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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31-14화 (14/269)

제14화

“장 변호사님이 어떻게든 당신을 돕고 싶은데 평소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셔서 일손이 부족하신 것 같아서 저희들도 손을 보태려고 합니다.”

“…….”

장변은 넉살좋게 말하고 있는 시현을 보며 표정을 구겼다.

‘끄응, 그렇겠지. 수상하겠지. 내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으니까. 이거 일단 일부터 해야겠네.’

류하리는 얼른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 있나요?”

“짐작이요?”

“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해된 자들에게 공통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든가.”

그러자 BJ젠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많지요.”

“많다고요?”

“네. 인터넷 방송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파는 거잖아요. 그러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돼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거 가지고 죽으라느니 죽이겠다느니 폭언은 일상다반사고 어떻게든 사는 데를 알아내서 직접 집까지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는걸요.”

“아.”

기본적인 수사학에서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은 그 원한이 매우 깊어야 함으로 피해자의 관계자들을 주로 조사하라고 권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인터넷 시대에서는 과거의 수사학은 통용되지 않는 게 아닐까?

딱히 면식이 있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연예인이나 인터넷 인플루언서, 그런 이들을 죽일 만큼 증오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일방적으로 맺고 일방적으로 증오하고 죽일 수도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지금의 시대다.

“하지만 수광 씨가 살해될 때는 그가 직접 문을 열어줬습니다. 즉 상대는 면식범이라는 이야기지요. 약속 없이 찾아와도 문을 열어줄 정도로.”

시현이 그 상황을 정리했다.

“단순히 방송 시청자가 살해한 일은 아닐 겁니다. 적어도 수광과 관련이 있고 그가 집안에 들여보내 줄 만큼 친밀한 관계였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BJ젠다는 그 말에 당황했다.

인터넷 방송인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시달려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어서 피해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수광이 집 문을 열어줬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뭔가 심증이 가는 시청자가 있나보군요. 그건 누구지요?”

“아, 저기. 별건 아니고 저희들 모두에게 도네이션을 상당히 하는 사람이 있는데…… 꺼림칙해요.”

“꺼림칙하다면?”

“적지 않은 금액을 시원하게 쏴대는데 그런 사람이라면 응당 뭔가 방 안의 사람들에게 과시를 하거나 아니면 인터넷 방송인 자체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마치 적선하는 듯한 느낌으로 돈을 뿌려요. 최근에 들어온 사람인데…….”

BJ젠다는 그리 말하고 도네이션 입금현황을 보여주었다.

BJ젠다와 BJ칼리, 그리고 다른 은평 크루 사람들의 도네이션 입금현황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미카엘’이라는 사람인데 한 달 전에 처음 나타나서 은평 크루와 BJ칼리, BJ젠다, 전원에게 정확하게 천만 원씩 도네이션을 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던졌는데 사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갑자기 들어와서 대화방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우리들 하는 걸 보다가 그냥 쏘고 나갔어요. 너무 태도가 이상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범인은 아닌 거겠지요?”

“네. 이 사람은 범인은 아니에요.”

“음?”

시현의 말을 듣고 있던 류하리가 당황했다.

‘범인은 아니다? 범인이 아닌 다른 관계자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류하리는 그런 의문을 품었다.

이 남자. 이 사건의 당사자들이나 경찰보다 확실히 뭔가 더 자세히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알고 있는 척 허세를 부려서 상대를 유인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용의주도한 남자니까.

과연 시현이 BJ젠다에게 계약을 들이밀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와 계약하시겠습니까?”

“네? 계약이요?”

“잠깐 당신,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장하동 변호사가 화들짝 놀라서 말렸다.

“우선 제가 가면 수광 씨가 집안에 들여보내주었을까요?”

“…….”

“즉, 적어도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증명 끝.”

“아니, 그, 그렇게?”

그렇게 간단히 증명이 되나? 장하동 변호사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시현은 빠르게 일을 밀어붙였다.

