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5화 (15/269)

제15화

현대 사회의 수사력, 치안력은 어디까지나 상식과 과학 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가 상식과 과학으로 해명될 수 없는 영역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경찰들로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경찰들은 이 사건의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범인이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는지, 어떻게 해야 그것을 막을 수 있을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어서 수사는 표류하고 계속 살해시도를 보이는 범인에게 끌려 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손가락 빨며 살인이 계속 벌어지는 걸 구경할 수는 없었기에 경찰들은 BJ젠다에게 자리를 옮길 걸 요구했다.

하지만 BJ젠다는 대뜸 반발했다.

“네? 옮기라고요? 어디로요? 왜?”

“예. 아무래도 또 습격이 있을 것 같으니 경찰들이 경호하기 좋은 곳으로 옮기시지요. 여기보다는 안전할 겁니다. 아마도…….”

경찰들은 말꼬리를 흐렸다.

BJ젠다나 다른 피의자들이 경찰서 안에서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내보낸 경찰들이지만 다시 살해시도가 일어났는데도 범인의 흔적은커녕 어떤 특정할 만한 정보도 얻어내지 못했다.

경찰서 안에서 죽는 건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경찰들이 경호하고 있는데 밖에서 죽으면 그것 역시 경찰들의 위신 문제다.

하지만 현재 이 정도 인원으로는 경호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경찰들은 궁여지책으로 안전가옥을 임대하고 그곳에 피의자들을 몰아넣어서 한곳에서 모두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영장이 나오지 않았으니 수사협력을 받아야 하는데 수사협력을 받고자 한다면 역시 피의자들을 설득해야 했다.

“싫어요! 우리들 중에 살인범이 있을 수 있는데 한데 모이라고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다들 철저히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당신들 중엔 살인자가 없습니다. 그저 살인자가 당신들을 노릴 가능성이 높은 것뿐이지요. 그래서 모두를 좀 더 경호하기 편리한 곳으로 모시려고요.”

“아, 네. 철저히 감시해서 저희 오피스텔로 습격도 오고 경찰서에서도 사람도 죽이고 아주 철저했군요. 그런 경찰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곳은 또 얼마나 안전할까요?”

BJ젠다가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렸다.

“그게…….”

경찰들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이 이 사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막연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하겠다고 옮기겠다는 건데 BJ젠다는 경찰에 대한 불신을 보였다.

“일단 거기 탐정들을 고용하지요. 아무래도 당신들이 경찰들보다는 더 믿음직해 보여서요.”

BJ젠다는 시현과 류하리를 좋게 보았는지 그들을 고용하겠다고 했다.

‘경찰들을 무시하고 경호원이나 탐정을 고용하겠다고?’

‘하지만 저거 류하리 경위잖아?’

‘괜찮겠지?’

경찰들은 류하리의 눈치를 살폈다.

류하리가 경찰들에게 괜찮다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래서 얼마죠?”

“여기 계약서가 있습니다.”

“음…… 응?”

BJ젠다는 시현이 내민 계약서를 보고 의아해했다.

금액 이야기는 실비+약간의 공임 그리고 수명 1년 치, 라는 조건이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수명(壽命)? 이게 무슨 뜻이죠?”

“자세한 이야기는 경찰들 없는 곳에서 따로 하도록 하지요.”

시현은 그렇게 대답하고 류하리를 돌아보았다.

류하리는 그의 눈치를 알아채고 경찰들을 따로 불러냈다.

“일단 저 여자는 우리 쪽을 신뢰하고 경찰들은 별로 믿지 않으니까 잠시 물러나 있어주겠어요?”

“하지만 류 경위님. 괜찮겠습니까?”

“합동수사본부에 들어와 계신 것도 아닌데. 책임은 어떻게 지시려고요?”

“에휴. 어차피 망친 커리어. 제가 책임질 테니까 일단 그렇게 해 주세요.”

“상부에서는 어떻게든 설득해서 안전가옥으로 모으라는데…….”

경찰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류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피의자들도 말을 안 들을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는…….”

