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41화 (41/269)

제41화

김경식은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시현탐정사무소를 찾아왔다.

“우, 우선 감사합니다. 당신이 그 자료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계속 그 사기꾼 놈들에게 농락당했을 테니까요.”

“아뇨. 별말씀을.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문제는 고객으로 성립되기엔 탐정들 기본 조사비가 비싸게 책정되어 있고 이걸 제가 원한다고 깎아줄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지요. 협회에서 정해진 바가 있어서 말이죠.”

그러니까 너희들 마음 정하도록 내가 돈도 안 받고 선 조사를 해 줬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식 입장에서는 고객을 발굴하겠다고 선투자를 하는 시현의 악착같음에 솔직히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중이다.

게다가 돈 말고 수명도 받는다고 했었는데 그게 뭘까?

이런 수상한 탐정을 과연 믿어도 될까?

그런 불신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빠르게 이 로펌의 음흉한 속내를 파악한 재주에 감탄했다.

만약 시현이 조사해 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사기꾼과 한패인 로펌에게 한 번도 아니라 두 번이나 뒤통수를 처 맞을 뻔했다.

“그래서 그 고객 말인데…… 당신을 고용하면 법무법인 선양과 사기꾼들의 커넥션을 알아내고 그들의 은닉재산을 되찾아 주겠다는 거지요?”

“네. 하지만 은닉 재산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사기꾼 조직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이미 상납으로 갈기갈기 찢어져서 많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신을 조사하면 그 고용비용, 조사비용을 대야 한단 말이지요?”

김경식과 함께 온 피해자들은 그렇게 말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피해자 중 회의적인 사람이 투덜거렸다.

“나는 좀 이해가 안 가. 로펌도 믿을 수 없는데 탐정? 말이 탐정이지 흥신소잖아? 이 사람도 우리에게 사기 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사기꾼들에게 농락당한 사람들은 세 번째는 반사적으로 불신했다.

“그걸 대놓고 제 앞에서 말씀하셔도.”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봐. 실례잖아요.”

“실례는 사기 피해자에게 돈 뜯어내려고 하는 이 자가 하는 거고.”

“그렇다면 돈 말고도 거래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뭐, 뭐야? 이건?”

“수명입니다. 1년씩 주시면 됩니다. 아, 물론 대놓고 절 모욕한 당신은 3년 정도는 받아야겠군요.”

“뭐?”

“그 계약서에 서명하시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조사해드리고 사기꾼들의 마각을 청천백일하에 드러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시현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

시현을 모욕하던 회의적인 피해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수, 수명을 달라니 미친 놈 아냐? 이게 뭔 소린데? 수명을 정말 빼앗아 갈 수 있단 말야? 뭐, 만화를 너무 봐서 머리가 돌아버린 거 아냐?”

“믿건 믿지 않건 상관없습니다. 계약서에 계약만 하시면 됩니다. 게다가 성공보수이지 않습니까? 제가 사기꾼들을 잡는데 별 도움이 안 되어 사기꾼들을 놓친다면 조사비용도 지불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시현이 그리 말하는데 뭔가 스산한 한기가 시현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펜을 쥐고 있는 회의적인 피해자의 손에서 땀이 흘렀다.

‘분명히 개소린데……. 뭐지? 이 한기는? 이놈 절대 농담으로 하는 게 아니야. 서명하면 정말 수명을 빼앗길 것 같잖아?’

그런데 그때 시현의 전화기가 울렸다.

시현은 대놓고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전화가 끊길 생각 없이 벨이 계속 시끄럽게 울렸다.

그는 자신의 품을 뒤져서 전화기들을 여러 개 만지더니만 그중 하나를 꺼냈다.

류하리의 전화였다.

“네. 류 경위님? 지금 막 고객이랑 상담 중인데요.”

[시현 씨! 크, 큰일 났어요!]

“무슨 큰일입니까?”

[법무법인 선양이…….]

“네?”

* * *

법무법인 선양의 사무실, 현장감식반이 보존 테이프를 두르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 젠장. 류하리. 이건 아니잖아.”

성신아는 짜증을 내며 현장을 보고 있었다.

사무실의 입구, 철제 방화문으로 만들어진 문의 핸들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 *

“…….”

