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최형림…….”
“네?”
“아니, 저 검사, 수완이 대단하군요. 조직도 다른 경찰들을 이렇게 쉽게 구워삶다니.”
류하리와 시현은 합동수사본부 밖에서 회의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경찰들이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피의자들을 내보낼 줄이야.”
“아하하하.”
류하리는 관료조직의 치부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는 회의 내용을 시현이 들었다는 것에 괜히 부끄러워졌다.
“모든 경찰이 다 그런 건 아니라고요. 여기 경찰 미담 모음집이라도 좀 찾아 드릴까요?”
“아, 됐습니다. 딱히 경찰들에게 실망한 건 아니에요. 원래 기대를 안 했으니까.”
“…….”
“이런. 피의자가 나오고 있네요.”
계단으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를 눌러쓴 젊은 여성이 경찰들과 함께 내려오는 게 보였다.
얼굴 피부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그래서 오히려 누가 봐도 그녀가 BJ젠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남친이 죽었는데 전 경찰서 밖으로 나가라고요? 당신들 제정신이에요?”
“자, 진정해요.”
“영장이 없어서 더 구속해둘 수도 없어요.”
“아니, 내가 여기 있겠다는데…….말도 안 돼! 지금 제가 나가서 살해당하면 어쩔 거예요?”
“경찰들이 함께 보호할 겁니다. 조용히 좀 해요.”
경찰과 BJ젠다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흐음.”
그 모습을 보던 시현의 눈이 일순 금색으로 빛났다.
“다음엔 저 여자가 죽겠군요.”
“네? 아니, 왜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말이지요.”
“아, 네. 그러시겠지요.”
만약 류하리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고 있었다면 순간적으로 금빛 광채가 그의 눈에 스쳐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류하리는 주위 경찰들의 동향에 정신이 팔려서 시현의 눈을 볼 틈이 없었다.
* * *
계단을 통해서 BJ젠다 외에도 다른 피의자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은평 크루에 속하는 인터넷 방송인 ‘한말’ ‘장쑤’와 편집자 ‘뒷심’이었다.
그들은 BJ젠다와 달리 순순히 경찰들의 인도에 따라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호오?”
“왜요? 뭔가 알아냈어요?”
“아, 네. 알아냈습니다.”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문제는 이제 각을 만드는 일이 남았군요.”
“각을 만든다?”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 하더라도 범행을 입증하고 범인을 기소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무슨 뜻이에요? 범인이 누군지 알았어요? 누구예요?”
“그걸 제가 말해 줄 수는 없지요. 그래서 말인데…….”
시현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물어보았다.
“공무원은 이제 퇴근할 시간 아닌가요? 계속 따라오시겠어요?”
“당연하죠.”
“그럼 각을 만들러 가 봅시다.”
시현은 목에 건 방문증을 풀어서 류하리에게 돌려주었다.
* * *
변호사 장하동은 나이 40에 자신의 로펌으로 독립했지만 별다른 인맥도 수임도 없어서 골치를 앓던 와중에 어떻게 손님이라도 좀 유입시켜 볼까 하고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구독자도 없었지만 변호사라는 전문직만이 제공할 수 있는 지식과 게임, 만화, 영화 등에 관심이 많은 그의 방송이 호응을 얻기 시작해서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스트리밍이 본업이 된 그런 사람이었다.
방송으로 사람들의 법률상담을 해 주고 사건 수임을 받거나 하면서 점점 구독자수도 늘어나니 돈도 돈이지만 재미도 있어서 방송에 아예 중독되어버린 그는 자신의 법률사무소를 아예 스튜디오로 꾸며두고 있었다.
본업인 변호사일은 이제 방송콘텐츠를 뽑기 위해서 하는 부가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그도 오늘은 방송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알고 있던 인터넷 방송인들이 살해당한 게 어째 남일 같지 않다고 여겨져서였다.
“아, 왠지 싸하네.”
