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퍽!
갑자기 이상한 폭음이 들렸다.
곽 경장의 등에 두 개의 바늘이 꽂혔다.
“어?!”
그리고 그 바늘에는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테이저 건이었다.
-바지직!
“크악!”
거구의 곽 경장이 별 힘도 못쓰고 경련을 일으키더니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윽?!”
류하리는 즉시 핸드백에서 작은 후추 스프레이 통을 꺼냈다.
하지만 적이 포위해있으니 분사하면 같이 휘말린다.
그래서 그녀는 통을 역수로 잡고 자신을 잡으려 하는 남자의 팔뚝을 찍고 연이어 턱에 주먹 한 방, 그리고 목덜미에 다시 후추 스프레이 통을 찍었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후추 스프레이 통은 호신용품이라 위급한 상황에서 쿠보탄이라는 호신 무기처럼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하리와 이 남자의 체중차이가 많이 나서 별 타격이 없다는 것이다.
“켁…… 뭐야 이 여자?”
류하리의 연속공격을 받고 남자가 뒤로 물러났다.
꽤 세게 때렸는데 별 효과가 없다.
그때 갑자기 류하리의 등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류하리의 몸수색 때 함께 했던 껌 씹던 여성이 대뜸 류하리의 등짝을 퍽 걷어찬 것이다.
“뭐긴 뭐야. 짭새지.”
두 여성이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나왔다.
“아…….”
류하리는 골목 쪽을 바라보았지만 매복해있던 경찰들은 아직 오지 못한 것 같았다.
“너희들 제정신이야? 한국에서 경찰을 건드리면…….”
“수사비로 마약 살 돈 가져왔지? 그거 빼앗으면 경찰들이 쪽팔려서 오늘 일 못 떠들 텐데?”
“…….”
만약 수사 중 마약범에게 정말 수사비를 빼앗긴다면 경찰들 입장에선 너무나 큰 망신이 된다.
관련자 전원 징계, 승진 누락은 확정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다른데서 십시일반해서 메우고 없었던 일로 쉬쉬하고 말지 이 일을 공론화할 수는 없다.
그걸 범죄자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아, 화나네.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지금 이것들이…… 농락해?’
그러나 여자 둘 거구의 남자 둘, 도합 네 명이다.
테이저 건을 쐈던 남자는 하리가 후추 스프레이 통으로 찍어서 아파 하지만 그게 전부다.
모텔 골목을 막고 접근해 오는 이들의 그림자가 너무나 위압적이다.
‘후추 스프레이를 뿌릴까? 하지만 바람이…….’
그런데 그때였다.
“흠. 모텔 거리에 있길래 뭐하나 싶어서 와봤더니만.”
류하리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이 골목 입구에 서 있던 것이다.
* * *
“아, 시현! 경찰! 경찰을 불러줘요!”
“웃기시네!”
껌 씹던 여성 중 한 명이 앞차기를 날렸다.
류하리가 후추 스프레이 통으로 그녀의 발을 찍으며 막았지만 구두가 단단하다.
‘쇠 통굽?’
-퍽!
류하리의 몸에 발차기가 꽂혔다.
“큭!”
류하리가 휘청거리며 다시 물러났다.
“어이. 더러운 꼴 보기 싫으면 꺼져. 응?”
0.1톤이 넘는 남자가 시현의 앞에 섰다.
그러자 시현이 손을 내밀더니 남자 손앞에서 샥 폈다.
시현의 손에 갑자기 트럼프 카드가 나타났다.
“응?”
0.1톤 되는 남자는 뭐하나 싶어서 멍하니 시현의 손을 보았다.
그 순간 시현의 다른 손이 남자의 귀를 붙잡았다.
처음에 손보인 카드마술은 남자의 정신을 팔게 하기 위한 것, 그게 보란 듯이 성공한 것이다.
“켁?!”
“자. 좌회전.”
시현은 귀를 잡은 채로 남자의 머리를 핸들처럼 돌려서 그 거구를 가볍게 돌렸다.
놀란 남자가 시현의 손을 잡고 어떻게든 떼어내려 했지만 무슨 강철 절단기 같다.
손가락을 비틀어 꺾으려는 시도조차 헛되다.
사람 손으로 바이스를 꺾으려는 것 같은 기분이다.
“으게게겍”
거구의 남자가 딸려간다.
귀가 찢겨나가기 싫으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
“우회전.”
