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1화 (11/269)

제11화

“잘 안되고 있어.”

“어머! 그럴 리가! 그 류하리잖아! 집도 부유하지, 공기권총 선수였지. 경찰대도 수석졸업 했잖아? 그런 류하리가 잘 안되고 있으면 차석한 나는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겠네.”

그러자 류하리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누가 버리고 간 음료 컵을 찾아왔다.

“접시 물은 없지만 이거라도 어때? 코 박고 죽기엔 충분한 수량인 것 같은데?”

“…….”

류하리는 아득히 옛날 순정만화 여주인공처럼 쫑코 준다고 빌빌거리는 인물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성격이면 경찰대학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어머. 화났어? 나는 그저 동기들 중 수석 졸업한 네가 분발해서 잘되길 바라는 것뿐이야.”

“내가 잘되길 바라다니 고맙네. 어디 절에 들어가서 삼천배라도 해 주지 그래?”

류하리는 음료 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성신아를 뒤로하고 나갔다.

“아, 저거 진짜. 보람 없네.”

류하리를 엿 먹이려 했던 성신아는 반응이 별로 재미없자 짜증을 냈다.

* * *

“하아. 이게 뭐람. 관내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나는 이상한 탐정이나 조사해야 하고.”

성신아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류하리 또한 상처투성이였다.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한심해서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탐정이라 죄송하군요.”

시현이 그녀의 뒤에 와 있었던 것이다.

“꺅! 깜짝이야. 아, 좀. 기척 좀 내고 다녀요! 사람이 무슨……. 좀비예요?”

“스트리밍 살인사건.”

“네?”

“마포 경찰서에서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네, 바로 그래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니 경찰도 최대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수사본부를 크게 꾸리면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 모두가 공적을 나눠먹을 수도 있고.”

“승진에 도움이 되겠군요. 류 경위님은 관심 없습니까? 그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면 이상한 탐정의 꽁무니나 따라다닐 필요는 없을 텐데?”

“왜 관심이 없겠어요? 하지만 제가 원한다고 합동수사본부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조사하는데 굳이 합동조사본부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은 절 조사해야 하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조사하는 제가 그 사건을 조사하면 되겠지요.”

“네?”

류하리는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는 시현을 보며 당황해서 그를 따라갔다.

* * *

“아니, 잠깐!”

류하리는 당황하면서 시현을 보았다.

시현은 자신의 명함, 거의 광고 전단 같은 것을 손가락에 끼고 휘릭 튕겨서 빌라 현관문 틈에 정확히 꽂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전단, 홍보물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무슨 짓이에요? 이게? 경찰인 절 데려와서 하는 짓이 고작 광고전단 뿌리기?”

“중요한 일입니다.”

“아, 그러시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홍보물 명함은 쳐다보지도 않고 버리지 않을까요? 괜히 쓰레기만 늘리는 것 같은데. 쓰레기 투기 경범죄가 되겠군요.”

“보통은 탐정사무소 명함 따위 거들떠도 안 보겠지요. 하지만 가족이 살해당했는데 경찰이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떨까요?”

“…….”

“제가 전단을 넣은 곳은 스트리밍 살인사건의 피해자, 혹은 관련자들입니다. 여긴 다 뿌렸으니 다음 장소로 이동할까요?”

“네? 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경찰들이 스트리밍 살인사건을 해결 못 하고 그래서 유가족들이 당신을 찾을 거다. 그 말이에요?”

“네. 경찰은 해결 못 합니다.”

시현은 단언했다.

“대한민국 경찰을 물로 보지 마세요. 이건 간단한 사건이잖아요?”

“간단하다?”

“은평 크루라는 MCN 에선 최근 한 팀원이 부당하게 방출 당했죠. BJ칼리.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합방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던 인터넷 방송인 수광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했지만 은평 크루는 오히려 피해자인 BJ칼리를 방출했어요. 그러니 자신을 방출한 사장과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무례한 짓을 한 인터넷 방송인 수광을 살해한 게 분명하지요.”

“잘 알고 있군요. 하지만 다른 원한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요?”

