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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31-2화 (2/269)

제2화

“제 아이는 모자란 아이였지요. 발달 지체 장애. 덩치는 산만 한데 그 안에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 아이가 들어 있었답니다.”

“네…….”

“알아요. 제게는 그래도 귀여운 자식이지만 남들에게는 끔찍한 괴물이라는 거. 실제로 그 아이는 자신의 몸으로 종종 문제를 일으켜서, 전과도 여러 개 달게 되었지요.”

박광수는 당시 폭력 전과 2범이었다.

“키 187에 체중은 140을 넘기는 거구가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니 전과 2범이면 오히려 양호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잘 알고 있군요. 그런데 이 아들 녀석이 그만 슈퍼마켓 딸에게 반해서 따라다니게 되었지 뭡니까.”

박광수가 동화 슈퍼마켓의 딸, 채연지에게 한눈에 반한 것이다.

‘솔직히 그건 좀 동정이 되는군.’

채연지라는 여성에게 있어서 이 커다란 스토커는 처치곤란이었을 것이다.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거구에 힘세고 일반적인 성인의 사고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남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날. 박광수는 채연지를 쫓아 식당에서 식사 중인 그녀를 찾아냈고 마침 식사 중이던 그녀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도망치던 중, 그만 반지를 흘리고 말았다.

박광수는 그 반지를 주워들었다.

덩치는 산만 하지만 마음은 어린아이, 그는 어머니에게 배운 교훈을 떠올렸다.

‘분실물은 경찰에게.’

하지만 박광수는 경찰을 찾지 못해 어머니에게 반지를 가져왔고 어머니, 박선미가 박광수를 대신해 경찰서에 반지를 가져갔다.

동화 슈퍼마켓 일가족에게 직접 반지를 전해 줄 수도 있지만 그들 일가는 박광수만이 아니라 그 어머니 박선미도 보기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분실신고로 맡겼던 반지가 살인사건 이후, 박광수와 박선미의 셋집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건 틀림없이 제가 경찰에 갖다 준 반지예요! 분실물이라고 내가 갖다 준 건데 그걸 설마 내 아들을 범인으로 몰기 위한 증거로 쓰다니! 내가 내 아들을 범인으로 만든 것 같아서 잠들 때마다 잠자리가 뒤숭숭하고 그래요! 그런데도 주위 사람들은 다들 절 보고 용서해 주래요!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용서하라고! 교회사람들이라든가 도우러 와주는 변호사, 자원봉사자들, 모두들 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잘못하는 건가요?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제가 제 자식과 제 인생을 파괴한 자들이 조금이나마 고통스럽길 바라는 게 그렇게나 잘못된 일이에요?!”

노파는 복수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를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질리게 했다.

사람들은 피해자가 선하기를 원한다.

선하지 않은 피해자를 돕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악을 확대재생산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시현은 미소를 지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시현은 노파에게 말했다.

“저는 대환영입니다.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의 편에서 최선을 다하니까요.”

“네?”

“하지만 그 전에…….”

시현은 그리 말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 밖에 골목에서 빨간 화살표, 파란 화살표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저쪽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어머님을 치우려는 것 같군요. 성질 급하기는.”

* * *

시현이 태그를 박아둔 경찰들은 근무복에서 사복으로 바꾸어 입고 카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이들은 상황실에서 CCTV를 이용해 노파의 행보를 알고 있었다.

시현과 노파가 카페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한 경찰들은 사복으로 갈아입고 빠르게 카페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남자 조사해야 해. 어디서 뭐하는 놈인지. 과연 그 할망구에게 무슨 바람을 불어넣었는지.”

“뭐 보나마나 인권단체 같은 놈들이겠지만 왜 그러지? 대체? 곧 죽을 노파잖아? 간암 걸렸다면서?”

“하지만 경찰서 앞에서 죽기라도 하면 서장님이 골치 아파지겠지. 우린 그 전에 치워야 하는 거고.”

그들은 별 생각 없이 카페의 문을 열고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때였다.

-턱!

카페 입구의 코너에서 막 걸어 나가려던 남자가 그들과 충돌했다.

“이 씹!”

인적 드문 카페 안에서 빠르게 걸어 나오던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

경찰들은 그리 생각하고 화를 내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콰당!

경찰과 충돌한 남자가 밀려서 쓰러지며 테이블에 놓여있던 유리잔에 들이박은 것이다.