시현이 손을 반대로 돌리자 처음의 반대 방향으로 돈다.
“아이고…….”
“그리고 과속방지턱.”
시현의 무릎이 고개를 돌리며 한껏 낮춰진 남자의 머리에 퍽 처박혔다.
거구의 남자가 단 일격에 고꾸라져 일어나질 못한다.
“…….”
“역시 한국 과속방지턱은 너무 높아.”
시현은 미스디렉션을 위해서 바닥에 떨군 카드를 줍는다.
비록 한 놈 쓰러지긴 했고 다른 남자 한 명도 부상을 입긴 했지만 쇠가 들어간 굽 부츠를 신고 있는 여자 둘과 남자 하나가 남아 있는데도 태연하게 허점을 보이는 것이다.
보통 담력으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이 자식이!”
또 다른 거구의 남자가 시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 * *
-퍽!
작은 폭발음이 들렸다.
류하리가 핸드백에서 테이저 건을 꺼내서 남자를 향해 쏜 것이었다.
“아, 잠깐. 항복!”
-바지지직!
항복한다고 했지만 류하리는 그대로 테이저의 전기 스위치를 눌러 남자를 감전시켜버렸다.
“우웩!”
감전당한 남자가 신음과 욕설을 내뱉으며 목석처럼 쓰러졌다.
그러자 나머지 둘은 정말 손을 들었다.
“오케이 항복. 여기까지 하지.”
“그런데 어쩌나? 우린 약 없는데?”
“처음부터 약 같은 거 없었어.”
“그리고 너희들 경찰인줄도 몰랐어. 아니, 사복을 입고 있는데 경찰인줄 알았어야지? 아, 그럼 공무집행방해죄 성립 안 되는 거 맞지?”
두 여자들이 빈정거린다.
“젠장!”
근무복을 입고 근무할 때 경찰을 폭행하면 공무집행 방해로라도 엮어 넣는데 근무복이 아닌 상황에서는 단순폭행이 되어버린다.
심야에 특수 무기를 써서 가한 폭행, 다수가 가담한 폭행이니 가중처벌 받을 요소가 넘쳐나지만 문제는 이 사회가 폭행 자체에 다들 너무 관대하다는 점이다.
마약으로 잡혀 들어가는 거랑 비교도 안 되는 가벼운 죄다.
“뭐, 왜 화 나는지는 알겠는데 두들겨 맞고 수사비 뺏기는 것보다는 나은 결말이니까 그 정도로 타협보시죠. 경위님.”
시현이 그렇게 말하며 미니 포장된 츄잉캔디를 까기 시작하자 류하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고, 고마워요. 시현. 덕분에 살았어요.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탐정이 모텔가 오면 뭐겠어요? 불륜조사지.”
“네?”
“이런 때 알뜰살뜰하게 벌어둬야 정작 필요할 때 이것저것 장비도 구매하고 사람도 쓸 수 있으니까요.”
그때 경찰들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사이렌을 울릴 때는 범죄자가 인명피해를 내느니 경찰의 접근을 알려 도망치게 하더라도 인명피해를 줄이고 싶어 할 때 울리는 것, 그 사이렌 소리를 들은 시현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전 이만. 나중에 또 봅시다. 류 경위님.”
시현은 입 안에 츄잉캔디를 까 넣고 경찰들을 피해 사라졌다.
시현이 사라지자 투항했던 여자 둘이 도망칠까 눈치를 보았는데 어찌나 절묘한 타이밍에 빠져나갔는지 시현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도망칠 길을 막았다.
“어이쿠, 류 경위 괜찮아? 야, 곽 경장!?”
“네. 아이고, 근육 경련이 심해요. 마그네슘 보충제를 먹어야.”
곽 경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테이저 바늘이 꽂혔던 부위를 어루만졌다.
“전기가 좀 흘렀는데 EMS효과로 근신경계에 자극이 잘 먹었을까요? 아니면 부상으로 근손실이 오나?”
“…….”
그런 말 하는 걸 보니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류하리는 한숨을 내쉬고 상황 수습에 나섰다.
* * *
“방금 그놈이 탐정 놈이군.”
“보셨어요?”
“음…….”
박진감 경위가 류하리를 의심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이가 어째 엄청 좋은 것 같던데?”
“아니, 그, 구해 줬잖아요. 웃는 얼굴에 어떻게 침을 뱉겠어요? 상대가 호의적인데 말이죠.”
