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팍!
시현의 머리에 500cc 생수통이 날아와 명중했다.
뚜껑이 느슨하게 닫혀있던 생수통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깜짝 놀란 류하리가 생수통이 날아온 쪽을 돌아보니 험상궂은 남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 너 이 새끼. 뭔데 우리 사무장님 쫓아 다니냐?”
“스토커 새끼냐?”
시현은 물에 젖은 머리를 만지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생수통을 던진 것만으로도 폭행죄가 성립합니다. 고소당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만?”
“개소리 하고 있네.”
“여기 강남인데 강남경찰서에 살려 달라고 전화해 보시지 그러냐?”
그 말을 들은 류하리가 깜짝 놀랐다.
이놈들 시현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아니, 심지어 시현이 강남경찰서에 찍혀있는 것까지도 잘 알고 있다.
“너 이 새끼 탐정이지? 뭔 냄새 맡고 왔는지 모르지만 낄 데 안 낄 데 분간하고 조용히 꺼져라. 응?”
“우리가 네 사무실도 알거든? 마포구에 있지?”
“이 정도면 알아듣겠냐? 자, 이거 세탁비 쓰고. 응? 아직 좋게 말로 할 때 꺼져라. 응?”
그들은 시현의 앞에 5만 원권 몇 장을 뿌렸다.
“하아.”
“조심해라. 다음에 또 여기서 네 모습 보이면 눈깔을 파버릴 테니까.”
건들거리는 건달들이 시현을 협박했다.
그런데…….
시현이 쪼그려 앉아서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게 아닌가?
“큽.”
“말은 잘 듣는구만.”
건달들은 시현이 돈을 줍는 걸 보고 비웃으며 물러났다.
보고 있던 류하리가 황당해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뭐하는 거예요.? 이 상황에서 돈을 줍다니?”
“돈에는 죄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저 친구들에게도 필요할 거 아닙니까?”
“네?”
돈을 다 줍고 남은 생수통도 주워든 시현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그에게 돈을 뿌렸던 사내의 뒤에서 슥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어?!”
사실 이 남자는 시현이 뒤에서 다가오는 걸 눈치채고 돌아서서 한대 갈기려고 했다.
그런데 시현이 너무나 쉽게 그의 등을 눌러서 돌아서는 걸 막고 어깨동무를 한 것이다.
그리고 시현은 그들에게 주웠던 생수통을 그대로 남자의 머리에 콸콸 들이부었다.
“이 새끼가!?”
“자, 조용히, CCTV없는 데로 가 볼까? 그게 너희들에게도 좋지?”
“뭐? 미쳤냐?”
“다음번엔 말로 안 한다면서? 그런데 굳이 다음번에 볼 필요 있냐? 지금 본 김에 지금 해결하자고.”
“이 자식이 돌았나?”
그들은 어이없어 했다.
시현은 키가 꽤 큰 체격이지만 그들도 작지 않다. 아니, 험악한 인상, 두꺼운 근육과 지방질 몸통은 체급에서는 오히려 더 위다.
게다가 숫자도 더 많지 않은가?
시현 옆에 있는 여자가 신경 쓰였지만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담하거나 시현을 말리지도 않고 따라오고 있었다.
“촬영하는 거냐?”
“아, 아뇨.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해 보세요.”
류하리는 양손을 들어서 자신이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시현이 과연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 * *
“좋아. 이제 CCTV는 없어 보이는데.”
골목길 안쪽 낡은 빌라의 주차장에 들어서자 시현이 CCTV가 없음을 선언했다.
“이 새끼가 건방지게!”
그 순간 앞서서 걷던 이가 돌아서며 대뜸 큰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시현이 그 주먹을 피하며 자신의 주먹을 날렸다.
-콱!
팔과 팔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리고…….
주먹을 휘두른 놈이 붕 떴다.
분명히 체급은 그가 시현보다 더 나갈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팔이 얽힌 순간 마치 어린아이처럼 발이 뜬 것이다.
‘바, 발이 떴…….’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송곳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격돌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어깨가 뽑혀버린 것이다.
통증 때문에 균형을 잃은 거구의 건달이 휘청거리며 골목길에 쓰러졌다.
“어윽…….”
“아, 사고네. 사고.”
단 일격에 건달을 무력화 시킨 시현은 태연했다.
“이 자식이!”
