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36화 (36/269)

제36화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개새끼…….”

배우 소주일은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드러누워서야 겨우 시현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이 개자식아!”

“흥분하지 마시지요. 건강도 안 좋으신데.”

시현은 소주일의 병상 옆에 앉아서 사과를 깎고 있었다.

류하리가 그런 시현을 바라보았다.

“이게 당신이 말한 그거군요.”

“네. 소지하 양은 응하던가요?”

“동의하더군요. 간 조직 이식 수술에 말이죠. 여기 동의서 받아왔어요.”

류하리는 조직 이식 수술 동의서를 내밀고 혀를 찼다.

“그럼 이걸로 따님의 집행유예는 확정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개자식아!”

소주일은 정말 시현을 때릴 기세였지만 시현은 소주일의 손짓 발짓을 피하고 깎은 사과를 내밀었다.

“진정하시지요. 지금 행동으로 수명 줄어듭니다.”

“어떻게 안 거예요.?”

류하리가 물어보자 시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는 사람의 남은 수명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뭐?”

소주일과 류하리 모두 시현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보니까 소주일 씨 수명이 얼마 안 남았더군요. 시험 삼아서 내과 쪽으로 보내 보니까 수명에 변동이 오기에 아, 몸에 뭔가 문제가 있구나. 그래서 만약 조직 이식 수술을 하게 되면 집행유예가 확실하겠구나 싶었지요.”

“아니, 거기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류하리는 기가 막혔다.

“술 많이 마시는 기러기 아빠로 방송도 탔잖아요? 그래서 숙취해소제와 대리운전 광고도 찍으신 분인데, 수명이 얼마 안 남았으면 당연히 간 문제를 생각해 봐야지요.”

“수명을 보는 능력은 확실한가 보군요.”

류하리는 그동안 시현이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몇 차례 보았었다.

대표적으로는 스트리머 살인사건때 BJ칼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던가, 그런데 그때 머리위에 보이는 수명을 읽고 있었단 말인가?

‘단지 병으로 죽는 것만이 아니라 사고사나 살해당하는 것도 읽을 수 있다면 일종의 미래예지에 가까운 능력이잖아?’

류하리는 그렇게 생각하다 어이가 없어서 실소했다.

시현이 수명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고 있다니…….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다니 그녀도 꽤 많이 이 이상한 탐정에게 물이 든 것 같았다.

“대한민국 경찰이나 검찰, 판사들이 감정적으로 참 집요해 보여도 또 나름 효심 같은 거에 약한 부분이 있어서…… 딸이 부모를 위해 간 조직 이식을 한다 하면 마음이 약해지죠. 경찰도 폭행이랑 공무집행방해에 대해서는 기소 안 했죠?”

“네. 부모에게 간이식을 한다는데 기소하기도 그래서…….”

폭행당한 사람이 경찰이고 류하리는 오히려 상대를 때렸으니까 폭행을 기소할지 말지는 경찰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엑스타시는 MDMA, 마약법상 ‘나’목 향정신성 약물이니까 마약 딜러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실형 살게 해 봐야 1년 반 정도. 간 조직 이식 수술하면 회복하려고 병원을 들락날락 해야 하니까 1년 반 감방에 넣어봤자 사실상 의미가 없으니 집행유예 때리는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딸이 이식수술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잖아요.”

“달리 간이식을 해 줄 사람이 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소주일 씨는 이혼했고 부친은 돌아가시고 형제분들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소지하 양이 비뚤어진 건 어느 정도는 아버지의 애정을 갈구하기 때문도 있습니다. 신장 하나 떼는 정도면 모를까 간 조직 이식 요청 정도는 들어줄 수밖에 없죠. 게다가 이거 들어주지 않으면 실형 받을 수도 있는데 당연히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와. 진짜 개새끼다.”

류하리가 대놓고 욕했다. 하지만 시현은 태연했다.

“그렇게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잠깐. 그럼 정말 사람 수명이 보인다고? 당신이 뭐 저승사자라도 되나?”

소주일은 시현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제가 없었으면 소주일 씨 수명은 한 달도 안 남은 상태였습니다. 제 덕분에 지금은 수명이 꽤 늘어나셨군요. 그러니까 1년 정도는 받아도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만?”

“…….”

“따님을 집행유예 받게 한 것은 따님 본인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지만 소주일 씨 수명은 제 덕분이 아닙니까?”

시현은 그리 말하고 깎아서 자른 사과 조각을 포크에 찍어서 소주일의 입에 직접 넣어주었다.

“어.”

소주일은 자신의 입에 사과를 집어넣는 시현의 손을 피하지도 못했다.

시현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수명을 넘겨주시려면 정산이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

“따라해 보세요. 정산.”

“저, 정산.”

“네. 감사합니다.”

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또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 잠깐만. 그럼 난 앞으로 수명이 얼마나 남았지?”

“그건 말씀드릴 수 없군요. 별도 계약을 맺는다면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아마, 별로 알고 싶어지지 않을 겁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추가로 계약을 맺고 남은 수명을 알려드릴까요?”

“이런 젠장…… 꺼지라고! 이 염병 들릴 놈아!”

소주일은 남은 수명을 알고 싶다는 욕망과 알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을 저울질하다 시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 * *

“별로 고객이 만족한 것 같지 않군요.”

“뭐 이런 것도 포함해서 고객서비스지요. 비록 저렇게 말씀하시지만 다음에 또 일이 생길 경우 절 찾아올 게 틀림없습니다. 적어도 제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계실 거거든요.”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건지…….”

류하리는 뻔뻔한 시현의 말에 이제 감동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대체 어떤 일을 겪어야 인간이 저렇게 되나?

아니, 태어나길 본래 저따위로 태어났을까? 하늘이 내려준 일종의 재능(?)인 걸까?