재수 없게도 유리잔이 깨지며 남자의 이마라도 찔렀는지 피가 콸콸 쏟아진다.

“으악!”

“히익?!”

“아이고 세상에!”

“맙소사!”

“……!”

들어온 경찰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오긴 했지만 그들은 아직 근무 중이다.

근무 중 사람을 폭행해서 다치게 한다면 골치 아픈 일이 된다.

하물며 백주 대낮이 아닌가.

마침 이 카페는 인적이 드물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다.

“젠장!”

“거 주의하쇼! 병원 부르고!”

그렇게 말한 경찰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카페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 저, 저놈들! 도망간다!”

카페에 있던 점원이 놀라서 그들을 추격하려 했지만 그때 쓰러져 있던 남자가 손을 내저었다.

“자, 잠깐만요!”

“네?”

“……찍었죠?”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남자는 시현이었다.

그가 벌떡 일어나자 점원은 당황했다.

상당히 심한 상처인 것 같아 보이는데 대량의 출혈이었는데도 그는 침착하다.

그리고 그의 눈이 노오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괘, 괜찮으세요?”

“아, 네. 별거 아닙니다. 특수효과예요. 특수효과.”

시현은 그리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유리 파편을 손수건으로 뽑아서 모았다.

……확실히 상처가 없다.

그러나 뽑아낸 유리파편에 피가 묻어 있지 않은가?

“네. 찌, 찍었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총각?”

“괜찮습니다. 특수효과라니까요. 아, 컵 깬 건 물어드리겠습니다.”

시현은 테이블에 지폐를 한 장 놓고 노파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들어서 영상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강남구는 이 녀석들 홈그라운드라 다른 곳에서 이야기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래서, 계약하실 거죠?”

“계약…… 이요?”

“이미 아드님은 불귀의 객이 되었으며 어머님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그 여명 안에 권오상 총경을 몰락시켜드리지요.”

“그런 게 가능한가요?”

“물론이지요. 대신 보수는 어머님의 남은 수명을 받지요. 어때요? 정말 복수를 위해서 남은 수명을 바치겠습니까?”

“…….”

“싫다면 용서를 하는 것도 방법이지요. 상대는 어머님과 어머님의 아들의 인생을 파멸시키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 같지만 혼자서 용서하고 혼자서 만족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텅 빈 용서를 남발하지요. 어떻습니까? 어머님은?”

“저는…….”

노파는 시현의 피가 묻어서 번들거리는 날카로운 유리파편과,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시현의 이마를 번갈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를 원해요. 그러니 계약하지요!”

* * *

시현의 사무실은 마포구의 주택가들 사이에 위치한 작은 상가주택이었다.

1층은 뭔지 알 수 없는 회사의 물류창고로 쓰이고 있고 2층은 시현의 사무실.

3층은 거주 구역으로 되어 있었는데 시현은 이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정말 돈을 내지 않아도 괜찮은 거예요?”

노파는 계약을 나누고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네, 뭐. 돈이야 쪼들리지 않게 벌고 있습니다. 걱정 마시길. 그럼 앞으로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을 때 요청 드리겠습니다.”

“네?”

“경우에 따라서는 어머님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거든요. 가급적 그런 일 없게 하려고 합니다만.”

시현은 그리 말하고 그녀가 서명한 계약서를 낡은 타자기에 넣으려고 하다가 멈칫 멈춰 섰다.

아무래도 노파가 보고 있는 와중에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럼 살펴 가시지요.”

시현은 그렇게 노파를 밖으로 내보내고 타자기에 계약서를 넣었다.

그러자 타자기가 계약서를 빨아들이는 게 아닌가?

-타다닥!

종이가 끼워진 곳에서 빈 타자기가 혼자서 운다.

“알겠어. 알겠어.”

시현은 투덜거리며 타자기에 다시 종이를 끼워주었다.

‘총경, 경찰서장이면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시간 안에 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얼마 없을 텐데 다른 계약자를 찾아 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거 하지. 이제 와서 다른 계약자 찾기도 신경 쓰일 것 같고.”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시간도 아까우니 바로 착수해 볼까?”

* * *

“흠흠…….”

시현은 숙소에 제공된 박하사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숙박업소처럼 한다고 손님맞이용 서비스로 갖다놨네. 그렇다면 이거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지.”

시현은 사탕의 봉투를 뜯어서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의 눈앞에는 삼각대에 거치된 쌍안경이 있었다.

