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43화 (43/269)

제43화

청원살인 #2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해 보자.’

누가 개설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이트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트에 현재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인물이 바로 성취. 성취와 성취에 관련된 검사들, 판사들을 처단해 달라는 청원이 2등 청원에 비해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류하리는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독제독이라고 할 수 있군요. 이건.”

“그거 참. 남의 이야기가 아니군요.”

시현은 짜증을 내며 종이를 바라보았다.

“설마 성취에게 의뢰를 받을 건가요?”

“일단 만나보기는 해야겠지요.”

“어떻게 만나실 건가요? 당신은…… 강남경찰서 서장 사건 때문에 가뜩이나 찍혀있는데…….”

윤 회장의 세력이 시현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을 텐데 그 세력의 비호를 받는 성취에게서 계약을 따내라니.

말도 안 되는 요구 같다.

“성취의 집이 저 앞에 있습니다.”

“하지만 저건…….”

류하리는 눈앞에 있는 고급 빌라트 단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한 평에 1억이 넘는 고급 빌라단지다.

수영장, 골프연습장, 볼링장, 영화관을 커뮤니티 센터 안에 두고 있고 외국 유수의 외교관들, 재벌들, 연예인들이나 사는 동네다.

치안도 그만큼 삼엄하다.

“어떻게 들어갈 건가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카드키를 꺼내 보였다.

“…….”

그 빌라의 열쇠가 있지 않은가?

“단기 렌트를 했지요.”

“단기 렌트요? 그래도 꽤 비쌀 텐데요?”

“다행히 돈은 좀 있어서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갔다.

* * *

성취의 빌라 안쪽에는 한때 성취가 활동했던 ‘레드던’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마치 무슨 합스부르크 황제의 초상화처럼 웅장하게 꾸며진 거대한 사진의 앞에 당구대, 그 위에는 빈 술병들이 널려있고 당구대 위에서 널브러져 잠들어 있는 성취가 있었다.

“공사장님. 흐흐. 저희 담배 피러 좀 나가도 됩니까?”

성취의 본명은 공성공. 자신의 이름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성취는 누군가가 자신을 본명으로 부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렇지만 지금 성취에게 붙은 경호원은 성취에게 월급 받는 이들이 아니다.

윤 회장이 붙여준 경호원들이다.

물론 성취가 성공한 사업가라며 자신을 포징할 때는 윤 회장이 붙여둔 경호원들도 성취의 눈치를 살피며 감히 신경을 건드릴 생각을 못했지만 지금은 일부러 공사장님, 공사장님 하며 성취의 신경을 거슬리고 있었다.

“시발, 애새끼도 아니고 그런 걸 나에게 물어보냐? 다녀와. 젠장!”

성취는 옆을 더듬거리다 술병을 잡고 병나발을 불었다.

목을 태우는 듯한 독주가 꿀꿀 물처럼 들어갔지만 전혀 취기가 돌지 않았다.

이미 취해있어 제정신이 아니니 독주조차 물 같다.

“알겠습니다, 공사장님.”

“시발! 본명으로 부르지 말랬지!”

“하지만 성취라는 이름은 좀…….”

“꺼져, 개좆같은 새끼들! 윤 회장님이 너희들 그러는 줄 아냐!”

성취는 술병을 손에 쥐고 성질을 냈지만 차마 던지거나 하진 못했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저 경호원들의 무지막지한 덩치가 두렵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취해 있는데도 용기보다 겁이 더 앞섰다.

윤 회장이 붙여준 경호원들은 그런 성취의 반응을 즐기며 낄낄거리며 나갔다.

* * *

“어휴, 개털 된 놈. 이제 더 이상 뭐 없지 않냐? 왜 회장님은 저런 놈 봐주라는 거지?”

“냅두면 아가리를 열잖아. 그건 막아야지. 저놈 입 열면 한둘 다치는 게 아니잖아?”

“그럼 차라리…….”

