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35화 (35/269)

제35화

경기도 양주시, 서울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공장과 창고지대.

그곳에 망한 가구공장에서는 마약 딜러 조구성이 입을 알코올로 소독하고 있었다.

“젠장…… 어떤 새끼가…….”

시현이 설치한 다트 함정을 건드린 마약 딜러가 바로 그였다.

재수 없게도 다트는 그대로 아랫입술을 꿰뚫어서 피도 철철 나는데다가 부어올라서 감각이 없다.

다트에는 약이 발려져 있었는데 마취제인 케타민이었다.

향정신선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약이라 쉽게 구할 수 없는 게 다트에 발려져있다니.

만약 조구성이 뭣도 모르고 병원에 달려갔다면 그대로 사건이 되어서 수사를 받아야 했으리라.

‘다트에 마취제를 바르다니. 내 사업을 시기한 다른 마약 딜러 놈이구나.’

그렇게 생각한 조구성은 유학시절 알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반건달 친구들이 야구배트나 쇠파이프 같은 걸 준비해 와서 쌓아두고 앉아서 휴대폰으로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익…….

공장 앞으로 차 한 대가 와서 섰다.

인적 드문 곳에 차가 오자 모바일 게임을 하던 반건달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하지만 다들 표정이 이상해졌다.

여기에 온 차가 택시였기 때문이었다.

고작 택시 한 대에서 내린 것은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었다.

여학생이라고 부르는 게 옳으리라.

눈에 확 띄는 형형색색의 부분 염색에 훤칠한 키, 늘씬한 체형의 미녀였다.

그녀는 풍선껌을 불면서 야구 점퍼를 걸쳐 입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누구라도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눈에 확 들어오는 외모였다.

“저거 맞아?”

“아닐 거 같은데?”

다들 창고의 입구에서 막연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더니만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찾았다.”

그 순간 그녀의 옷소매에서 형광 핑크색으로 색칠된 망치가 튀어나와 손아귀에 잡혔다.

* * *

마약 딜러와 그 패거리가 있는 곳은 서울 외곽, 경기도의 목공공장이었다.

목재들과 만들다 만 가구들 사이에 마약 딜러가 거꾸로 매달린 채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피로 벽이 온통 물들어 있었다.

“아.”

류하리는 그 장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 류 경위님. 왔나?”

마포경찰서 정보3팀장, 류하리의 직속상관이자 버디라고 할 수 있는 박진감 경위도 나와 있었다.

마포 경찰서의 관할은 아니지만 류하리가 얻은 첩보(?)에 따라 출동했으니 와 본 것인데 현장 상태가 심각하다.

경찰들이 피투성이가 된 현장을 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으웩…….”

“맙소사.”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살당한 장면에 경찰들조차 기가 질려 있었다.

“감식반 말에 의하면 인간 소행이 아닌 것 같다는군.”

“어째서지요?”

“방어흔이 없이 다들 엄청난 힘으로 머리를 후려갈겨서 머리가 터지고 목이 부러졌다는 거야. 곰이나 호랑이가 후려갈기면 그렇게 되긴 할 텐데 곰이나 호랑이가 덤벼들었다고 해도 다들 방어흔은 생기기 마련이란 말이지.”

“저 피는 그럼 뭔가요?”

“너무 세게 쳐서 머리가 터지면서 피가 튀었다는 거야. 이것도 사람 소행은 아니지. 무슨 포크레인 같은 걸로 쳐야 저렇게 될 걸.”

인간의 소행이 아니라는 말에 류하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달리 특별한 건 없나요?”

“일단 감식반이 조사하고 있는데 마약과 돈이 그대로 있다는군.”

“그래요?”

“그리고 성명문이 있어.”

“성명문이요?”

“그래. 복사지에 잉크젯 프린터로 뽑은 성명문. 자칭 사이다패스라고 하더군.”

“사이다패스?”

“마약을 뿌려서 세상을 망치는 놈들을 벌하겠다 이거지. 아주 정의의 사도 나셨어.”

“성명문은 발표할 건가요?”

“그럴 리가. 그런 짓을 하면 이런 범인은 신나서 앞으로 더 열심히 저지를걸? 이런 확신범의 성명문 같은 건 그냥 넘어가는 게 좋아.”

범죄자의 성명은 절대로 언론에 그냥 그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관심 끌고 싶어 하는 놈들이 온갖 범죄를 저질러 언론을 자신들의 성명 발표용 창구로 만들어버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명문이 사실이라면 이런 살인이 또 일어나겠군요.”

류하리는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자칭 사이다패스라는 범인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정한 이름, 사이다패스를 봐도 알 수 있듯, 뭔가 거슬리는 게 있으면 가차 없이 죽일 것이다.

“그럴까? 일단 양주경찰서 수사과의 판단으로는, 마약 딜러들 간의 항쟁으로 보던데. 그 성명서는 결국 변명에 불과하다. 진짜는 경쟁자를 죽이려는 건데 자신들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그러는 거다. 그렇게 보고 있던데?”

박진감 경위도 양주 경찰서 수사과와 의견이 같은 듯했다.

“어?”

“왜? 류 경위님은 설마 그런 황당한 성명문을 믿는 거야?”

“아니, 그, 돈도 마약도 안 건드렸다니까요. 진심이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 수사를 현혹시키려고 한 거겠지.”

“……아. 네.”

류하리는 더 이상 말해 봐야 자신만 미친놈 취급 받으리라는 걸 알아채고 입을 다물었다.

경찰들은 이 사건을 마약 딜러들 간의 다툼으로 여기고 수사하려는 것 같았다.

