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그런데 이쪽 시 의원들 중에 윤정식에게 돈 안 먹은 사람이 누구누구 있을까?”
“아, 진짜.”
정대식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도 없지만 켕기는 게 있어서 피부가 근질거리는 모양이다.
“물론 맨입으로 해 달라는 건 아니지. 여기. 섭섭하지 않게 넣었어.”
시현이 봉투를 하나 꺼내서 정대식의 품에 찔러 넣어 주었다.
그러자 정대식이 헛기침을 했다.
“아이고 참. 예절바르신 분, 역시 교육을 잘 받으신 분은 이래서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방금 전까지 투덜거리던 정대식은 기분 좋게 돈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시현이 정대식의 머리 위를 보았다.
“뭐, 그렇게 해서 기분이 좋다면 말이지. 쯧쯧. 아직 젊은 나이에…….”
“아니, 이 미치신 분이 그런데 왜 거길 보고 말하시는 건데? 얼마예요? 나 얼마나 남았어?”
“담배 끊고 운동이나 해. 쓸데없는 거 알려고 하지 말고. 알아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는 정보니까.”
“그, 그렇게 말하니까 얼마 안 남은 것 같잖아! 그렇지 않지? 많이 남았지요? 농담이지요?”
정대식이 당황하면서 시현에게 물고 늘어졌다.
* * *
강남구의회, 시 의원 사무실에 전화가 울렸다.
“네, 시 의원 도현숙입니다.”
잘 차려입은 중년 여성 한 명이 전화를 받았다.
시 의원 도현숙, 본래 젊은 시절 잘나가던 미인 아나운서였던 그녀는 부자 사업가와 결혼하며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다.
그러면서 유학기간 중 자식을 키우고 교육시켜 대학에 진학까지 시킨 후 한국에 돌아와 정계에 진출했고 시 의원에 당선까지 되었다.
여기까진 아주 좋았는데…….
그녀를 밀어주던 계파가 전멸해버렸다.
당권다툼 때문에 원래 정당에서 탈당해버린 지금, 외국살이가 심했던 그녀로서는 혼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힘들었다.
[공익제보가 하나 있습니다만.]
“공익제보요?”
[네. 강남경찰서의 조직적인 부패와 탈세에 관련된 내용인데요.]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흥, 강남경찰서가 털면 먼지 나올 거라는 것쯤은 누가 몰라? 문제는 그게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가지…….’
도현숙도 강남경찰서가 털어보면 뭐가 나올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남경찰서를 턴다고 그럴싸한 실적이 되는가는 모르겠다.
강남은 제일의 유흥가이자 번화가이면서도 또한 학원가이다.
유권자들은 거리정화에 좋은 점수를 줄 것이지만…….
경찰조직을 적대하는 행위는 위험하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일은 아무리 급해도 하고 싶지 않다.
‘다음 선거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지만 경찰 조직을 적대하면서 성과를 내는 건 위험해. 하지만 카드로 확보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가 쓰진 않더라도 이 제보자가 이걸 들고 다른 시 의원에게 가면 곤란하니까. 일단 내가 확보해서 뭉개고 있다가 다른 시 의원이 발표할 것 같으면 선수 쳐버리고, 그런 게 가능하겠지?’
도현숙은 그런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자료를 요구했다.
“제 메일 주소로 관련 자료를 보내주세요.”
[아, 예. 메일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급해서요. 빨리 공론화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네?”
도현숙은 전화를 들고 어이가 없어했다.
‘아니, 이놈이…… 날 뭘로 보고? 뭐하는 놈이지?’
물론 그녀는 상대의 제보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써먹을 카드 중 하나로 쟁여놓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상대가 급하다고 감히 시 의원인 그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그녀를 조종하려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 제보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쾅 끊어버렸다.
“세상에. 아, 도현숙. 나 많이 죽었네. 이런 시정잡배가 나랑 맞먹으려고 하고.”
그녀는 전화기를 내려치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투덜거리며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메일함을 열고 첨부파일들을 보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 이건!”
그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네!”
[아마 지금쯤 다시 저와 통화를 하고 싶어 하실 것 같아서요.]
“이 사진은 뭐죠?”
[남편 분께서 강남의 지역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고 계시던데요. 유흥업소에 뿌리는 돈이 상당하더군요.]
“…….”
[하지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의원님의 가정사에 불과할 뿐이지요. 의원님은 오히려 피해자 아니겠습니까?]
“감히 날 협박해? 내가 이까짓 거에…….”
[뭐, 그럼 다른 의원 분께 전화를 해 보죠. 마침 당신에게 전화를 건건 그 사진이 있어서 겸사겸사 걸었을 뿐인데.]
“……자, 잠깐만.”
[네?]
“대체 뭘 원하는 거죠? 이, 일단 좀 자세히 이야기 해봅시다. 여긴 시의회 건물이니까 따로 만나서.”
당당한 대한민국의 시 의원 도현숙은 그만 이 전화를 걸어온 이에게 굴복해버리고 말았다.
* * *
강남구 시 의원 도현숙은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카메라가 있나 확인해 보는 것이다.
원래 언론인 출신이다가 정계에 입문한 그녀로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여깁니다.”
그녀에게 젊은 청년이 손을 들어보였다.
“…….”
예상외다.
잘생기고 아직 젊어 보이는 청년이다.
도현숙은 잠시 한숨을 내쉬어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가갔다.
