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시현은 류하리에게서 마이크를 받았다.
“잘 하셨습니다. 취조 실력이 대단하던걸요.”
“물고기가 수영한다고 칭찬받는 기분이군요. 명색이 경찰인데요.”
“그거 참 실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때 소주일이 물어보았다.
“딸이 날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군. 너무 허탈한걸. 나는 그래도 어떻게든 딸이 잘되길 바라고 한 일인데…….”
“그럼 여기서 포기하시겠습니까? 당신의 헌신에 감사하지 않는 따님 따위는 감옥에 처넣고 반성시키는 것도 방법이지요. 어차피 도피성 유학도 망쳤는데 이 기회에 절연하고 호적에서 파버리시지요?”
시현이 빈정거리자 소주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는 없네. 계약을 했으니 계약대로 해야지.”
“네. 동감입니다.”
“그래서 집행유예는 어떻게 될 것 같나? 가능성이 있어 보이나? 다른 사람들은 집행유예를 잘 받던데 어째서 그런 거지?”
“보통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본격적인 마약을 하면 마약법상 5년 이상의 징역이라 집행유예가 없습니다. 하지만 유학생들도 다들 그걸 알기 때문에…….”
“알기 때문에?”
“향정신성 약물을 쓰지요. 보통 마약이라고 퉁쳐서 말하지만 마약관리법상 엑스타시는 향정신성 의약품 ‘나’목에 해당되지요. 이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이니까 집행유예가 가능합니다.”
“…….”
“물론 전관예우 변호사를 사야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따님의 경우는 경찰들 수사에 훼방을 놓았단 말이죠. 공무집행방해나 특수폭행, 그리고 마약 딜러라고 인정되면 집행유예도 힘들 겁니다. 딜러를 잡아서 어느 정도 경찰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할 겁니다. 공무집행방해나 특수폭행을 경찰이 불기소처리 해 주어야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듣자듣자 하니 너무하네. 그렇게 말하면 경찰들이 감정적으로 불공정하게 사건을 대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류하리는 경찰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대놓고 하는 시현에게 짜증을 냈다.
“그런데 대체 자네들의 관계는 뭔가? 경찰과 탐정이 어쩌다 함께?”
“아, 그게.”
“어린 시절 친구입니다.”
변명이 궁한 류하리를 대신해 시현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 친구라고?”
“네. 그녀가 경찰이 되기 전부터 아주 돈독한 사이였죠.”
‘와 넉살 좋은 거 봐라.’
류하리는 멋대로 말을 지어내는 시현에게 경탄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시현과 그녀의 관계는 그녀가 먼저 넉살좋게 들이대서 생긴 것이니 시현이 이런다고 비난할 입장이 아니다.
“딸이 날 저렇게 생각하고 있더라도 감옥에 보내고 싶진 않네. 하지만 딸이 적어낸 명단에도 딜러가 없다면 그 딜러는 어떻게 잡을 건가? 보아하니 어제 경찰들도 놓쳤다면서? 딥 웹이니 가상화폐니 그런 걸 쓰니까 잡기 힘들지 않겠나? 게다가 경찰들이 내 딸을 잡았으니 더더욱 잡기 힘들 텐데? 딜러 놈도 몸을 사릴 게 아닌가?”
그런데 그때 시현이 명함을 한 장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소주일 씨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음? 성진철 내과?”
“여기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보시죠.”
“건강검진?”
“네. 이 의사가 향정신성 약물을 부정유출 한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보시고 혹시 피곤해서 견딜 수 없다든가 좋은 값에 뭐든 구하고 싶다고 운을 떼면서 거래를 터 보려고 해 보세요.”
“이놈이 딜러인가?”
소주일이 미심쩍다는 듯 물어보자 시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따님을 집행유예로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고 말해 두지요.”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넘치는군. 꼭 내가 가야 하나?”
“네. 당사자 본인분이 가셔야 합니다. 매니저 보내지 말고요. 지금 바로 가보세요.”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소주일을 따로 보냈다.
류하리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내과의가 향정신성 약물을 부정유출하고 있다고요?”
그러나 시현은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다음 준비를 했다.
“아뇨. 이제부터는 저 아저씨를 데리고 할 일이 아니라서.”
