스러우니까 서울 서장님들이 먼저 인사를 하시고 난 다음에 식당에 내려가세요. 그리고 12시 15분까지는 인천, 경기, 강원 서장님들이 인사를 마치시고 나머지 충청 전라 경상도는 12시 30분까지 들어오셨다 가세요. 청장님 식사는 12시 30분까지 하고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부속실에 오셔서는 먼저 온 순서대로 서장님 명함을 제 책상 위에 순서대로 놓아 주세요. 그래서 열 분씩 끊어서 들어가시면 청장님은 응접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계실 거예요. 그럼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제가 바닥에 붙여 둔 청색 테이프 위에 서서 거수경례를 하시고, 어디 서장이라고 복창을 해 주세요.

청장님 책상이 가운데 있습니다. 그 위에 제가 신문을 10부 가지런히 놓아두었는데, 가지고 들어가신 봉투는 먼저 들어가신 순서대로 맨 앞의 신문지 밑에다가 살짝 넣어 두고서 나오시면 됩니다.”

“그냥 나오면 됩니까?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해도 되는 건가?”

“음……. 그냥 저희 관내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이 정도로 근무 보고 정도만 하시고 나오세요. 그래야 다음 서장님이 들어가실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협조해 주시면 시간 내에 다 끝내고 식당에 내려가서 식사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럼 서울 서장님들부터 절 따라 내려오세요.”

그 말을 남기고 조연희가 먼저 회의장을 나서자 총경 계급장을 단 서장들이 조연희의 뒤를 따라 일렬로 걸어오는 희귀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윽고 부속실에 도착한 서장 일행은 접견실에 들어가 대기를 했고, 강남 서장 정우진이 맨 먼저 청장실로 들어갔다.

청장은 과연 조연희가 설명한 그대로 멀리 소파에 앉아서 옆얼굴만 보인 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충성! 강남 서장 정우진! 관내 이상 없습니다.”

“여~

고생~”

청장은 고개도 들지 않고 그렇게 심드렁한 말투로 이야기했고, 정우진이 얼른 뒷주머니에서 준비한 봉투를 꺼내 책상 쪽으로 다가가니 청장의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책상 위에는 조연희가 말한 대로 신문 10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일부러 서로 포개어 놓았기 때문에 그 사이로 봉투 하나 밀어 넣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었다.

샤샥!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봉투를 넣은 정우진은 나오면서 다시 거수경례를 붙였다.

“그럼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자 비로소 청장이 고개를 들어서 정우진을 보더니 씨익 웃는 것이었다.

“고마워~”

청장실을 나온 정우진이 길게 한숨을 뱉었다.

“휴우!”

“다음 종로 서장님, 어서 들어가세요. 청색 테이프에 서서 경례하고 큰 책상 위 신문 밑에 넣는 것 잊으시면 안 돼요.

그리고 묻지 않는 이상은 근무 보고 외엔 아무 말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 하시면 안 돼요. 아시겠죠?”

조연희가 시간이 지체되면 뒤에서 밀리니까 다음 순서로 종로 서장을 밀어 넣으면서 그렇게 말을 했고, 정우진이 별도로 준비한 봉투를 하나 더 꺼내 조연희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밖으로 나가면서 이렇게 구시렁거렸다.

“하여튼, 경찰서장들 줄 세워 놓고 상납 교육 시키는 것은 조 승지 아니면 누구도 못 할 거야. 김세민이 이 자식, 정말 대단한 부사수를 두긴 뒀네. 존경한다. 내 그건 인정한다.

인제 차장실인가? 그래도 기계적으로 빨리빨리 돌아가니 그거 하나는 좋네.”

그렇게 정우진이 나가고 난 뒤에 청장실 안에서 나온 종로 서장도 조연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조 승지가 부속실에 오고 나서부터는 이 봉투 드리는 것도 아주 세련되고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 같아. 물 흐르듯 부드럽고, 서로 쑥스러운 것도 없고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조 승지 오기 전에는 청장실 들어갈 때도 바짝 긴장해서 들어가 가지고 말도 제대로 못 꺼내고 우물쭈물하다가 쫓겨 나오기 일쑤였는데.

지금처럼 서로 얼굴 쳐다볼 일이 없도록 동선을 딱 그렇게 조정을 해 놓으니까 서로 얼마나 좋아? 안 불편하고 말이야.

청장님도 내가 봉투 책상 위 신문지 밑에 밀어 넣는 것을 다 아시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 안 봐도 되니까 진짜 편하고 좋네.”

“별말씀을요, 시간은 절약할수록 좋은 거니까요.”

“그럼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건 부속실 직원들 밥이나 먹으라고 조금 챙겨 봤어.”

그러자 조연희가 옆에 있는 양영미를 살짝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저희 경리 직원한테 주시면 됩니다. 사양 않고 감사히 잘 쓸게요.

저희 살림이 녹록지 않은 편이라…….”

“아냐 아냐! 조 승지처럼 차라리 이렇게 시원하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고. 계급이 올라갈수록 주변에 능구렁이들만 우글거리는 터라…….

그럼 난 차장실에 가야 해서 이만. 다음에 또 봐요!”

“네, 들어가세요.”

조연희가 그렇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접견실을 들여다보니 아직도 서장들이 순서대로 기다리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30분이면 끝이 나려나…….

철아, 내려가서 청장님 식사 준비되었나 확인하고 상황실 의경 하나 더 데리고 가서 다 되었으면 들고 와. 정확하게 30분에 식사가 들어가야 되거든.”

