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마포 경찰서 정보과.
그곳에 캐비닛으로 둘러싸여 밖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정보3팀의 거처다.
그곳에서 류하리는 보고서를 작성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으아! 뭐 적을 게 없어!”
시현이 저지르는 범죄나 불법행위들은 이미 많이 봤다.
‘다 적자면 산더미처럼 적을 수 있긴 한데.’
문제는 그대로 적으면 미친놈 취급받아서 정신병원에 직행할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적어도 되나 의문이기도 하고.
아무리 봐도 이건 악마나 괴물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는 이야기인데.
류하리가 현직 경찰이지만 그런 괴물이나 악마 같은 것들에게 보호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끙! 보고서에 좀 올릴 게 있어야 실적을 내지. 아무런 조사 자료도 없는데 조별과제 써내는 기분이네.”
류하리는 사탕바구니에 손을 넣어서 소포장된 젤리를 한 움큼 꺼내서 포장을 쭉 찢고 호쾌하게 젤리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 * *
소년범들의 차량이 판사를 들이 받아버린 사건을 일으킨 시현은 류하리를 달래기 위해 그 소년범들을 이용한 픽서들의 하부조직에 대한 첩보를 넘겨주었다.
‘가출 청소년을 이용한 보이스범죄 조직 일망타진!’ 이런 기사가 떴을 정도다.
‘꽤 큰 공로지만 내 관할이 아니라서 나는 수사 협력만 했지. 그래도 뭐 덕분에 이제 경찰서 내에서 내 입지는 상당히 좋아졌어.’
더 이상 월급도둑은 아니다.
스트리머 살인 사건에서 BJ젠다가 습격 받을 때 구조하기도 했었고 첩보를 이관해서 어쨌건 경찰 조직 내에서 공로를 세우고 있으니까 마포경찰서 내에서 류하리의 평가는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지금도 몇몇 경찰들이 류하리에게 다가오곤 한다.
지금도 그렇다.
젊고 근육질이 너무 과한 남자 경찰이 이를 드러내면서 노골적인 호의를 보인다.
소위 말하는 헬창이다. 그는 류하리를 보더니 웃으며 물어보았다.
“류 경위님! 커피 드시나요?”
“네?”
“아, 저 이거 하나 받았는데 액상과당이 들어가 있어서 전 안 마시거든요.”
아마도 식이 제한 때문이겠지.
“아, 고마워요.”
그러나 정보3팀의 자리로 접근하기가 힘들다.
류하리가 손을 벌렸다 접으며 글러브 흉내를 내자 경찰이 캔 커피를 던져 주었다.
‘흠. 뭐, 마포 경찰서에서 내 입지와 평판이 회복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야. 문제는 이 정보3팀이군.’
이 정보3팀이라는 조직에서, 서장이 맡긴 시현 감시라는 임무를 하고 있는 이상 계속 겉돌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 정보3팀, 더러운 일 저지르는 일종의 쓰레기 처리실이잖아. 여기에 있는 시점에서 이미 내 커리어는 엉망진창…… 어떻게든 빨리 다른 조직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류하리는 전화기를 들었다가 성신아라는 걸 확인하고 전화 끊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보나마나 자기 자랑이겠지. 아, 진짜. 못해먹겠네.’
최근 성신아는 매우 잘 나가고 있다.
스타 검사가 된 최형림과 함께 승진하기 좋은 대형 사건들을 착착 맡아 조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둘의 사이가 수상하단 말야. 뭐 상관없나.”
류하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류 경위님? 어디 가?”
박진감 경위가 류하리를 찾았다.
“아, 박 경위님.”
“정보1팀에서 지원요청이 왔어. 잠시 갈까?”
“네? 지원요청이라면…….”
“정보3팀은 여기저기 타 부서 서포트도 해야 할 상황이라서, 바쁜 일 없으면 도와주지 그래.”
“어떤 일이지요?”
“마약 수사인데.”
“오.”
“되게 좋아한다?”
“아니, 뭐…… 알기 쉬운 일이라서요.”
“별로 알기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네?”
“접선해서 마약을 구매하는 일이야.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 경찰들은 경찰 냄새가 너무 나잖아. 류 경위님이 경찰 냄새가 덜 난다고 도와 달라는데 이거 여성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 일이라 이거지. 거절하려면 거절해도 좋아.”
“그, 그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거절을 못 하죠.”
“그래? 거 참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군.”
“아뇨. 하겠습니다.”