‘그야 그렇겠지.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 건…… 오컬트의 영역이지 경찰의 영역이 아니야.’

류하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 * *

양주 경찰서 수사팀에 협력하고 나온 류하리를 시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제 차로 태워다 드릴까요?”

“정말 간도 크네요.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경찰들이 당신을 벼르고 있는데 그래도 돼요?”

“저는 경찰들을 믿습니다. 경찰서 앞에서 사고 칠 만큼 분별이 없지는 않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경찰들은 마약 딜러들끼리의 싸움으로 여기고 성명서는 무시했어요.”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다 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탕 있죠?”

시현은 말없이 사탕을 하나 그녀의 손에 올려놓았다.

“성명서 전문을 볼 수 있을까요?”

“…….”

류하리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성명서를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나를 사이다패스라 부르라.

사람들은 말한다.

법치야말로 정의라고.

그렇다면 이 지엄한 법치의 통치 속에서 왜 우리들은 고통 받는가?

이 하찮은 마약상들이 활개치는 것을 보라.

이들의 마약에 인성이 파괴된 자들은? 이들이 갱단 짓을 하며 짓밟은 다른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보상받는가?

아무 것도 없다!

법치는 희생자들에게 감내할 것을 요구하고 악인들에게 그들이 바라지도 않은 용서를 안겨준다.

법을 만들고, 심판하고, 다스리는 저 관료와 엘리트들이 부패해 있기에 법치 따위가 정의일 리가 없다.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법이 숭상하는 것은 오직 규모의 경제 뿐.

그저 거대한 규모의 경제가 착취할 수 있다면 인간의 선악도 상관없고 그 영혼의 유무조차 상관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위선의 법치를 거부한다.

자연인인 나에게 허락된 복수의 이름으로 땅이 악인들의 피를 마시게 하리라.

그러니 청컨대 나를 사이다패스라 부르라.’

시현은 그 선언문을 보고 혀를 찼다.

“이걸 경찰들이 무시했다고요?”

“네.”

“제정신입니까?”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놀랍군요. 하지만 저도 걱정이에요. 이 성명문을 볼 때 이 사람은 반드시 또 저지를 거예요.. 그런데 경찰들은 너무 이 성명문이 유치하다고 여기는지 진지하게 듣지 않고 있단 말이죠.”

“유나바머 선언문도 안 봤나 보군요.”

18년간 미국 전역에 폭탄 테러를 벌인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자신의 선언문을 매스컴에 직접 보낸 사건은 범죄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경찰들이 이 사건을 단순한 마약 딜러끼리의 항쟁으로 여긴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이 자가 다음 살인사건을 벌이기 전에 막고 싶어요.”

“네. 그렇군요.”

“……네?”

류하리는 시현을 돌아보았다.

“도와주시는 거 아닌가요?”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을 위해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음…… 그 외의 일에는 좀.”

“아니, 사람을 죽이려는 미치광이 범죄자가 있는데, 게다가 이 사람 사람 죽이는 재간을 보면 아무래도 당신과 비슷해 보이는데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살인자라면 일반적인 경찰들로는 잡을 수 없잖아요. 게다가 당신을 놀라게 했던 게 이놈이죠?”

류하리는 시현이 살인 현장을 보지도 않고 경악한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히 너무 빨리 죽였다고 이상해했는데…… 신경 쓰이지 않으세요?”

“그러니까 조심해야지요. 류 경위님. 아마 상대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존재일 겁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제 예측도 좀 벗어나는군요.”

“아.”

류하리는 시현이 정말로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알고 혀를 찼다.

“당신이 경찰은 아니니 사명감이 없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이 사이다패스라는 자가 마약 딜러를 죽여버려서 당신 일을 훼방 놓지 않았나요? 마약 딜러는 이 사이다패스에게 죽어버렸는데 이제 어떻게 그 딸을 집행유예로 만드실 건가요? 당신의 일을 훼방 놓은 놈이 있는데 프로로서 이놈을 잡고 싶지 않으세요?”

류하리는 시현의 프로의식을 자극하려고 했다.

‘평소에 늘 고객만족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프로의식을 좀 보이란 말야.’

그러나 시현은 태연했다.

“뭐 사실 마약딜러는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이었습니다. 돌다리를 두들긴다는 의미에서 한 거지요.”

“네? 아니, 그건 또 무슨…….”

“곧 알게 되실 겁니다.”

* * *

성진철 내과 입원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소주일은 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봐. 이야기 들었네. 마약 딜러가 죽었다면서?”

[네. 소식이 빠르시군요. 아직 뉴스도 안 떴는데.]

“이 나이쯤 되면 배우 짓거리를 하고 살아도 이래저래 지인들이 건너건너 있기 마련이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자네 소행인가?”

소주일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럴 리가요. 저는 마약 딜러를 체포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습니다. 애석하게도 마약 딜러들은 다른 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럼 내 딸은 어떻게 되는 건가? 마약 딜러를 체포해야 내 딸이 집행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변호사를 사야 할까?”

[안심하십시오. 따님 문제는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아. 현찰을 좀 뜯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 아프군요.]

현찰을 뜯어낼 대상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하지만 소주일은 그런 시현의 말을 듣고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시현에게 아직 여유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그럼 혹시 그 마약 딜러를 죽인 놈들이랑 여기 병원이랑 뭐 연관이 있나? 여기서 부정 유출이 있다면서?”

[아뇨. 지금 병원에 가 계신 건…… 따님의 형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입원해 계시죠? 내일쯤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 저는 이만.]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데드맨31

흔들리는 기러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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