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아니, 어제 그 일 말인데요.”
“마약 딜러들 말입니까.”
“네.”
“우선 수사 방향을 잘못 잡았어요.”
“네?”
“딥 웹에서 마약을 팔겠다는 놈들을 만나서 체포하려 한 거지요? 그런데 그놈들은 마약이 없고. 경찰에 잡혀도 호기심 때문에 그랬다든가 인터넷에서 익명의 누가 돈 준다고 만나보라고 했더라. 그렇게 변명하면 폭행 외에는 얽어 넣기가 애매하겠지요.”
폭넓게 적용하면 공무집행방해죄를 구성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판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이야기다.
“뭐 그래도 딜러들을 잡아넣으면 그 동안은 마약장사를 못 하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놈들은 딜러가 아닙니다. 구매자 측이지.”
“네?”
“딜러가 구매자들에게 마약을 구매하고 싶으면 충성심을 보이라고 자신들 거래의 대행인으로 세워둔 거예요. 자기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구매자, 즉, 경찰을 만나게 시킨 겁니다.”
“어째서 그걸 그렇게 단언할 수 있지요? 마치 남의 머릿속에 들어갔던 것처럼…….”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다 흠칫 놀랐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스타일이…… 발로 뛰고 밑 준비 잔뜩 해둔 다음에 상대방에게는 마치 추리해서 안 것처럼 단정 지어서 말하는 거잖아?’
시현은 발로 뛰고 사전 답사하면서 정보를 알아낸 다음 남들에게 말할 때는 마치 추리해서 알아낸 것처럼, 이런저런 근거가 있으니 이럴 것이다~ 라고 말하며 허세를 떤다.
‘아마도, 그런 게 진짜 명탐정의 실체겠지.’
즉, 시현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이미 발로 뛰어서 근거를 얻어둔 뒤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당신은…… 뭔가 단정 짓기 전에 밑 준비를 많이 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그 밑 준비 한 걸 밝히지 않고 마치 추리로 알아낸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말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죠?”
“이제 좀 날카로워 졌군요.”
시현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럼 당신이 말하는 건 사실이겠군요.”
“네. 어제 그 사람들은 마약을 사고 싶어 하는 쪽이지 팔고 싶어 하는 쪽은 아닙니다. 마약 딜러가 그들에게 신뢰를 얻고 싶으면 또 다른 구매자들과 접선해서 그들의 진위를 알아보라고 시킨 거고 그래서 그들이 경찰과 맞닥뜨리게 된 거죠.”
“가만. 그럼…….”
류하리는 당황했다.
어제 그녀는 꽤 괜찮은 활약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잡은 놈들이 마약딜러가 아니라니?
“…….”
류하리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그렇게 조사를 했을 정도면 누가 의뢰를 했나요? 의뢰인이 있습니까?”
“아, 그게 말이죠.”
그때 사무실 밖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십니까?”
피로에 찌든 남성의 목소리였다.
“…….”
류하리는 흠칫 놀라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시현은 앞으로 올 손님을 위해서도 미리 밑 준비를 하고 조사를 해둔 것이다.
‘미래를 예지하기라도 했나?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하다고?’
류하리는 시현을 바라보았지만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 * *
“어서 오시지요. 무슨 일이십니까.”
남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중년 남자였다.
‘……연예인이군.’
중년의 배우로 드라마에서 자주 중년남자 역할로 나오는 사람이다.
나름대로 인기가 없지는 않은 사람이지만 아이돌처럼 극성팬들이 쫓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얼굴을 가려가면서 사람들을 피해 다닐 이유가 없다.
불미스러운 일로 찾아온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저기. 여기가 그, 탐정 사무소 맞습니까?”
“예. 잘 찾아오셨습니다.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고객의 사생활과 비밀을 엄수하지요.”
“그래, 음…… 이 아가씨는?”
“아, 저, 전 조수입니다.”
류하리가 시현의 눈치를 보며 그렇게 답했다.