류하리는 오히려 의욕을 불태웠다.
* * *
마포경찰서 정보1팀 팀장은 채두관 경감이었다.
메마른 체구에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경찰이라기보다는 조폭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야. 류하리 경위. 경찰대학 수석 졸업한 당신을 여청과에서 놀게 할 수는 없지. 고럼고럼. 그런데 서장님의 부탁이 명문화되지 못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 서류상으로 류 경위는 지금 놀고 있는 게 된다고.”
“아, 네.”
“물론 서장님 부탁이니까 그렇게 융통성 없이 굴 건 아니지만 마침 우리가 류 경위 같은 인재가 필요하거든? 그래서 말인데 우리 정보1팀 일을 도와주면 좋겠는데 말야.”
“물론 도와야겠지요. 그래서 무슨 임무인가요?”
“유흥가의 클럽에서 유학생들 네트워크를 통해서 마약이 전파되고 있다고 하더군. 인터넷을 류 경위가 그쪽에 접근해 줘야겠어. 우리 중에 그나마 짭새 냄새가 덜 나는 게 류 경위님이니까.”
그런 제안을 하며 채두관 경감은 류하리의 눈치를 살폈다.
원래 경찰 조직에서 간부후보생이나 경찰대학 출신은 위험한 일에 투입하지 않는다.
하물며 여성 경찰을 잠입수사원으로 삼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류하리에게 여성 경찰이면서 잠입수사원을 하라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괴롭힘이다.
임관 후 아프다면서 병원 신세를 진 주제에 다시 돌아온 류하리를 다른 경찰들 모두가 고깝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또 한 명의 짭새 냄새가 덜 나는 게…….”
류하리는 옆에 있는 근육질의 젊은 남성 경장을 보았다.
남녀 한 쌍으로 팀을 이뤄서 클럽에 잠입해서 유학생 마약조직에 접촉하라는 건데 류하리 자신은 어떨지 몰라도 이 남자 경찰, 너무 경찰답다.
“아니, 이건 좀…….”
“요새는 헬스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잖아? 괜찮을 거야. 아마도.”
“곽정수 경장입니다. 이거, 류 경위님이랑 같이 일하게 돼서 영광이군요. 그렇지만 클럽 잠입이라니. 걱정이네요. 술을 마셔야 하면 근손실 오는데.”
곽정수 경장은 그리 말하면서 거울을 보며 슬쩍슬쩍 자신의 팔 근육을 비춰보고 있었다.
류하리는 그 말을 들으며 이 잠입수사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 할 건가?”
“물론 하죠. 저는 경찰이니까요.”
류하리가 그리 답하자 채두관 경감의 의외라는 듯 놀랐다.
류하리가 거부할 줄 알았는데, 설령 하더라도 도살장 소 끌려가듯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대답할 줄 몰랐으리라.
“일단 인터넷으로 약을 사겠다고 미팅 약속은 잡아놨어. 만나서 약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확인되면 잡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 * *
사복으로 갈아입은 류하리는 곽정수 경장을 기다렸다. 곽정수 경장은 근육질 체구에 근육을 온통 드러내는 V넥 티셔츠에 오부 반바지. 그 위에 화려한 형광 오렌지의 여름용 재킷을 두르고 딱 봐도 짭으로 보이는 명품 손가방을 일수가방처럼 들고 있었다.
‘경찰 냄새는 안 나긴 한다만……. 너무 오버한 것 같은데. 아니, 본인이 즐기고 있는 건가?’
류하리는 과한 곽정수 경장의 모습에 놀랐다.
그런데 곽정수 경장이 씩 웃는 게 아닌가?
“이야, 류 경위님 미인이시네요, 역시.”
“…….”
“그럼 가시죠.”
곽 경장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감 넘치게 앞으로 나갔다.
‘완전 부담스럽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근육질 팀원과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류하리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 * *
약속장소는 홍대 상수역 인근의 재즈클럽이었다.
손에 큼지막한 명품시계를 찬 체중 0.1톤은 가뿐히 넘길 듯한 거구의 남자가 야구 모자를 쓴 채로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가 류하리와 곽정수 경장이 들어서자 이쪽을 바라보았다.
“요우. 어서와.”
유학생 청년과 곽정수 경장이 이미 약속되어 있던 암구호를 나눴다.
“잠실의 진정한 주인은 엘지지? 그래, 안 그래?”
“난 서울FC팬이라. 하하하.”
