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1화 (21/269)

제21화

그러나 생각해 보니 곧 김이 식었다.

‘아니, 그런데 이 사건이 해결되면? 지금 당장 아무런 증거도 없고 답도 없는 사건인데? 미제 사건이 될 판인데 이게 해결되면 만나자고?’

스트리머 살인사건은 현재 아무런 단서도 없이 경찰들만 욕먹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대로 미제사건이 되어버리면?

이 사건에 참여했던 이들, 특히 최형림과 그의 팀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뒷설거지를 하며 온갖 오욕을 다 뒤집어써야 할 것이다.

뭐 최형림이야 재벌가 자제니까 좀 낫겠지만 다른 이들은 뒷배도 없이 답 없는 공무원 생활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 * *

최형림이 수사영장을 받아내자 그동안 막혀있던 게 거짓말처럼 일사천리로 풀려나갔다.

최형림은 뒷심이 해외 폭력조직의 한국 연락책을 만나 청부를 의뢰했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생방송 시간에 살해한 점, 그리고 처음 수사에는 없었던 수상한 통화기록과 현금 인출 기록을 들고 온 것이다.

‘너무 빠른데?’

성신아 경위는 최형림의 수사가 갑자기 일사천리로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에 의구심을 느꼈다.

‘경찰들이 수사할 때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는데 갑자기 외국인 범죄조직이 연루된 증거가 줄줄이 튀어나온다고?’

수상하다.

뒷심에게 살해동기가 있는 건 알겠다만 생판 초짜가 갑자기 외국인 범죄조직을 찾아가서 일을 의뢰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였다.

“어때요. 금방 끝나겠지요?”

최형림이 미소를 지으며 성신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건이 해결되면 그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던가?

“네…….”

마음 한쪽에서는 싸늘한 의심이 아직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지만…….

‘뭐 내가 괜히 의심하는 거겠지. 검사에게 대들 수도 없고, 내가 약간 의심스럽다고 해서 굳이 선배가 책임지고 진행하는 수사에 찬물 끼얹어서 일 망치려고?’

성신아는 가슴 한편에 고개를 들던 의문을 저 멀리 치워버렸다.

* * *

뒷심은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자신의 휴대폰을 제출했다.

그래서 그는 시현이 준 선불 폰으로 시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도중에 경찰들이 구속영장을 들고 와 그를 잡아갔다.

증거인멸과 도주 및 자해 우려가 있다고 포승줄에 묶어 유치장에 처넣은 것이다.

“젠장! 말도 안 돼! 변호사 부르게 전화기 줘!”

뒷심이 유치장에서 고함을 질렀지만 경찰들은 코웃음 칠 뿐이었다.

“살인교사 혐의가 있고 아직 공범도 있을 텐데 전화기를 줄 순 없고, 변호사 번호를 알면 말해. 전화 걸어서 이쪽이 불러줄 테니까.”

“이거 인권 유린이야! 인권 유린!”

뒷심이 그렇게 따지고 들었지만 경찰들은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아니, 구속영장 나와서 구속해, 변호사 불러 달래서 불러 줘. 할 거 다했는데 인권유린은 무슨…….”

“내버려 둬. 아직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것 같은데.”

“하긴 깜빵 가서도 한동안은 얼타는 놈들 많지?”

경찰들의 반응을 보니 멍청한 뒷심도 자신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놈들 진짜 증거를 날조해서 날 범인으로…… 그 탐정 놈 말이 사실이잖아!’

뒷심은 치를 떨었다.

이대로라면 꼼짝 못 하고 그냥 감옥에 가게 될 상황이다.

하지만 이때 만약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어떨까?

‘역시…… 해야겠어. 내가 유치장에 있을 때 살인이 일어나면 이놈들이 날 어쩔 거야? 그리고 젠다 고것이 멀쩡히 세상을 돌아다니는데 나 혼자 감옥에 가라니 웃기는 소리지!’

시현은 몇 차례나 경고했다.

그가 계약을 나눈 존재는 절대로 선의로 그러는 것이 아니며 이 계약이 완성되면 뒷심이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할 수도 없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 뒷심의 머릿속에서 시현의 경고는 말끔하게 지워지고 젠다에 대한 복수심과 자신을 수사하는 수사진에 대한 분노만이 남아 있었다.