말은 안 했지만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죽이는 게 낫지 않냐? 라고……

그리고 사실 그건 성취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윤 회장이 보낸 경호원들은 사실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사형집행인이라는 걸 알기에 그를 공사장이라고 부르건 뭐건 욕을 내뱉을지언정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윤 회장 비위를 맞추며 살면 또 답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제 와서 성취가 다시 연예기획사를 하건 사업을 하건 뭐가 되겠는가?

연예인으로서도 기획자로서도, 사업가로서도 사형선고를 받은 셈인데.

물론 벌어둔 돈은 아직 많이 있으니까 아끼고 살면 평생 놀고먹으며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의 삶에 이미 중독된 성취에게 이제 와서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매일 매일 회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리라.

“지금 같으면 술 먹다 죽겠는데?”

“아마 그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당사자에겐 말이지.”

“원 참. 그나저나 여기 집 참 좋다. 대체 얼마나 벌어야 이런 데를 살 수 있을까?”

그들이 1층 정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옆 정원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담배연기는 넘어오니까 주의 좀 해 주시지?”

“어?”

그들은 순간 너무 놀라서 손에서 담배를 떨어뜨렸다.

젊은 남녀 둘이다.

여자는 손에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남자의 뒤에 숨어 있는데…… 이 남자가 어째 눈에 익숙하다.

“너, 이, 이 새끼!”

그들 중 몇몇은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난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탐정 시현, 바로 강남경찰서 사건 때 그들의 소굴이라 할 수 있는 레반테스 호텔로 쳐들어와서 유유히 빠져나간 놈이 아닌가?

“오늘은 바쁘니까 맞아주고 시작할 필요는 없겠군.”

“네?”

류하리가 당황할 때 시현이 앞으로 나서며 발길질을 했다.

-퍽!

발에 맞은 이가 뒤로 날아가 잔디밭 위로 굴렀다.

“이 새끼가!”

삼단봉을 빼든 남자가 달려들려고 했지만 시현이 주먹으로 후려갈기자 그대로 맥없이 바닥에 푹 고꾸라졌다.

-퍼억!

또 한 명이 잔디밭 위로 나가떨어졌다.

“와우…….”

류하리는 뒤에서 보고 당황했다.

“그거 주세요.”

“아, 이거요? 이게 뭐예요?”

류하리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 백을 건네주었다.

시현이 안에서 꺼낸 것은 떡이었다.

“……네?”

“같은 건물 사람에게 인사차 떡을 준다.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인지상정의 행위입니다. K-인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K-인심…….”

“이런 고급 빌라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서로서로 출입구조차 공유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소방법에 의한 비상구는 공유하고 있고 이 비상구를 그냥 이동해서 접근하는 건 이상하니까 K-인심을 이용하는 거지요.”

“아, 그래서 나중에 왜 남의 집에 접근했냐 하면 그걸로 우기려고 그러는 거지요? 하지만 그건 이사 왔을 때나 하는 거 아닌가요? 단기 렌트면서 무슨…… 게다가 저 경호원들을 패버린 시점에서 K-인심은 물 건너 간 게 아닐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시현은 그리 말하며 성취의 집 문을 노크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뭐야? 너흰?”

성취는 이미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오, K-아이돌.”

“……그만하지요?”

류하리가 시현을 흘겨보았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시현은 명함을 손가락에 구부려 끼우더니 휙 날렸다.

-휘릭!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명함이 날아가 성취의 손가락 사이에 팍 꽂혔다.

“……어?”

대리석으로 된 당구대 하판에 명함 카드가 꽂힌 것이다.

“떡 드시겠습니까?”

“뭐야 당신은…… 타, 탐정?”

“네. 지금 당신은 목숨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시현은 그리 말하고 성취의 머리 위를 흘깃 보고 혀를 찼다.

“혹시 거래하실 생각이 있습니까?”

“이건 또 뭐야? 미친 놈인가? 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봐! 뭐 하고 있어!”

