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8화 (18/269)

제18화

시현이 무심하게 칼을 당겨 자신의 가슴에 찔렀다.

“힉?!”

“헉?!”

보고 있던 모두가 기겁했다.

장변은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떨어져 다리가 풀려 바닥을 기며 뒷걸음질 칠 정도였다.

심지어 직접 찌른 뒷심도 깜짝 놀랐다.

“이제 좀 기분이 풀리셨습니까? 고객님?”

“아…… 아냐! 나는!”

손이 잡힌 시점에선 더 이상 찌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변명이 통용될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정작 칼에 찔린 시현은 태연자약,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흡!”

시현은 가슴에서 칼을 뽑아냈다.

피가 묻어 번들거리는 칼날은 진짜다.

그리고 실제로 시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시현의 눈빛은 차디차게 가라앉아 있었다.

“우선 말주변이 없는 점 사과드립니다. 제가 빈정거리는 걸로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진심으로 자수를 권해드리는 겁니다. 다만 시간이 급해서 설명이 짧아져 오해를 유발한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다, 당신 뭐야? 대체 뭐야?”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습니까.”

시현의 몸에는 어느새 상처가 사라져 있었다.

“탐정이라고.”

“아니, X발, 그런……”

욕설을 내뱉던 뒷심은 시현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쪼그라들었다.

“그, 그런 탐정 분이 어디 계세요?”

* * *

존댓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머릿속이 공황상태라 언어중추가 꼬인다.

그때 시현이 자신의 가슴에서 뽑아낸 칼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끼이이익.

얇은 부엌칼이라 해도 스테인리스 스틸, 손가락 몇 개로 파손할 수는 없다.

보통사람이라면…….

하지만 시현의 손에서 부엌칼은 무슨 빵 봉투 매듭철사처럼 구불구불 구부러지더니 뚜둑, 하고 손잡이가 끊겼다.

-꿀꺽…….

보고 있던 뒷심이 침을 삼켰다.

“어디까지 설명했더라? 오해 없이 말씀드리죠. 감금 15년에 여명 1년 줄이는 게 당신이 지금 계약한 것보다는 훨씬 짧게 고통 받는 길입니다. 적어도 감옥에서는 텔레비전도, 책도 볼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일도 알 수 있으니까요. 지금 바로 합리적이고 저렴한 계약으로 갈아타시죠.”

시현은 마치 더 나은 금융상품으로 갈아탈 것을 권유하는 금융상품 판매원처럼 말하고 바닥에 떨어진 선불 폰을 집어 들어 다시 뒷심의 손에 들려주었다.

“당장 결심이 안 선다면 경찰이나 검찰이 당신을 조이기 시작하면 그때 전화주세요. 그때쯤 되면 당신이 스스로 자수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을 테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자수하고 싶어지면 비용을 받으며 자수를 돕겠다니.

미친 소리 같다.

그냥 자수하면 끝나는 일 아닌가?

그렇지만 시현의 말은 압도적인 설득력이 있었다.

자신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어도 끄떡없는 이 광기의 탐정, 아니 탐정 맞나?

악마의 대리인 같은 존재에게 뒷심은 완전히 압도당했다.

“아참. 혹시나 충고 드리지만 만약 BJ젠다를 죽이면 그때는 저로서도 계약을 무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물건을 반품하려고 해도 이미 너무 다 써버리면 반품 안 되는 거? 현격하게 상품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

뒷심은 시현의 말을 듣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 * *

장 변호사는 자신의 입심에 자신이 있었다.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고 입심도 뛰어난 그니까 로스쿨에서 변호사가 많이 나와서 예전처럼 전문직으로서의 매력이 없어진 지금에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고 인터넷 방송에 뛰어든 것도 그런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달변을 자랑하던 그는 무슨 막 마취 풀린 환자처럼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 으으으으, 어으으으…….”

그 장 변호사의 시선의 끝에는 시현과 류하리가 있었다.

“괜찮은 거예요, 당신? 칼에 찔렸는데?”

“네. 눈속임 마술이었습니다. 마술. 영화 특수분장같은 거예요.”