* * *

뒷심의 분신이 합정역 인근 오피스텔에서 나타났다.

“음. 젠다의 집 근처로군. 하지만 젠다는 집에 없겠지.”

뒷심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CCTV가 거리 곳곳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다.

“전화가…….”

뒷심은 무심코 몸을 뒤져보았지만 없다.

그래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길가는 행인 중 한 명에게 다가섰다.

“잠시 전화를 좀 빌립시다.”

“뭐?”

“부탁해요. 잠깐이면 되니까.”

“어허. 너 뭐야? 이 사람이…….”

행인은 전화기를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뒷심이 강제로 그의 손과 멱살을 붙잡았다.

“억?!”

행인은 덩치가 꽤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뒷심이 잡고 당기자 질질 끌려 다닌다.

“잠깐이면 된다니까!”

뒷심은 그에게서 전화기를 빼앗고 전화를 걸었다.

“이봐! 나 지금 합정인데. 젠다는 어디 있는지 알아? 그리고 CCTV 좀 지워줘! 전기도 끊어주고!”

[아. 당신이군요.]

전화기 너머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속당한 걸로 아는데. 분신을 썼어?]

“그래. 네놈, 내 영혼이 필요하지? 협력해라. 젠다의 위치를 알려 주고 전처럼 CCTV를 막아줘. 그럼 내 영혼이고 뭐고 줄 테니까!”

[흐음, 왜들 이렇게 자의식 과잉인지…….]

“응? 뭐라고?”

[아니. 알겠어. BJ젠다 말이지? 당신의 표적인? 거기서 꽤 가까워. 서울 시청 앞 플라자 호텔이야. 가까이 가면 다시 알려 줄게.]

“그럼 CCTV는?”

[일단 가 보라고. 알아서 해 줄 테니까.]

“그래. 고맙군.”

입으로는 고맙다고 말하지만 뒷심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잡혀있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전화 잘 썼어.”

남자에게 전화를 돌려주고 지하철로 향해 개찰구를 뛰어넘는다.

분신에는 지갑도 카드도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어도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2호선 지하철을 이용해서 시청역으로, 그곳에서 나와 서울 시청 앞 플라자 호텔로 향한다.

“더럽게 비싼 호텔로 피난 갔군. 개 같은 년. 다른 새끼들도 문제지만 넌 더 문제야. 죽어 마땅해!”

뒷심은 젠다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며 다시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었다.

* * *

플라자 호텔의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멈춰 섰다.

뒷심이 걸어 나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근처인 것 같은데…… 아직인가?”

그때 그의 옆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경고했는데 말을 듣지를 않으시는군요.”

바로 시현과 류하리였다.

“뭐야 너희는?! 왜 여기에 있어? 날 방해할 거냐?! 엉?!”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저희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그럼 날 도와서 젠다를 죽여도 무죄가 되게 해 달란 말야!”

그러자 듣고 있던 류하리가 하, 하고 혀를 찼다.

“아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도와주지 않을 거면 꺼져! 이 자식!”

뒷심이 시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시현은 가볍게 그의 팔을 낚아챘다.

“자자. 여기까지.”

-콱!

시현은 간단히 뒷심의 팔을 비틀어 그를 호텔 벽에 처박았다.

“크윽!?”

“그녀를 죽이면 당신도 돌이킬 수 없으니까 여기까지 하지요.”

뒷심이 손을 빼려고 애를 써봤지만 힘을 주자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뿐 요동도 하지 않는다.

시현의 힘이 너무 강한데다가 잡혀 있으니까 마치 호랑이 같은 맹수의 앞발에 짓눌린 사냥감이 된 기분이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이 끔찍한 기운은 뭐랄까? 마치 사신의 낫이 목을 겨누고 있는 것 같은 섬뜩함이 있었다.

“젠장! 미카엘! 여기 보고 있지! 보고 있으면 좀 도와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류하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정말 거짓말 같은 타이밍에 전기가 나가며 호텔의 불이 일제히 꺼졌다.

“이, 이건?!”

그리고 그 순간 엘리베이터 복도에 연결된 비상구 쪽에서 한 인영이 달려든다.

“?!”

처음에는 그 인영이 시현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자와 시현의 눈이 마주친 순간…….