성취는 경호원을 부르기 위해 당구대에서 내려오며 당구 큐대를 잡았다.

그런 그의 눈에 정원에 널브러져 있는 경호원들이 보였다.

“뭐야? 저거. 네가 했어?”

“아니요. 아마 햇살이 눈부셔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군요. 한국인들은 다들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니까요.”

“…….”

성취는 혀를 차더니 술병을 새로 땄다.

보드카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신다.

“누가 날 죽이려 한다는 거야? 검찰? 경찰? 윤 회장은 아닐 테지? 윤 회장은 날 살려두어야 하니까.”

“왜 경찰이 당신을 죽인다고 생각하지요?”

류하리가 물어보았다.

“흠. 뭐야? 그것도 모르나? 이봐. 검찰이나 경찰 높으신 분들은 죄다 범생이야. 학창시절에 전혀 놀 줄 모르는 찐따 새끼들이어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런 놈들이 권력을 쥐고서 뭘 원하겠어? 계집질을 원한다고. 결혼이야 선봐서 반듯한 집안사람들이랑 하지마는 여자는 놀 줄 아는 여자가 최고거든.”

‘아니, 이놈이 아이돌 가수 출신이 왜 대뜸 초면의 여자에게 이따위 말을 하는 거야? 맛이 완전히 갔군.’

류하리는 성취의 말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알아서 정보를 떠드는데 들어주지 못할 건 없지. 상태 안 좋은 녀석 같으니.’

그 불쾌감을 참고 계속 듣기로 했다.

성취가 이렇게 나서는 것에 어쩌면 매우 중요한 정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새끼들은 묘하게 입맛이 까다로워. 그냥 콜걸 이상의 복잡한 입맛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겠지. 학창시절에 여자 손목도 못 잡아 본 찐따 새끼들은 자신들이 못 놀았던 젊은 시절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데 그냥 콜걸들로는 만족 못한다고. 그런 놈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건 나 같은 놈이나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한때 찐따였던 높으신 분들의 약점을 잔뜩 틀어쥐고 있단 말야. 알겠어?”

“어, 음.”

류하리는 말문이 막혀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은 박수를 쳤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해. 그래서 윤 회장은 당신을 살려두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이 높으신 분들의 약점이니까.”

“…….”

성취는 술병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서 목을 축였다.

도저히 갈증해소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은 보드카를 물처럼 마신 그가 골프채를 시현에게 겨눴다.

“너 이 새끼 대체 뭐야? 검찰이나 경찰이 보낸 놈은 아닌 것 같고.”

“혹시 사이다패스라고 아십니까? 요새 화제가 되고 있는?”

“알아. 그게 왜?”

“그쪽이 당신에게 찾아올 겁니다.”

“날 죽이려?”

“물론 당신을 죽이려는 것도 있겠지만 당신을 통해서 높으신 분들의 약점을 까발리고…… 그들을 죽이는 명분으로 삼기 위해서지요.”

사람들이 성취 사건에 분노하는 것은 성취가 아이돌 가수로서 보였던 모습과 달리 부도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도 있지만 그와 얽힌 검찰, 경찰의 높으신 분들이 그를 감싸고돌며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법치를 능욕하는 것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나 무서운 법의 처벌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나 자애롭고 느슨할 줄이야.

판검사나 경찰이 다들 성취의 팬이라서 엄마마음으로 바라보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있을 정도였다.

“사이다패스는 선언문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 현 체제, 법치, 법조인들에 대한 불만이 상당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참으로 반드시 손에 넣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래서. 날 보고 어쩌라고?”

“저와 계약하시지요. 사이다패스로부터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날 지켜주겠다는 놈이 내 경호원들을 패버려?”

“아니, 그들은 지금 일광욕을 즐기며 단잠을 자고 있다니까요. 시에스타라고 하지요.”

“시에스타? 흥…….”

성취는 코웃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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