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9화 (9/269)

제9화

정보3팀 팀장 박진감 경위는 꾀죄죄한 용모에 눈만 번뜩이는 기이한 인물이었다.

경찰이라기보다는 언제 흉기난동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인물처럼 보였다.

“저, 정보3팀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으로 경찰서 홈페이지의 경찰서 조직도를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정보3팀의 이야기는 없다.

“음. 뭐 생긴 지 얼마 안 된 팀이라서.”

“그렇군요. 그럼 저는 어떤 일을 하면 될까요?”

“이야. 바로 업무 이야기인가? 의욕이 대단한데.”

박 팀장은 그리 말하고 서류철을 하나 건네주었다.

“이건…….”

“우리 관할 구에서 흥신소를 하는 놈이다. 이놈을 조사할 거야.”

“네?”

“권 총경 사건 알지?”

“그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옷 벗은 분 말입니까?”

서류철 안에도 신문 스크랩이 한 장 들어 있었다.

‘현직 경찰 간부, 유흥업 대부와 밀담.’

이렇게 되어 있고 사진이 찍혀있는 장면이다.

“그래. 이 녀석이 권 총경의 뒷조사를 해서 언론에 흘렸다고.”

“네? 흥신소 업자가요?”

“그래. 뭐 권 총경 잘린 거야 경찰대 출신 엘리트들에겐 좋은 일이겠지. 윗대가리가 자리를 좀 비워줘야 밑에서 승진하고 올라갈 거 아니겠어? 하지만…….”

박 팀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경찰 조직을 우습게 보는 놈을 그냥 내버려두면 조직 기강이 흐트러지잖아.”

“…….”

그러니까 이건 표적수사다.

감히 경찰 관료 조직에게 치욕을 안겨준 민간 흥신소, 그 흥신소를 조사해서 불법적인 일을 하는 대로 엮어 넣으라는 상부의 지시, 그걸 수행하는 게 바로 정보3팀인 것이다.

“뭐 흥신소 놈들, 원래 불법에 발을 담그고 사는 놈들이니까 조금만 조사하면 바로 잡아넣을 게 산더미처럼 튀어나올 거야. 문제는 그래서 경찰을 피해 다니는 재주 하나는 비상하다는 거지.”

“아, 네.”

류하리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내심 경악했다.

‘아, 젠장. 진심인가? 보복성 표적수사라니?’

그녀가 경찰대학에 들어와서 느낀 이 경찰이란 조직의 생태를 생각해 보면?

진심인 게 당연하다.

이놈들은 진심으로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다.

‘너무 노골적인 표적수사인데…… 하지만 서장이 직접, 그것도 우리 아버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지목한 일인데 못 하겠다고 하면 경찰 때려 쳐야겠지?’

경찰대학 출신이 경찰을 관두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찰대학의 입학 허들은 유수의 명문대들과 같다.

자연히 그 학생들 또한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찰 조직은 진급이 적체되어 있어서 장래에 답이 없다.

그래서 경찰대 졸업생 상당수는 행시, 외시, 의전원, 사법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딱히 경찰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남아 있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서장이 직접 지목했다는 게 문제다.

‘조직에 반항한다는 이미지가 찍힌 채로 행시나 외시를 쳐서 그쪽에 붙는다고 해 봤자 거기도 공무원이잖아? 일단 반항아 딱지가 붙으면 거기서도 조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으음. 진퇴양난이네. 왜 임관 초기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그런 약점만 없으면 이런 꼴이 되진 않았을 텐데.’

류하리는 자신의 처지에 한탄했다.

* * *

류하리는 시현에게 접근하기 전 다른 흥신소에 들러서 시현에 대한 평판을 들어보기로 했다.

정보3과 박진감 경위의 소개로 왔다고 하자 다들 친절하게 수사에 응해 주었다.

“시현? 아니, 경찰 아가씨가 그 친구는 왜?”

“평판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요.”

“하하하. 그거구만 그거. 시현이 강남경찰서를 뒤집어 놨다던데 그것 때문에 그러지? 경찰 체면에 먹칠했으니 이 새끼 털어서 뭐 나오나 보자 그거 아냐?”

“그래서 평판은 어떤가요?”

“음…… 불륜조사의 왕이지.”

“네?”

의외의 대답에 류하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불륜조사를 너무 잘해. 얼마나 잘하냐면 우리에게 불륜조사 의뢰가 들어왔는데 계속 조사기간만 길어지고 별다른 성과가 없을 때는 그 친구 불러서 검토 요청한다니까. 그 친구가 아, 이건 불륜 맞다 하면 불륜인 거고 아니면 착각이다. 조사 종결하고 그러는 거지.”

“돈을 엄청 벌 거예요.”

“가만, 불륜조사 하는 사람이 왜 경찰을 적으로 돌리는 짓을 하죠?”

“나야 모르지. 하지만 가끔 수지타산 안 맞는 의뢰도 하더라고.”

“그 친구 너무 잘나가서 짜증나니까 이 기회에 버릇을 고쳐주면 좋겠는데…….”

“그 친구 없어지면 우리도 곤란해요. 불륜조사가 우리 일 대부분이잖아요. 가끔 우리일도 도와주고 그러는데.”

“들었지? 이게 그 녀석 평판이야.”

“아…….”

류하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탐문했다.

이 사람들 100% 시현에게 경찰이 널 벼르고 있다고 말할 사람들이다.

시현이라는 탐정이 경찰에게 걸려서 곤욕을 치르면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시현이 감옥에 가는 걸 원하지는 않는 그런 정도의 관계다.

‘빨리 처리해야겠는걸. 이들이 뭔가 말하기 전에.’

