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33화 (33/269)

제33화

과연 소주일은 잠시 갈등하더니만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보수가 삼천만에 수명 1년이라. 그거면 딸아이가 구속되지 않고 집행유예를 받게 할 수 있다 그거지?”

“네.”

“아무런 성과가 없으면 아예 조사경비도 받지 않고?”

“물론이지요.”

“알겠네. 계약하도록 하지. 하지만 조건이 하나 더 있네.”

“무슨 조건인가요?”

“조사에 나도 동행하지.”

“바쁘시지 않습니까?”

“녹화는 다 끝내뒀고 한동안은 일정이 없네. 그리고…… 딸애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게 너무 없으니까. 일도 없이 집 안에서 빈둥거리느니 딸을 위해서라도 뭔가 움직이고 싶네. 어떤가?”

“흐음. 그럼 부려먹어도 된다는 뜻이지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소주일은 시현이 내미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 * *

“보통 이런 경우도 있나요?”

류하리는 소주일이 화장실에 가있는 동안 조심스럽게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네. 종종 있곤 하지요. 탐정을 찾아온 사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우가 많아서, 조급하니까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보통 불륜 사건의 경우는 의도치 않은 폭행으로 번지기 때문에 함께 행동하는 걸 금하고 있습니다만 이 경우는 상관없겠지요.”

“이래저래 굉장히 무리한 조건이군요. 당신은 프로라면서요? 잘못하면 무료로 일해야 할 판인데 그래도 되나요?”

“무료로 일할 판이라니요?”

“마약 딜러를 잡겠다고 하는 것부터가, 그리고 딸이 구속되지 않게 집행유예라니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에요.”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시현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단언하지요?”

“지금 말하기엔 그렇고…….”

“뜸들이지 말고 말해 봐요.”

“저는 법조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사람냄새 나는 부분이 있단 말이죠.”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류하리는 당황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마약사범인데?

“뭐 제가 알려 줄 의리는 없는 것 같군요.”

“아니, 의리가 왜 없어요. 섭섭하게.”

시현이 대답대신 손을 내밀었다.

“프로는 공짜로 일하면 안 되는 법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아, 진짜 또 그러네.”

류하리가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다시 젤리 봉투를 하나 꺼내 시현의 손에 올려주었다.

“네……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시현은 다시 그걸 받아 챙겼다.

“그럼 이제 진범을 잡으러 갈 건가요?”

“그러죠. 그 전에 우선 따님을 만나 볼까요?”

시현이 외출 준비를 했다.

* * *

배우 소주일의 딸 소지하는 마포경찰서 유치장에 잡혀 있었다.

따라서 그녀를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건 류하리의 몫이 되었다.

“아니, 이 여자 자네 조수라며? 그런데 경찰서에서 내 딸을 만날 수 있다고?”

“물론 조수입니다. 하지만 겸직으로 다른 일도 하고 있지요. 그렇지요?”

“그 겸직이 뭔데? 변호사라도 되나?”

“아뇨. 그건 곧 아시게 될 겁니다.”

“…….”

“자 그럼 이걸 몸에 소지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시현은 작은 마이크를 류하리에게 건네주었다.

류하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의 수사물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경찰이 남에게 마이크를 붙이지, 경찰 아닌 탐정이 경찰에게 마이크를 붙이는 건 참 경우 없는 짓 같군요.”

“겨, 경찰?”

“네. 참신해서 좋지 않나요?”

“경우 없는 짓이 왜 욕먹나 했는데 지금 제 안에서 욕이 나오려고 하는데요?”

“참으시지요.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셔야죠.”

“네. 그거 좋네요. 바른 말 고운 말.”

“아니, 잠깐만. 이 여자가 경찰이라고? 자네들 지금…… 나도 욕 나오려고 하네만.”

“바른 말 고운 말.”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러게 말이죠. 저도 개소리라는 데 공감해요.”

