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7화 (7/269)

제7화

레반테스 호텔 스카이라운지.

그곳에서 권오상 서장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윤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권오상 서장은 자신이 직접 윤 회장 일파와 접촉하지 않았다.

경찰 서장이나 되는 인물이 유흥업 종사자들과 만나는 건 그것만으로도 추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돈줄이자 인맥의 줄인데…… 부하를 믿지 못하게 된 지금 아무래도 직접 관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권오상은 직접 움직였다.

설마 자신이 아무리 몰래 비밀스럽게 움직인다 해도 태그를 달고 추격할 수 있는 자가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저지른 실책이다.

그런데 어째 주위가 어수선하다.

권오상은 웨이터를 불러 세웠다.

“이보게. 윤 회장님하고 약속이 되어 있는데?”

“아, 권오상 서장님 되시지요. 그게 좀…….”

그때 권오상 서장의 뒤에서 콜록거리는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고급호텔에 어울리지 않는 꾀죄죄한 옷차림의 노파가 서 있었다.

“권 서장님. 오래간만이구만요.”

“음?”

권 서장은 당황했다.

“뭐야? 왜 당신이 여기 있어?”

“지금 막, 당신네 그 뭐시기 트레이든가 하는 곳에 수사가 들이닥쳤어유.”

“!!!!”

“그래서 말인데, 정말 요만큼도 나나 내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어유?”

“아니, 이 할망구가 미쳤나?!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당황한 권 서장이 벌떡 일어나자 스카이라운지에 와있던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뭐지?”

“그러게?”

권 서장은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통화중이었다.

다른 쪽에 전화를 해 봐도 마찬가지, 모두들 지금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당신 때문에 우리 모자는 인생이 망가졌는데, 정말 요만큼도 켕기는 구석이 없나요? 사과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닥쳐! 인생이 망가지긴! 내가 손대지 않아도 원래부터 너희들은 시궁창 쥐 같은 것들이야! 어차피 정박아 새끼 아냐?! 경찰 노릇이 뭐 쉬운 줄 알아? 너희 같은 정박아들 뒤치다꺼리나 하려고 내가…….”

그 말을 들은 노파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역시, 시현이 말한 대로 이 남자는 그녀와 그녀의 아들의 인생을 짓밟은 것에 대한 가책이 전혀 없다.

지나가다 개미를 밟은 것 이상의 감흥이 없는 것이다.

그때 웨이터 한 명이 다가와서 다른 웨이터에게 귓속말을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권 서장님.”

그러자 웨이터가 리모컨을 들어서 바 벽면에 붙은 TV를 켰다.

호텔의 인포메이션과 홍보 영상이 나오던 TV가 일반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남구 시의회 프레스 룸에서 시 의원 도현숙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었다.

밑에는 자막으로 ‘강남경찰서 대규모 부패 커넥션.’ 이란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

권 서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 * *

“저, 회장님께선 바로 2시간 전에 출국하셨습니다. 그래서 약속에는 못 오시겠다고…….”

웨이터는 권 서장에게 그렇게 말했다.

“망할, 이게 다 뭐야?”

권 서장은 TV에 달려가 마치 TV안으로 뛰어 들어갈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좀 저희 모자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되었어유?”

노파가 빈정거렸다.

“꺼져. 난 가야겠다!”

권 서장이 정신을 차리고 노파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걸 보여주면 서장님도 깨닫는바가 있을 거라던데…….”

노파가 수표 같은 종이를 한 장 꺼내서 흔들었다.

‘어음? 설마?!’

그걸 본 순간 권 서장은 한달음에 달려들어 노파의 멱살을 잡았다.

“너 뭐야?! 왜 네가 그걸 가지고 있어?! 엉?! 누구야?! 누가 시켰어!?”

“…….”

권 서장이 쓰고 있던 가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경찰 조직의 엘리트,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자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서 그의 적나라한 모습을 이 노파에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걸 보며 노파는 미소를 지었다.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어서 뭘 낳고 싶어 하면 그게 미친 게지.’

노파는 그리 생각하며 말했다.

“정산……!”

그 순간 노파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어?!”

권 서장은 갑자기 무거워지는 노파의 몸에 기겁했다.

죽었다.

이 노파가 자신의 앞에서 죽을 셈이라는 건 그녀가 시위를 할 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최악의 타이밍, 최악의 방법이 아닌가?

물론 그녀에게는 최선이고 권 서장에게만 최악의 타이밍이다.

“세상에.”

“뭐야? 저거?”

“죽인 거야?”

“겨,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스카이라운지의 다른 손님들의 이목은 이전부터 권 서장과 노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노파가 눈앞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내가 아니야! 그, 그래! 이 노파가 이걸로 내게 사기를……!”

당황하며 권 서장은 노파가 흔들던 어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칼라프린터로 인쇄한 조잡한 가짜였다.

“!!!!”

망연자실한 권 서장 주위로 호텔 웨이터들이 다가왔다.

“이러시면 곤란하죠, 권 서장님.”

“저희 업장에서는 좀…….”

“아니야!”

권 서장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경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의 미래가 지금,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 * *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반테스 호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그가 로비 층을 누른다.

시현이었다.

“후우.”

그런데 그런 그가 막 내려가려는 때 몇몇 검은 양복들이 팔을 쑥 집어넣어 막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멈춰 세웠다.

“같이 내려갑시다.”

“좋으실 대로.”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검은 양복 둘이 함께 타고 로비 층을 눌러서 지우고 지하의 서비스 층으로 바꿔 눌렀다.

“…….”

“시 의원님은 국회의원이 되고 싶으신 모양이야.”

“돈세탁 업체 하나를 날려버린 것에 대한 사죄로 탐정 하나쯤은 얼마든지 넘겨주신다더군.”