‘대비가 되어 있군.’

상대는 방향을 틀어 류하리에게 뛰어들었다.

“이런.”

시현은 잡고 있던 뒷심을 놓고 류하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좋았어! 하하! 이봐! 저놈 좀 막아 줘! 난 젠다를 죽일 테니까! 몇 호실이지?”

“1029, 안쪽으로 깊이.”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그렇게 말하고 시현을 노려보며 손에서 칼을 한 자루 뽑아들었다.

시현은 옷소매를 탁탁 털고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아니라 그가 들어왔던 계단 통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을 앞에 두고 대놓고 딴청이라니.

그러나 이 새로운 난입자는 시현에게 덤벼들지 않고 류하리에게 달려들었다.

“…….”

시현이 류하리의 옷 덜미를 잡고 뒤로 당겨 피신시키고 발차기를 날렸다.

-투콱!

난입자가 시현의 발에 맞아 날아갔지만 그는 시현의 종아리에 칼을 대고 당겨 베어버렸다.

“아, 진짜! 이게 아까 전부터 계속!”

그때 류하리가 갖고 다니던 테이저 건과 플래시라이트를 빼들어 난입자를 향해 갈겨버렸다.

시현에게 맞고 날아갔던 난입자의 몸에 테이저가 박히고 전기 충격을 선사해 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순식간에 쓰러질 강력한 전기 충격이다.

하지만 류하리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계속 날 호구로 보는데!”

그녀는 엘리베이터 근처의 소화기를 집어 들어서 그대로 던져 난입자에게 맞춰버렸다.

전기 충격으로 무방비가 된 난입자가 소화기를 맞고 나뒹군다.

“…….”

보고 있던 시현도 한마디 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돼요?”

“뭐…… 안 죽었겠죠? 아마도? 자, 그럼 뒷심 잡아요!”

“아! 이런!”

멍때리고 있던 뒷심이 그제야 놀라서 도망가려 했지만 시현이 뒷심의 뒷덜미를 잡아 다시 호텔 복도 바닥에 내던졌다.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콰직!

시현은 쓰러진 뒷심을 발로 짓밟았다.

“아직 계약을 안 했으면 고객이 아니지.”

“으윽…….”

“대충 정리된 것 같군요. 이 사람은 어쩌죠? 수갑이라도 채워야 하나? 살아는 있겠죠?”

류하리는 난입자에게 다가가며 수갑을 꺼내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목에 서늘한 한기가 와 닿았다.

누군가가 그녀의 뒤에서 칼을 들이댄 것이었다.

“거기까지.”

또 다른 난입자들이었다.

한 명이 아니다.

-철컥!

그 순간 시현이 품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멈춰. 데드맨.”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시현을 제지시켰다.

류하리를 인질로 잡은 이의 뒤쪽에서 젊은 청년 한 명이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미, 미카엘!? 와줬구나. 하하하.”

뒷심은 자신의 편이 더 온 것이라 생각해서 좋아했지만 정작 그 청년은 짜증을 감추지 않았다.

“아, 진심으로 실망했어. 뒷심.”

“응?”

“인터넷 방송하는 와중에 살인을 하지 않나. 경찰서를 습격하지 않나 해서 초반엔 기대를 많이 했다고. 아, 이번 놈은 진짜 화끈하구나. 뭔가 남다른 걸 보여주겠구나! 그렇게 기대를 많이 했는데…… 뚜껑 까보니까 결국 흔히 있는 멍청이 아냐!?”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말야. 번뜩이는 영감을 원해. 남다른 감수성! 불꽃같은 열정! 밤하늘을 찢어발기는 번개 같은 인스피레이션! 그런 게 없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 대체 이 지구에 인간이 얼마나 많은 줄 알기나 해? 그런데 그런 발에 채일 것 같은 인간의 영혼 때문에 내가 그렇게 공을 들여야 하냐고!”

미카엘이 그리 말하며 턱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이 류하리의 공격을 맞고 쓰러진 이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시현이 그를 총으로 겨누자 류하리를 인질로 잡은 이가 나섰다.

류하리의 목을 짓누르는 칼날에 살짝 핏방울이 맺혔다.

데드맨31

스트리밍 살인사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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