“비서는 데려오지 않으셨나보군요. 하긴.”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도현숙의 남편이 불륜을 하고 있다.
그런 사실을 굳이 비서 앞에서 까발리고 싶진 않겠지.
“당신은 누구…….”
도현숙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시현이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든 도현숙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불륜조사는 첫 주에 5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받습니다만…….”
“그래서. 설마 날 협박하겠다는 건가요? 알겠지만 이건 협박거리가 안 돼요. 내가 불륜 하는 게 아니라 배우자가 불륜 하는 거니까!”
“제가 원하는 건 시간을 아끼는 것뿐입니다.”
“시간?”
“그냥 제보하면 의원님 책상 안에 곱게 파묻힐 텐데 그보다 좀 더 일찍 사건을 처리해 주셨으면 하거든요.”
시현의 당돌한 요구에 도현숙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치가에게 제보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이 사회의 부조리를 정치가가 풀어주길 바라고, 그게 아니면 최소한 공론화라도 해 주길 바라며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바치며 어떻게든 이 일이 해결되길 원한다.
그렇지만 정치가 입장에서는 절대 급한 일이 아니다.
물론 빨리 해결되면 좋지만 제보자가 가져온 정보만으로는 빨리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애초에 경찰에 들고 가지 않은 사건이란 그만큼 저항이 강한 사건이다.
결국 일은 지지부진하기 마련이다.
만약 시현이 그냥 정치가에게 정보를 넘겼다면 정치가는 그걸 자신의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고 언제 터뜨려야 최대한의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를 저울질하며 시간을 끌리라.
시간제한이 각박한 시현 입장에서는 전혀 반길 수 없는 일이나 그게 정치인의 습성이다.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 협박 비슷한 짓을 해서 경계심을 사더라도 상관없다.
시현에게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원이었으니까.
* * *
도현숙은 시현이 건네준 자료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ID 트레이드라는 업소에 누가 봐도 수상하게 출몰하는 권 서장과 권 서장의 형제 권오창의 모습이 찍혀있는 사진, 그리고 ID트레이드의 자금 흐름에 대한 자료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 공들여 모아온 자료 같군요?”
“네, 그렇지요.”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K신문의 고참 기자, ‘기레기’ 장기정 기자가 모아둔 자료일 뿐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동화 슈퍼 살인 사건.”
“음?”
“그 피해자 어머님이 암 말기환자입니다. 이대로라면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억울함이 풀릴 리가 없죠. 경찰조직이 자기 흠집에 달려들 사람이 살아 있으면 자기 흠집을 인정할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오히려 방향을 바꿔서 공격할 필요가 있어요. 권 총경이 더 이상 경찰 조직의 이너서클에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 되면 경찰 조직도 손절하겠지요. 그리 되면 수사상의 과오도 좀 더 쉽게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시한부 인생인 사람의 수명에 맞추기 위해서 서두른다?”
“예.”
“…….”
물론 시현은 모든 내막을 다 이야기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치를 갈구하는 법.
도현숙은 처음에 당혹스럽고 황당해 했을 것이다.
대체 이 인간이 나에게 왜 이러나.
또 뭐 급한 일이라고 이렇게 서두르는 건가?
그걸 이해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시현의 설명은 그녀가 궁금해하는 부분들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뭐, 그리고 확실히 시 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까. 그 전에 어떻게든 유권자들에게 어필을 하긴 해야지.’
시현이 무슨 범죄조직원이라서 경찰들을 차도살인으로 숙청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 해서 나쁠 게 없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추후에도 계속 연락하지요. 그리고…… 혹시 남편의 불륜증거를 모아줄 수 있나요?”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주당 5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 * *
“자, 그럼…… 정산의 시간입니다.”
시현은 노파 박미선을 안전가옥에서 빼내주며 그렇게 말했다.
“오늘, 강남구 시 의원에 의해서 강남경찰서의 비리가 밝혀질 것입니다. 서장 권오상 총경은 징계를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경찰조직도 그를 보호하지 않겠지요.”
“잘 모르겠어요. 그게…….”
노파는 당혹스러웠다.
그녀가 한 일이라곤 그저 시현에게 붙들려 그가 마련한 비밀장소에서 닷새 간 피신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엿새째, 그녀가 시현에게 의뢰를 할 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강남경찰서장을 고작 이 짧은 시간에 파멸시킬 수 있을 리가?
그러니 실감이 나지 않을 수밖에.
“당신은 악마인가요?”
“그 하청업자 정도는 되지요. 그래서 어머님. 정산 전에 하고 싶으신 일이라도 있습니까?”
“…….”
계약을 정산하면 그녀의 수명은 모조리 빼앗긴다.
아마도 바로 죽게 되겠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권 서장, 그 사람을 보고 싶군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사과라도 한마디 들을 수 있다면…….”
“아, 그건 무리일 겁니다. 추천 드리고 싶지 않네요.”
“네?”
“어머님에게는 인생의 전부가 결정된 순간이지만 그 남자에게는 스쳐지나가는 일상이었으니까요. 둘이 사건을 대하는 무게가 다른데 만족스러운 사과 같은 게 나올 리가 없어요. 오히려 더러운 꼴을 볼 가능성이 높아요.”
“…….”
박미선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경찰서에 분실물이라고 가져다 준 반지가 아들의 살인 증거품으로 돌변해서 항의하러 갔을 때.
그때 자신을 내치던 차가운 권오상의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군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를 마련해드리지요.”
시현은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했다.
데드맨31
데드맨3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