경찰서에서 사람들이 죽었는데 경찰들에게 신뢰를 주고 순순히 협조할 리가 없다.

경찰서에서 내쫓았다가 이번엔 안전가옥으로 옮기라니 이랬다저랬다 하는데 경찰들 자신들이 무슨 확신이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경찰들도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람들이 따라주길 바랄 수 있을까?

과연 다른 피의자들도 수사 협조에 거부하고 있다는 무전이 왔다.

“그, 그럼 류 경위님, 부탁합니다.”

“아, 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경위님이라고 부르는 거 하지 말아주세요. 지금 상대가 경찰 불신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내가 경찰이라는 거 밝혀져 봐야 좋을 게 없고 지금 명색이 잠입수사중인데.”

“아, 네. 그, 그럼. 부탁드립니다.”

경찰들은 당황하면서 물러났다.

“하아. 자, 이제 귀찮은 경찰들은 치웠어요. 그럼 이제 당신이 아는 걸 좀 말해 주겠어요?”

류하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탐정, 시현 씨?”

* * *

습격해 온 이의 얼굴은 은평 크루의 편집자 ‘뒷심’이었다.

본명 이호영. 28세 남성으로 원래 인터넷 방송인이었지만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던 중 은평 크루에 영입되어서 전문 편집자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은평 크루 사장 조경호와는 원래부터 친하던 사이로 조경호는 자꾸 뒷심을 자기가 건져 주었다, 뒷심이 밥 먹고 사는 건 자기 덕분이다, ‘너 이 날백수 새끼, 나 없으면 어찌 살 뻔했냐?’ 이런 식으로 자존심을 좀 심하게 긁곤 했어요. 하지만 설마 살인까지 할 줄이야.”

젠다는 뒷심의 살해동기를 그렇게 평했다.

하지만 시현은 코웃음 치고 젠다를 바라보았다.

“그게 전부입니까?”

“아, 아마 돈 때문이겠지. 보통 스트리밍의 수익은 편집자랑 나눠야 하는데 은평 크루 사장이 배분을 짜게 해 준다는 건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니까.”

변호사이자 인터넷 방송인 장변은 그렇게 추정했다.

“사장 말고 다른 인터넷 방송인을 죽인 이유는?”

“질투나 시기심 때문이 아닐까? 분배도 박하게 했을 테고.”

그러나 변명이 궁색하다.

이미 그들 모두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실토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노력이나 기여에 정당한 보수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평 크루에 원한이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은평 크루에서 추방된 이도 죽였고 왜 다른 은평 크루 멤버가 남아 있는데 젠다 씨를 죽이려고 왔을까요?”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 네. 하아. 그래요. 그 남자가 제 전 남친이에요. 됐어요?”

“그게 끝입니까?”

시현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어보았다.

“네, 살해당한 조경호도 제 전 남친이고 절 희롱하던 수광도 그래요. 은평 크루에서 남자들 대부분 저랑 사귀었어요. 원래 처음에는 뒷심이 제 남자친구였어요. 하지만 제게 흑심이 있던 은평 크루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뒷심을 괴롭히기 시작했지요. 저도 당시에는 연애나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좋아서 사귀었다기보다는 방패막이 삼아서 사귄 거라 뒷심에게 너무 심하게 헤어졌던 거 인정해요.”

BJ젠다는 그런 상황을 고백했다.

“애초에 이 업계에서 여자 혼자 남자친구 없다 그러면 다들 어떻게 구는 줄 알아요? 사생활을 팔고 사니까 다들 저를 막 대한다고요. 하지만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태도가 달라지죠. 그런데 뒷심은 제 방패로 쓰기에는 너무 직위가 낮았어요. 나 때문에 계속 모두에게 괴롭힘 당하고 그러니까 헤어지는 게 차라리 양쪽 모두에게 나았을 거란 말이에요. 물론 그걸로 내게 원한을 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게 죽을죄는 아니잖아요?”

BJ젠다는 그렇게 말하고 시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연애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고요!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아니면 만만하게 보고 막 대하는데 그 안에서 어쩌라고요!?”

