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남자는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직장은 잘렸습니다만. 제 개인 연락처는 여기 있습니다.”
“하태완 씨로군요.”
“네. 그래서 그 의뢰 말인데…… 일단 주당 500만을 낼 테니 조사를 부탁드립니다.”
“조사를요?”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수명을 달라는 것에 대해서 궁금하지는 않고요?”
“궁금하긴 합니다만. 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것보다는 돈으로 해결 보는 쪽이 더 깔끔할 것 같군요. 그리고 이 조사가 그냥 뻔한, 알고 있던 사실을 재발견 하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직접 확인하고 싶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야.”
시현은 하태완의 의뢰를 접수했다.
* * *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류하리가 물어보았다.
“이런 사건은 아무래도 경찰을 달고 하기 힘든 일인 것 같군요. 혹시 잠시 뒤로 물러나 주실 수는 없습니까?”
“불법적인 조사방법을 써야 한단 말이로군요.”
“정보원들을 만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경찰과 마주하긴 좀 그런 입장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도 보고서를 내야 해서요. 서장님이 이번 사건으로 이 조사를 접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시니 어쩔 수가 없잖아요.”
스트리머 살인사건에서도 마포경찰서 서장은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괜히 죄 없는 하급 경찰들만 줄줄이 문책당하고 서장은 불똥을 피한 것이다.
‘서장님이 보고서 제출하라고 하는데 이거 뭐 쓸 게 있어야지. 이 남자가 다른 사람의 수명을 빼앗는다고 보고하면 날 정신병원에 처넣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다고 몇 가지 불법적인 일들을 정말 보고 했다가는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지.’
보통 사람은 남의 수명을 빼앗는 능력을 가진 이를 상대로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다.
대체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함부로 그런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존재와 싸우겠는가?
‘게다가 뒤가 켕기는 짓을 한 건 경찰이 먼저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뒤로 빠지실 겁니까?”
“그런데, 너무 궁금하네요. 이 일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럼 철저히 제 조수가 되어주셔야겠습니다.”
“어? 그래도 돼요?”
“네. 뭐, 제 호의를 이용해서 절 함정에 넣겠다고 하시면 저야 편하지요.”
“왜요?”
“그때부터는 완전히 적이 되는 거니까 말이지요. 지금처럼 적인지 아군인지 애매한 회색지대는 제가 고역이군요. 그래서 말인데.”
“네.”
“경찰 신분을 좀 이용합시다.”
“네?!”
“이 운전 사고에서 운전을 하다 죽은 소년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서 탐문을 해 주세요. 탐정이라면 사람들이 눈에 색안경을 끼고 보겠지만 경찰이 탐문한다면 적극적으로 응할 겁니다.”
“저 혼자 조사하라고요?”
“네. 저는 그동안 다른 친구들을 좀 만나고 오지요. 경찰을 보기 싫어하는 친구들 말이죠.”
“아. 그런 식으로 절 떨궈놓는 거군요.”
“협력하기로 했잖습니까?”
“알겠어요. 내뱉은 말이 있으니 주워 담지도 못하고.”
류하리는 투덜거리며 시현과 따로 행동하기로 했다.
* * *
류하리는 우선 사고로 사망한 아이의 학교를 찾아가보았다.
“경찰 분이시라고요? 아니, 뭐 이제 다 끝난 일인데.”
학교의 행정직원은 경찰 신분을 제시한 류하리를 위해서 생활기록부를 뒤적였다.
“여기 있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류하리가 생활기록부를 보니 교사의 생활평가란이 보인다.
‘소심하고 섬세한 성격. 친구들이 없고 주의가 산만하다.’
그렇게 적혀 있었다.
“소심하고 섬세한 아이가 불법 렌터카를 타고 폭주를 해?”
류하리는 생활기록부에 적혀있는 평가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봐야겠군요.”
“그게…….”
행정직원이 말꼬리를 흐렸다.
“편모가정이었는데 모친도 지금은…….”
“네?”
류하리는 사정이 꽤 복잡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 * *
류하리는 어렵사리 한 요양병원에서 면담을 신청했다.