“계약이라고 해서 뭐 돈을 많이 달라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아.”

시현이 한창 계약에 대해서 설명할 때였다.

갑자기 불이 꺼졌다.

오피스텔의 전기가 나간 것이다.

“또 시작이군.”

“이런.”

류하리와 시현은 즉시 품에서 플래시를 꺼내들었다.

범인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

* * *

“그럼 어디.”

시현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젠다.”

“예?”

“이쪽에 서 봐요.”

“?”

BJ젠다는 별 생각 없이 시현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녀가 출구 쪽으로 다가가자 그녀의 머리 위 숫자가 줄어든다.

“좋아요. 저쪽으로.”

“네?”

젠다는 별 생각 없이 다시 시현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 위 숫자가 늘어난다.

그래봐야 3~4분 정도 차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정도면 엄청난 차이다.

“이쪽이 더 안전하군. 일단 거기 있어요. 류하리!”

“네?”

평소엔 류하리 경위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그냥 이름을 부른다.

물론 류하리도 왜 시현이 그렇게 자신을 부르는지 알고 있으니 군말이 없었다.

지금 류하리는 시현탐정사무소의 직원으로 여겨질 테니까. 직원인 그녀에게 탐정사무소 소장이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서 그녀를 지키고 있어요.”

“당신 혼자 맞서게요?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류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경찰이고 시현은 민간인이다.

아무리 그녀가 여성이고 시현이 그냥 민간인이라기엔 여러모로 어폐가 있는 인물이라지만 만약 시현이 죽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언론에서 뭐라고 다룰까?

‘여경이 민간인 남자를 강력범 앞에 내밀고 자기는 안전한 곳에 있었다고 두들기겠지! 그렇지 않아도 경찰 내에서 입지도 개판인데 그런 일까지 생기면 난 끝장이야.’

그리 생각한 류하리는 시현에게 뒤에 남으라 하고 오피스텔 밖으로 튀어나갔다.

-텅!

오피스텔의 문을 열고 나가니 이 건물 전체가 불이 나가 있었다.

비상등만 밝혀져 있고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다.

경찰 두 명이 플래시를 밝히고 있다가 오피스텔 문이 열리자 이쪽으로 다가왔다.

“류 경위님!”

“나오지 마세요!”

경찰들은 류하리를 걱정해서인지 이쪽에게 외쳤다.

“거참. 잠입수사중인데 불어버리다니.”

류하리는 투덜거리며 권총을 빼들고 플래시와 교차로 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때 경찰 한 명이 윽,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닌가?

어느새 경찰들 뒤에 다가온 검은 인영이 손에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손들어!”

류하리가 권총을 겨누었지만 상대는 무시하고 다가온다.

어둠 속에서 플래시를 비추고 있는데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쏠까? 아니, 그러면 곤란해. 한국 경찰은 이게 문제라니까.’

대한민국에서 경찰의 발포는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는 도심 한복판, 오피스텔이고 불이 꺼지고 소란스러워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오는 이들도 있다.

만약 이 어둠 속에서 오발사고라도 내면 큰일이다.

류하리는 소화기를 든 검은 인영을 향해 다가섰다.

“흐윽!”

기괴한 신음소리와 함께 상대가 소화기를 휘두른다.

하지만 류하리의 페인트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류하리는 앞으로 스텝을 넣었다가 가볍게 뒤로 빼서 상대의 소화기 공격을 피해버리고 그와 동시에 플플래시라이트로 상대의 얼굴을 찍었다.

역수로 쥔 플래시라이트로 얼굴을 강타하니 빠각하는 소리가 났다.

‘어?’

그런데 손맛이 이상하다.

마치 물주머니를 때리는 듯하다.

당황한 류하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잽싸게 이번엔 권총으로 상대의 무릎을 찍고 뒤로 물러나 다시 상대를 겨눴다.

“꼼짝 마! 응?”