“그런가.”
남자의 시선이 사무실 집기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이 허름하고 싸 보이는 사무실 집기들, 그리고 건달로는 보이지 않는 시현의 모습과 여성 조수에게 실망하고 있는 눈치였다.
“배우 소주일 씨죠?”
“…….”
“따님 문제 때문에 찾아오신 걸로 압니다만.”
“뭣? 그,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아주 간단한 콜드 리딩이지요.”
“콜드 리딩이 뭔가?”
“우선 얼굴을 가리고 계신 것은 얼굴이 밝혀지면 추문이 될 수도 있는 일을 의뢰하기 위해서. 그런데 매니저 없이 혼자 올라오신 걸 보면 소주일 씨 당사자 일신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만약 소주일 씨 당사자가 추문에 관여되었다면 지금 숙취해소제 광고 하나 하고 계시지요? 그 광고주가 소송을 걸 수도 있으니까 매니지먼트나 관련사에도 문제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매니저가 달라붙어서 함께 이곳에 와 있지 않겠습니까?”
“노, 놀랍군.”
“뭐, 기본이지요.”
시현은 앉은 자리에서 추리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와, 이 사기꾼. 콜드 리딩은 무슨! 100% 핫 리딩이구만.’
콜드 리딩은 뒷조사 없이 순전히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사람의 정황이나 심경을 알아채는 독심술 기술을 말하고 핫 리딩은 그 사람의 뒷조사를 통해서 정보를 취합하는 걸 말한다.
물론 류하리는 시현이 이미 저 타자기의 신비한 힘으로 타깃을 확정하고, 그 다음에 그 주변 조사를 철저히 해서 정보들을 잔뜩 모았음을 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어마어마한 명탐정으로 보이겠지.
“그래. 이야기 하겠네. 실은 딸이 누명을 쓴 것 같네.”
“누명이요?”
“실은 딸이 어젯밤에 싸움박질을 하다가 체포당했는데 경찰에서는 딸이 마약딜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런데 딸의 집에서 마약이 나왔다지 뭔가.”
“…….”
“실례지만 따님의 사진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시현이 그렇게 물어보자 소주일은 스마트폰을 꺼내 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
류하리에게 익숙한 얼굴이다.
어젯밤에 류하리의 등짝을 발로 걷어찼던 쇠 통굽 여자다.
남자 못지않은 건장한 체구에 기가 센 인상을 하고 으스대면서 철봉에 턱걸이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류하리는 등짝이 다시금 아파오는 느낌을 받았다.
‘뭐가 누명이야. 마약 딜러 맞지. 아니, 딜러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마약을 쓰긴 쓰는 사람 아니겠어?’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지 소주일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안 되겠나?”
“변호사는 만나보셨겠지요? 뭐라고 하던가요?”
“자백하고 반성문 쓰고 감형 받는 쪽으로 가자고 하더라고. 하지만 딸아이가 절대로 반대하더군.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그 아이가 그러는 걸 보니 진짜 억울해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내가 그래도 명색이 아빠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딸을 믿어줘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는 소주일은 손을 떨고 있었다.
“소주일 씨는 기러기 아빠로 알려져 있었지요? 따님과 아내는 해외에서 유학하고 본인은 한국에서 방송활동에 전념했지요?”
“그렇네. 잘 알고 있군.”
“유학을 끝마치고 돌아온 따님과의 관계가 상당히 서먹서먹하겠군요. 유학 도중에 조용히 이혼하셨지요?”
“…….”
“그래서 따님의 말은 꼭 들어주고 싶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따님이 억울해하는 부분은 마약 딜러에게 사기 당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쪽으로는 무죄겠지만 다른 부분에서 무고한 건 아닙니다.”
“무슨…….”
“어젯밤 따님이 싸운 상대는 마약딜러를 검거하기 위해 수사하던 경찰 수사관들이었습니다. 말싸움이나 투닥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목숨 건 사투였고요.”
