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그래서…… 이게 바로 당신의 솔루션인가?”
하태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네.”
“하아.”
류하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려고 저에게 말을 안 한 거였군요.”
“저지르기 전에 말했으면 당신의 입장 상, 반드시 말렸을 테니까요.”
“저지르고 나면요? 제가 체포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시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하태완이 시현의 멱살을 잡았다.
“이게 시현탐정사무소의 서비스라고? 이게 고객만족이야? 웃기지 마!”
“이제 자신이 뭘 원했는지 확실히 아신 모양이군요.”
“그래! 나는 내 가족의 죽음이 존엄해지길 원했어!”
하태완은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재앙에 가족을 잃고 나서 죽어 있던 마음이 이제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니 칙칙한 안개가 잔뜩 끼어 있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뚜렷해진다.
“법이 내 가족의 죽음을 존엄히 여기지 않았으니까! 내가 사적으로 복수를 해서라도 내 가족의 죽음을 존엄하게 하고 싶었다고! 악마가 내 영혼을 내놓으라고 해도 좋았어! 내 영혼을 내놓으면 그 무게만큼 내 아내와 아이의 죽음이 무거워질 테니까! 그런데…… 그런데 이건!”
“그런데 저는 이 판이 싸구려 야바위 판이라는 걸 까발려버렸죠. 법조인들이, 판사 마음대로 오락가락하는 걸 법치주의라고 부른다는 걸.”
“맞아! 젠장. 차라리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말지! 이따위 걸 보고 싶진 않았어! 이 세상의 법과 정의가 이따위 거라면 우리 가족의 죽음은 대체 뭐였냔 말야!?”
“당신의 아내와 아이의 목숨은 이미 존엄합니다.”
“뭐?!”
“당신이 그것을 무겁게 여기고 있는 한에는 말이죠. 바꿔 말해서 당신이 살아서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그 목숨의 무게는 줄어들지요.”
“…….”
“법이나 타인에 의존해서 가족의 죽음을 존엄하게 하려고, 그 무게를 더하려고 하지 마세요. 무게를 더하고 싶다면 살아서 기억하는 겁니다.”
“으으윽…… 자, 잘도! 이딴 짓을 저질러 놓고 내게 그런 훈계를 해!?”
분노한 하태완은 시현의 멱살을 잡은 채 주먹을 들었지만 차마 내리치진 못했다.
“이 개자식!”
하태완은 시현의 멱살을 내팽개치듯 놓았다.
시현은 무표정하게 옷깃을 털었다.
“그래서 그 녀석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봐야 고작 2년형이잖아?”
“고작 2년형이지만 글쎄요? 아, 설명해 줄 사람이 왔군요.”
시현이 누군가에게 손을 흔든다.
법원의 흡연공간을 찾아오던 한 인영이 화들짝 놀라 나무 뒤로 숨었지만 시현에게 걸리고 말았다.
“아, 제길. 네놈이 왜 여기 있어.”
K일보의 고참 기자, 장기정이었다.
“장 기자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뭐 알잖아? 소년법의 옹호자 정윤허 판사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그 범인들에게 과연 어떤 형벌이 떨어질까 궁금해서 말이지. 그런데 최고형을 때리더군.”
“인터뷰나 질문은 던졌나요?”
“했지.”
* * *
이번 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채 재판에 임한 소년들에게 최고형인 10호 처분을 내린 판사는 목발을 짚고 있는 정윤허 판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장기정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K 일보 장기정입니다. 김신하 판사님하고 정윤허 판사님이지요. 실례가 아니라면 말씀 좀 물어봐도 될까요?”
“뭐?”
“거절하지.”
판사들은 대뜸 자신들에게 들이밀고 오는 장기정을 싫어했다.
‘판사님이지요, 라니? 판사님이시지요, 라고 물어봤어야지!’
보통 사람들에겐 어차피 존댓말이지만 판사들은 극존칭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장기정의 태도뿐만이 아니라 언행에서도 불쾌감을 느꼈다.
“정윤허 판사님은 평소 소년법을 옹호하고 범죄소년과 촉법소년에 대해서 이해를 구하시는 입장이셨는데 이번 10호 처분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정윤허 판사를 대신해 판결을 내린 김신하 판사가 대답했다.