“영상이나 살해 현장을 보면 상대는 면식범이에요. 피해자가 직접 문을 열어주고 범인을 자신의 사적인 영역으로 들여보낸 다음에 살해당한 것이니까요. 게다가 한 명은 살해당할 때 생방송을 해서 정확한 범행 시각도 밝혀졌죠. 살해시간이 명확하니까 근처 CCTV를 뒤져보면 범인은 바로 밝혀질 거예요.”

“그래서. 너무 쉬운 일인데 남들은 거저먹는 공을 나는 못 먹어서 아쉽다?”

“이봐요. 빈정거리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우리 어른답게 굴지요. 제가 공을 세우지 못하면 계속 당신 뒤만 졸졸 따라다녀야 한다니까요. 당신도 그런 건 싫지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일은 절대로 거저먹지 못할 일이니까.”

“네?”

“그냥 내버려두면 경찰들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없어요. 오히려 추가 피해자가 나올 거예요.”

“아니, 왜 그렇게 단언하시죠?”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자 시현이 대답했다.

“합동수사본부를 꾸렸기 때문이죠.”

“네?”

“요즘 세상은 옛날 탐정소설과 다르게 곳곳에 CCTV가 있고 혈액, 타액은 물론 머리칼 한 올만 있어도 쉽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지요. 살인처럼 강력범죄에 초동수사가 느슨할 리도 없고요. 그런데도 경찰은 굳이 합동수사본부를 꾸렸습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아.”

“증거가 부족한 겁니다. 사건의 맥락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그러니 합동수사본부는 공적을 세울 수 있는 자리라기보다는 화살받이가 될 거예요.”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는 시현에게 감탄했다.

‘괜히 탐정이라고 하는 건 아니구나. 경찰된 도리로 사건의 해결이 난항에 봉착하는 걸 좋아할 수는 없지만 성신아가 엿을 먹을 걸 생각하면 또 나쁘지는 않은데?’

그런데 그때였다.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정보3팀 팀장인 박진감 경위였다.

[류 경위! 큰일 났어! 얼른 돌아와!]

“네? 무슨 일이죠?”

[이거 비밀로 해야 하는 거 알지? 서 내에서 살인이 벌어졌어!]

“네?!”

류하리는 당황해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이 말한 대로 사건이 난항에 봉착한 정도가 아니다.

합동수사본부에 있던 경찰들 모두, 아니, 그냥 대한민국 경찰 전부의 얼굴에 먹칠을 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남자는 어떻게 이렇게 될 걸 알았지? 탐정이라고 해도 좀 이상하잖아?’

* * *

스트리밍 살인사건의 핵심 용의자는 총 다섯 명.

우선 은평 크루에서 방출되었고 여자 친구와의 문제로 다투었던 ‘BJ칼리’.

BJ칼리의 여자 친구이며 인터넷 방송인 수광과의 합방에서 모욕적인 성희롱, 괴롭힘을 당한 ‘BJ젠다’.

은평 크루의 일원인 인터넷 방송인 ‘한말’, ‘장쑤’, 그리고 전직 방송인, 현직 편집자 ‘뒷심’ 이었다.

이중 살해동기가 명확한 이는 은평 크루에서 방출된 ‘BJ칼리’와 그 여자친구인 ‘BJ젠다’였다.

그래서 경찰은 BJ칼리나 BJ젠다, 그게 아니어도 적어도 그 관계자가 살인 용의자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마침 휴대폰 위치정보를 조회한 결과 BJ칼리와 BJ젠다 모두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근방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그러나 BJ칼리는 혐의를 부인했다.

“제가 그놈들을 죽이고 싶다고 말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죽일 리는 없잖아요?”

“은평구에 간 이유는?”

“원래 저도 은평 크루였잖아요. 그때 사귀던 친구들이랑 연신내에서 술 좀 먹고 그랬어요.”

“합정은?”

“합정동은 제가 사는 곳이고요.”

경찰들은 BJ칼리의 변명을 들으며 내심 혀를 찼다.

“아니, 이놈이 이거 되도 않는 변명을……. 은평 크루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때 없었고 자기들만 살인 현장 근처에 있었으면서.”

