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목에 사원증을 건 젊은 남자가 교차로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뭐 별것도 아닌데 굳이 가지러 왔어? 그냥 밖에서 먹으면 되지.”
[자기 헬스한다고 다이어트 도시락 쌌잖아. 가람이도 밖에 바람 좀 쐴 겸 해서 나왔지.]
“가람이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마스크 씌워서 괜찮아. 아, 저기 보인다.]
“응?”
과연 교차로 건널목 건너 한 젊은 여성이 유모차를 밀며 남자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툴툴대던 남자였지만 아내와 아이가 굳이 찾아오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여기야! 여기!”
남자도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부아아아앙!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하얀색 승용차 한 대가 길거리를 질주하더니 대뜸 인도를 뛰어넘어 밀고 들어온 것이다.
-콰앙!
하얀색 세단은 그대로 인도의 행인들을 습격하고 신호등에 들이받고서야 멈춰 섰다.
“꺄아악!”
“사고다!”
“미친! 시속 90은 됐겠네!”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소리가 들렸다.
-딸칵.
남자의 얼굴에 걸려있던 안경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남자는 멍하니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 전 폭주하던 차량에 유모차가 휩쓸려 그대로 말려들어간 것이다.
부서진 유모차의 잔해와…… 아내가 싸온 도시락. 그리고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여자의 손목이 절단되어 선명한 피와 새하얀 뼈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도시락이 열려 드러난 내용물들, 브로콜리와 닭가슴살 샐러드 위로 잘려진 손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떨어져 무슨 드레싱처럼 보였다.
“!!!!”
남자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 * *
병원 집중치료실의 벤치에서 수척해진 남자의 발이 플로어를 때리고 있었다.
수염이 헝클어진 그에게 간호사가 겁을 내며 서류철에 끼워진 서류를 건넨다.
“저…… 고진아 님 보호자 되시죠? 수술 동의서를…….”
“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서류를 받아든 남자는 서명하려다 흠칫 멈췄다.
“절단 수술이라고요?”
“네. 다리가 저 그게…….”
“이미 하나 잘랐잖아요?! 그런데 또?! 다리까지?”
“죄송합니다.”
“…….”
간호사에게 화내봐야 뭐하겠는가. 남자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현실감이 없어서 펜을 잡고 서류에 사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서류가 보이지 않는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서류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딸그락.
남자의 손에서 펜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손이 덜덜덜 떨려서 펜을 주우려 해도 주워지지 않는다.
몇 번이나 펜을 주우려 하는 남자를 보며 간호사는 괴로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남자는 영정사진을 들고 가정법원의 복도에 서 있었다.
아내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만들고 그 밑에 아이 사진을 액자에 끼워두었다.
결국 팔과 다리를 절단하기까지 했던 아내는 쇼크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남자도 이젠 죽지 못해 살아 있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웅웅거리는 잡음처럼 흘러간다.
그때 문이 열리고 비분강개한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남자의 처남이었다.
“으아아아! 이런 개자식들아!!!!”
처남은 법원 청원경찰들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었다.
“어, 처남?!”
“혀, 형님!”
“자자. 난동부리지 마세요! 당신도!”
청원경찰은 그렇게 말하며 남자도 경계하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인데 그래? 판결은 어떻게 나왔는데?”
“4호예요! 4호! 소년원도 아니라 집에서 보호관찰! 이 개새끼들아! 너희 가족이면 그렇게 했겠냐!”
“…….”
순간 남자는 영정 사진을 안은 채로 털썩 주저앉았다.
말도 안 된다.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다못해 소년원에 들어가는 10호 처분쯤은 받기를 원했다.
그런데 4호 처분? 집에서 1년간 보호관찰이라니?
* * *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하지만 가해자 쪽에서 연락 온 게 없다.
연락처도 몰랐기에 남자는 사건담당 보험사 직원에게 가해자와의 연락을 부탁했다.