“그래서 치워 보낸 거예요? 하지만 마약 유출범 누명을 씌우다니 괜히 엄한 의사에게 불똥 튀지 않겠어요?”
“괜찮아요. 제 눈이 정확하다면.”
시현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 * *
류하리는 시현의 차에 올라탔다.
이제 둘이 함께 행동하는 게 꽤 익숙해졌다.
“그래서, 이제 딜러는 어떻게 잡을 건가요?”
“흠. 사실 되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요.”
시현은 차에 시동을 걸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경찰인 제 앞에서 합법적으로 할 만한 수단이 아닌 건 분명하군요.”
“후후, 정말 예리해지셨군요. 역시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답네요.”
“놀리는 건가요?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우선 퀴즈를 좀 내보지요. 딥 웹으로 거래하는 딜러는 마약을 어디서 얻어서 시중에 뿌리고 있을까요?”
“해외 마약 조직 등에서 얻어서 쓰지 않을까요?”
“딥 웹으로 파는 행위는 접근성이 나쁩니다. 즉, 소비자를 많이 구할 수 있는 장사가 아니라서 보따리 장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본격적인 유통망을 꾸리기엔 규모가 작고 수요와 공급이 들쑥날쑥 하기 마련이죠. 그러니 상대는 안정적인 마약의 공급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이 경우 발상을 전환해서 마약을 파는 쪽으로 딜러에게 접근하는 거지요.”
“그래도 직거래는 안 할 걸요?”
어젯밤 정보1팀이 주축이 되어 마약 딜러를 잡기 위해 그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단 마약 딜러에게 접촉한 뒤 ‘결제대금이 현금밖에 없다.’라든가 ‘가상화폐 잘 쓸 줄 모른다.’, ‘이전에 사기를 당해서 믿을 수 없다.’ 등등의 핑계를 대서 직거래를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마약 딜러는 대리인을 보내서 경찰들의 수사를 오히려 조롱했다.
“이번에 대리인들이 경찰에게 잡혔으니 다음엔 더더욱 직거래 따윈 안 할 거예요..”
“소매로 팔기엔 많은 양을 거래한다고 하면 마약 딜러가 하수인을 믿지 못하고 직접 거래할 겁니다. 그때 무인 택배함 같은 데로 거래약속을 잡고 거기에 마약 대신 소형 폭발물을 세팅해 두는 거지요.”
“…….”
“딜러나 그 하수인이 부상을 입으면 그때 추적해서 잡으면 됩니다. 폭발물로 인한 부상이라면 특정하기 쉬우니까요.”
“그, 그거…… 경찰이 쓸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아니군요.”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다 흠칫 놀랐다.
시현은 밑 준비를 철저히 하는 타입이다.
그런 남자가 이런 수법을 너무 상세하게 말하는데?
“설마 이미 저지른 건 아니겠죠?”
“…….”
“네?”
“이야. 눈치가 상당히 좋아지셨군요.”
“나 미쳐…….”
류하리는 이미 마약 딜러에게 함정을 깔아버렸다는 시현의 말에 당황했다.
“사제폭발물을 사람들 주거지역에서 터뜨렸다니 미친 거 아니에요?”
“안심하세요. 대한민국에서 폭발물을 터뜨리는 그런 몰상식한 짓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냥…….”
“그냥 뭐죠?”
“마취약을 바른 다트가 튀어나가는 스프링 장치를 넣어놨을 뿐이에요. 개조해서 사진을 전송하게 만들어진 스마트 폰이랑.”
“…….”
류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그걸 세팅한 거예요.? 언제?”
“실은 이미 어젯밤에 마약딜러가 그걸 열어서 다쳤습니다.”
“…….”
“사진은 찍었는데 KF94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 가린 채로 찍혀서 이 사진으로는 특정하기 힘들더군요.”
“당신이니까 이미 마약 딜러 위치는 알고 있겠지요? 아니, 젠장. 그럼 어제 그건 불륜조사가 아니라.”
“아, 불륜 조사는 또 따로 했습니다. 하는 데 얼마 안 걸려서.”
“아니, 그럼 딜러 위치를 알고 있겠네요. 당신? 그런데 왜 굳이 취조를 시켰어요?”