“충분히 소년법 안에서 형을 내렸습니다. 기자님? 실례지만 어디시라고?”
“K일보입니다. 언제 책상 뺄지 모르는 천덕꾸러기지만요.”
내가 다니는 직장에 압력 넣으려고 해 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난 내놓은 자식이고 막나가는 놈이니까.
그런 뜻으로 말한 장기정이 피식 웃었다.
“충분히 소년법 안에서 형을 내렸다지만 애들 다친 걸 충분히 치료한 후 형을 집행하게 넣은 게 신경 쓰이는군요. 이러면 대부분의 애들이 곧 만 14세가 되는데 물론 소년원엔 22세까지 있을 수 있지만 14세 넘기면 일반 교도소로 이관할 수도 있지요?”
“쓸데없는 질문이로군. 인터뷰를 따고 싶으면 약속을 잡고 하게나.”
“K일보라고요?”
판사들은 장기정의 접근을 불쾌해하며 인터뷰를 거절하고 물러났다.
* * *
“뭐, 뻔하지. 병원 뺑뺑이 돌려서 최대한 형을 늦게 집행해서 14살 나이 채운 다음에 교도소로 보낼 거야. 게다가 녀석들 입소할 곳이 어딘지 알아? 두리형제원이야. 왜 송 원장이 운영하는…….”
“거기는 군사정권 때 사람들 팍팍 죽어나가던 곳이군요.”
“그래. 한때 별명이 한국의 아우슈비츠였지.”
“그 아우슈비츠에 얼마 안 있도록 판사님들이 배려해 주신 게 아닐까요?”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 어린 나이에 일반 교도소 가면 막내라고 막내. 뭔 뜻인지 알아? 이거도 꽤 지옥이라는 거지. 게다가 판사들이 앙심을 품었는데다가 아직 사건들이 많이 남아 있어.”
“남아 있다면요?”
“얘들이 중고 물품사기 친 거.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사건 당시 소년법 적용대상이니 소년법으로 다뤄야 하지만 모든 걸 별건으로 계속해서 순차적으로 재판에 올리면 어떻게 될까?”
“시효가 있지 않나요?”
“어차피 2년 단위니까 다들 시효가 넉넉한데다가 솔직히 판사가 원하면 시효가 어딨어?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고.”
장기정은 킥 하고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범죄소년을 옹호하시던 판사님이 자기 몸 다치니까 본색을 드러내는 거지. 아, 젠장. 담배 땡기는데 네놈 앞에선 못 피겠다. 딴 데 가야지.”
장기정이 니코틴 부족으로 초조해져서 발을 동동 구르며 떠나간다.
시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보셨죠?”
“…….”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지옥이니 모두 얽혀 사는 여기가 지옥의 최전선입니다. 그 녀석들은 판사에게 찍혔으니 남은 인생동안 충분히 고통 받겠지요. 집이 부유한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니 이미 세상은 충분히 가혹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소년법이 그들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써먹을 수 있는 방패막인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 방패막이도 이제 곧 사라지겠지만. 뭐 악마가 지배하는 지옥에 처넣는 것보다는 덜하지만 당신을 희생하지 않는 선에선 훌륭한 보복이 아닐까요?”
“신랄하군요.”
듣고 있던 류하리가 혀를 내둘렀다.
“그럼 그 아이들을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던 어른 범죄자들, 픽서들은 어쩔 건가요?”
“그건 이제 경찰님이 하실 일이죠.”
“네?”
“여기. 그 애들 이용해서 돈 옮기던 보이스피싱 조직 겸 대포차 조직에 관한 첩보입니다. 류 경위님이 수고해 주시지요.”
“아, 정말 싫다. 완전 이용당하는 기분이네요.”
“민중의 지팡이의 사명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자기 필요할 때 시켜먹다니.”
류하리는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시현이 내주는 USB메모리를 받았다.
시현은 이제 하태완을 돌아보았다.
“자, 보셨습니까? 그 녀석들을 지옥에 보내기 위해 당신이 영혼을 팔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솔루션보다 제 쪽이 낫다. 저는 그렇게 단언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제기랄.”
