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물론 이 애들에게 촉법소년이니 중고물품 사기니, 그릇된 지식을 불어넣는 놈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에요. 나쁜 어른이 물들여서, 부모의 애정과 관심, 교육이 부족해서. 그런 걸로 넘어가기에는 이 녀석들은 충분히 선을 넘었어요. 게다가 이 녀석들, 안전벨트를 했어요.”
“무슨?”
“사건 당일 날 그놈들은 안전벨트를 맸고 그놈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운전자 애만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어요.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
“이건 처형입니다. 그놈들은 자신들이 괴롭히던 아이를 죽였어요. 아마 이 녹취록 때문일 겁니다. 엄마에게 일렀다는 이유로 애를 살해한 거지요. 그리고 불행스럽게도 거기에 당신 가족이 말려들었지요.”
“윽…….”
그 말을 듣던 하태완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으으으으!”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이 울부짖듯 하태완은 괴로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촉법소년이니 뭐니, 자신들은 법에 처벌받지 않는다고 으스대는 꼬맹이들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추악한 놈들이었다.
저런 추악한 놈들에게 그의 소중한 가족이 살해당했다고 하니 더더욱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객님께 조사를 권하지 않았던 겁니다.”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갑자기 타자기가 미친 듯 울어대기 시작했다.
“…….”
시현이 뭐라 하기도 전에 류하리가 조심스럽게 타자기로 가 종이를 뽑아들었다.
그러나 하태완은 타자기에 시선도 보내지 않았다.
그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시현을 돌아보았다.
“그 아이들…….”
“네?”
“그 아이들은, 갱생의 여지가 있는 겁니까?”
“모든 인간은 갱생의 여지가 있지요.”
“…….”
“하지만 이 세상에 무고한 이도 허망하고 억울하게 죽는데 굳이 나쁜 놈들에게 갱생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을까요? 무고한 이들에게는 주지 않았던 기회를 굳이?”
“하하…….”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 고객님이 원하신다면 갱생이나 용서도 말리지 않습니다.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렇게 말한 시현은 류하리에게 손을 내밀어 타자기의 종이를 받아들었다.
종이에는 ‘위험, 계약대행자! 우리 쪽 먹이를 노리고 있음!’ 라고 적혀 있었다.
“계약대행자가 뭐죠?”
“전에 본 적 있는 녀석이에요.”
“네?”
그런데 그때였다.
사무실의 입구에 벨이 울렸다.
누군가가 시현탐정사무소의 문 앞에 온 것이다.
“죄송하지만 지금 상담 중입니다.”
“그 상담 말인데.”
갑자기 도어락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너머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내 쪽에서 제안이 있어서 왔는데. 들여보내 주겠나?”
그렇게 말하는 이는 분명히 이전 스트리머 살인사건 때 뒷심의 배후에 있던 인물.
미카엘이었다.
“들여보낼 이유가 없지요. 꺼지시지요.”
“웃기지 마. 그쪽이 먼저 상도덕을 어기지 않았어? 게다가 아직 계약이 진행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쪽에서의 제안을 들어보게 해야지, 응? 그래서 말인데…… 들여보내 줘.”
“상담 중입니다.”
“듣자하니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서비스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지?”
“그리고 당신은 고객이 아니지.”
“계약은 500만 단위로 수주 받는 다고 하던데.”
미카엘이 그리 말하며 품에서 돈다발을 꺼냈다.
“이거면 나도 당신 고객이 될 수 있을까?”
“돈인가. 음. 그럼 고객이지요.”
시현은 미카엘에게서 돈을 받았다.
“그럼.”
미카엘은 시현의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사무실로 들어오려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마치 판토마임을 하듯 앞에서 멈춰 섰다.
“어?”
미카엘은 류하리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이군. 왜 여기 주인이 이 아가씨지?”
“네?”
“들어가도 되겠어? 아가씨? 아니, 누나라고 해야 하나?”