시현은 전화기를 놓고 TV를 켰다.

뉴스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강남의 모 법무법인의 사무장과 변호사, 직원들 여섯 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백주대낮에 여섯 명이 미처 도망치지도 못하고 살해당한 끔찍한 사건에 아나운서가 흥분해 있었다.

화면 전체가 모자이크 처리된 걸 보니 현장에 피보라가 몰아친 모양이었다.

“어?”

“저기 저거! 그 법률 사무소 아냐?”

보고 있던 의뢰인들, 아니, 의뢰할 이들이 법무법인 선양의 간판과 사무실을 알아보았다.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지만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은 생겨먹은 모양이다.

“으음.”

시현은 그 모습을 보며 신음했다.

‘전에 마약 사범 때도 그렇지만 사이다패스의 소행인가 보군.’

시현은 오늘 아침에도 법무법인 선양의 주요 인물들에 박아둔 태그의 위치를 확인했었다.

그때는 아직 수명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는데 지금 보니 죽어 있다.

사이다패스의 소행이 분명했다.

* * *

여의도의 한 실내골프장.

그곳에서 서부지검 형사부 부장검사 조동학은 새로 산 골프채를 정성스럽게 융으로 닦으며 빛에 비추어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골프채의 반짝이는 반사면에 한 인영이 비쳐 보였다.

“……음?”

조동학이 뒤돌아보니 젊은 여자애 하나가 서 있었다.

펑크 스타일 점퍼를 입고 풍선껌을 불고 있는 여자애였다. 나이는 20대 초쯤 되었을까?

실내골프장에 올 것 같은 여자는 아니다.

“조동학? 맞지? 검사인?”

“뭐?”

조동학은 눈살을 찌푸렸다.

검사가 된 이래 그를 이렇게 쉽게 하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물며 나이도 어린것이 그를 이렇게 무슨 동네 개처럼 부르다니?

“누구지?”

그래도 조동학은 함부로 폭언을 퍼붓거나 하면서 이성을 잃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녹음 녹화가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옛날과 달리 휴대폰만으로도 좋은 화질, 음질의 영상을 뜰 수 있는 시대,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이를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이 여자, 말하는 게 선을 넘었다.

“사기 조직에게 떡값을 낙낙하게 받았더라? 하긴 고위공무원 급료가 세더라도 그래봤자 공무원 급료지. 그거 받아선 도저히 지금 생활수준이 유지가 안 될 텐데 명품 차려입고, 품위 따지고. 그 품위유지비가 어디서 나왔겠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사기조직이라니?”

조동학은 눈살을 찌푸리며 골프채를 잡았다.

“와, 놀랐다. 진짜 아예 자각이 없군.”

그 여자는 그리 말하고 손을 휘둘렀다.

-퍽!

그 순간 조동학의 손에서 골프채가 날아갔다.

팔꿈치가 기묘하게 꺾였다.

두 팔이 통째로 부러진 것이다.

“헉?!”

조동학은 기겁했다.

비록 그가 나이 지긋한, 폭력적인 일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 해도 빈손도 아니었는데 눈앞의 가녀린 여자애가 휘두른 고무망치 같은 것에, 일격에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너무 빠르고 강했다.

“으아아악!”

뒤늦게 찾아오는 통증에 부장검사가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된 거야? 본인이 너무 뻔뻔한 거야? 아니면 지금 내가 생사람 잡고 있는 거야?”

그 여자는 블루투스 인이어 헤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실제로 부장 검사님은 스폰서를 잔뜩 받고 있습니다. 너무 스폰서를 여러 곳에서 많이 받아서 본인이 자각이 없는 거지요. 법무법인 선양에서 용돈 받는 거 없냐고 물어봐요.]

조동학은 그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어째 귀에 익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크윽. 뭐, 뭐야? 넌? 겨, 경찰……!”

“법무법인 선양의 강 변호사에게 용돈 받는 거 없어?”

“서, 선배님이 왜?”

[거 봐요.]

“아. 진짜 자각이 없구나?”

여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망치를 치켜들었다.

“어…… 서, 설마? 너? 최형림? 최형림 검사냐?!”

[귀가 꽤 좋으시군요. 나이 드시면 청력이 많이 상한다던데…….]