“납득을 못 하시겠다면 이제라도 미카엘에게 가서 연락을 하시면 됩니다.”
“필요없어…….”
하태완이 머리를 들었다.
그의 머리에 6일까지 떨어졌던 수명이 촤르르륵 소리와 함께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하태완은 자살하지 않는다.
그가 시현이 마련한 ‘파격’을 체험하기 전엔……. 그의 죽음은 자신의 가족의 죽음을 존엄하게 장식할 최고의 장식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야바위 판이 되어버린 지금은…….
그가 살아야만 가족의 죽음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끝까지 살아서 기억하고 간직해야만!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혹해서 선량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조차 우습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
“당신의 서비스를 선택하지. 착각하지 마. 만족했다는 게 아니야. 다만…….”
“그러시다면 ‘정산!’이라고 외쳐주시면 됩니다.”
“젠장! 이 악마 같은 새끼! 정산!”
하태완은 욕설을 퍼부으며 정산을 외치고 자리를 떠났다.
“원래 되게 공손하게 말하던 사람인데……. 뭐 좋게 말하면 생기는 돌아왔네요. 그 전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더니만.”
“이게 바로 시현탐정사무소의 솔루션의 효과지요. 고객님이 마음이 황폐해져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알지도 못할 때에도 진정 그분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 그런 점에서 단순무식한 보복만을 약속한 악마보다 제 쪽이 월등한 솔루션이었죠.”
“그거 참 본인이 들으면 화내서 덤벼들 거예요.”
“후후.”
시현이 웃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이런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니까. 솔직히 당장 처넣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하고 있어요.”
“이번 사건으로 절 처넣으면 제 고용주인 하태완 씨도 위험해집니다. 하태완 씨를 처벌하고 싶으세요? 이제 막 죽음의 늪에서 벗어나 생기를 얻은 사람을 파멸시키고 싶단 말이로군요?”
“윽.”
류하리는 혀를 찼다.
시현이 말한 대로다.
애초에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걸 알았다면 막았겠지.
판사 차에 돌격할 거라는 걸 알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렸을 거다.
하지만 이미 벌어지고 난 뒤에는…….
굳이 시현을 체포해서 시현이 이룬 이 일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짓을 하다니. 당신 지옥에 떨어질 거예요.”
“네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잠시.”
시현이 전화기를 꺼냈다.
“업무상 전화로군요. 아, 네. 시현탐정사무소입니다. 아, 사무실에 와 계시다고요? 급히 돌아가겠습니다.”
시현이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일이 쏟아지는군요. 억울한 사람이 세상에 그만큼 많다는 뜻이지요.”
“말이나 못하면.”
류하리는 시현의 말을 들으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 * *
시현탐정사무소 앞에 한 중년여성이 얼쩡거리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낯이 익다.
“이런이런.”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하태완의 가족을 치어 죽인 소년범의 모친이 시현탐정사무소에 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 * *
커다란 펜트하우스의 식탁, 미카엘은 멍하니 앉아서 먹는 둥 마는 둥 음식을 깨작깨작 건드리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
윤 회장이 짜증난다는 눈치로 미카엘을 노려보았다.
“아, 아버지? 그러니까 내가 요새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는데.”
“뭐?”
“사실 지금 일을 같이 도모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있거든? 그런데 요새 계속 그 사람이 눈에 밟혀.”
“…….”
“내 사람도 참 객관적으로 볼 때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 말야. 그 사람은 아주 특출 나. 자다가도 생각나고, 밥 먹다가도 생각나고, 뭘 해도 머릿속에서 아른거리고 심지어는 꿈까지 꿨어.”
“중증이군.”
“그렇지? 내가 꿈을 꾸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아냐?”
“…….”
윤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재산 분할 문제 안 생기게 혼인신고만 하지 마라. 네놈이 결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피임 잘 하고.”
“그런 거 아닌데? 진짜 정신적인 그런 이야기라고.”
미카엘이 그렇게 말했지만 윤 회장은 코웃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갖고 싶으면 징징대지 말고 가져라. 뒤탈나지 않게 조심해서.”
“역시…… 그런 점은 아버지가 참 마음에 든단 말야.”
미카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데드맨31
흔들리는 기러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