류하리는 투덜거리며 마이크를 몸에 숨기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정보1팀이 소지하를 심문해 마약 딜러를 캐려고 하고 있었는데 류하리가 소지하와 만나보고 싶다고 하자 다들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류 경위님이 쟤들 잡는데 수고했다면서요?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봐요.”

“그런데 너무 쌈 걸지는 마요. 감정 상해서 조지려는 거 아니지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궁금한 게 좀 있어서요.”

“그러지요. 남자 경찰들 좀 붙여줄까요?”

“아니, 괜찮습니다. 여자끼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단 둘이 있게 해 주세요.”

그래서 류하리는 경찰들의 배려로 소지하를 취조실로 불러낼 수 있었다.

“뭐야, 어제 경찰이잖아. 젠장.”

소지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할 이야기 다 했어. 적어도 내 집에 있는 약은 내 게 아니야. 나도 마약 딜러가 아니라고. 그냥 딥 웹에서 아는 사람이 용돈 좀 주게 대신 뭐 좀 해 달라고 해서 한 거야. 마약 거래인줄 몰랐어.”

소지하는 일관되게 자신의 입장을 주장했다.

변호사가 미리 조언이라도 했는지 최대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방향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소주일 씨지? 배우인?”

“그래. 왜? 아버지 팬이라도 돼? 그럴 리 없지? 인기 없는 배우니까.”

그러자 듣고 있던 소주일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딸이 자신의 일을 그렇게 낮게 평가하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그 인기 없는 배우질로 번 돈으로 널 부양한 거 아냐?”

“내 가족에 대해서 뭘 안다고 훈계야? 훈계는?”

“네 아버지가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상관없이 마약 딜러 의혹은 벗어야 할 거 아냐? 그래서 말인데 네 집에 마약을 남이 갖다 놓았다면 누군가 짐작 가는 사람이 있어?”

“글쎄? 경찰이 아닐까? 경찰이 조사했으니까 가장 확실하지.”

[긍정해 주세요.]

시현이 류하리에게 그렇게 조언했다.

“끄응.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둘게.”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소지하가 약간 의외라는 듯 놀랐다.

경찰의 일원인 류하리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걸까?

[처음은 경찰이라 치고 그 다음으로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그 외 짐작 가는 사람은 없어? 집을 열고 들어와서 마약을 넣어두려면 상당한 지인이어야 할 것 같은데.”

“…….”

“동료를 파는 건 안 하겠다 이거지? 하지만 네 집에 마약을 넣었다면 널 함정에 빠뜨린 건데 그런데도 동료들에게 의리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같이 있던 친구들 미국의 한인 갱단 출신이지? 미국에 다시 갈 거 아니면 한국에서는 별 힘 못쓰지 않을까? 불어도 딱히 보복할 힘은 없을 것 같은데?”

“됐어. 할 이야기는 다 했어.”

[아무리 동료의 배반을 의심하더라도 경찰보다는 믿을 만하다고 여기나 보군요. 그럼 지금은 부모와의 관계를 물어봐 주시겠어요?]

“아니, 그건 좀 사건에서 벗어난 것 같은데.”

“응?”

류하리가 시현과 이야기하자 소지하가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 아니. 아버님 이야기나 좀 해 줄래?”

“뭐야. 이미 이야기 했어. 조서나 보시지?”

“으음.”

류하리는 조서를 뒤적여보았다.

‘여럿이 괴롭혔구나.’

상당히 많은 분량의 조서가 쌓여 있었고 같은 걸 여러 번 질문한 흔적이 있었다.

조서 한 장 쓸 때도 심문받는 측은 진이 마르는 기분이었을 테니 이만큼의 조서 분량을 보면 경찰들의 악의가 느껴진다.

경찰들 입장에서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무력을 써가며 저항한 소지하 일당을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그 반작용으로 얘들을 제압한 내가 고평가 받는 거지. 고맙군.’

류하리는 소지하 일당에게 고마워하며 조서를 읽어보았다.