역시 시 의원 도현숙은 시현에게 협박당하다시피해서 일을 하게 된 것에 원망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치인들이 정보원을 잘 보호하지 않는다는 건 업계의 상식 같은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왔지?”

검은 양복들은 시현을 바라보지 않고 엘리베이터 입구를 몸으로 지키며 물어보았다.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시현탐정사무소의 자랑이지. 계약자가 가장 원하는 결말을 연출해 주려면 내 눈으로 장면을 볼 필요가 있거든. 최상의 타이밍,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말야.”

“뭐야 이놈?”

“곧 죽을 텐데 무슨 개소리를 늘어놓는 거야?”

검은 양복들이 그렇게 말하자 시현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한데 너희들은 날 못 죽여.”

“어쭈, 뭐 좀 배웠나봐?”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엘리베이터가 서비스 플로어에 열렸다.

호텔 운영용 물자를 하역하는 층의 주차장 입구에는 이미 다른 검은 양복들이 대기 중이었다.

서비스 층에 네 명,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놈이 두 명, 도합 여섯 명이다.

두 놈은 야구배트와 골프채까지 들고 있었다.

특히 야구배트를 쥔 놈은 배트를 손에 테이핑해서 아예 붙여놓기까지 했다.

아무리 훈련 받은 사람이라 해도 이 상황에서는 과연 살아나갈 수 있을까?

“자. 나와, 이 새끼야.”

“그러지.”

시현은 대뜸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남자의 몸에 손을 뻗었다.

-푹!

놀랍게도 아랫배 안쪽에서 늑골을 올려서 단번에 움켜잡았다.

보통 잡히지 않는 부위를 파고드는 그 손아귀 힘에 거구의 검은 양복이 어린애처럼 비명을 질렀다.

시현은 검은 양복 한 놈의 늑골을 붙잡고 그를 밀어내면서 방패막이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주위의 다른 검은 양복들이 기겁했다.

“어?”

“이, 이 자식이?!”

그때 다른 한 놈이 잽싸게 뛰어들어 야구배트로 시현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빡!

시현이 피를 흘리며 풀썩 쓰러졌다.

“새꺄! 까불고 지랄이야!”

시현의 머리통을 야구배트로 후려버린 놈은 다시 쓰러진 시현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야, 아직 호텔 안인데 여기서 죽여버리면…….”

그러나 늑골이 잡혔던 남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으웍…… 부, 부러졌어.”

“독한 놈이네.”

“일단 차로 옮기죠. 젠장.”

그들은 그리 말하고 쓰러진 시현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런데 그때 시현이 벌떡 일어났다.

“헉?!”

피를 머리에서 철철 흘리는 시현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쯧.”

시현은 피범벅이 된 입술을 혀로 핥았다.

자신의 피를 핥은 시현이 금색 눈으로 질려버린 검은 양복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날 못 죽인다니까.”

“어?”

“이…… 이 새끼가!”

검은 양복들은 겁에 질렸다.

분명히 야구배트로 풀스윙해서 후두부를 강타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죽어야 정상인데 이 녀석, 머리에서 피를 분수같이 흘리면서도 태연하게 일어났다.

게다가…….

출혈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람인가?”

“불사신?”

“아, 그, 그런 게 어딨어?!”

검은 양복들이 겁에 질린 채 시현에게 덤벼들었다.

* * *

시현은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으윽…… 사, 살려. 잘못했어. 아, 아니, 잘못했습니다.”

그런 시현의 손에는 야구배트를 테이프로 감은 남자의 발목이 붙잡혀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시현은 자신을 납치하는 데 쓰려 했던 스타렉스 차량의 운전석 문을 열고 야구배트를 감은 남자의 다리를 문 안에 걸쳐 놓았다.

“어, 서, 설마? 하지 마!”

-쾅!

시현이 문짝을 닫자 문에 남자의 다리가 끼어버렸다.

“끄악!”

시현은 문을 살짝 열었다.

다시 쾅 닫았다.

아마도 다리가 분쇄골절 되었을 것이다.

“후우.”

그렇게 두 번 정도 문을 닫은 시현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주위에는 널브러진 검은 양복들.

신음하며 의식을 잃은 이들을 보며 시현은 품에서 ID트레이드 사무실에서 가져온 사탕을 꺼냈다.

“가뜩이나 저혈압인데 혈당 떨어지잖아.”

시현은 얼굴을 찌푸리고 사탕을 입에 털어 넣은 뒤, 휴대폰을 들어 도현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현숙 의원님. 지금 제가 아주 재미있는 일을 당했는데 말이지요.”

[불륜조사 비용은 입금해드렸습니다. 시현 탐정님.]

“…….”

시현은 얼굴에서 스마트폰을 떼서 뱅킹을 확인해 보았다.

도현숙의 이름으로 1000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 외 뭔가 더 용무라도?]

“아니요. 저희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사랑, 고객만족이 최우선이지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드리겠으니 앞으로도 자주 이용 부탁드립니다.”

시현은 그렇게 통화를 끝마치고 박수를 쳤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얄밉지만 밉진 않네.”

그는 화는 나지만 황당함이 앞서서 제자리를 뱅뱅 맴돌다가 아직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검은 양복을 보더니 그의 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커억?!”

“잠깐 쉬었다 가도 되겠지? 친구.”

“크으으윽.”

“사탕 하나 줄까? 너희 업장에서 가져온 건데. 다음엔 좀 젤리 같은 걸 구비해놓을 수 없냐?”

시현은 자신에게 깔린 검은 양복에게 사탕을 주려고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상태가 안 좋은 검은 양복은 사탕 하나 받을 수 없는 듯해 보였다.

데드맨31

데드맨31 #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