“좋아. 적당히 태그는 다 달았군.”

시현은 숙박공유서비스 어플을 이용해서 강남경찰서가 보이는 곳의 오피스텔 하나를 저렴하게 빌려서 그곳에서 강남 경찰서 안을 조사했다.

그리고 쌍안경으로 창문을 살펴보면서 경찰서장 권오상 총경과 생활안전과장 조경식 경감에게도 태그를 심었다.

“세상 좋아졌군. 정식 숙박업소가 아닌 곳도 이렇게 단기 임대가 쉽다니. 그나저나 이제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시현이 휴대폰을 들고 확인할 때였다.

시현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KR신용정보 추심꾼 정대식’이라는 연락처가 떠올랐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이 미치신 분아! 제정신이십니까?]

상대는 대뜸 욕설을, 아니, 욕설인지 존댓말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왜 강남 경찰서 경찰들을 조사하라는 겁니까?]

“왜는 왜야. 일 때문이지. 권오상 총경은 어떻지?”

[경찰 서장의 신용정보를 조회해서 알려 달라고요? 거 참…… 신용정보 함부로 조회하면 조회하는 순간 당사자에게 통보되는 거 알죠?]

“물론 알지. 하지만 너희는 이미 강남경찰서의 모든 경찰들을 조회해서 ‘윤 회장’에게 자료를 넘겼을 거 아냐?”

강남 유흥업의 대부 윤정식.

그는 현재 강남 제일의 나이트 클럽인 헥사곤의 오너이자 여러 유흥업소와 호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경영하는 표면적으로는 아주 건실한 사업가다.

경찰이나 검찰을 돈과 여자, 쾌락으로 옭아매고 돈과 권력을 만들어 조율하는 암흑계의 거물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강남경찰서에 전입하거나 새로 들어오는 경찰들 중, 자신의 사업에 위협적일 수 있는 이들을 미리 조사해서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남경찰서에 새로 오는 경찰들의 신용정보는 전부 본인들 몰래 조회되어서 윤 회장에게 보고되었을 텐데? 그때 자료도 없어?”

시현이 그 점을 물어보자 상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저희 회사는 그런 거 안 하거든요. 건전한 회사인데 무슨 깡패 회사 취급을 하다니…….]

“그래서 자료를 부정 유출한 적 있어 없어? 내기할까?”

시현이 그렇게 물어보자 상대방 목소리의 풀이 죽었다.

[……2년 전 자료라면 있네요.]

결국 신용정보회사에서 정보의 부정유출이 있었다.

그걸 시인하는 꼴이었다.

[권 서장은 깨끗합니다. 적어도 본인 및 아내와 자식 계좌까지는 깨끗해요.]

“본인 및 아내와 자식까지는?”

[네. 하지만 형이 한 명 있는데 그 형이 받아먹고 있네요. 수법이 강남 경찰서 경찰들하고 똑같은 게…….]

“이야. 대단한데? 형제애가 아주 돈독하시네. 아무리 형제가 우애가 깊어도 뒷주머니를 형에게 맡기는 경우는 별로 없을 텐데?”

[향후 정계 진출까지 노리고 있지 않나 싶네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할 리가 없는데.]

“그래. 그럼 밑에서 가장 많이 해먹는 놈은 누구야?”

[생활안전과장 조경식 경감입니다. 완전 알부자예요.]

“수법은?”

[어음이나 회사채 할인이지요. 윤 회장이 만든 법인이나 회사의 어음과 사채를 할인시켜 사게 해 주고 만기가 되면 다 결재해 주니까 경찰들 돈이 팍팍 불어나요. 땅 짚고 헤엄치기예요, 이거.]

어음과 회사채는 만기가 되기 전에 할인되어 거래될 수 있다.

그 할인율은 그때그때 마음대로 조정되기 때문에 건실한 회사의 어음이나 사채를 할인해서 구매할 수만 있다면 합법적으로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굉장히 공을 들였는데? 그 거래에 대한 정보도 있겠지?”

[네, 그렇죠. 아, 그런데 설마 윤 회장도 건드릴 건 아니죠? 미치신 분아? 아무리 목숨이 여러 개라지만. 대체 얼마 받는 일이기에 그렇게 하는 거예요? 혹시 부자 되면 저에게도 뭐 콩고물 떨어지나?]

“뭐, 상황 봐서. 자료는 메일로 좀 보내줘.”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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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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