보행기에 의지한 노파가 그녀를 맞이했다.
“석현이 찾아오신 손님인가?”
“네. 이석현 학생 외조모님 되시지요? 류하리 경위입니다.”
류하리가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자 노파는 반색했다.
“아이고, 형사님. 우리 애들 억울함을 좀 풀어주시구랴.”
“억울하다고요?”
“네! 딸애랑 석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만약 그냥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가해자의 뻔뻔스러운 변명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활기록부를 본 류하리는 이 말이 가감 없는 진실이라고 느껴졌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딸애는 그저 여자 혼자 애 키운다고 욕먹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우. 그런데 그런 석현이를 못된 놈들이 작정하고 괴롭히더니 석현이 명의로 사기도 치고 그걸로 항의하는 애를 괴롭혀서 렌터카도 빌리게 했지 뭡니까.”
“혹시 증거가 있나요?”
“증거는 여기. 딸의 전화기에 있어요.”
노파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낡은 핸드백에서 비닐 백에 담긴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화면이 깨져있고 깨진 유리 틈으로 오래된 피가 배어서 메말라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건…….”
“딸애 피예요. 석현이 죽고 딸도 그렇게 되었는데…… 이 핏자국이라도 딸애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차마…….”
“…….”
류하리는 충전기를 연결해 충전을 하고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켜보았다.
휴대폰의 갤러리에는 어린 아이의 몸 사진이 담겨 있었는데 석현이라는 아이가 학대당해서 팔다리와 몸통에 온통 멍이 들고, 엉덩이에는 담배 빵이 찍혀있는 흔적도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화를 녹음한 파일도 있었다.
“제발 형사님. 부디 우리 아이들의 한을 풀어주세요. 다른 경찰들은 도저히 들은 체를 하지 않아요.”
“아, 알겠습니다. 이 파일들 복사해 가도 될까요?”
류하리는 노파의 동의를 구하고 파일을 복사하고 휴대폰은 다시 노파에게 돌려주었다.
노파는 그 휴대폰을 비닐 백에 싸서 소중하게 다시 간직하는 것이었다.
* * *
류하리가 조사를 끝마치고 이동할 때 시현이 전화를 걸었다.
[조사는 어땠습니까?]
“일단 운전으로 사망한 애는…… 다른 아이들에게 학대당한 피해자 같아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
“당신은 알고 있었군요.”
[그야. 사망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아니잖아요.]
“네?”
[불량아들이 불법렌터카를 렌트해서 차를 몬다. 그럼 그 무리에서 좀 나대는 애가 운전대를 잡기 마련입니다. 가장 나이가 많든가 나이는 적어도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놈이 운전대를 잡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사고로 죽은 아이는 그런 게 없었어요. SNS도 하지 않더군요. 다른 녀석들은 다 SNS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런 걸 예상하고 있었군요.”
[네. 나머지는 만나서 이야기 할까요? 지금 가고 있으니까 뵙도록 하지요. 곧 도착합니다.]
“아, 네. 어디에요?”
그때 류하리의 눈앞에 딱 봐도 양아치스러운 오색찬란한 래핑이 된 세단 차량이 도착했다.
차 뒤에는 스포일러가 크게 무슨 비행기 날개마냥 달려있고 앞에는 LED 안개등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오디오도 대폭 개조했는지 궁짝궁짝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안에서 시현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깁니다.”
머리를 넘기고 양아치스러운 티셔츠, 팔 토시를 차고 있는 모습에 류하리가 깜짝 놀랐다.
“세상에……. 뭐예요 지금 이 모습은?”
“애들이 좋아할 법한 차를 구했지요.”
“자동차관리법 위반 풀 패키지네요. 설마 이걸 경찰 앞에서 타고 다니시게요? 게다가 꼴이 그게 뭐예요?”
“마음에 안 드나요?”
“네. 평소가 훨씬 낫네요.”
“제 평소 모습을 그나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감사하군요. 자, 타시죠.”
“음. 너무 의미부여하지 마세요. 아, 내가 이런 양카를 타다니.”