시현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류하리는 시현의 가슴 셔츠를 만져보았다.

피가 묻은 칼자국이 그대로 나있다.

안에는 단단한 근육질의 피부가 만져진다.

마술이나 특수분장은 무슨, 생살에 꽂았구만.

“으음…….”

“적극적이시군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마술? 그게 마술이라고?”

장 변호사는 차마 시현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그 말을 반복했다.

“장 변호사님, 비밀유지 부탁드립니다. 뭐 정 떠들고 싶으시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그때는 저도 나름대로 수단을 강구할 겁니다. 혹시 업계에 제 평판을 물어보셨나요?”

“…….”

장 변호사도 물론 시현이라는 놈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법대 동기들이 로펌 여기저기에 있으니까 그들에게 물어보니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유능한 탐정.’

‘불륜 전문으로 상당히 돈을 많이 벌었을 테지만 가끔 채산성에 맞지 않는 다른 일도 하며 조직 폭력배들도 그에게는 왠지 꼼짝 못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능하고 위험한 녀석이라는 평판이 있었다.

그런 놈이 이미 자택도 아니라 부모님 집에 머물던 걸 찾아올 정도였으니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추적해낼지 모른다.

아마 다른 나라로 도망가더라도 추격해올지도 모르지.

‘나는 이미 돈 잘 벌고 있는데, 내 인생 탄탄대로인데 이런 위험한 녀석이랑은 엮이고 싶지 않아! 라기보다 수명을 달라느니 계약하자느니, 뭐야 이놈? 악마야? 악마? 그런 게 존재할 리가. 하지만 수명을 달라거나 계약하자니 악마밖에 없잖아?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절대 얽히고 싶지 않아!’

잃을 게 많은 장 변호사로서는 시현에게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없다.

“다, 당연히 말 안 할 겁니다. 미쳤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필요할 때 협력을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 협력자들 중에 변호사가 없어서.”

“…….”

“혹시 거절하실 건가요?”

“아뇨.”

장 변호사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좋아. 든든한 협력자가 생겼군요. 이거 참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앞으로……? 이 앞에 또 뭐가 있단 말야?”

장 변호사로사는 이 미친놈과의 앞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웠지만 도저히 싫다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 * *

장 변호사는 일이 있다며 허겁지겁 도망치고 류하리와 시현만이 남았다.

“처음에는 범인이 자수하도록 설득한다고 해서 무슨 미친 소리인가 했는데 확실히 설득력이 있네요.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정말 수사조직들이 증거를 조작해서 뒷심을 압박할 때까지 기다리실 건가요? 경찰이나 검찰이 언론에 몰려서 증거 조작하는 걸 기다렸다가?”

류하리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럴 리가 있나요. 정작 그렇게 하면 너무 늦어요.”

“늦는다고요?”

“경찰이나 검찰이 정말 여론에 떠밀려서 증거를 위조한다면 구속, 기소까지 일사천리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뒷심은 즉시 능력을 발동해서 관련자들을 마구 습격할 거예요. 경찰이나 검찰에 잡혀있어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면 그가 무죄라는 강력한 증거가 될 테니까 말이죠.”

“정말 경찰과 검찰을 너무 신뢰하지 않는군요. 그들이 증거 조작을 벌일 거라고 이렇게나 확신하고 있다니.”

“저는 그들이 관료라는 점을 너무나 신뢰하고 있는 겁니다.”

시현은 그렇게 단언했다.

“경찰인 류 경위 입장에서는 경찰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지겠지만 진짜 경찰이나 검찰이 증거 조작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경찰이 증거 조작을 했다고 뒷심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기만 하면 되지요.”

“그걸 어떻게 할 건데요?”

“여기.”

시현은 뭔가를 소매에서 꺼내보였다.

아까 전에 시현의 가슴을 찔렀던 부엌칼의 자루였다.

“뒷심의 지문이 묻어 있을 겁니다.”

“네?”

