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류하리는 심호흡을 하고 승부수를 던졌다.
“일단 인정하겠어요. 네, 표적수사 맞아요.”
“네?”
시현은 류하리가 꽤 시원시원하게 인정해버리는 것에 당황했다.
“물론 상층부의 직접적인 명령은 없으니 공식적으로는 제 독단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당신은 결국 상층부에서 떠밀린 희생양이다?”
“변명이겠지만. 네, 그래요.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려는데요.”
“제안?”
“네. 어차피 절 쳐내봐야 그 다음 사람이 올 텐데 그럴 바엔 저랑 잘 지내죠?”
“…….”
잠시 사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망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뭐라고 답 좀 해 봐! 차라리 비웃거나!’
류하리는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현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다.
“정말 몰렸나보군요. 그런 제안을 하다니.”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슬프군요.”
“그래서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무슨 이득이 있지요?”
“기왕 경찰 꼬리를 달고 다닐 거면 말이 통하는 상대가 낫지 않겠어요?”
“당신이 더 말이 잘 통한다는 근거는?”
“이보세요. 탐정 씨. 지금 당신이 절 쳐내면 당신은 경찰들에게 선전포고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러니 제가 가장 말이 잘 통하는 경찰일 거예요. 절 쳐내면 그다음엔 말이 아니라 실력행사를 할 테니까 말이죠.”
“후후. 이거 참, 제가 경찰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있나 보군요. 그리고 류하리 경위님의 경찰에서의 입지도 안 좋은 모양이고요.”
“…….”
류하리는 자신의 여건을 꿰뚫어보는 시현의 눈썰미에 당황했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네, 알겠어요. 일단은 받아들이겠습니다. 협력하도록 하지요.”
경찰조직의 천덕꾸러기와 자칭 탐정, 타칭 흥신소장의 기묘한 협력관계가 만들어졌다.
* * *
“쓸데없는 짓을 했군. 일부러 타자를 친 거지? 그녀에게 들리라고?”
‘무슨 말씀이신지?’
“딴청 피우지 마. 이건 너와 나의 문제다. 그녀를 끌어들이지 마라.”
‘그런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제 경고는 진실입니다.’
시현은 타자기를 보면서 그보다 먼저, 류하리 경위가 들어왔을 때 찍혔던 경고 문구를 꺼내 들어보였다.
‘계약자에 의한 연쇄살인사건 발생 중.’
경고문구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계약자에 의한 연쇄살인사건이라고?”
‘네. 소망은 인간이 앓는 질병이지요. 그 소망을 이룩하게 해 주면……. 살인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소망이 피어나겠고, 그중 일부는 당신의 양식이 되겠지요. 물론 당신이 다른 계약자들을 능가한다면 말입니다.’
타자기 너머의 존재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 * *
‘은평 크루.’
그것은 은평구 연신내동 인근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인터넷 방송인 그룹을 관리하는 회사였다.
최근 유행하는 ‘멀티채널 네트워크’라고 하는 사업형태였다.
팀 리더이자 사장인 조경호를 필두로 네다섯 명의 인터넷 방송인이 소속되어서 회사에서 편집과 기획을 도와주고 대신 인터넷 방송인들의 수익은 회사가 관리하고 분배하는 그런 팀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의 사장 조경호가 은평구 연신내동에 위치한 자신의 회사 사무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여기까지는 흔한 살인사건이었다.
그러나 경찰들이 은평 크루의 사장 조경호의 시신을 발견한 그때, 마포구 합정동의 한 오피스텔에서는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인터넷 방송인 수광. 주로 게임과 남들 험담을 주로 하는 막장 콘텐츠로 유명한 그는 오늘 라이브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걔랑 사귄 적이 없다니까 그러네. 거 참. 아니, 꼭 사귀어야만 같이 자는 건 아니잖아? 응?”
방송에서 한창 저번에 합방했던 여성 인터넷 방송인과의 소문을 해명하던 그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집에 방음설비를 설치해 만든 그의 스튜디오에 누군가가 찾아 온 것이다.
“어? 뭐야? XX 아니야? 무슨 일이야? 응? 손에 그건 또 뭔데? 무슨 컨셉이냐?”
별 생각 없이 수광은 찾아 온 사람을 맞이했다.
그런데…….
-빡!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광의 머리가 터졌다.
그의 스튜디오에 들어온 침입자가 손에 들고 있던 흉기로 수광의 머리를 후려갈긴 것이었다.
바로 앞에서 머리를 강타한 사실에 처음에 수광은 현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야! 뭐, 뭐하는 거야? XX. 야?”
그런데 그 다음에 갑자기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라는 부위는 정말 놀랍도록 피가 많이 나오는 부위다.
“어?”
수광은 당황해서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만졌다.
손가락 틈 사이로 피가 찍찍 뿜어져 나와서 스튜디오 설비를 피로 적시기 시작했다.
컴퓨터, 마이크, 조명 등에 수광의 피가 흘러들어갔다.
“이…… 미쳤나. 라이브 중인데…….”
수광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침입자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두 번째 타격이 다시 수광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이 두 번째 타격에서 수광은 상대가 확실히 살의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첫 일격에서 이미 치명상이었고 두 번째 공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모든 자위능력이 사라졌다.
“아…… 젠장.”
수광은 그저 라이브중인 영상을 보고 시청자들이 경찰을 불러주길 기대하며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피가 썰물처럼 그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 * *
‘어, 뭐야? 이건?’
수광의 라이브 방에서 스트리밍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갑자기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대신 수광의 비명소리, 욕설 소리, 그리고 뭔가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어?’