그때 류하리는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상대방은 분명히…….

“크악!”

그때 그 상대가 소화기를 류하리에게 집어던졌다.

“아!?”

당황한 류하리의 뒤에서 손이 나와서 날아오는 소화기를 받아냈다.

시현이었다.

“나 참. 괜찮습니까? 류 경위?”

“아, 괜찮아요! 그보다 범인이……. 어?!”

류하리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 범인이 있었는데 온데간데없다.

“괜찮아요. 범인 얼굴은 봐뒀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일 리가 없지요?”

시현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네.”

“이상한 취급당하기 싫으면 범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일단 함구하시지요. 상대는 알리바이가 확실할 겁니다.”

“알겠어요. 하지만 이건 꼭 설명해 주셔야 해요?”

“네, 물론이지요.”

시현은 그리 대답하며 자신의 손 모양으로 찌그러진 소화기를 내려놓았다.

‘어? 설마…… 아니겠지. 저거 완전 무쇠덩어리인데?’

류하리는 소화기가 찌그러져 있는 걸 보며 당황했다.

* * *

성신아 경위는 경찰들과 함께 은평 크루의 편집자 ‘뒷심’의 자택 주위에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전화기에 벨이 울리는 게 아닌가?

‘왕재수’ 라는 번호로 전화가 울린다.

“아니, 이년이 돌았나?”

성신아 경위는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받았다.

“어머. 무슨 일이야? 류 경위님이 내게 전화를 다 하고? 우리 사이가 그렇게 돈독했던가?”

[거두절미하고 지금 뒷심 거기 있어?]

“물론 있지. 왜?”

[뭐 이상한 거 없어?]

“이상한 거? 화장실 들어가서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하던 성신아는 흠칫 놀랐다.

“잠깐!”

“네? 경위님?”

“이봐요! 안에 있어요?!”

성신아는 화장실 문을 두들기며 물어보았다.

“있습니다. 있어요.”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성신아는 그리 생각하며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들었지? 별일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그런데 그때 화장실의 문이 열렸다.

뒷심은 누군가에게 얼굴을 맞은 것처럼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도 절뚝거린다.

“어? 뭐예요 그건?”

“아, 안에서 넘어져서요.”

“네?”

“아, 됐어요. 별일 아니니까.”

편집자 뒷심은 그리 말하면서 짜증을 냈다.

* * *

류하리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시현을 돌아보았다.

“왜요?”

“아니, 지금 제게 설명을 해 봐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요?”

“보시다시피 경찰이 입증 못 할 방법으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요.”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요?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범인도 누구인지 알고 있었죠?”

“지금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범인이 누구인가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범인을 옭아맬 것인가. 그게 중요하지.”

“네?”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 칩시다. 문제는 알리바이가 있어요. 적어도 현대 과학으로는 깰 수 없는 그런 알리바이. 그래서 확실하게 알리바이를 입증한 채로 원격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면 경찰인 당신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경찰들이 그를 감시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예요. 명확한 알리바이만 만들어주니 더더욱 멋대로 날뛸 겁니다. 게다가 지금 현재로서는 영장이 없지요? 영장이 없다는 건 지금 수사하는 데 있어서 경찰이 범인에게 사생활 침해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고, 동의를 구하려면 경찰이 뭘 하려는지,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 설명하고 협력을 받아야 해요. 즉, 경찰 측 정보가 줄줄 샐 수밖에 없지요.”

당장 BJ젠다만 해도 그렇다.

경찰이 이래라 저래라 요구는 하고 있는데 누가 봐도 지금 경찰도 맥락을 못 잡고 당황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런 이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경찰들에게 납득 가능할 만한 해명을 요구한다면?

그녀 말고 다른 사건관계자들도 그럴 텐데 그들 중 범인이 있다면 경찰들은 자신들의 움직임, 목표, 향후 계획 등을 범인에게 알려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데드맨31

스트리밍 살인사건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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