“…….”
류하리는 시현의 눈치를 살폈다.
“본체가 아니라 뭔가에 씌여 있군요. 그래서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못 들어오는 거예요.”
“네? 그럼 어쩔까요? 내쫓아요? 그, 그런데 돈다발도 받았는데 내쫓으면 좀.”
“아니. 들어오라고 해요.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니까.”
시현은 미카엘에게 받은 돈다발을 챙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들어오세요. 문 다 열어놓고 이제 와서 뭘 빼고 있어요?”
“아. 감사.”
그제야 미카엘은 시현탐정사무소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누굽니까? 저 사람은?”
하태완은 당황했다.
그가 시현에게 맡긴 의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사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
고해성사실에 들어가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인 공간에 갑자기 난입한 이 자는 뭔가?
“저희 경쟁사입니다.”
“경쟁사라고요?”
탐정이라는 뜻일까?
그런데 어째 말하는 걸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때 미카엘이 시현의 옆자리, 소파에 앉으며 하태완에게 말을 걸었다.
“설마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고작 애새끼들 몇몇 닭 모가지 비틀듯 비틀어 죽이고 끝낼 생각은 아니지? 그런 건 지나가는 애들도 할 수 있는 일인데?”
“…….”
“이 녀석 말고 나와 계약해. 그러면 당신의 아내와 자식을 죽인 놈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안겨주지. 천 번을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피할 수 없는 영겁의 고통 말야.”
하태완은 갑자기 난입한 이 청년의 말에 현기증을 느꼈다.
아직도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시현과 류하리의 태도가 이상하다.
눈앞에 있는 이 젊은 청년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이 미치광이 같은 말을 쏟아내는 이를 두려워 해?
그러고 보니…… 어째 한기가 든다.
어느새 하태완의 입에서 입김이 새하얗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말만 해서는 모르겠지? 잠깐 보여줄까?”
그렇게 말한 미카엘이 하태완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어둠이 하태완을 집어삼켰다.
* * *
그리고 하태완은 커다란 감옥 안에 갇혀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판옵티콘, 무수한 창살을 가운데의 간수들이 쉽게 관측할 수 있게 만들어진 대형감옥이었다.
“어?! 여긴?”
놀란 하태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그와 같은 무수한 감옥들이 늘어서 있고 저 앞에도 감옥이 있다.
제각각의 감옥에 제각각의 죄수들이 말라비틀어진 채 갇혀 있었는데 그 죄수들의 머리는 사람의 머리가 아니다.
전부 다 CRT 모니터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아?!”
놀란 하태완이 철창에 다가갔지만 뭔가가 철창과 부딪혔다.
하태완 자신의 머리도 CRT모니터가 되어서 철창에 부딪힌 것이다.
* * *
“커억?!”
하태완은 정신을 차렸다.
거의 한 달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다.
머리가 CRT가 된 때문일까?
먹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끔찍한 허기가 계속 그를 짓밟았다.
뭔가 먹고 싶어서 자신의 팔다리마저 뜯어내고 싶을 정도의 허기.
하지만 입에 넣을 수가 없다.
입이 있어야 하는 위치에 멍청한 유리로 만든 음극선관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얼굴로 철창을 들이받아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 들이받아 깨져도 얼굴은 이내 복구된다.
얼굴 전체가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래서 한동안은 가만히 있었지만 무료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는 얼굴로 철창을 들이받기도 하고 벽을 긁고 판옵티콘의 커다란 공동을 향해 노래도 하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미쳐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실로 깨어난 것이다.
“지, 지금 얼마나?”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래 감금당해 있었더니만 말을 하지 않아서 입을 벌려 소리를 내려 하니 턱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지경이다.
“대체 지금 얼마나 지난 거죠?”
“네? 무슨 소리예요?”
류하리가 반문했다.
그녀가 보기엔 하태완은 그저 이곳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라니?
“제가 얼마나 갇혀 있었습니까?”