다른 한 놈이 시현에게 로우킥을 날렸지만 시현이 무릎을 접어서 그대로 받아버리자……
-빡!
다리가 덜렁덜렁 부러진다.
‘크악! 뭐야 이놈. 말도 안 돼. 왜 이렇게 몸이 단단하지?!’
당황한 건달이 부러진 다리로 버티려 했지만 뼈가 부러진 정강이는 그의 체중을 버티지 못했다.
허망하게 다리가 풀리며 뒤로 나뒹굴었다.
“끄아아악!”
“그래서, 내 사무실 위치를 안다고 했지? 설마 그걸로 날 협박하는 건가?”
시현은 다리가 부러진 건달 앞에 쪼그려 앉아서 물어보았다.
“이, 이 새끼야. 너 이런 짓 하고도 무사할 것 같냐?”
“물론 무사하지 못하지. 아이고, 무서워라. 내가 무릎이라도 꿇을까?”
시현은 그리 말하고 무릎을 꿇었다.
문제는 그의 무릎 밑에 부러진 건달의 다리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건달을 보며 시현은 코웃음 치고 그의 품을 뒤져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 이 자식이!”
“발품 팔면서 조사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겠군.”
시현이 건달의 손을 잡아끌어 지문 센서에 가져다 대자 폰의 잠금이 풀렸다.
“왜 건달들은 항상 최신 폰을 쓰고 지문 등록 같은 걸 해 두는지 모르겠어. 폰 뒤져보면 쇠고랑 찰 일을 하면서? 덕분에 편하긴 하다만.”
“이, 야! 이 자식아!”
건달들은 저항하려 했지만 시현이 그들의 손을 쳐내고 억누르자 마치 곤충채집당한 곤충처럼 꼼짝을 못했다.
‘무, 무슨 놈의 힘이…… 중장비에 깔린 것 같아!’
시현은 건달들을 억누르고 메신저 앱을 살펴봐서 건달들이 연락하는 이들의 대화 등을 살펴보았다.
“이, 이 새끼가. 너 지금 그런 짓 하고 무사할 것…….”
“정주택 하우징, 하우스 어페어, 랜드 투자개발, 장룡 개발, 경문 토지, 도하 전기, 월성조경, 경산조경, 이야…… 법인명 짓는데 고생하겠다. 뭔 법인이 이렇게 많냐? 너희들? 법인이 이렇게 많은 거 보니까 사기 한 두 개 친 게 아닌 것 같은데?”
“…….”
건달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궁금해진 류하리가 다가왔다.
“회사가 한두 개가 아닌가 보죠?”
“네. 부동산회사, 인테리어회사, 조경회사, 전기설비회사, 잔뜩 있네요. 보아하니 부동산 사업 일으키고 인테리어나 내장공사, 전기설비 비용을 과다상계해서 돈을 빼내는 방식으로 돈세탁하는 모양인데 법인 설립은 죄다 저쪽 로펌에서 했네요.”
“와. 알차네요.”
류하리가 폰에 다가오려 하자 시현이 말렸다.
“경찰이 직접 손대면 안 되지요, 류 경위님. O.J. 심슨 사건 모르세요? 불법적인 경위로 입수한 증거는 증거능력을 상실하는 거? 나중에 제가 ‘익명의 첩보’를 드릴 테니까 그걸 가지고 수사를 하시지요.”
“류 경위?”
건달들이 당황해서 류하리를 바라보았다.
“경찰이라고?”
“몰랐냐? 아니면 뭐 하러 따라와서 돕는 것도 아니고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구경했겠어?”
“아.”
류하리가 혀를 찼다.
‘이번 사건에서 내가 좀 엿을 먹였다 싶었더니만 이렇게 반격하네.’
류하리가 경찰이라는 말을 듣자 건달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아니, 겨, 경찰이 이래도 되는 거야?”
“뭘 어쨌는데요? 제가 볼 땐 당신들이 먼저 주먹질 했다가 스스로 다친 거로밖엔 안 보이는데요.”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시현이 킥 하고 웃었다.
“그건 그래. 다들 너무 우유를 안 먹는 거 아냐? 칼슘을 많이 먹고 햇볕을 충분히 쬐라고. 벌써부터 그러면 노년에 골다공증으로 고생한다?”
시현은 그리 말하며 주머니를 뒤져서 아까 전 저들이 뿌렸던 5만 원권을 그들 앞에 뿌렸다.