* * *

그리고 지금, 류하리는 사복차림으로 마포구의 낡은 건물 앞에 당도해 있었다.

주택가에 위치한 낡은 상가, 1층에도 장사가 잘 안되어 창고화 되어 있는 곳의 3층 사무실이다.

월세는 저렴할 것 같다.

돈 잘 번다는 소문이 있던데 대로변에서 번듯한 사무실을 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아. 이런 허름한 흥신소를 조사하라고?”

류하리는 약간의 자기혐오를 느꼈다.

“뭐 기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해 봐야지. 이번에 밉보이면 경찰을 해 나갈 수 없을 테니까.”

그녀는 전단지를 꺼내보았다.

못 받은 돈 받아드립니다.

민간 조사.

보안 점검.

그 외 모든 문제 상담해 보세요.

시현탐정사무소.

“요즘 세상에 탐정이라?”

류하리는 심호흡을 했다.

“그럼 들어가 볼까?”

엘리베이터도 없는 좁은 계단을 올라서 그녀는 3층 사무실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하지만 벨이 고장 났는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서 문을 건드려 보았지만 문도 움직이지 않는다.

문에는 부재중 연락처가 붙어 있긴 했지만 그녀가 그 부재중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보니 사무실 안에서 휴대폰의 벨소리가 들렸다.

‘아. 휴대폰을 놓고 다니나? 으음. 어쩐다. 그냥 헛발질했다고 하고 돌아갈까? 하지만 첫날부터 이러고 싶진 않은데. 휴대폰을 놓고 온 걸 보면 근처에 있겠지? 그럼 잠깐 기다릴까?’

머리를 긁적이던 류하리는 문득 사무실의 도어락을 보았다.

“전자식 도어락이니 딸 수도 없겠네.”

그렇게 말하며 류하리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타탁…… 타타타탁.

사무실 안에서 타자기 소리가 들렸다.

“응? 안에 있어요?”

그녀는 문 안에서 타자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 문을 노크해 보았다.

그런데…….

-삐빅…….

도어락이 열렸다.

“어?”

마치 들어오라는 듯 문이 열려서 류하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뭐지? 익숙해…….’

불현듯 그녀는 데자뷰를 느꼈다.

이곳, 이 탐정 사무실 안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황량한 사무실 안에는 소파베드와 손님용 소파.

그리고 텅 빈 테이블 위에 프린터기와 낡은 타자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시대에 아날로그 타자기? 장식품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류하리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안에 인기척이 없다.

“어라?”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

“그럼 방금 전 타자기 소리는 어디서 난 거야?”

그녀가 그런 의문을 품으며 타자기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 * *

“그만.”

사무실의 입구 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분명히 문을 잠가두었을 텐데?”

장신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청년이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의외다.

보통 흥신소라면 경찰이나 공무원 출신들, 아니면 조직 폭력배 같은 이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경력이 있다고 보기에는 꽤 젊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어딘지 모르게 지치고 그늘져 있는 남자였다.

‘오. 진짜 탐정 같다. 지저분한 문신돼지일 줄 알았는데 키도 크고 잘생겼는데?’

류하리는 어딘지 퇴폐적인 냄새를 풍기는 남자의 외모에 감탄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류하리와 타자기 테이블 사이의 공간을 자르고 걸어 들어와 타자기에 끼워져 있던 종이를 쓱 뽑아냈다.

“아, 여기 사무소 소장님이신가요?”

“여기 소장, 시현이라고 합니다. 불법 침입을 감행한 아가씨.”

“아, 저, 저기 열려 있었어요. 안에서 타자기 소리가 들리길래. 안에 계신 줄 알고.”

“잠겨있지 않았다?”

“네. 그래서 들어와 봤어요. 불법 침입할 생각은 없었어요.”

류하리는 잠겨있지 않았다고 우겼다.

뭐 디지털 도어락을 어떻게 따고 들어왔다는 것보다는 열려 있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래서 무슨 일이지요?”

“의뢰를 하러 왔어요.”

“의뢰?”

“네. 그게 그…… 약혼자가 있는데 뒷조사를 좀 부탁할까 하고요.”

류하리는 미리 준비해왔던 대로 말을 꺼냈다.

그러나 남자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면서 코웃음 쳤다.

“쓸데없는 소린 관두지요. 당신 경찰 아닙니까?”

“네? 무슨 말씀이신지?”

퍼뜩 놀란 류하리는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이 남자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준비하며 술술 말했다.

“류하리 경위. 경찰대학 수석 졸업자. 한강건재 오너 일가의 영애. 학창시절엔 공기권총 선수로 전국우승도 했었지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류하리는 이놈의 잠입조사가 첫 발부터 망했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가 자신을 너무 잘 안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죠?”

“역으로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게 우습군요. 경찰대 생도 시절에 매스컴이랑 인터뷰도 했을 텐데?”

“아니, 그…….”

그런 일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TV방송이 얼마나 많은데 이 남자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걸까?

아니면 혹시 탐정일 하는데 경찰의 동향을 파악하느라 기억하고 있는 걸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방송에서는 그냥 미녀 경찰대 학생 정도로 나왔겠지. 내 집안까지 나오진 않았을 거 아냐?’

자신이 미녀라는 점은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류하리였다.

“보아하니 권 총경 사건 때문에 경찰들이 날 엮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가 그런 더러운 짓을 해서 윗사람들에게 이쁨 받으려고 그러십니까?”

“아, 아니.”

류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라서 그 점을 힐난 받으니 너무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

부끄럽고 망신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 내에서 미운털이 박혀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데 여기서 물러나면 끝장이다.

뭐가 되더라도 건져야 한다.

데드맨31

스트리밍 살인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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