이래저래 궁금해졌다.

“그래서 당신이니까 생각은 있지요?”

“무슨 생각 말입니까?”

“그 사이다패스인지 뭔지 하는 것 말이에요. 보아하니 사이다패스라는 자에겐 당신 능력이 먹히지 않는 거 아닌가요?”

“…….”

“그래서 당황했었군요. 아마 사이다패스가 죽이는 사람은 당신이 본 수명과 상관없이 죽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능력이군요. 사이다패스가 당신의 능력 밖에 있는 걸로 놀라는 걸 보면 다른 사람이 살해했다면 그 살해하는 것까지 감안해서 수명이 보인다는 뜻이군요. 아, 그래서…… 스트리머 살인사건 때 BJ젠다를 여기저기 옮겨봤군요. 수명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걸로 상대의 공격방향을 알려고!”

“…….”

“게다가 양주에서 살인이 일어난 걸 멀찍이에서도 알 수 있는 걸 보면 수명을 보려고 결정한 사람은 아무리 먼 거리에 있더라도 그 위치를 알 수 있나 보군요. 당신이 왜 불륜조사를 쉽게 하는지 생각해 보면 그렇군요. 수명을 보는 능력이면서 동시에 상대의 위치를 아는 능력이라니…… 이야, 불륜조사의 달인이 될 법도 하군요.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겠네요.”

“놀랍군요. 수명을 본다는 힌트를 괜히 줬군요. 그렇게 단번에 알아채다니.”

시현은 류하리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럼 사이다패스가 죽이는 사람은 당신의 능력을 벗어나서 남은 수명 상관없이 그냥 죽어버리는 거죠? 그거 정말 위험한 놈이네요. 잡는 데 협력해 주세요.”

“제가 경찰도 아닌데 왜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신 같은 인간은 철저히 돌다리를 두들겨보는 성격 같은데, 그런 이상한 놈이 당신의 능력 밖에 있으면 신경 쓰이지 않겠어요?”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요. 고객으로서 의뢰하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만…….”

“윽.”

사실 시현이 탐정으로서 돈을 요구한다면 류하리 입장에서 그 정도는 낼 수 있다.

성신아가 짜증낼 정도로 부잣집 딸인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경찰, 그것도 시현을 조사 중인 류하리가 시현의 고객이 될 수는 없다.

‘내가 사비로 이 사람이랑 금전거래를 했다는 걸 알면 나중에 난리가 날 테니까…… 그런데 이 남자 쪼잔하네. 그런 초능력이 있으면 돈 버는 건 너무 쉬울 텐데 그래도 악착같이 구네.’

류하리는 시현의 프로의식(?)에 빈정 상해서 투덜거렸다.

“또 그런 소리 한다. 이번 일은 솔직히 말해서 제가 도와준 거 아닌가요? 소지하 양 설득하고 심문하고 만나고 한 거 다 전데? 그러니까 당신도 좀 협력해 봐요.”

“일단 지금 상황에서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그 사이다패스라는 사람의 정보망이 궁금하군요.”

“정보망?”

“네. 마약 딜러 사건에 어떻게 끼어들었고 어떻게 마약딜러의 위치를 알았는지가 궁금합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닌데 그쪽을 조사해 보면 상대의 꼬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겠군요.”

“하지만 이 선언문을 보면 음…… 아니, 기우이길 빌어야겠군요.”

“뭔 의미심장한 소리를 또…….”

* * *

“흐음. 마약 딜러라.”

최형림 검사는 검사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자칭 사이다패스라는 인물의 성명문이 올라와 있었다.

증거품을 찍은 사진이긴 하지만 화질이 좋아서 내용을 읽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경찰들이 멍청이라서 다행이군. 이런 걸 썼는데 그냥 덮고 지나가다니.”

그는 파일을 닫았다.

그의 앞에는 여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뭐야. 내가 실수했다는 거야?”

“아니, 잘했습니다. 잘했는데 경찰들이 선언문을 무시하는군요.”

“으음. 왜 그러지? 마약 사범 정도로는 사회적 이슈가 안 되나?”

“마약법은 중죄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래서 마약법의 적용을 덜 받는 약물을 선택하지요. 과거와 달리 지금의 인식은 잡범입니다.”

“그래서 고른 거야. 이런 유학생 마약쟁이들은 전관예우 법조인들이 달달하게 꿀 빠는 대상이잖아. 그들을 죽이면 이 사회에 대한 내 경고가 언론에 대서특필될 줄 알았는데 전혀 뜨지 않았어.”

그녀는 바로 저 사이다패스 선언문을 쓴 장본인이었다.

마약 딜러들을 참살할 때의 그녀는 자신만만하고 광기에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마치 주위 모든 것들이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는 겁에 질린 생명체처럼 눈알을 굴리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잡범인 마약 딜러 정도 죽인 걸로는 세간의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역시 사회지도층을 죽여야 이슈가 되지요.”

최형림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스산한 살기가 그의 목을 조여 왔다.

“그럼 당신 정도면 사회지도층이 아닐까?”

“전형적인 근시안의 발상이로군요.”

“뭐?”

“내 눈앞에 보이는 자만 생각하고 그 너머에 있는 이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겁니다. 당신이 보기엔 평검사인 제가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글쎄요?”

“말재주가 꽤 좋은 편이군. 역시 검사님인가. 하지만…… 당신 너무 기세 좋게 나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신에게서 심한 악취가 나거든.”

“피차일반이군요.”

최형림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 말을 따르시지요. 그러면 화려하게 데뷔하게 해 주지요. 사회지도층을 사냥하고 싶다면 지금 방식으로는 힘들 테니까.”

최형림의 눈에 도시의 야경이 발하는 현란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데드맨31

계약의 경쟁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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