류하리는 이런 불법개조 차량에 타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시현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차에 탔다.
* * *
시현이 차를 모는 동안 류하리는 녹취록을 틀었다.
석현이라는 아이의 모친과 다른 아이들이 대화하는 내용이었다.
[이 나쁜 것들! 우리 아들을 괴롭히고 갈취해 간 게 벌써 천만 원이 넘어! 애들이 할 짓이 아니잖아!]
그러나 상대 애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아니, 석현이 너 임마, 엄마 불렀어? 어휴, 이 쫄보 새끼.]
[아주 엄마 품에서 사는구만.]
앳된 아이들의 입에서 더럽고 음험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석현의 모친은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너희들! 고소할 테니까 각오해!]
[……고소?]
[풉……]
[푸하하하. 아니, 아줌마. 우리 촉법소년이야 촉법소년.]
[뭐? 지금 너희들…….]
[우리 고소하면 이 새끼 죽여버릴 거야. 죽여도 우린 처벌 안 받는다니까.]
[죽일 수 있을 때 사람 죽이는 경험 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나중에 인방 같은 거 할 때 나 사람 죽여 봤다고 자랑할 수도 있고.]
[그리고 우리 이미 아줌마네 집 다 아는데? 그치? 석현아?]
[이 망할 자식들!]
석현의 모친은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 꼬마들은 진짜로 한다.
사람을 죽이건 집에 불을 지르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놈들이다.
처벌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 * *
녹취록을 다 들은 류하리가 혀를 찼다.
“놀랍네요. 어린 나이에 이렇게 악독할 수 있다니.”
“픽서가 있는 겁니다.”
“픽서요?”
“일을 만들고 사기 기술이나 돈 되는 기술을 전수하는 놈이요. 애들이 법전을 꼼꼼히 읽어봐서 이러는 건 아니고 그냥 누군가가 배후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자신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거지요.”
“그냥 인터넷에서 보고 한 걸 수도 있잖아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나이 애들이 인터넷에서 보고 불법 렌트를 할 수는 없죠. 불법 렌트 사업은 제법 자본도 있고 덩어리도 있고 조직이 붙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이 차를 가져온 거군요. 음. 그런데 왜 불법렌터카가 미성년자 범죄와 연결 고리가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경찰인 제가 이런 걸 묻는 건 좀 부끄럽지만요.”
“우선 사기꾼 놈들은 총알받이가 필요합니다. 보이스피싱이나 중고물품 사기, 사설 도박 등등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들을 수사하고 체포할 때 주로 어디서 체포하죠?”
“현금을 빼내거나 이체할 때죠. 주로 ATM에서.”
“네. ATM에 접근할 때 잡히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인터넷 뱅킹을 그냥 이용하면 대포통장 아닌 건 쉽게 추격당해서 잡힌다는 걸 저들도 알아요. 그래서 만약 형사미성년자를 대신 부려먹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애들에게 그냥 돈 줄 테니까 돈을 찾아오거나 어느 계좌에 입금시켜라, 이체시켜라, 이렇게 해서 한 번 중간 고리로 미성년자를 거친다면 말이죠.”
“수사에 먹구름이 끼겠지요. 만 14세의 형사미성년자는 형사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으니까 자신들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입 다물기도 쉬울 테고. 위증죄도 성립하지 않고 경찰의 수사에 협력할 이유도 없으니 말이에요.”
“네. 실제로 이런 데 가담하다 걸린 많은 어린애들이 이렇게 말하죠. ‘누가 돈 주면서 이것 좀 해 달라고 부탁해서 했을 뿐이에요.’ 그럼 경찰입장에서는 환장하는 거죠. 촉법소년을 윽박지를 수도 없고 실제로 어린애가 단순히 돈 몇 푼에 홀린 건지 적극적인 가담자인지 알 방도도 없고.”
인터넷과 정보기술이 발달한 이래 촉법소년들의 법적 지위는 성인 범죄자들에게도 매우 활용하기 좋은 매력적인 요소다.
데드맨31
촉법의 사각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