[미성년자라서 연락처를 주기 그렇다네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가 어딨습니까! 가해자가 빌어도 모자랄 판에……. 보통 사고는 그렇잖아요!”
“미성년자 사건은 종종 이런 경우가 있지요. 촉법소년이라 형사로는 안 될 거 알고 있으니까 용서를 빌지도 않는 경우가…… 이럴 때는 민사를 거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보험사 직원도 그의 딱한 사정을 아는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 * *
아내와 아이가 있던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사 둔 바닥 소음 방지용 매트가 깔려있는 집, 아이들 장난감과 냉장고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내가 만든 반찬통 등을 보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그냥 목을 매달아서 이 처참하고 끔찍한 삶에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하다못해 가해자 놈들과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다.
그래서 민사를 걸었다.
그러자 전화가 왔다.
[아니, 너무하시네요! 이미 끝난 일 아닙니까?!]
처음 전화를 받자마자 가해자의 부모는 그렇게 말했다.
“끝난 일…… 이라고요?”
[이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거 운전했던 애도 죽었는데…….]
“…….”
[우리 애는 뒷좌석에 타고 있었던 것뿐이라고요. 우리 애에게 민사를 걸어서 뭘 원하는 겁니까? 돈 없어요. 소송 아무리 걸어봤자 먹고 죽을래도 돈이 없으니까 헛짓거리 하지 마쇼!]
“…….”
남자는 허탈했다.
하지만 덕분에 하나는 건졌다.
살아야겠다는 의지.
만약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그들도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여있어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삶에 두들겨 맞고 있었다면 인생이 그들을 괴롭히길 바라며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뻔뻔하며 교만하다.
“그래도…… 덕분에 연락처는 알아냈다.”
남자는 법원의 송달문을 통해 가해자들의 주소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주소를 알아냈는데 어떻게 찾아간담. 무작정 찾아가서 잠복하면…….’
스토커 같은 걸로 신고당하면 어찌될지 모른다.
그리 생각하던 그는 무심코 주머니에서 구겨진 광고전단을 꺼냈다.
못 받은 돈 받아드립니다.
민간 조사.
보안 점검.
그 외 모든 문제 상담해 보세요,
시현탐정사무소.
“…….”
남자는 전단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 * *
“그래서. 마포경찰서 서장님께서는 징계도 경고도 받지 않았다?”
시현은 자외선을 많이 받아 빛이 바랜 식당 테이블에 앉아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의 맞은편의 류하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수사과 직원들만 문책당하고 끝이네요. 그래서 전 여전히 당신을 조사해야 하지요.”
“…….”
“적당히 탈세 정도로 잡는 건 어떨까요? 과징금 좀 물고 끝날 건데.”
“탈세 안 합니다.”
“에이. 탈세하잖아요. 탈세. 네?”
“안 한 걸 했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긴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야 나중에 걸렸을 때 실수라고 할 수 있긴 하지요.”
“진짜 안 합니다. 돈 벌어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인지라.”
“하긴. 여자 데리고 이런 가게에 온 걸 보면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것 같긴 하네요.”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 있나 의심스러운, 시간을 비껴지나간 듯한 인테리어의 국밥집이다.
“이거 데이트였나요? 근무시간일 텐데?”
“아. 아하하. 그렇죠. 데이트 아니죠. 그런데 그럼 데이트 때는 주로 어딜 가요?”
그때 식당 아주머니가 그들 둘 사이에 국밥을 내려놓고 TV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식당 위에 걸려있던 TV는 토크쇼가 진행 중이었다.
[최근 소년 범죄가 잔혹해졌다고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아졌지요. 판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그거 말이지요. 대부분의 소년 범죄는 잔혹하지 않습니다. 특정 범죄 일부의 잔혹성만을 두고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게다가 소년들은 참정권이 없습니다. 이 사회에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데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건…….]
그 방송을 듣고 있던 류하리가 피식 웃었다.