“그래야 저 소지하 양이 딜러를 잡는데 협력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겠습니까? 형량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
류하리는 시현을 흘겨보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데 굳이 말하지 않고 제가 생쇼를 하는 걸 구경하면서 즐겼단 말이군요.”
“생쇼라니요. 류하리 경위님은 너무 자신을 그렇게 비하하셔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존감을 가지세요.”
“…….”
졸지에 류하리가 무슨 정신과에 우울증 상담하러 온 사람같이 되었다.
“아, 진짜! 자! 그럼 얼른 딜러 잡으러가죠! 딜러! 설마 딜러도 벌써 잡아서 어디 감금해둔 건 아니지요?”
“그건 아닙니다.”
“마취제를 발랐다면서요? 그거 맞으면 쓰러지지 않나요?”
“상대가 독이라고 생각해서 치료하기 위해 병원으로 직행하게 하려고 바른 거죠. 사람 보는 눈 있는데서 쓰러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 보는 데였나요?”
“네. 쇼핑몰에 있는 사물보관함이었거든요.”
“대담하네요. 그런데서 마약거래라니.”
“마약 딜러들은 아예 오지에서 거래하는 건 선호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 안 오가는 곳에서 거래하면 그것만으로 거동이 수상해 보이니까요.”
“내가 명색이 경찰인데 이런 소리까지 듣다니. 그럼 딜러는 지금쯤…….”
“네. 치료 받고 흥분해서 패거리를 불러 모아 경호 인원을 충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경호인원이라고요? 지원을 부를까요?”
류하리는 은평 크루 사건이나 소지하 일당을 검거하는 데 격투전을 벌여서 쏠쏠하게 재미를 보았지만 절대로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여성이라 상대방이 얕잡아보았기 때문에 허를 찔려서다.
허를 찔렀을 때 단단한 스프레이 통이나 쇳덩이로 만든 플래시라이트 같은 걸로 급소를 때려서 재미를 본 거지 본격적인 격투전이 벌어지면 체급과 성별 차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하물며 마약 딜러가 경호를 위해 불러들인 놈들이라면 이만저만한 놈들이 아닐 것이다.
“무슨 액션영화도 아닌데 저희 둘이 뛰어들 수는 없잖아요? 경찰 지원을 부르죠. 그런데 음…… 어디서 정보를 얻었다고 하지? 혹시 그 다트 발사해서 어디 눈 같은데 맞아서 중상 입은 거 아니죠?”
시현이 다트 함정을 설치해서 마약 딜러를 다치게 했다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피부에 맞아서 그냥 구멍 좀 난 거면 괜찮지만 눈이나 급소에 맞아서 영구적 손상을 입혔다면 시현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었다.
“아뇨. 눈은 아닙니다. 하지만, 음. 지원은 좀 그런데…….”
“왜요?”
“고문을 못 하잖아요.”
“아. 고문 말이죠. 하긴 경찰을 앞에 두고 고문을 할 수는……. 네?”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럼 제 앞에선 고문을 할 건가요? 이거 큰일 날 소리를…….”
류하리가 시현을 힐난했지만 그는 태연했다.
그런데,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게 아닌가?
“말도 안 돼.”
“네?”
“경찰을 부르도록 하지요. 어서 지원을 부르세요.”
“갑자기 왜요? 부르지 말자면서요?”
“아…….”
시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원 부르세요. 좀 밟겠습니다.”
시현이 차의 엑셀을 밟으려 했지만 서울 시내라서 차들이 많다.
“무슨 일인데요.”
“……늦었군요. 너무 빠른데?”
“빠르다니 뭐가요?”
“누군가가 마약 딜러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죽이는 속도가 엄청 빠르네요. 이럴 리가 없는데.”
“여기서 그걸 알 수 있다고요?”
“네. 그런 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이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요. 말해 봐야 설명이 길어지니까.”
“어차피 차 막히고 있는데 설명하면 안 돼요?”
“제 능력을 굳이 까발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현은 말꼬리를 흐렸다.
“이상하군요. 어째서 이렇게 빨리 죽었지?”
데드맨31
흔들리는 기러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