그는 사무실의 문을 닫아두고 커피포트로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있었다.
은평 크루의 사장과 인터넷 방송인 수광이 살해당했는데 장하동 변호사 역시 그들과 안면이 있었다.
자신도 희생자가 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침 창밖에 해가 지는 모습이 어딘지 을씨년스럽다.
그런데 그때였다.
-딩동.
차임벨이 울렸다.
사무실의 벨이 눌린 것이다.
“닫아뒀는데 누구지?”
장하동 변호사는 흠칫 놀라면서 컵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으로 향했다.
그는 문을 열기 전에 사무실 현관 카메라를 살펴보았다.
카메라에는 젊은 남녀 둘이 서 있었다.
“누구세요?”
“업무 차 찾아왔습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봐도 수임 때문에 온 사람 같지는 않은데? 목소리가 침착해. 보통 변호사를 찾아온 사람들은 뭔가 일이 터져서 당황해야 하는데 말야.’
남자가 너무 침착해서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장하동 변호사는 이를 악물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수임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인 살인사건 때문에 왔습니다만? 관심이 있으시죠?”
“네? 지금 뭐라고요?”
장하동 변호사는 화들짝 놀랐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직접 뵙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어? 다, 당신들 누군데?”
“그걸 알리기 위해서도 열어주시지요.”
“아니, 그게 무슨…….”
장하동 변호사는 당황하다가 무심코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리고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잠깐만요. 그렇게 막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아, 실례합니다.”
같이 온 여자 쪽이 당황해서 남자를 말렸다.
“당신은 아직 타깃이 아니군요.”
“네?”
남자는 장하동 변호사의 머리 위를 훑어보곤 그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광고 전단도 이 근처에 뿌려뒀는데 보셨나요?”
남자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시현탐정사무소라는 명함이었다.
장하동 변호사는 무심코 쓰레기통을 보았다. 바로 아까 전, 사무실 근처에 뿌려졌던 광고전단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었다.
“타, 탐정?”
“네, 아마 곧 있으면 다른 인터넷 방송인으로부터 당신에게 전화가 올 겁니다.”
“…….”
장하동 변호사는 그런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런데 그때 거짓말처럼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장하동 변호사가 겁에 질려 전화기를 보니 과연 ‘BJ젠다’ 의 전화였다.
“받으세요.”
“아, 네.”
장하동 변호사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응? 뭐? 나에게 수임을? 에? BJ칼리가 죽었다고?”
장하동 변호사는 너무 놀라서 들어온 남녀 둘을 살펴보았다.
“그, 하, 하지만 알잖아. 내가 명색이 로펌이지만 직원도 없이 나 혼자 일하는 거. 도와줄 사람이…….”
그때 장하동 변호사의 어깨를 누가 툭툭 건드렸다.
스스로 탐정이라는 남자, 시현이었다.
“저희가 도와드리지요. 수임하세요.”
“다, 당신들 대체 뭐야? 아, 아니, 이쪽 이야기. 이상한 사람들이…… 어, 그, 그래. 알았어.”
장하동 변호사는 전화를 끊었다.
“이, 일단 수임을 받건 말건 우선 가서 BJ젠다를 만나보기로 했어. 그런데 당신들 진짜 무슨 생각이야?”
“잘됐군요. 그럼 지금 당장 가 볼까요?”
“…….”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지요. 아.”
시현은 사무실 캐비닛 옆에 있는 사탕바구니를 발견하고 한 움큼 집어 들었다.
“…….”
“그럼 가실까요?”
“으.”
장하동 변호사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따르기로 했다.
* * *
BJ젠다는 합정의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오피스텔에는 지금 경찰들이 몰려와서 주위를 뒤져보고 있었다.
“도청이나 감시카메라는 없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인터넷 선은 뽑아두겠습니다.”
“네?”
“한동안 방송을 자제하시지요.”
“아니, 잠깐만요. 당신들에게 그럴 권리가…….”