‘존나 흔한 컨셉이네. 개노잼.’
‘여자BJ들 썰이나 풀어라.’
‘별 거 없으니까 막장질로 때우려는 거 아냐?’
한창 다른 여성 인터넷 방송인들의 썰을 기다리고 있던 시청자들은 갑자기 화면이 나간 수광의 방에서 기다리며 키득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화면이 회복되었다.
온통 피에 물든 수광의 방이 화면에 나타났다.
‘뭐야? 벽에 뭐 뿌린 거야?’
‘벽에 똥칠한 듯?’
‘ㅋㅋㅋ’
‘머저리 새끼 웃기려고 용쓴다.’
다들 수광이 새로운 콘셉트로 장난질을 한다고 생각할 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후에도 한동안 수광의 반응이 없다.
그리고 벽에 발려진 것은 아무리 봐도 인공 피가 아니라 진짜 피처럼 보였다.
결국 몇몇 시청자가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구급대원들은 급한 대로 문을 부수고 들어와 바닥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수광을 발견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오, 맙소사. CPR!”
구급대원들이 달려와 CPR을 시작하고 경찰들은 주위를 촬영하며 혹시나 있을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았다.
‘어?’
‘뭐, 뭐야 이건?’
그제야 보고 있던 다른 시청자들도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피투성이가 된 수광에게 응급처치를 취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진짜 경찰이야?’
‘말도 안 돼.’
‘그러고 보니까 아까 전부터 신음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아, 그럼 그게 수광이 죽어가는 소리였어? 대박!’
‘이야. 좋은 거 봤다. 도네 쏜다.’
‘나도.’
‘사람 죽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미친 새끼들…….’
‘뭔 상관이야. 도네 뿌리면 하다못해 유족에게 도움 되는 거 아니겠냐. 축의금 같은 거지.’
‘부조겠지.’
‘조의금 아냐?’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수광에게 응급처치를 하며 후송준비를 하는 구급대원들을 보며 도네를 쏘기도 하고, 그런 이들을 비난하기도 하며 떠들어대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운영자가 강제로 방송을 종료했을 때는 수광이 실려 나가고 텅 빈 방에 온통 피바다가 펼쳐져 있는 장면이 20분 이상 방송되고 난 후의 일이었다.
* * *
MCN, ‘은평 크루’의 사장과 인터넷 방송인 수광이 살해당한 것은 고작해야 16시간의 시차.
즉, 하루 만에 두 명이 연속으로 살해당했다.
이것만 해도 충격적인 사건인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중 인터넷 방송인인 수광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방영되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영상이 나오지 않아서 온전한 방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뼈를 깨부수는 소리.
피가 인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며 한숨과 목숨이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그 순간의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체는 보이지 않지만 그 시체가 뿌리는 피와 시체를 발견한 구조대원들의 다급한 모습이 보였으니 수광이 살해당한 영상은 너무나도 자극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은 물밑에서 수광이 살해당한 영상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몇몇 이들은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리기 시작했다.
치안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간만에 일어난 끔찍한 강력 범죄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 * *
류하리는 어수선한 경찰서 내부를 보며 당황했다.
MCN ‘은평 크루’의 사무실은 은평구 연신내동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 일원인 인터넷 방송인 수광은 마포구 합정동에서 살해당했다.
관내에서 살인사건, 그것도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 덕분에 경찰들은 지금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사실 그녀는 경찰조직 내에서 천덕꾸러기가 된 이후로 이런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다.
경찰에 갑자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건 누군가가 끔찍하게 죽어서 언론의 관심을 끈다는 뜻이다.
기다리던 일이 일어났는데도 류하리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런 류하리에게 다가오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류하리 경위님 아냐? 수석졸업 한.”
“누구시더라?”
“설마 치매라도 온건 아니지? 나야 나. 학교 동기 성신아.”
그런 그녀의 제복 가슴에는 성신아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물론 류하리도 그런 성신아를 모를 리 없다.
성신아는 류하리에게 사사건건 경쟁의식을 가지고 덤벼들던 학교 동기였다.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신에게 대항의식을 가지고 덤벼드는 이를 모를 수 없다.
게다가 성신아는 경찰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고 서울지방경찰청에 발령받았다.
본래라면 류하리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성신아가 마포경찰서에 발령받았을 것이다.
‘아, 최악이다.’
류하리는 자신을 깔보는 듯한 시선을 감추지 않는 동기를 만나고 내심 혀를 내둘렀다.
“어째서 네가 여기 와있어?”
“왜겠어?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질 거니까 그렇지.”
“스트리밍 살인사건 때문에?”
류하리도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이번 사건을 알고 있었다.
벌써 스트리밍 살인사건이라는 사건 명칭까지 만들어져 널리 쓰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 살인사건이 하나는 은평, 하나는 마포에서 일어났으니까 관할구역 정리를 위해서 서울지방경찰청이 나설 만하지. 사건도 좀 심각한 게 아니고. 인터넷 방송이긴 하지만 전국에 살인현장을 중계한 꼴이잖아? 당연히 난리가 나지.”
그렇게 말하던 성신아는 어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류하리. 넌 어때? 학교에서 수석이었으니까 여기서도 아마 상당히 잘나가고 있겠지?”
‘이게 대놓고 간을 보네?’
류하리는 성신아가 동기들 사이에서 류하리 자신의 소문을 수집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즉, 성신아는 현재 류하리가 개털이 된 걸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체하고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데드맨31
스트리밍 살인사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