“여기서 뜬 지문을 실리콘 장갑 위에 떠서 인조 지문을 만들 겁니다. 그걸 마포경찰서 안에서 테스트 하는 장면을 찍어주시면 뒷심을 설득하는 데 좋겠지요.”

“아니…….”

류하리는 시현의 말에 기겁했다.

“그거 사기잖아요? 사기.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느니 어쩌니 하더니만!”

“빈말이 아닙니다. 우선 지금 그가 계약을 안 했으니 고객이 아니고 설령 계약을 당장 했다 하더라도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수가 가장 남는 장사인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건 그걸 내가 해야 한다는 거죠? 경찰서 안에서 위조 증거를 만드는 장면을 찍으라니…… 그게 만약 언론에 흘러들어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언론이 꼬투리 잡을 수는 없지만 당사자는 의심할 수밖에 없게, 그런 사진이 필요한 거지요.”

“언론은 빈 백지만으로도 ‘탑 시크릿’이니 뭐니 마음대로 써 갈길 텐데요?”

“그럼 뭘 하든 어차피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아, 여하튼 안 돼요. 안 해! 안 할 거예요!”

“그럼 저는 지문 장갑을 만들 협력자를 만나러 갈 테니까…….”

“아니, 이봐요! 안 한다니까요!”

류하리가 그렇게 말했지만 시현은 뒷심의 지문 샘플을 가지고 물러갔다.

류하리는 시현을 뒤쫓으려 했지만 그때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류하리!”

성신아였다.

“넌 또 왜 여기 있어?”

“아니, 그게…… 내 업무가 있다 보니까.”

“은평경찰서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너 여기 피의자네 집에 왔었다면서? 변호사에 들러붙어서? 합정에서도 출몰하더니만 여기는 또 왜 온 거야?”

“…….”

류하리는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고 시현을 눈으로 쫓았지만 그는 어느새 사라졌다.

그런 류하리에게 성신아가 짜증을 냈다.

“왜 이 사건 근처에 알짱거리지? 혹시 자력으로 사건을 해결해서 이제 와서 미운털 박힌 거 만회해 보겠다고 그러는 거야? 아서라. 무슨 만화를 너무 본 모양인데 경찰조직은 관료조직이야. 조직사회에서 혼자 그렇게 나대봤자 공을 세웠다기보다는 그냥 대책 없는 폭탄 취급만 받을 걸? 아, 저건 공에 눈이 멀어서 무슨 짓이든 할 인간이다. 그렇게 말야.”

“…….”

“어머, 왜?”

“아니, 방금 전에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경찰은 관료조직이다.

시현이 한 말과 지금 성신아가 하는 말은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건가, 하고.”

“뭐? 착각도 유분수지. 난 류하리 네가 끔찍하게 싫거든? 알겠으면 저리 꺼져. 우리 영역에 머리 들이밀지 말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가 전담 마크해야 하는 인간이 자꾸 이 영역에 머리를 들이민단 말야.”

류하리가 그렇게 말할 때 최형림 검사가 성신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네! 갑니다. 가요!”

“아, 잠깐.”

“응? 또 뭐?”

그냥 가면 될 텐데 성신아는 일부러 멈춰 서서 류하리를 돌아보았다.

“현재 수사가 어느 정도 되고 있어? 뭔가 범인으로 심증 가는 사람은 있어? 뒷심은 동기는 강하지만 알리바이도 있을 텐데?”

성신아는 최형림 검사가 짠 검경합동조사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성신아가 동기적으로는 가장 강력하지만 알리바이 또한 가장 강력한 뒷심의 집에 와 있는 이유는 뭘까?

“내가 왜 우리 팀 수사진행에 대해서 말해 줘야 하지?”

“혹시 그 ‘미카엘’이라는 사람 조사해 봤어? 젠다가 최근에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라고…….”

그러자 성신아가 피식 웃었다.

류하리가 먼저 말해 줬던 정보였다.

‘아하. 그러니까 자기가 물어온 떡밥을 내가 가져가버려서 화가 난다 그거야? 이거 어쩌나?’

성신아는 코웃음 치며 답했다.

데드맨31

스트리밍 살인사건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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