“판사님도 약을 파는군요.”
“약을 판다?”
“네. 참정권이 없어서 권리가 없으니 의무를 묻지 않겠다니.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참정권 없으니까 안 잡을까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판사에게 저런 걸 물어봐야 의미가 없지요. 입법부인 국회의원에게 따지고 들어야지. 응?”
시현이 전화가 옴을 깨닫고 휴대폰을 꺼냈다.
“업무용 폰이군요. 잠시 소리 좀.”
시현은 TV리모컨으로 볼륨을 죽였다.
사람 좋게 웃고 있는 판사의 얼굴이 소리 없이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 * *
죽음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남자가 시현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다.
시현이 전기포트에서 물이 끓는 걸 지켜보는 동안 류하리가 폰을 뒤적이고 있었다.
“아, 찾았어요. 이거군요. 이 청원.”
“네.”
청원 페이지에서 남자의 사연이 올라와 있었다.
‘미성년자들의 불법 렌터카 사고로 인해 아내와 아이를 잃었습니다. 처벌 부탁드립니다.’
“청원은 10만 채웠고 종료되었다고 나오네요. 그런데 그럼…….”
류하리가 마치 자신이 탐정인 양 말하자 커피를 타고 온 시현이 그녀의 다리를 툭 찼다.
“아하하.”
류하리가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청원 날짜를 보니 이미 판결이 나서 종료되었겠지요.”
“네. 운전한 놈은 사망했고 같이 타고 있던 아이들은 운전한 놈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에 타기만 했을 뿐이라고 해서 그 아이들은 4호 처분으로…….”
“그래서 의뢰는 어떤 걸 원하십니까?”
“다른 가해자 아이들을 조사하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놈들인지. 정말 주범이 강제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차에 탄 건지 아니면…….”
그런데 그때 타다닥 하고 타자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흠칫 놀랐다.
수면 부족으로 퀭한 눈동자가 떨린다.
“레트로한 기기도 좋지만 역시 시끄럽단 말이죠.”
류하리가 그렇게 넉살을 떨며 타자기로 가더니 종이를 쓱 뽑아버렸다.
시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는 종이를 읽었다.
‘계약을 권해라.’
라고 되어 있었다.
“이렇다네요.”
“얌전히 있어주겠습니까? 조수 씨?”
“네.”
류하리도 자신이 좀 과했다 생각했는지 얌전해졌다.
* * *
“우선 물어보지요. 뭘 기대하십니까?”
“네?”
“미성년자가 불법 렌트 차량을 빌릴 정도면 사실 조사하나 마나입니다. 보통 사람들 입장에선 상종하기 힘든 쓰레기죠. 어쩔 수 없이 선배가 강요해서 차에 탔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아무 생각 없을 겁니다.”
“…….”
“조사하면 이 아이들을 증오할 이유가 더 생기면 생겼지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그런 걸 원하십니까?”
“이봐요. 내가 지금 그런 훈계 들으러 온…….”
그때 시현이 손바닥을 들어 그의 눈앞으로 내밀어 그를 제지했다.
“!?”
“오해하지 마시길. 저희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해라고요?”
“그간 잊으라느니 용서하라느니 새 출발하라느니 하는 사람들이 많으셨나보군요. 서론만 떼어도 발끈하시는 걸 보면.”
“…….”
남자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말하는 건 법 안에서는 어차피 처리 못 하는 촉법소년들을 상대로 어떻게 하길 원하시냐는 겁니다. 진짜 고객님의 니즈를 알아야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요.”
“모르겠어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러나. 머리가…….”
“…….”
“비용은 얼마나 들지요?”
“서비스에 따라 다릅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인건비만 주에 500만 원, 그리고 기타 소요 경비를 추가합니다.”
“……법의 테두리 밖으로는요?”
“한 푼도 안 받습니다.”
“네?”
“대신 수명을 받지요.”
그렇게 말하는 시현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데드맨31
촉법의 사각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