“이걸로 가서 칼슘보충제라도 사먹지 그래? 얼마 안 할 거야.”
“…….”
“아윽…….”
* * *
“그렇게 도로 뿌리려고 열심히 주웠군요.”
류하리는 건달들에게 돈을 뿌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 나온 시현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그러자 시현이 답했다.
“실은 한 장 덜 뿌렸습니다.”
“네?”
“칼슘제 거 몇 푼이나 한다고…….”
시현은 류하리에게 손수건을 받아 이마와 얼굴을 닦았다.
“이건 세탁해서 돌려드리지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래서, 뭐 알아냈어요?”
“우선 그 피해자 모임 카페 있지요?”
“네.”
“그거는 법무법인 선양이 만든 게 맞습니다. 피해자들의 여론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먼저 카페를 만들고 사람들을 모은 거지요.”
“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법인 선양에서는 직접적인 책임은 없습니다. 사기조직이 고도화 되면 이게 문젠데 법적인 책임을 분산해서 자신들 손을 안 더럽힐 수 있단 말이지요.”
“그건 큰일이네요. 우선 여기까지 알아낸 사실을 김경식 씨에게 알려 주어야겠군요. 그래도 되겠지요?”
“아니, 제가 직접 연락하겠습니다. 탐정으로서 제 유능함을 어필해서 계약을 이끌어내야지요.”
* * *
김경식은 시현과의 만남을 잊고 있었다.
아니, 그런 강렬한 만남을 잊을 수는 없다.
잊을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피해자 카페의 여론은 온전히 관리자들의 손에 달려있다.
일반 회원인 그가 이제 와서 로펌을 바꾸자거나 해도 분탕질 취급받을 텐데 로펌이 아니라 탐정을 고용하자고 하면 무슨 취급당할지 뻔했다.
‘흥신소에서 돈 벌려고 나를 통해서 영업 뛴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그는 잊고 있었다.
친정으로 떠난 아내의 빈자리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며 그는 그저 관성적으로 방바닥에 늘어져 붙어 있었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메일을 보내놨습니다.]
“네?”
시현이었다.
“잠깐만요. 지금 메일을 확인해 볼 테니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피해자 카페의 운영진은 법무법인 선양과 끈끈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법무법인 선양 산하에서 권선우 법무사라는 사람이 일했었다는 증거도 있지요.]
시현이 보낸 자료는 사기를 쳤던 부동산 회사, 정주택 하우징의 법인 약관과 그때 찍힌 권선우 법무사 사무실 위치와 현재 법무법인 선양의 사무실 위치, 그리고 법무법인 선양 소속 ‘권선우 법무사’의 명함 사진 등이 동봉되어 있었다.
“이, 이건…….”
[그 피해자 카페는 피해자들의 여론을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 위해 법무법인 선양에서 직접 만든 카페입니다. 카페 운영진 측이 되면 들어오는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고 여론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바지 사장만 희생시키고 적당히 끝내게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 아니겠습니까?]
“이, 이거 피해자 카페에 올려도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올리세요. 다만 운영진이 바로 잘라버릴 거기 때문에…… 사람들 많이 몰리는 시간에 올리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시현의 말을 들은 김경식은 일부러 퇴근 시간 이후까지 기다렸다가 시현이 준 자료들을 올렸다.
과연, 김경식의 게시물은 빠르게 삭제되고 김경식은 카페에서 뮤트 처리 되었다. 우습게도 탈퇴가 아니라 뮤트로 카페에서 탈퇴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경식은 카페 운영진들의 반응을 보고 시현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개놈들! 네놈들이 사기꾼이랑 한패였다니! 게다가 카페를 만들어서 피해자를 한 번 더 농락하기까지 해?”
분개한 김경식은 SNS에 자료들을 올려두었지만 그 SNS 계정들에 신고가 쏟아져 빠르게 정지되었다.
이 로펌 놈들은 조직적으로 인터넷에서의 평판도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확도 있었다.
다른 피해자들이 김경식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카페 운영진들이 카페 게시물은 재빠르게 뮤트하긴 했지만 SNS나 그런 데에 올린 자료는 신고 후 내려지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자료를 본 다른 피해자들이 김경식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피해자들은 이제 피해자 카페의 움직임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데드맨31
계약의 경쟁자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