유학생 청년은 곽정수 경장의 질문에 그렇게 답하고 류하리에게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를 했다.
“물건은?”
“아, 그전에 우선 형씨들이 경찰이 아닌지 검사는 해야지. 몸수색하고 스마트폰, 녹음하는지 검사해 볼까?”
“물론.”
류하리와 곽정수 경장은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 유학생 마약상이 손가락을 튕기자 여자 둘이 껌을 짝짝 씹으며 다가와 곽정수 경장의 몸을 수색했다.
뱀처럼 몸을 더듬는 손길이 섬찟하다.
“아흑.”
곽정수 경장은 좋다고 신음성을 냈다.
“…….”
“어이쿠 미안. 성감대를 건드렸나? 그럼 그쪽 여자는….”
“손대지 마.”
류하리는 자신을 더듬으려는 손길을 거부했다.
“원 까칠하긴. 거래하기 싫어?”
“오빠 이게 뭐야? 거래는 또 뭐래?”
류하리는 곽정수 경장에게 물어보는 연기를 했다.
“아 잠깐이면 돼. 잠깐.”
곽정수 경장이 대충 받아줬다.
“흐음. 멍청한 놈. 엄한 일에 여자를 데려왔네. 뭐 됐다. 자리를 옮길까?”
“옮겨?”
“처음 미팅 장소에서 거래하는 바보가 어딨어? 경찰들이나 다른 놈들이 매복하라고? 거래할 곳은 당연히 다른 곳이라고. 응? 친구. 알거 다 알면 좀 이해해 줄 수 있지?”
“아, 네.”
류하리는 일이 골치 아프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이 유학생 마약상의 생각대로 그들이 접근한 이 클럽 주위에 경찰들이 대기 중이다.
그런데 마약을 소지하지 않고 있으면 잡아봐야 헛거인데 마약을 거래하러 옮기게 되면 매복한 팀원들에게 그 상황을 전달하고 팀도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
‘뭐, 한국에서는 마약상들이라고 해도 경찰을 해치진 않겠지만.’
제정신 박힌 놈들은 감히 경찰을 건드리지 않는다.
특히 유학생 범죄자들은 대부분 집안이 넉넉한 놈들이다.
외국인 범죄자처럼 한국 물정을 모르거나 한국에서 도망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아니라 범죄자들 중에서는 상식인 부류에 속하는 이다.
‘이렇게 절차가 까다로운 걸 보니 뭐 영화 많이 봤나.’
그때 곽 경장이 류하리의 눈치를 살폈다.
‘아, 에런데. 이거.’
류하리가 계급이 더 높으니 돌발상황에서 류하리의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마약 거래에서 거구의 남자가 데려온 여자의 눈치를 살핀다면 눈치 좋은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 이상한 팀이라고 느낄 것이다.
류하리의 이성이 여기서 포기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한국 조직사회를 생각해 봤을 때 기껏 매복까지 했는데 여기서 내가 판을 깨면 내가 덤터기쓰는 거잖아? 게다가 난 정보3팀, 정보1팀, 2팀에서 보면 굴러온 돌이잖아.’
개인의 합리적 판단보다 조직원의 생리가 결단을 망설이게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판을 안 깨면서 적당히 분위기를 환기시켜야겠군.’
경찰조직의 일원으로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면서 일을 크게 망치지 않는 선에서 행동한다. 그렇게 결정한 류하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오빠. 이게 뭐야. 짜증나. 난 갈래.”
류하리는 임기응변으로 그렇게 곽정수 경장에게 시선을 돌려놨다.
“아, 미안. 자기. 거 참. 일을 이렇게 번거롭게 할 줄은 몰랐지.”
“하하하. 아니, 뭐 사탕 파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거 아닌가.”
유학생 마약상은 그리 말하고 있는데 본인도 괜히 절차를 번거롭게 만들어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가씨는 가면 안 돼. 둘이 함께 따라오도록.”
‘쳇. 나 혼자 내보낸다면 내가 매복 팀에게 상황을 전파할 수 있었을 텐데.’
류하리는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 이게 뭐야. 오빠 일 따라와서 괜히!”
“아, 미안미안. 그, 그럼 따라가면 되는 거지?”
류하리와 곽 경장은 유학생 마약상 패거리들과 함께 재즈 클럽의 뒷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뒷길을 따라서 쭉 올라가 모텔들이 위치한 거리로 향했다.
‘매복한 경찰들이 따라오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네. 음.’
류하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데드맨31
흔들리는 기러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