“네, 고객님. 물론 그 마음 이해합니다.”

“네?”

BJ젠다는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시현에게 깜짝 놀랐다.

“불필요할 때 이성이 꼬이는 걸 막기 위해서 필요에 따라 남자친구를 만든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는 탐정입니다. 일단 계약만 하면 고객님의 편에 서서 도박 빚진 놈도 잡아오고 불륜 대상도 찾아내고 배우자나 연인의 뒷조사도 하는, 철저히 고객 편에 서서 서비스를 제공하지요.”

시현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웃는 낯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저를 믿어주시지요. 물론 계약하고 나서요.”

자기 하소연할 준비가 되어 있던 BJ젠다는 꽤 시원하게 시현이 자기편이라고 주장하자 머쓱해졌다.

어차피 계약해서 자기편 들어줄 사람에게 하소연해 봐야 귀찮은 잔소리밖에 더 되겠는가?

“그, 그건 마음에 드네요. 그래서 이 수명이 뭐예요?”

“말 그대로 남은 삶입니다.”

“네? 진짜로? 아니, 그런 게 가능해요?”

“뭐 그렇지 않으면 경찰들도 고객님을 지켜드리진 못할 것 같은데 그리 되면 남는 수명이 1년이건 10년이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시현은 능청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그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뒷심이 경찰들을 무시하고 이렇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거지요?”

류하리가 그걸 물어보았다.

현재 류하리는 시현의 조수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와 있지만 이제는 그런 위장도 하지 않을 셈인가?

그래서 시현은 젠다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류하리에게 다시 존댓말을 썼다.

“아마 뒷심 자신은 경찰들 감시를 받으면서 분신 같은 걸 원격으로 생성해서 움직일 수 있는 걸 겁니다. 이래서야 경찰들이 감시해 봤자 오히려 그 알리바이만 강화될 뿐이고, 법으로는 잡아넣기 힘들겠지요.”

“아니,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류하리는 뭐 이런 미친 소리가 다 있나 싶어서 시현을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현은 태연했다.

“그럼 지금 그 외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있습니까?”

“아니, 현실적으로 그런 게 불가능하잖아요. 초능력 같은 건 현실에 없어요. 틀림없이 이건 뭔가 과학적인 트릭으로…… 예를 들어서 쌍둥이 트릭이라든가?”

“아, 주민등록 번호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쌍둥이 트릭이라. 참신한 시도군요. 그럼 CCTV나 인터넷 방송이 먹통이 되는 이유는?”

“아마도 해킹?”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다 스스로 말하는 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폐쇄회로 TV가 해킹을 당할 리가 없겠지. 아, 진짜.”

류하리가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합리적인 답이 나오질 않는다.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현은 답답해하는 류하리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만약 누군가를 미워해서 죽이고 싶은데 돈도 제법 있고 인맥도 있다. 그럼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요?”

“…….”

“추천 드리는 건 외국계 범죄조직을 고용하는 겁니다. 외국에서 몇 차례나 하청에 하청을 거쳐 한국 내에 있는 외국인 조직원을 고용합니다. 원한도 없고 일면식도 없는 이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사람을 죽이고 출국해버리면 경찰의 수사력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요. 현금으로 지불하면 자금 추적도 힘들고요.”

“무슨 뜻이에요?”

젠다는 영문을 모르고 눈을 꿈뻑였다.

“무슨 뜻이냐 하면 뒷심이 원한 때문에 정말 법을 어기면서까지 이들을 죽이고 싶었다면 굳이 이런 기이한 짓을 벌이지 않고서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사건의 앞뒤가 바뀐 거예요. 원한이 앞선 게 아니라 재주가 앞선 겁니다.”

“원한이 앞선 게 아니라 재주가 앞섰다?”

BJ젠다는 여전히 시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류하리는 명석해서 대번에 시현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말하고 싶은 건 살인을 하고 싶어서 초능력을 쓴 게 아니라 초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살인을 했다. 그런 뜻인가요?”

류하리가 질문을 던지자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해가 빠르시군요.”

데드맨31

스트리밍 살인사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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