“…….”
소주일의 표정이 어두워 졌다.
수사 중인 경찰과 싸움을 벌였다면 공무집행 방해, 특수폭행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갈 것이다.
게다가 집에서 마약이 나왔으니…….
자신의 딸이 꼼짝 못 하고 죄인이고 감방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알겠네. 변호사를 비싸게 사야겠군. 상담료는 얼만가?”
이제 탐정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소주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변호사의 힘에 기대셔도 효과는 미비할 겁니다. 특수폭행, 공무집행 방해, 거기에 마약법 위반. 무엇보다도 경찰을 때렸으니 정상참작의 여지가 적습니다. 수억 들여서 전관예우 변호사를 산다고 해도 실형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진범을 잡죠.”
“진범?”
“네. 따님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동안 마약을 팔아댈 게 분명한 진범을 잡으면 정상참작에 도움이 될 겁니다. 수사기관은 마약딜러를 잡고 싶어 하지 마약딜러의 농간에 놀아난 잡범을 잡고 싶어 하진 않으니까요.”
시현은 소주일을 설득했다.
‘그야 이미 조사도 다 하고 밑밥도 뿌려놨는데 이제 와서 저 사람이 의뢰 안 하겠다고 하면 골치 아프겠지.’
류하리가 보고 있는 가운데 소주일이 말문을 열었다.
“정말 자신 있나? 괜히 비용 뜯어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그럼 차등 보수제를 택하도록 하지요.”
“차등 보수제?”
“네. 아무런 성과도 없으면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진범을 잡으면 조사기간 1주당 500만 원의 경비에 성공 보수 삼천만, 그리고 만약 따님이 구속되지 않고 집행유예 정도로 끝나게 할 수 있다면…… 추가로 수명을 1년 받겠습니다.”
“수명?”
“네.”
“수명이라니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시현이 미소를 지었다.
소주일이 앉은 자세를 바꿨다.
“혹시 정신이 이상한가? 수명을 내가 내놓는다 치면 어떻게 받아가려고?”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지 않습니까? 수명 1년 정도라면. 제가 수명을 가져갈 능력이 있다면 그만큼 따님의 안전에 보탬이 될 것이고, 수명을 가져갈 능력이 없다면 하나마나 한 약속이니까. 무엇보다 성공했을 시 보수 아닙니까?”
“…….”
“그리고 사실, 당신께서는 어쨌건 상관없는 일일 텐데요?”
“상관없다니?”
“따님을 위해서 그동안 돈은 많이 거시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본인도 알고 있지요? 돈은 아무리 많이 걸어봤자 따님이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런…….”
딸이 고마워해 주기를 바라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딸이 고마워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니, 오히려 은은한 적개심마저 느껴지는 것에 상처 입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딸을 버릴 수가 없었다.
딸을 엄청나게 사랑해서?
아니, 그보다는 매몰비용이 아까워서 쪽이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동안 기러기 아빠 노릇 하면서 가정이 파탄 났는데 아내는 이혼해서 남이 되었지만 딸은 어쨌건 피를 이어받은 혈육이다.
법률적으로는 남이 되더라도 천륜으로는 남일 수 없는 존재에 그동안 투자했던 모든 걸 무시하고 망가지건 말건 마음에서 끊어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돈 말고 다른 것도 걸어보시지요. 응하시겠습니까?”
소주일은 시현의 당당함에 당황했다.
만약 그냥 처음 만난 사이에서 대뜸 수명 1년을 거래하자고 하면 아무리 딸에게 돈 이상의 것을 걸어보자고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의심하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그를 콜드 리딩인지 뭔지로 대번에 꿰뚫어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밑밥을 깔아놨으니까 수명 같은 뜬금없는 소리를 해도 진지하게 듣는단 말이지. 이 아저씨 입장에서는 어쨌건 눈에 보이는 돈이 나가는 건 아니니까.’
데드맨31
흔들리는 기러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