“저희는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경찰들은 그렇게 말하고 배전반을 열더니 안에서 통신선을 다 뽑아버렸다.
그래도 휴대폰은 되지만 경찰들은 오피스텔 안에 있는 방송용 카메라나 조명들도 실링 테이프로 둘둘 감아버렸다.
“아, 그렇게 하지 마요! 진짜…… 변호사 불렀으니까…….”
그때 오피스텔 입구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경찰들은 신경질적인 태도로 오피스텔 현관으로 나갔다가 어, 하고 놀라고 말았다.
변호사가 젊은 남녀를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그 젊은 남녀 중 여성은 그들도 익히 알고 있는 이였다.
마포 경찰서의 류하리 경위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저기…….”
류하리와 시현이 동시에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변호사가 보지 못하게 뒤에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장변법률사무소 변호사 장하동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요?”
“그게…….”
그때 BJ젠다가 나왔다.
“장변님!”
“아, 젠다. 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게 말하는 장하동 역시 뒤에 붙은 남녀를 껄끄러워했다.
“일단 경찰들은 물러나서 오피스텔 입구와 복도에서 지켜주세요.”
“하지만 그건 좀.”
“방송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거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시현은 류하리에게 눈치를 주며 경찰들을 설득했다.
류하리가 경찰들에게 손짓하자 경찰들도 알아듣고 물러났다.
“아마 경찰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인터넷 방송인에게 방송감으로 바로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아서일 겁니다. 그리고 그게 범인을 자극할지도 모르고요. 그건 지켜주는 게 좋겠지요. 그걸 깨면 경찰들이 정말 집요하게 복수할 테니까요.”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장하동 변호사도, BJ젠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거 방송하면 꽤 조회수를 빨아먹을 수 있겠는데 말야. 구독자도 늘 테고. 하지만 그럼 내 목이 위험하겠지?”
“…….”
“그보다 정말 칼리가 죽었다는 게 사실이야?”
“네. 경찰서에서 살해당했어요.”
“오, 망할. 대체 어떻게 경찰서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야?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고? 조경호에 수광에 칼리까지 죽었다고?”
“네, 그런데 경찰들은 속수무책인지 다들 경찰서 밖으로 내놨더라고요. 그래서 장변님. 저 수임 좀 부탁드려요.”
“아니, 그게…… 내 전공이 그런 강력범죄는 아니라서. 알잖아. 난 민사 전문인 거. 뭣보다 아직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경찰들도 어쨌건 경비는 서는 것 같은데?”
장하동 변호사는 난색을 표했다. 방송하면서 구독자들 사연에 법률적으로 조언할 때는 부담이 적지만 이런 강력범죄에 끼어들면 자신의 목숨도 위험하다.
“그래서 저희가 있지 않습니까?”
“아,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저희는 이런 사람입니다.”
시현이 명함을 건네주었다.
“아. 탐정.”
BJ젠다는 오피스텔 입구에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 쪽으로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시현탐정사무소의 전단지가 재활용 쓰레기 더미 사이에 섞여 있었다.
‘저 전단 왜 뿌렸나 했는데 밑밥 깐다고 뿌려둔 거구나. 하지만 뭐 다들 쳐다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넣었구만.’
류하리는 장하동 변호사나 BJ젠다나 시현탐정사무소 광고전단을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처넣은 걸 보며 내심 고소해했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이 남자 용의주도하다. 무서운데?’
설령 쓰레기통에 들어갔을지언정 사건이 벌어지기 전 미리 관계자들에게 전단을 뿌려놓고 작업을 전개한다.
옛날 탐정소설들의 주인공처럼 추리력으로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다.
미리 준비를 하고 철저히 연구하고 조사하고 밑밥을 깔아두고.
그러고 나서 겉모습으로는 태연한 척, 상대를 동요시키는 것이다.
이 남자의 용의주도함과 행동력에 류하리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데드맨31
스트리밍 살인사건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