“무, 무슨 짓이냐? 이 여자는 또 뭐고?”

[아니…… 아무래도 검찰 조직에서 위에 올라가려면 승진이 적체되어 있지 않습니까? 공을 한두 개 세운다고 해서 티가 날 것 같지도 않고 차라리 윗사람들을 차례차례 죽이면 좀 더 빨리 승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무고한 사람도 아닌데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더군요.]

“미, 미친 새끼. 너 진짜 제정신이냐?!”

하지만 그때 망치가 떨어졌다.

피가 튀며 조동학 검사의 손발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바르르 떨다 축 늘어졌다.

“너무하네. 눈앞에 내가 있는데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래도 이제 수사부장님이 죽었으니 이제 언론도, 경찰과 검찰도 당신의 선언문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어째 당신 속내대로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쁜데.”

사이다패스는 그리 투덜거리며 자신의 선언문을 조동학 검사의 시체 위에 뿌렸다.

* * *

서부지검의 수사1부 부장검사 조동학이 피살당했다.

범인은 바로 그 선언문을 뿌리던 이. 스스로 사이다패스라 부르는 연쇄살인마였다.

이리 되자 경찰과 검찰은 다 함께 난리가 났다.

그 전에 이미 마약사범 살해사건에서 ‘사이다패스’의 선언문이 있었지만 당시 경찰은 이 선언문이 어떤 변태적인 살인마의 것이 아니라 그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마약범들의 소행이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 사이다패스가 실재하는 연쇄살인범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선언문을 무시한 책임을 누군가가 져야 했다.

“큰일이군. 아니, 요새 무슨 일이지?”

서부지검 수사부는 발칵 뒤집어져 있었다.

수사부 부장검사가 살해당했으니 다들 당황하고 있었다.

“처음 마약사건에서 선언문을 무시하라고 지시한 건 수사1부 부장님이었지요?”

수사부의 평검사 최형림이 말을 꺼냈다.

“그것에 범인이 자극당해서 살해한 게 아닐까요?”

“그걸 범인이 대체 어떻게 아는데?”

“그렇지요?”

최형림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몰라서 말한 게 아니다.

‘선언문을 무시한 것은 수사1부장.’

그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즉, 선언문을 무시했던 책임은 수사1부장에게 돌리면 된다.

하지만 신참 평검사인 최형림이 그러자고 말하면 조직 내에서 찍힐 수밖에 없다.

‘감히 기수 낮은 평검사가 아무리 요새 잘나간다고 해서 죽은 선배에게 책임을 돌려?’

그런 비난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돌려 말한 것이다.

‘어허. 이 녀석 봐라?’

‘담력이 대단한데?’

검사들도 멍청이들이 아니라서 곧 다들 최형림의 의도를 알아챘다.

하지만 화가 난다기보다는 최형림의 대담함, 용감함과 과단성에 다들 감탄했다.

‘스트리머 살인사건 때도 그랬고 이놈 크게 될 놈이네.’

‘다들 충격 받아서 멍 때리고 있을 때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면서도 자기에게 비난 안 오게 포장을 잘했는데?’

‘역시 인물은 인물이네.’

검사들은 최형림의 능수능란함에 감탄했다.

“그럼 일단 수사지휘는 누가 맡지? 수사1부장 자리는 비워두나?”

“충북지검의 박주성 검사님이 여기 수사1부장으로 올 것 같습니다.”

“아, 박주성이…….”

“그라면 좀 하겠지. 하지만 끄응. 어떤 미친놈이 감히 검사를 건드려? 대통령도 우릴 함부로 못 건드리는데.”

“대통령은 5년 꼴랑 하면 내려가는 선출직이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시스템에 순종하지 않는 미치광이 살인자 같은 게 위험하지.”

검사들은 자신들이 권력자임을 잘 실감하고 있었다.

권력에 굴종하는 것들은 아무리 많아도 전혀 두렵지 않다.

문제는 권력과 사회 시스템을 부정하는 미친놈이 덤벼들 경우다.

‘꽤나 효과가 좋군. 직장 선배와 동료들이 이렇게 놀라는 걸 보니 일을 벌인 보람이 있는걸?’

최형림은 검사들 사이에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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