“하지만 확실히 기소해서 재판에 써먹을 증거가 없어. CCTV도 없고…….”

은평크루의 사무실이 위치한 은평구 연신내동은 유흥가가 밀집한 곳이기도 해서 곳곳마다 CCTV가 배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은평크루의 사무실에도 CCTV가 배치되어 있었으니 CCTV영상이 뭐라도 남아있어야 했다.

“그런데 영상이 다 훼손됐단 말이지. 살해현장을 뒤져봐도 첫 일격에 대부분 치명상을 입어서 증거도 없으니까.”

보통 사람이 살해당하게 되면 저항하느라 손톱 밑이나 손바닥에 상대의 살점, 혹은 섬유조각 같은 것이 남는다.

그러나 이번 살인 사건은 너무나 쉽게 일격에 치명상을 입혀버렸기 때문에 그런 증거들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CCTV…….

“아니, 대체 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날 동시에 CCTV들이 망가지는 거냐고.”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시간대의 CCTV 영상들은 하나같이 갑자기 노이즈가 끼며 먹통이 되었다.

그러다가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 약 3분 정도 지나니 다시 회복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경찰들은 명확한 증거를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심증이 이렇게나 가고 있는 상황에서 명백하게 범행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

“일단 통화목록이나 방송내역을 보자고. 아무리 서로 사이가 나빠도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려면 감정을 격발시키는 계기가 있어야 해. 그 조사할 시간동안 이들을 여기에 잡아 두어야 한다.”

합동수사본부의 경찰들은 모든 인력을 총동원해서 BJ칼리와 BJ젠다. 그리고 은평 크루의 통화목록과 채팅, 각종 인터넷 방송의 소문과 자료들을 모아서 그것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살인현장 주변의 CCTV들, 차량의 블랙박스도 제보 받으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정전이 찾아왔다.

중앙 차단기가 내려가 경찰서 전원 전체가 갑자기 차단된 것이었다.

비상등이 켜지고 컴퓨터 서버는 UPS에 의해서 유지되는 동안 BJ칼리를 심문하던 형사는 휴대폰의 플래시를 켜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저벅…… 저벅…….

불이 꺼진 혼란 속에서 한 인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 소화기를 들고 있던 그는 대뜸 형사들에게 소화기를 틀었고…….

형사들이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 써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뭔가가 털썩 하고 쓰러졌다.

잠시 후 불이 들어왔을 때, 형사들 사이에 BJ칼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경찰서 한복판에서 한참 심문받고 있던 피의자.

그것도 최우선 피의자가 살해당한 것이었다.

* * *

“말도 안 돼.”

사건의 내막을 들은 류하리는 경악했다.

“경찰서 안에서 살인이라니?! 차단기 박스는 잠겨 있잖아요? 카메라는요?”

“나도 잘 몰라. 어쨌거나 류 경위는 이제 어쩔 거야? 큰일 나겠는데.”

“네? 왜요?”

“서장 모가지가 날아갈 만한 일이잖아.”

“아.”

류하리는 현재 서장의 비호를 받고 있다.

물론 그 대가로 시현탐정사무소를 표적수사 하는 더러운 일을 맡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제 서장의 비호가 없어지면 그녀가 어찌되겠는가?

“그, 그럼 그 표적수사는 안 해도 될까요?”

“하기 싫어하는 건 알겠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서장 목 날아가라고 기도하는 거 아냐?”

“아녜요. 서장님 목이 날아가면 그동안 제가 한 건 뭐가 되는데요? 아,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이네요. 서장님 모가지가 날아가면 더러운 표적수사를 그만둘 수 있어서 좋지만 그렇게 되면 제 경력은 박살난 그대로, 아니, 더 심각해지겠네요. 서장님 명령으로 근무하던 지난 며칠이 그냥 날아갈 테니까. 어디 가서 표적수사 지시받아서 그거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도 못 하고.”

“쉬쉬. 누가 듣겠어. 류 경위. 모가지랑 날아간다는 소리를 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거야? 기분은 알겠지만 자제해.”

그때 류하리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경찰서 입구로 나오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의 동기인 성신아 경위였다.

데드맨31

스트리밍 살인사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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