“그보다 경찰이라는 걸 아는 눈치던데.”
“아…… 그게. 말씀드렸잖아요. 바로 걸렸다고.”
“아니, 그런 걸 아는데도 상당히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역시 제가 미인이라서 그런 걸까요?”
“오, 방금 그건 좀 많이 재수 없었다.”
“하하하.”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
“어쨌건 마약이 안 나왔으니 이건 실패로군요.”
“그래. 그나마 직거래에 나선 놈들도 못 잡았으니. 다른 놈들은 보통 딥 웹에서 고객을 잡으면 어디 코인 로커나 덕수궁 돌담길에서 벽에 끼워 넣어서 거래하더라고.”
“덕수궁 돌담길…….”
“아니면 남산 밑에 자물쇠 거는 펜스 있지?”
자물쇠를 걸어두면 연인들의 소원, 사랑이 영원하다는 미신이 있는 데이트 스팟을 말하는 것이리라.
“거기에 소형 자물쇠통을 걸어 두고 그걸 거래해서 그 안에 마약을 넣어두고 그런다는군. 정말 기술의 발달이라는 게, 안 좋아. 잡을 방도가 없으니까. 잡아도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그렇군요.”
류하리는 투덜거리는 박진감 경감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자연스럽게 시현의 얼굴이 그녀의 머리에 떠올랐다.
과연 시현이라면 어떻게 할까?
* * *
“…….”
시현은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와 있는 류하리를 바라보았다.
“아. 바, 방금 왔어요. 진짜예요.”
류하리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서 왜 와 계신 겁니까? 문은 잠가 두었을 텐데.”
“이상하게 여기 도어락 번호를 알겠더라고요. 당신이 열고 닫을 때 곁눈질로 봐서 그런가?”
류하리는 그리 변명하며 자리에 앉았다.
사실 그녀 자신도 놀랐다.
번호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숫자로 쓰라고 하면 못 쓰겠는데…… 손이 자신도 모르는 새 익어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보통 번호를 외웠다고 남의 사무실을 따고 들어오나?’
본인도 그게 이상했다.
이 사무실에 온 순간 마치 취객이 자기 집 문은 따고 들어오듯 무의식중에 사무실의 문을 따버리고 들어온 것이었다.
마치 이곳이 오래전부터 자신의 집이었던 마냥.
“하아. 그런다고 무단으로 침입하시다니.”
“영업시간인데 안 계셔서 잠깐 안에 좀 보려고 했지요. 아니, 너무 자연스럽게 도어락을 내 손이 열어버려서 놀랐어요.”
“네네. 무단침입죄를 자백하시는 겁니까 그건?”
시현은 한숨을 내쉬고 서류 몇 장을 타자기에 넣었다.
-타다다다닥!
타자기가 자동으로 쳐지며 서류를 읽어들였다.
“그 타자기…….”
“계약의 매개체입니다.”
“그런 거 말해 줘도 돼요?”
“말하지 않으면 타자기가 당신을 부르고 현혹시킬지도 모르니까요. 미리 말해 두고 미리 경고해 두는 게 낫겠지요.”
“경고?”
“여기 함부로 머리 드밀지 말라는 겁니다. 저 없이 저 타자기랑 당신 단 둘이 있으면 죽는 것보다 더한 꼴을 볼 수도 있을 테니까.”
류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제정신 박힌 사람이 저런 이상한 거랑 뭐 하려고 하겠어요?”
“그래도 궁금하긴 하지요?”
류하리는 부인하지 못했다.
그야 궁금하다.
“궁금해도 저 없을 땐 이거랑 접촉하지 마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있을 때는 접촉해도 되나요?”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자 시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죠?”
“별건 아니고 당신의 의견이 좀 듣고 싶어서요.”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요. 고객일 경우 말입니다.”
시현이 그리 말하며 류하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류하리가 품에서 젤리 한 봉지를 꺼내 시현의 손에 올려놓았다.
“…….”
“이걸로 안 될까요?”
성신아는 류하리가 부잣집 딸이라고 늘 빈정거리고 있고 실제로 류하리는 부잣집 딸이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돈을 쓴다는 건 아니다.
그 미카엘이라는 사람처럼 시현에게 답을 얻기 위해 500만원씩 갖다 주는 건 그녀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흐음.”
시현은 젤리 봉지를 만지작거리더니 받아들었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데드맨31
흔들리는 기러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