“쭉 여기 있었는데요?”
“네? 그럴 리가. 못해도 한 달은 갇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미카엘이 으스대면서 말했다.
“1초다.”
“1초…….”
“현실에서 1초 지났을 뿐이야. 아주 약간 맛을 보여줬을 뿐이다.”
“…….”
“경험해 보니 알겠지? 그 녀석들에게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나긴 고통을 안겨주지. 어때? 네 가족을 무의미하게 살해한 놈들에게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 순간 하태완의 눈이 흔들렸다.
‘이, 이건…….’
땡긴다.
눈앞의 이 청년은 인간이 아닌 초자연적 존재다.
그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누구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으로 인간들의 영혼 그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으리라.
이 고문을 그의 가족을 죽인 꼬맹이들에게 퍼부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끔찍한 죄악을 저지른 녀석들에게 합당한 형벌이 아닐까?
하태완의 마음이 미카엘에게로 기운다.
그러나 시현은 과연 어떤 걸 제시할지 궁금해졌다.
“탐정님? 탐정님은 어떤 걸 권하겠습니까?”
“흐음. 졸지에 경매같이 되었군요.”
“왜? 자신 없나? 데드맨?”
미카엘이 으스댔다.
그가 제공할 수 있는 고통, 그 이상의 것을 감히 인간이 제시할 수는 없으리라.
시현은 인간이라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는 존재였지만 통상적인 관념의 인간과 시현의 거리가 시현과 미카엘의 거리보다는 가까웠다.
하지만 시현은 이 불멸의 악의 권화(權化)를 앞에 두고도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시현탐정사무소는 항상 고객이 최우선입니다. 그리고 고객님의 반응을 보건데 이 자가 뭘 제시했는지 대충 감이 오는군요. 그런데 그게 정말 최선입니까?”
“‘적에게 죽음을 준다는 것은 평안을 선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잔인하게 벌을 주려면 죽음 이외의 다른 수단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로군요.”
“인간들이 복수를 갈망하기에 복수극은 동서고금 언제나 영혼이 불타오르는 듯한 예술일 수밖에 없지. 왜냐면 대부분의 인간들에겐 제대로 된 복수란 불가능하거든? 그러나 나에게 맡긴다면 가능해. 별들이 차디차게 식어 밤하늘이 어둡게 꺼져버릴 때까지 고통 받게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 수단이 그렇게 폄하 받을 만한 것이었나?”
“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 분명히 그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지요. 다만 시현탐정사무소는 항상 고객의 편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이건 고객 입장에서 최선이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사실 만약 우리 고객님이 정말 그 형벌을 택한다면 그때 즐거움을 얻는 건 당신이지 고객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어디 그쪽의 제안을 들어보고 싶군.”
“경쟁사를 앞에 두고 보안절차 없이 노하우를 까발리는 바보가 어딨습니까?”
“…….”
“우선 고객님.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저는 수명을 받지만 이 자는 영혼을 받습니다. 즉, 저희 둘은 비용이 다릅니다. 저희가 월등히 저렴하지요.”
“아…….”
“만약 영혼을 넘긴다면 저 자는 고객님이 지금 체험하신 것을 고객님에게 영원히 감당케 할 것입니다.”
“그건 확실히 괴롭겠군요. 하지만 누군가를 증오하고 파멸시킨다면 저도 죄인이 아닐까요? 그러니 그런 형벌을 같이 받는 것도 당연할지도…….”
“그런 생각을 할 정도면 정상적인 판단력이 없는 상태인 겁니다. 그러니 저희 솔루션에 맡겨 주시지요. 더 적은 비용에 더 나은 서비스. 현명한 소비자라면 뭘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요.”
“…….”
듣고 있던 미카엘이 답답해했다.
“그래서 그 솔루션이 뭔데? 아무것도 없으면서 허세부리고 있는 거 아냐?”
데드맨31
촉법의 사각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