“넵! 알겠습니다.”

박철이 그렇게 대답을 하고 밑으로 내려가자 이번에는 여수 서장이 줄에 서 있다가 말을 꺼냈다.

“크~ 이건 무슨 군사 작전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여, 부속실이 이 정도는 되야제. 안 그렇당가? 나가 델꼬 있는 아가들은 말이여, 우리 조 승지 대감한테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민당께로.”

“그건 또 뭔 소립니까? 갑자기.”

“한 5년 전에 여기 조 승지 대감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인디, 그때가 전남청 강력계장 할 때였지? 총경 심사가 들어갔다는 소리를 듣고 청장님한테 인사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영 자신이 없더라고. 어떻게 용기를 내서 부속실까진 왔는데……. 사람이 쫄아서 차마 봉투 들고 들어갈 용기가 안 나는겨. 그래도 자식새끼 생각해서 없는 용기 내 가지고 저 문 열고 들어갔는데 나가 생전에 청장실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청장이 어디 앉았는지 알겄어? 또 넓기는 얼마나 넓은지 이리저리 눈깔 허벌나게 뒤비는데 어디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오더라고.

[야! 너 뭐 하는 놈이야!]

그래서 나는 소리 나는 쪽을 반사적으로 쳐다봤더니 웬걸, 청장님하고 눈이 딱 마주친 거여. 크, 그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구만?

내가 말도 안 하고 멀뚱하게 서서 얼어 있으니까 청장님이 다가오시더니 물으시는 거야. [왜 들어왔어! 너 누구야!] 그래 가지고 내가 엉겁결에 대답한다는 것이 그만…….”

“왜요, 뭐라고 했습니까?”

다른 서장들이 궁금하다는 듯 여수 서장을 주목했다.

“예! 봉투입니다!

이래 버렸당께.”

“푸하핫!”

“그게 진짜야?”

“나는 봉투라고 했다고? 크하~ 그거 대답 한번 걸작이구만?”

“놀리지들 말라고, 사람이 얼마나 당황을 했으면 그랬겠나 이 말이제.

그러니까 청장이 고함을 치는 기라.

[이 자식이……. 야 임마! 애들 코 묻은 돈은 필요 없으니까 꺼져!]

이러더라고. 하~ 진짜 쪽팔려서 말이지.

사실 그날이 어떻게 된 거냐면 첫 번째 발탁 심사에서 물 처먹고, 두 번째 본 게임에서도 중간에 다리 놓는 놈이 떼먹고 날랐고, 마지막 세 번째 구제 심사에서는 어떻게든 일이 되도록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참에 누가 현역 유력 국회의원 줄을 가지고 오더라고. 본인이 책임지고 총경 달아주겠다고 했다는데 대신 돈이 좀 많이 든다고 하더군? 아무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어마어마한 액수였제……. 그랑께 별수 있소? 마누라하고 의논해가 목포 시내 갖고 있던 집을 팔아가 돈을 맞춰가 그 X노무 국회의원 새끼한테 가져다주는데 손이 다 부르르 떨리더라고.”

“뭐, 그렇게라도 총경 달았으면 다행이지. 선 아무리 달아도 못 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나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 그란데 며칠 있으니까 여기 부속실장이란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고.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대뜸 화를 내는 거야, 왜 청장님한테 인사를 안 하냐고 말이지. 그래서 나가 사실대로 얘길 했더니 그 국회의원이란 놈이 집 한 채 값을 다 날로 처먹고는 맨입으로 부탁을 하고 갔다는 거여.”

“…….”

“그라이 청장은 또 내가 가져 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지. 할 수 없이 주변에 수소문해 가지고 있는 돈 없는 돈 영혼까지 다 끌어모아서 그날 돈을 들고 간 것이제.”

여수 서장이 거기까지 얘기를 하자 다들 꽤나 놀란 모습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한 번 더 안 내 가지고 그건 다행이다.”

“어쨌든 세이브는 일정 부분 했네.”

“마음고생이 심했겠어. 그래, 그동안에 집 한 채 값은 만회를 했고?”

남해 서장이 그렇게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아, 이게 조금 사연이 더 있는디. 나도 그래서 두 번째 것은 세이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나오는데 그 뭐냐, 아까도 얘기했지만 사람이 워낙 정신이 없으니까 놀라서 도망 나오다가 그만 부속실 책상 위에 수표가 들어 있는 돈 봉투를 놔두고 나온 거라.”

“……!”

“어떻게 그런 실수를……. 바보 아냐?”

“바보 맞지.

내가 기차 타고 내려오는 길에 얼마나 속이 타던지. 이거 다시 찾으러 가야 되나, 아니면 부속실에서 알아가지고 돌려주려나…….

오만 생각이 다 들더라고. 벼슬 그거 하나 달았다고 집까지 홀랑 팔아먹었제, 근데 빚 내 가지고 간 따와이 봉투 겨우 세이브 했나 싶었더니 그걸 홀랑 잃어버리고 오질 않나…….

내가 진짜 펑펑 울었어, 펑펑.

아이고, 이 돈을 언제 다 메꾸나, 무슨 수로 다 갚나 하고 말이지. 근데 웬걸, 그때는 몰랐제. 경정 달고 따와이 하는 거 하고 총경 따와이 하는 게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걸 말이라.

그리고 그다음 날인가? 아침부터 부속실장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고.”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

지은이 : 해황

제작일 : 2022.03.2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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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7051-678-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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