* * *

배우 소주일의 딸 소지하는 강남 도곡동의 유명 사립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활달하고 운동에 취미가 있던 소지하는 그 대신 주위 아이들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떨어졌다.

주위의 다른 아이들은 다들 어린시절부터 외국어다, 선행학습이다,하면서 앞서나가는데 소지하는 도저히 그런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주도로 도피성 해외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간 해외 유학에서 어머니가 골프 강사와 바람이 나버렸다.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과 생활비로 외국에서의 불륜 생활을 만끽하는 어머니는 딸을 감독할 수가 없었고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두각을 드러내던 소지하는 현지 한인 갱 단원들과 교분을 쌓았다.

아마도 그때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으리라.

소주일은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소지하가 성인이 될 때까지 참았다가 작년에 조용히 이혼을 했다.

소지하는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지만 이미 아버지와 함께 지낸 해보다 그렇지 않은 해가 더 길었던 그녀에게 소주일은 피가 통하는 못 보던 아저씨였을 뿐이다.

* * *

“전형적인 기러기 아버지 실패담이네.”

“당사자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네?”

“그렇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당사자 앞에서 말하고 있는 중이지.”

류하리는 소주일도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네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막대한 돈을 들였는데…….”

“젠장! 애초에 내가 공부 못하는 딸이라는 걸 납득 못 하니까 도피성 유학을 보낸 거 아냐! 날 받아들이지 않은 건 아빠라고! 멍청한 딸내미 유학이라도 가라! 아빠는 돈을 내긴 했지만 그게 정말 날 위한 거야? 웃기지 마! 아빠는 원래부터 배우가 하고 싶어서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돈만 내면 딸 생각하는 좋은 아빠가 되는 거지!”

소지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쳤다.

“결국 그 사람은 공부 잘 하는 딸 아니면 필요 없으니까 날 미국에 보내놨다고! 그러고선 돈 부쳐준다고 희생한다, 어쩐다, 생색은 더럽게 내는데 그런다고 안 되던 공부가 되나?! 나도 알아! 내가 멍청하고 인생 막장인 거! 하지만 어쩌란 말야! 부모가 돈만 내면 나는 뭐 효심이 자동으로 펑펑 차올라야 해?! 나도 감정 있는 사람이란 말야!”

“그래서 마약을 했다?”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자 소지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 내 할 말은 다 했어. 뭐, 일이 이리된 거, 아버지 체면 차리려면 전 재산 털어서 전관예우 변호사건 뭐건 사서 어떻게 해 주겠지. 내 주위엔 다 집행유예 받던걸?”

“주위에서 다 집행유예 받으니까 감각이 느슨한 모양인데 마약 딜러랑 단순 투약자랑 같아? 정 집행유예 받고 싶으면 우선 딜러 누명부터 벗어야 할 걸?”

“…….”

“의심 가는 놈들 진술해. 누구든 좋으니까 네 집 안에 마약 뿌릴 수 있는 놈들로.”

“그런 짓을 하면 동료들이 날 싫어할 텐데.”

“애초에 너희 집에 약을 뿌린 것부터가 선을 넘은 짓이야. 그러고도 동료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을 믿어도 될까?”

“안심해. 나는 딜러를 잡고 싶어. 이대로라면 딜러는 너에게 누명을 씌우고 계속 밖에서 활개 칠 거야. 그러니까 협력해 줘. 네 형량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거야.”

“하아.”

소지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말하지.”

* * *

류하리는 소지하에게 의심 가는 이들의 명단을 얻을 수 있었다.

“좋았어.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그 명단은 경찰들에게 알려 주세요.]

“네? 의외군요. 당신이 직접 딜러를 잡으려는 거 아니었어요?”

[아마 그 명단 중에 딜러는 없을 겁니다. 소지하 양의 집에 마약을 가져다 놓은 놈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놈이 딜러는 아닐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단언을…… 네. 알겠어요.”

류하리는 정보1팀의 형사에게 자신이 취조로 알아낸 명단을 전해 주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데드맨31

흔들리는 기러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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